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7강,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5:1-7절을 보면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생명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라고 하니까 그저 우리가 살아 있는 이 생명을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생명입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생명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입니다.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사람의 이성적 지식으로 아는 생명을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생명에 대해서 분명히 다르게 구별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 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가 밤에 찾아오자 그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분명히 두 번 나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존재입니다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다 같은 생명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창조된 세상에서 사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에서 사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은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교리입니다
그들은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굳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됩니다. 이 세상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그렇게 말을 하고 있고 이슬람도 그렇고 무당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무신론자 역시도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런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굳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그런 내세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비밀입니다.
천국은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비밀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런 말이라면 성경에서 비밀이라고 하는 말씀이 더 이상하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굳이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실 필요도 없고 비밀이라고 하는 말씀이 더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종교인들이 너무 쉽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 것을 성경에서 문자로 보고 그것을 자기들도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후에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그 비밀을 알 수 있었지만 지금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안다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압니까?
이 시대는 어느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생명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을 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들어보지를 못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단어를 보고 생명이라고 하지 이 생명에 대해서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런데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듣지도 못했습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성경을 보면서도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있는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종교입니다.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가를 잠언에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런 말씀을 보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종교인이라는 것을 오히려 떳떳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참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종교 안에 들어갑니다.
그들에 대해서 잠언에서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왜 이 시대 종교 안에서 그 생명에 대해서 전혀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까? 바로 종교의 교리 때문이고 사람이 종교 안에 들어가면 잠언의 말씀과 같이 된다는 것을 미리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아무리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어도 나쁜 의미의 말씀은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는 이 생명에 대해서 너무 막연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사람들도 역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저 자기들의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이 생명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절,“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예수의 생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이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성경은 여러 가지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보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에서 이미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육체의 생명은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예수의 생명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부활의 영광에 참예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분명히 이렇게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성경에서 보면서도 예수의 생명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헬라어를 보고 생명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막연하게 생명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 육체에 있는 생명은 죽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우리에게 예수의 생명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종교는 이 생명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고 이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주님께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를 만나시고 그에게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물과 성령으로 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람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평생을 종교 안에서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는 사람도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를 지금은 아무리 말씀을 해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창세기2:7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들이 보기 때문에 우리의 언어로 기록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들이 보고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으로 선지자들을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셨고 이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그것을 창세기에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이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아 살아 있는 자와 같이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5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육체의 생명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장막입니다.
그러니까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생의 육체의 생명을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장막이 무너진다는 말씀은 죽는다는 말씀이며 그렇게 우리 인생은 죽으면 이제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이 육체가 다시 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서 사도 바울이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4장에서는 예수의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장막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담의 생명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사도 바울은 두 생명에 대해서 분명하게 구별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생명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손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영원한 생명은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방의 종교인들은 자기들이 죽으면 신체가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성경과는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 안 봅니까?
왜 사람의 이성적 지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그럴 것 같으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야 하고 그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렇게 성경에서 분명하게 구별을 해서 말씀을 해도 이런 말씀을 아예 무시를 하고 자기들의 종교에서 만든 교리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뭐 합니까? 그들이 아는 것은 그러니까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것은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듣고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신체의 부활이라는 것은 지금 사도 바울의 말씀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성경을 보고 독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입니다.
이 집에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는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분명히 4장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체는 죽고 예수의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부활입니까?
성경 어디에서 신체가 부활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 그렇게 알고 믿는 사람은 나중에 주님께서 오실 때 부활에 영광에 참예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무슨 말씀인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2절,“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존재입니다.
우리는 땅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부터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하늘로부터 오셔서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가를 보여주셨고 그리고 그 길을 믿음으로 따라 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생명입니다
한번 죽는 것이 정해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인 우리 인생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해서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먼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아무리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 육체는 티끌이 되어서 사라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티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입기 위해서 간절히 사모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시대 종교인들이 말을 하는 신체의 부활이라면 지금 사도 바울은 이상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탄식하는 이유는 죽으면 사라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먼지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그저 티끌이 되어 돌라가는 그 생명을 보면서 신체가 부활을 한다는 성경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 신체가 부활을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덧입다.
이런 단어에 집착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치 우리 신체에 하늘에 있는 처소를 덧입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앞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 땅에 있는 장막은 무너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말씀을 했습니다.
헬라어의 단어의 뜻을 압니까?
그것을 아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단어의 뜻을 인생들의 지식으로 배우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땅에 있는 장막이 무너진다는 것을 전재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20:31절을 보면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4장에서 예수의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연결을 해서 보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성경을 정말 이상하게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기록했을 때는 지금과 같은 장절이 없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하는데 장절이 나누어져 있는 성경을 보면서 서로 다른 말씀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으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장절에 따라 성경을 전혀 다른 말씀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 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하늘로부터 온 처소를 입음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도 바로 이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땅에 장막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무너진다고, 죽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땅에 있는 장막은 무너지면 티끌이 되어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입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시작을 하면서부터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바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이고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왜 보고 있습니까? 그것을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예수의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그냥 우리가 아는 생명이 아니라 예수의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인들은 안타깝게도 이 예수의 생명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고 이 생명을 어떻게 얻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그저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안 됩니다.
우리 신체로는 어느 누구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자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생명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 어떻게 얻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3절,“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시편90:3절을 보면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벗은 자입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벌거벗은 자들을 구원을 받지 못한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을 얻지 못하면 벗은 자들로 발견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 피조물들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에서도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 인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해서 예수의 생명을 얻게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가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의 생명입니다.
우리가 그 처소를 덧입지 않으면 우리는 벌거벗은 자 같고 그리고 티끌과 같이 되어 사라지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예수의 생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그 생명을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고 그저 종교 안에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4절,“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 피조물입니까?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탄식합니다.
왜 탄식을 합니까? 이 장막은 죽으면 티끌이 되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교 안에서 이 장막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생명에게 삼킨바 되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피조물입니까?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습니다. 아니 이미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아버지가 죽은 제자에게 죽은 자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예수의 생명만이 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요한복음 6장에서 내 살은 생명을 위한 참 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만 참이고 우리 피조물은 다 헛것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생명을 얻을 생각도 하지 않고 헛것과 같은 그 신체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습니다.
죽으면 시편의 말씀과 같이 티끌이 되어 사라지고 맙니다. 그 신체가 주님이 오시는 날에 부활을 한다는 상상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창조가 되어 있는 것은 어느 것도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에게 삼킨바 됨입니다.
그 생명이 바로 예수의 생명이라는 것을 이미 4장에서 사도 바울이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4장과 연결을 해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4장은 4장의 말씀이고 이제 5장을 보면서 마치 새로운 말씀을 하는 것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야고보서4:14절을 보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고린도후서4:11절을 보면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생명입니다.
우리 생명이 있고 예수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생명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죽으면 그것으로 사라지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예수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사도 요한은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두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주님께서도 거듭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이 시대 종교인들입니다.
우리 생명입니다.
그것은 죽으면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어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은 거룩하신 생명이기 때문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거룩하지도 않은 자기 신체의 생명으로 부활을 한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생명에게 삼킨바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려면 반드시 주님의 말씀과 같이 내 살을 먹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디서 주님의 살을 먹어야 하는가 하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구속의 일을 알고 믿음으로 해서 그 믿음이 역사를 해서 생명을 얻은 자 된다는 말씀입니다.
5절,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무엇을 이루게 하십니까?
우리 육체의 생명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예수의 생명을 얻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우리에게 이 예수의 생명을 얻음으로 해서 거룩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만이 생명의 참 떡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이유는 바로 이 떡을 먹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모세의 율법에서 보아야 하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보아서 알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이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는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님께서도 그는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가 오시면 나에 대해서 증거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성령을 왜 하나님이라고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모세의 율법입니다.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서 우리 피조물들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다 해도 우리는 도무지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보더라도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를 쉽게 알 수 있고 그것이 우리에게 경계가 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그가 오시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서 증거를 하는가 하면 성경에서 증거를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내 살은 생명을 위한 참 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왜 보내주십니까?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는 이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성경에서도 증거를 하지 않고 있는 삼위일체라는 신을 만들어서 믿고 있습니다. 저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성경에서 성령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6절,“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골로새서3:3절을 보면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예수의 생명입니다.
우리 인생은 느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역사를 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그 믿음을 말씀을 하면서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우리가 이 생명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분명히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이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몸에 거할 때입니다.
고린도후서에서도 주와 따로 거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얻는 생명이 예수의 생명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을 우리는 인생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따로 거합니다.
그것을 골로새서에서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몸에 거할 때 따로 거하는데 어떻게 따로 거하는가 하면 너희 생명이 그러니까 예수의 생명을 얻었는데 그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어서 저는 믿고 있습니다. 분명히 예수의 생명에 삼킨바 되었다는 것을 저는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어디 있느냐고 저에게 묻는다면 골로새서의 말씀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래도 신체의 부활입니까?
저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신체의 부활을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우리가 예수의 생명에 삼킨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 되었고 그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생명을 믿습니다.
이 시대 모든 사람이 신체의 부활을 주장을 하고 있다 해도 저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대로 예수의 생명을 얻는 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취어져 있다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그 생명으로 부활의 영광에 참예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7절,“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예수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만이 참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느 누구도 이 생명에 대해서 전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무너지는 장막을 보고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생명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받고 싶습니까?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고 이 생명의 떡을 먹음으로 해서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생명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보는 그 신체가 부활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교리입니까?
저는 성경에서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교리를 따른다 해도 성경에서 아니라고 하면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었다고 믿고 있고 그 믿음이 역사를 해서 제 안에 예수의 생명이 거하시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는 성도는 이렇게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참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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