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은혜와 진리의 말씀

879강,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윤주만목사 2022. 3. 4. 07:00

시편1:1-6절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성경은 우리가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을 기초로 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그가 아무리 세상에서 지혜가 있다고 해도 이 기초를 세우기가 어렵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씀합니까?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것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환상으로 보여주신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모든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영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이 영생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저 막연하게 영원히 사는 것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문자적으로는 영원히 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저 막연하게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어야 영원히 산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성경에서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우리 인생이 어떻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게 죽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내세에 대해서는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 아주 드믑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세의 일은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에 막연함을 가지고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어떻게 영생을 얻어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의 이성으로는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아니 표현이 안 됩니다.

우리의 언어로는 설명 자체가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더 막연함에 빠져 있습니다. 마치 무당에게 가서 점을 치고 그 점괘를 그저 받아들이는 것과 같이 종교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 역시 가르치는 자들이 그렇다고 하면 자기 믿음의 문제라고 생각을 하면서 막연하게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믿지를 않으면 믿음이 없다고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믿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믿음이 있느냐는 것만을 이야기를 하니까 자기도 믿음이 있는 자가 되려면 그저 믿는다고 해야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성경에도 없는 말을 해도 그저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수입니다.

그들이 믿는다고 하면 소수는 아무리 의심이 가도 믿는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무리에 속할 수 없기 때문에 모르는 것에 대해서 의심이 되는 것에 대해서 질문을 해서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믿으라는 말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 역시 자기도 모르는 것을 믿으라고 하고 있고 그러면 종교 안에 들어와 있는 소자들은 내 믿음이 부족한가보다 라고 생각을 하면서 더욱 믿기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됩니까?

먼저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따라 행위에 열심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1년 아니 510년이 지나게 되면 이제 종교인이 되어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먼저 왔던 그들과 같은 말을 하게 되어 있고 그저 믿는다고 하는 것이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행위에 열심을 내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세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죽은 후에 다시 살아오지를 않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 역시 인생의 이성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나기 때문에 내세에 대해서는 다수가 이야기를 하는 그대로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으로는 그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면 종교적인 행위 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해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서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를 사사기를 통해서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들을 애굽의 강한 군대에서 광야로 이끌어 내셔서 광야 40년이라는 신앙생활을 한 후에 천국을 모형으로 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 조상들로 언약을 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들어간 것이지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이스라엘을 통해서 예표로 보여주셨습니다.

 

광야 40년입니다.

우리 인생이 팔십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유년기20년을 제외하면 60세까지를 말씀할 수 있습니다.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비유적으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기를 원하셨지만 이스라엘의 예표를 보아서 잘 알겠지만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예표입니다.

그러면 이방인 역시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고 경계로 삼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성경말씀을 보고도 경계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그렇게 했어도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시 자기 조상들은 잘못 믿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았어도 자기들은 잘 믿는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영생은 그저 얻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고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생각을 하면 스스로가 생각을 해서 그리고 남들이 보아도 하나님을 믿는 것과 같이 보이기 때문에 영생을 그저 얻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경계를 무시를 합니다.

비록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예표로 삼았어도 이 성경을 보고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하는데 그렇게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남의 집에 불구경하듯이 성경을 보고 있고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깨달아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종교입니다.

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권선징악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이성에도 이 사상은 너무도 합당하게 생각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하게 살면 복을 받고 악하게 살면 신이 징계를 내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막연합니다.

어느 것이 선하고 어느 것이 악한가를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조금 힘들면 사람들은 아주 쉽게 말을 합니다. 마치 욥의 친구들과 같이 네가 잘 생각해 봐라 혹시라도 하나님께 그러니까 자기들이 믿는 신께 잘못한 것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세에 대한 사상도 같습니다.

그렇게 사람의 이성에 따라 착하게 살면 좋은 곳으로 간다는 말을 하고 있고 악하게 살면 지옥에 빠져 영원한 고통을 당한다고 말을 하니까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이 사상에 뿌리 깊이 박혀 있고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더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이방의 종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스스로가 그래서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살아서 잘 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잘 믿어서 축복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아주 먼 미래의 일입니다. 그러나 이생은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생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고 자기가 하는 일에도 자기가 믿는 신이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 복을 빌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들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복입니다.

인생에게 있고 내세는 아주 먼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당장 현실이 중요하고 그래서 이스라엘을 보더라도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자마자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던 것을 사사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생의 복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에게 복이 임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다 이생에서도 복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니 인생의 본성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이생의 복에 대해서는 저 역시도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이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성령이 인도하심에 따라 지금 형편을 자족하면서 받아들이고 있지만 제 속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을 감출 수 없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한때는 정말 어려워서 늘 기도원에 가서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왜 거기에 갔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원하면서 기도를 하러 갔습니다. 그때를 생각을 하면 지금도 부끄럽기만 하고 복음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깨닫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그 본성이 이생에서 복을 받기를 누구나 다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의 말씀에서 복을 말씀할 때도 사람들은 다 이생에서 받는 복을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이성이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1:3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복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복에 대해서 기초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은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아 주님의 말씀과 같이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영생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우리가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복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이생에서 살아가면서 받는 복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12사도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우리가 전승을 통해서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라는 섬에서 노역을 하면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은 다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사도 요한은 장수를 했다고는 하지만 차라리 먼저 죽은 사도들 보다 더 험악한 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전혀 틀리지가 않습니다.

 

누가 복을 받았습니까?

물론 구약의 선지자들 중에서 복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제가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받은 복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환경이든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초기 교회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복을 받았습니까? 그들이 인생의 이성으로 복 있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복을 이야기를 한다면 성경은 서로 이율배반적인 말씀이 되고 우리는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받는 복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복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서 받을 복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이생에서 받는 복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이생의 복을 너무도 바라고 있고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하늘의 복은 자기들이 그저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이제는 이생의 복도 받겠다고 하면서 세상 속담과 같이 꿩 먹고 알 먹으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그것이 불의의 삯이 되어서 망하는 길로 가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단 한 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포도원의 일군의 비유에서 주님께서 한 데나리온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라도 이 한 데나리온 이상을 받을 수 없고 그 이하를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데나리온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의 신령한 복입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복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아니 자기들은 이미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이제는 이생의 복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하늘의 신령한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3:1절을 보면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성경은 의미입니다.

그 단어의 뜻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다수의 사람들이 성경을 그렇게 보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인용을 한 갈라디아서 말씀을 보면서 단어의 뜻을 가지고 시비를 할 사람도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악인입니다.

누가 악인입니까? 성경은 이 악인에 대해서 정말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악인이 누군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 악인이 많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나쁜 의미의 단어는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입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데 그 안에 악인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악인이 누군지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생각을 하면서 악인을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와서 그들을 꾀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바로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와서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믿지 않고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는 자를 악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다 악인이며 그는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8:34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복 있는 사람입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죄를 범합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켰습니까? 그들은 스스로가 흠 없는 율법을 지켰다고 생각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우리 인생들이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 길이 죄인의 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5:15절을 보면

천한 자는 굴복되고 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오만하다.

방자하고 잘난 체하여 건방지다. 라는 뜻으로 사전에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바리새인들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지만 율법을 잘 지키는 바리새인들이 오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사람과는 교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방의 교회를 보더라도 누가 오만한 자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고 세상에서 어느 정도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오만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부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지가 있습니다. 부자는 오만 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지가 오만하면 사람들로부터 비웃음거리 밖에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만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복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입니다.

어느 복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하늘의 신령한 복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복이 있는 사람은 그러니까 영생을 얻은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율법입니다.

사람들은 이 율법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거의 본능적으로 자기들이 지키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 있는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의미를 깨닫지를 못하는 사람은 본성에 따라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사람은 영생을 얻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한다고 하는데도 사람들은 참으로 신기하게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이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28:23절을 보면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모세의 율법입니다.

시편에서는 여호와의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에도 율법을 지키라는 말씀이 없고 그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도 역시 이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할 때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는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 역시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율법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설교로 올려 드렸습니다. 그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율법을 보고 문자 그대로 보면서 지키려고 하다가 죄인의 길에 서고 맙니다.

 

얼마나 즐겁습니까?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는 우리 성도는 구원에 확신을 갖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지키려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은 그리스도편지에 이미 많은 설교를 올려 드렸기 때문에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굳이 말씀을 하지 않겠습니다.

 

묵상합니다.

우리 성도는 율법을 주야로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왜 묵상을 하는가 하면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지만 이방의 종교인들은 자기들의 교리에 따라 제사법과 시민법은 보려고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보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3,“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복 있는 사람입니다.

누가 복 있는 사람입니까? 하늘에 신령한 복을 받은 영생을 얻은 자가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 명예가 높고 출세를 하고 하는 것으로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무당이나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무당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입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무당과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이생에서 복을 누리는 것을 바라고 있고 그것을 위해서는 심지어는 무슨 일이라도 하는 것이 종교인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그들입니다.

그 받은 복으로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종교 안에서 부자가 되어서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께서 헌금을 한다고 하고 있고 십일조를 한다고 하면서 온갖 악한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23절을 보면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골로새서1:10절을 보면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복 있는 사람입니다.

누가 복 있는 사람입니까?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복 있는 사람이 되심으로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 성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붙은 자가 되는가 하면 골로새서에서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에게 붙은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생명을 얻은 자 되어서 우리 역시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에게 붙은 자가 됨으로서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행사가 다 형통합니다.

우리 성도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행사가 다 형통하신 것을 보여 주셨고 믿음이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그저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영생은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4,“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악인입니다.

이 성경을 누가 보고 있습니까? 아니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먼저는 이스라엘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이방인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악인이 많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까? 그런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마치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도 모르면서 아니 죄인의 길에 서서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종교에 속고 있는 일라는 것을 소자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악인입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 악인이 많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악인들은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람에 나는 겨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왕겨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을 티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로 티끌과 재 같게 하셨다고 그리고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죽으면 티끌이 되어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먼지 조각이 되어 사라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은 신령한 복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5,“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교회 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그 안에 악인이 있고 의인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는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 마치 모두가 의인이 된 것으로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을 얻지도 못한 사람들이 그저 복을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5:29절을 보면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물론 유대인들에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은 신약 성경을 안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누가 보고 있는가 하면 우리 이방인이 보고 있고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많습니까?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고 말씀을 하는데 누가 많은가를 우리는 냉정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악인입니다.

그들은 티끌과 같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의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이 되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 붙은 자가 되어야 하고 그 말씀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악인은 심판을 받습니다.

그 심판에 대해서 요한계시록에서 둘째 사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는 생명의 부활로 나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교회 안에 있는 악인과 의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누가 의인 인지를 그리고 누가 악인 인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성도를 의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로마서3:28절을 보면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의인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을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망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의인의 길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단 한 가지라도 행하는 사람은 악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행하고 있는 사람에게 망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있는 성도를 하나님께서는 인정을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성도가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