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5강,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잠언1:29-33절을 보면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잠언입니다.
지혜서라고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잠언의 말씀을 보면서 거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 가다가 하나님의 지혜를 전한다고 하지만 역시 이 세상초등학문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를 달라고 합니다.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기도 한번쯤 안 해본 사람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혜가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면서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지혜를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의 문자입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문자를 아는 것은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이 세상초등학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기록하게 하셨습니까? 그것을 1장 시작부터 6절까지의 말씀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 역시 그저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지혜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의 비유라는 말씀은 종교인들의 눈에 들어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쉽게 말씀을 하면 그 문자가 아니라 그 문자에서 지혜를 깨달아야 하고 그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닫는 것이 비유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지혜가 있는 자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오묘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묘하다.
히브리어의 원어의 뜻 역시 비슷합니다. 수수께끼, 은밀한 말, 알기 어려운 말이나 문제 등이라는 뜻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성경에서 잠언의 말씀 그 자체가 우리 인생이 보면 수수께끼와 같이 알기 어려운 말씀과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지식입니까?
그것으로 아무리 잠언의 말씀을 보아도 마치 수수께끼와 같아서 풀리지가 않는다는 것을 먼저 시작부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인생들은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너무 쉽게 풀고 있고 거침이 없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비록 이 성경을 지혜의 왕이라고 하는 솔로몬이 기록했다고 해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이성적 지식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그런 그들이 유대인들과 같이 다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피조물의 언어로 성경이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 오묘한 말씀을 스스로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을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역시 마찬가지의 말씀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은 보면서도 자기들이 지혜가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이런 말씀을 무시를 하고 그냥 지나치듯이 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볼 정도로 지혜가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잠언을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물론 먼저는 이스라엘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는가 하면 진리를 행하고 공의를 구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잠언을 안 봤습니까?
우리는 이스라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고 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에서 말씀을 하는 대로 늘 성경을 보면서 살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이 잠언을 솔로몬을 감동을 해서 기록하게 하셨고 이 말씀을 보고 지혜를 구하게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는 것으로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가 지혜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왜 이 말씀을 하십니까? 그들이 성경을 보지도 않고 있는데 그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참으로 이상하신 분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보면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그 오묘한 말씀을 깨닫으라고 이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잠언의 말씀을 달달 외울 정도로 알고 있지만 비유의 말씀을 전혀 모르고 있고 그 오묘한 말씀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면서도 문자를 아는 것으로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성경을 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잠언의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씀을 깨달은 것으로 보고 있고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보고 있고 하나님을 참으로 이상한 하나님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기록하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우리 피조물들이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이 모든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해서 우리에게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성경을 왜 기록하게 하셨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유대인들이 주님의 말씀에 단 한 번도 네 하고 대답을 하지 않은 것과 같이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자기들의 종교에서 만든 교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방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지식을 미워하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고 이방의 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지식을 미워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29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비유입니다.
성경말씀은 비유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지식이라고 하니까 사전적인 뜻을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육이나 경험, 또는 연구를 통해 얻은 체계화된 인식의 총체를 지식이라고 세상에서는 말을 하고 있지만 성경에서는 그런 지식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입니까?
그것을 아는 것으로 지식이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신학을 공부를 하고 히브리어를 알고 헬라어를 아는 것으로 지식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은 다 이 세상초등학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지식을 미워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워한다고 말씀을 하니까 그저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을 싫어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지 육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후서3:18절을 보면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지식을 미워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제사장들은 주님께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니까 미워했다는 것을 성경에서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미워했는가 하면 로마의 법정에 세워 십자가형을 받게 하기 까지 미워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지금 누구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물론 이 구약 성경을 본 민족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비유와 예표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도 우리 이방인들을 위한 비유와 경계의 말씀으로 성경에 기록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구약 성경만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이방인들은 모든 성경을 다 보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믿는가 하면 모든 성경을 다 보는 사람들이 믿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잠언의 말씀도 역시 우리 이방인들이 보고 있는 성경말씀입니다.
우리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한다는 그 말씀은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지만 이렇게 된다는 것을 경계로 하기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그렇게 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이 성경을 주신 목적은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생명을 얻는 자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부활의 영광에 참예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지식을 미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사도 베드로는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보고 그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그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 자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 5장에서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은 아직 신약 성경이 기록이 되기 전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보던 구약 성경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1장에서 빌립과 나다나엘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두 사람이 모세의 율법에서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실제 율법에서 그리고 구약의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기 때문에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서 영생을 얻은 자 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왜 베드로후서 마지막에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지 않고 유대인들과 같이 율법의 행위에 빠진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에 감동을 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없습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성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그저 자기들이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 자라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명령어입니다.
왜 명령어로 성경을 기록하셨습니까?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시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를 통해서 그가 쓴 성경 마지막에 이렇게 마무리를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지식을 사랑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인들은 지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종교적인 행위를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11:3절을 보면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일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움으로 삼는 자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태초에 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까?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이 기초적인 질문에도 답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창조하실 때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를 다 이루신 분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다 이루셨다는 말씀을 하신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도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었고 그렇게 영생을 얻는 일이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즐거워하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요한복음에서 이 영생에 대해서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어 영생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입니다.
자기 땅에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접을 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의 말씀 그대로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함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고 그럼으로 해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당연히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즐거워하는 자는 아들을 보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아들을 보고 믿는 자가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영생에 대해서도 모르는 그들이 그저 자기들의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영생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1:11절을 보면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교훈입니다.
성경말씀의 문자를 보고 그것을 아는 것으로 하나님의 교훈이라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교훈을 주의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훈에는 이렇게 다른 교훈이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하고 그들이 다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스스로 자부를 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입니다.
이 시대는 이 복음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는 것이 교훈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거기서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그것을 자기들의 육체로 지키고 있고 여러 선지자의 글도 역시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교훈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는 성도만이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고 그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훈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6:14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주님께서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도 우리 피조물들에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이방의 종교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음으로 해서 영생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을 얻는 일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것을 책망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잠언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책망을 업신여겼습니까?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어두움에 일을 함으로 해서 하나님의 책망을 업신여겼습니다. 참 빛이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지만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을 전혀 듣지를 않았습니다.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의 말씀과 같이 유대인들은 어두움에 있어서 빛이 비춰도 깨닫지를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유대인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어두움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죽은 자이기 때문에 어두움입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참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빛에 비췸을 받아 그러니까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듣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배설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에서는 그것을 대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책망을 업신여기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그것을 의라고 하고 있고 그 대변과 같은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31절,“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미가7:13절을 보면
“그 땅은 그 거민의 행위의 열매로 인하여 황무하리로다”
그 땅입니다.
이스라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행위의 열매로 인하여 황무하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포도나무 열매입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 열매입니다. 구원을 상징하는 나무의 열매를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열매가 없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내 살은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도 유월절에 무교병을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율법의 행위를 했고 그것을 미가 선지자가 비유로 해서 그 땅은 그 거민의 행위의 열매로 인하여 황무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서 온갖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가 어떠하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유대인들이 그렇게 율법을 지켰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사도 바울은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갈라디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있고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유대인들이 지켰던 것은 율법의 행위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종교 안에서 행위로 하고 있는 것은 율법의 행위라고 말을 하지 않고 있고 성립이 될 수 없는 믿음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율법도 믿음이 되고 있습니다.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율법을 이루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해도 전혀 겁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까?
율법의 행위를 단 한 가지라도 하는 사람은 사도 바울이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우리 인생들이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실 것을 모세를 통해서 반포하셨다는 것을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방의 종교인들 역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32절,“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어리석은 자입니다.
성경은 이 어리석은 자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어리석은 자에 대해서 말씀을 해도 설교 한편이 될 정도로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설교말씀에서 이 어리석은 자에 대해서는 많이 말씀을 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어리석습니까?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어리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어리석습니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들어와서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거기에 빠져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 까닭에 율법을 지키게 되었고 그들이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을 보고 어리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교회입니다.
역시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빛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습니까?
그것으로 끝이 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잠언에서는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리석어서 율법을 지키는 자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자는 이 생명의 말씀에 대해서 전혀 증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0:39절을 보면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퇴보,
뒤로 돌아가다, 배신, 변절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의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뒤로 물러가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퇴보했다고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잠언에서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죽인다는 말씀이지만 우리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초기 이방에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거의 모든 성경에서 이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이 율법을 지키는 일에 대해서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까?
그것은 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종교 안에서 이 율법의 행위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아니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율법을 지킨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같은 율법을 지키더라도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방의 종교는 언제부터인가 그것을 믿음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입니다.
히브리서10장에서 우리 성도들에게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잠언의 말씀과 같이 어리석어서 율법을 지키고 퇴보를 하는 자는 자기를 죽이는 자이고 우리 성도는 오직 영혼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퇴보입니다.
뒤로 물러감, 같은 말씀입니다. 잠언에서는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죽이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히브리서에서는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라고 우리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단 한 가지라도 하고 있다면 그는 퇴보를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뒤로 물러가 참 형상이 아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율법으로는 온전케 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종교 안에서 너무 많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일서5:4절을 보면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음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세상과 싸워 이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들은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연락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일,
평온, 평안, 번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 종교를 보면 이 말씀이 딱 떠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종교 안에서 하는 행위를 보면서 너무도 평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그 아는 것은 종교 안에서 행위를 하는 것보다 더 치열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하는 행위를 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입니다.
주님께서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만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종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을 하는 속세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믿음으로 이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기려면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입니까?
그저 종교 안에서 안일하게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하여 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종교를 보고 평안하게 있는 사람들에게 안일한 자는 멸망을 당한다고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33절,“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요한복음5:25절을 보면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오직 나를 듣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안연히 살며 재앙과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무슨 두려움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형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나를 듣는 자입니다.
우리는 이미 요한복음 5장에서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말씀이고 주님께서는 바로 구약에서 말씀을 하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유대인들이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을 하자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됨으로 삼는다는 그 생각을 아시고 요한복음 5장에서 왜 동등하신가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그들 역시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시다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를 않고 자기들의 지식으로 만든 삼위일체라는 신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사야 9장6절의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시고 평강의 왕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누가 듣고 있습니까?
잠언에서 안 듣는다는 것을 전재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유대인들도 듣지를 않아서 영접을 하지 않았고 이방의 종교인들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만든 삼위일체라는 성경에서도 증거를 하지 않는 신을 만들어서 믿고 있습니다.
지식을 미워합니다.
그리고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하심을 듣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자 되었습니다.
바로 깨닫고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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