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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진리의 말씀

788강,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윤주만목사 2021. 1. 22. 07:46

788강,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디모데전서2:11-15절을 보면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성경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지자들을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우리 인생들의 언어로 기록을 하게 하셨고 그래서 우리가 지금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디모데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그것을 영생을 얻는 것으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목적에 대해서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는 목적입니다

그 외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성경을 보는 사람은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방의 종교는 성경을 보는 목적을 다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성경을 보아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아니라 종교 안에서 온갖 행위를 하면서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그러면 이방의 종교는 어떻습니까?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이스라엘이 섬겼던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것보다 더 음란하게 섬기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가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다 성경을 보는 목적을 잊어버리고 성경을 보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이 율법으로 부자가 되어 있고 아세라를 섬기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그 한 마디 말로 자기들이 영생을 얻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더 이상 영생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고 성경을 보기 때문입니다.

 

영생입니다.

주님께서도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도 편지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는 것에 자라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아는 것이 믿음으로 역사를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정도로 알아야 하는가 하면 우리 인생은 평생을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아가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광야 40년입니다.

성경은 비유와 예표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라는 교회에 나왔지만 그들은 그저 율법의 행위를 하는데 그쳤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들이 하는 행위를 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생각을 하고 살다가 모두가 광야에서 죽고 말았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주셨고 그것은 이방의 교회 역시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으로 사도 바울이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까?

그리고 외식하는 행위입니까? 종교 안에서 하는 모든 행위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그런 것을 하는 것으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방인들 역시 유대인들과 같이 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종교는 의식을 중요시하고 있고 그것이 다 율법의 행위가 되어 진노를 받게 하고 있지만 종교 안에 있는 소자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거대한 종교의 외형만 보고 따라가고 있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행위를 보면서 영생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물론 저 역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않는다면 그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를 보면 너무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고 있고 더구나 제 인척들이 그 안에 있는 것을 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은 꿩 먹고 알도 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생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고 있는데 성경을 보는 목적을 잊어버리니까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행위를 잘 하고 더 잘 살까를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행위가 다 악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방향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오직 천국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그 생명을 얻기 위해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그 아는 것이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것입니다.

다른 것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일을 만들어서 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일만 만들고 있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은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보면서 상고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끊임이 없이 우리를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그것에 탐욕을 부리게 만들고 있고 그것으로 부자가 되게 함으로 해서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이 구원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나칩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평생을 이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해도 우리에게 넘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아니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대로 행위로 하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영생을 얻었다고 아주 자신 있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11절,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성경입니다.

우리는 정말 그 의미를 알고 보아야 합니다.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그대로 교회 안에서 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하는데 이방의 종교 역시 유대인들과 같이 성경의 문자에 집착을 하고 그것을 그대로 행위로 하다가 성경에서 구원에 대한 말씀을 깨닫지를 못해서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여자입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여자에 대한 의미를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문자를 보고 여자라고 하면 무조건 여자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여자에 대해서 몇 가지로 의미를 두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리적인 여자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마지막으로 너무도 중요한 말씀이고 오늘 말씀에 해당이 되는 교회 안에 있지만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을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생리적인 남자냐 여자냐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은 지금 구원을 받았느냐 하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성경을 다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우리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15절을 보아도 사도 바울이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주 쉽게 알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저 성경의 장절만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성경입니다.

저는 참으로 문제가 많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장절이 있는 것 까지는 나쁘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절이 있다고 해서 모든 성경은 연결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보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지금 생리적인 여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성경말씀이 그렇게 보인다면 그는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마치 여자를 차별하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고 현대 사회가 이르기까지 여자들이 많은 차별을 받았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마치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너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이 없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여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마치 차별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1700년 이상을 교회 안에서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고 행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이 되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3:11-12절을 보면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사도 바울입니다.

지금 디모데에게 여자가 누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아직 교회 안에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아버지의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주님께서 아버지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아버지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보내신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앞에서 말씀을 드린 것과 같이 먼저 아는 자가 되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충분히 증거를 받아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율법에서부터 우리에게 유월절을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누룩이 섞이지 않는 무교병을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아버지의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려면 반드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보고도 사람들은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 안에도 벌써 율법주의가 들어왔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자는 도무지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그러니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는 것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만 만드는 자입니다.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함으로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방의 교회는 너무 많은 일을 만들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 일을 하느라 정작 너무도 중요한 영생을 얻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일만 만드는 자들이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과 디모데전서에서 여자는 교회 안에 있지만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지 않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을 데살로니가후서에서는 도무지 일은 하지 않고 일만 만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명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양식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살은 너희를 위해는 양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가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참 양식이라는 말씀입니다.

 

여자입니다.

그들은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생리적인 여자가 아니라 아직 영생의 말씀이 믿음으로 역사를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있었을 때는 그래도 복음이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초기 복음을 전하던 때와 지금은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는 그래도 일을 하는 자가 많았는데 지금은 도무지 일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종교에서 이제까지 만들어 놓은 일을 하느라고 도무지 일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자는 종용히 배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은 거의 명령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앞으로 이방의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는 믿음으로 든든히 서 있는 남자가 없어서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불행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12절,“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여자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우리 인생을 보고 생리적인 여자를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이고 그 안에서 영생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우리 성도는 이런 말씀을 경계로 삼아 영적 가나안에 들어가는 구원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입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성경을 거의 다 문자 그대로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고 있고 그리고 비유와 오묘한 말씀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세상 책도 그렇게 보지 않으면서도 성경만 보면 그 마음이 굳어져 문자 그대로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 안에 있는 여자에 대해서 명령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 했습니다.

아니 예수의 생명을 얻지 못 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가 교회 안에서 가르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가 굳이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입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거의 다 문자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을 드린 것과 같이 이방에 종교가 세워지고 난 후로는 여자는 목사도 될 수 없었고 가르치는 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그래도 거의 목사 안수를 주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렇지 않는 종파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그런 그들이 여자들을 교회 안에서 가르치게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일학교라는 것을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 주일학교의 선생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 여자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말씀 때문에 목사 안수를 안 주던 그들이 그렇게 자기들의 편리대로 이중적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3:10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여자입니다.

그는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허락하지 않는가 하면 여자가 가르치게 되면 그 안에서 배우는 사람은 절대로 영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사도 바울이 아직 교회 안에서 영생을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여자라고 말씀을 하면서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 니고데모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이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실제 당시에 이스라엘에게 성경을 가르치면서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거듭남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니고데모가 놀라면서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느냐고 하면서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느냐고 대답을 하니까 주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거듭나는 일에 대해서 반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입니다.

그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선생인 니고데모는 성경을 평생을 보고 살았고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살았는데 주님으로부터 거듭나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너무 놀라고 있습니다.

 

그런 니고데모입니다.

주님께서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거듭나는 일도 모르면서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니고데모는 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가르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의 생명을 얻는 자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선생이 가르치면서 이 일을 모르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이 시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거듭나는 것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예수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얻는 일을 요한복음 3장에서는 거듭나는 일이라고 그러니까 육체로 한번 나고 예수의 영으로서 다시 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도 모르는 니고데모가 이스라엘의 선생이 되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거듭남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그 말씀입니다.

예수의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이 교회 안에서 가르치고 있다면 그 교회는 모두가 사망의 길로 간다는 말씀이며 그래서 사도 바울이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입니다.

구원을 받는 성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에서도 남자만을 계수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리적인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시는 것이 아니라 남자는 구원을 받은 사람을 비유로 하기 때문에 계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도 질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구원을 받은 남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복음을 듣고 있는 여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초기 교회에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다 여자가 가르치고 주관을 하기 때문에 저는 더 이상 말씀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을 얻은 자입니다. 여자는 아직까지 복음의 비밀을 다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남자를 가르치고 주관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여자는 오직 종용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입니까?

남자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의 생명도 모르는 그들이 그 생명을 얻지도 못한 그들이 니고데모와 같이 이스라엘의 선생이 되어 가르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결국에는 다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래서 사도 바울은 거의 명령과 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래서 이방에 복음을 전하면서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이렇게 성경은 여자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얻지 못한 자는 다 여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 여자에게 교회 안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명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방의 종교는 이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그들이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13절,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비유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는 이 비유의 말씀을 정말 잘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생은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성경에서 이런 비유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이런 비유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도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살려 주는 영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영, 예수의 생명을 얻음으로 우리가 산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창세전에 있었던 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그 다음에 지음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아담과 하와를 비유로 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담으로 그리고 우리 인생들을 하와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 전부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와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생명을 얻는 자를 남자라고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복음을 듣고는 있지만 아직 이 생명을 얻지 못한 사람을 여자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문자 그대로를 보면 절대로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성경을 보는 것을 이 세상초등학문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그렇게 성경을 보았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성경을 그렇게 봄으로 해서 예수의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받지 못하고 그저 종교 안에서 행위에 열심을 내는 여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초기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이미 이방의 종교는 이 말씀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솔직히 앞에서 니고데모의 말씀을 했듯이 이 시대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가 누구입니까? 아니 그 생명에 대해서 전하는 자가 누가 있습니까? 이방의 종교는 이 생명에 대해서 그들의 교리서에서도 언급조차 안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을 하신 성도만이 이 생명을 얻은 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선생인 니고데모가 몰랐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종교 안에서 선생이라고 가르치는 자들 역시 모르고 있으면서도 거대한 교회를 짓고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들어가고 있습니다.

 

14절,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구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 가지의 이유가 바로 영원한 생명을 얻어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참 빛으로 비춰주셨지만 이방인들 역시 신약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러나 종교는 그 안에서 자기들이 하는 행위를 보고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삼년 반 동안 그들에게 유월절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에 하늘에 올라가시고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그들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고 천국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살았습니다.

 

신학교입니까?

우리는 그 신학교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배우는가 하면 이 세상초등학문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의 생명도 모르고 그것을 얻지도 못한 그들이 교회라는 건물을 세우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아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가서 40일을 금식을 하시고 난 후에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을 우리가 마태복음에서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시험에서 꾐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험을 다 받았지만 주님께서는 이기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입니다.

우리가 창세기에서 보았습니다. 하와가 먼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고 아담에게 주니까 아담이 그것을 받아먹었습니다. 물론 이 말씀 역시 비유로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 인생을 성경에서는 여자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5저,“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이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여자를 누구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방의 교회를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있어서 복음을 전할 때의 교회입니다. 우리는 그때와 지금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먼저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7:3절을 보면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두 남편으로 비유로 해서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본성은 율법주의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타고 나기를 율법주의로 타고 나서 성경을 보면 우리는 자연적으로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전 남편인 율법주의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전 남편인 율법을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죽였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은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 남편입니다.

우리 인생은 다 율법주의입니다. 그리고 이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여자인데 복음을 듣고 믿고 있고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지금 정절로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처음부터 복음을 듣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다 여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여자가 만일 정절로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이르면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다 여자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구원을 받는 사람이 많다는 말씀입니까? 앞에 만일이라는 부사를 쓰고 있습니다. 여자가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는 것이 쉽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은 본성이 율법주의기 때문에 첫 남편에게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4:19절을 보면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라디아서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우리 성도들은 복음과 율법에 대해서 충분하게 말씀을 들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 때문에 그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보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거짓 형제가 오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만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주의자가 들어오니까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는 이미 율법주의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갈라디아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그들에게 사도 바울이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처음부터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그들이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게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입니다.

우리는 다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한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서 정절로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 성도들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예수의 생명을 얻는 자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되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듣고 믿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