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강, 복 있는 자
시편 32:1-2절을 보면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지금 한국 기독교는 기복주의 신앙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분복을 누리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으로서의 복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저 기복적인 신앙에 빠져 세상에 있는 복을 누리고자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물론 그런 복을 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이삭과 야곱도 재물의 복을 누렸고 요셉은 다른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었고 다윗과 솔로몬은 당대의 왕으로서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복을 누리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복을 쫓아가는 것은 기복주의 사상이며 이것은 마치 무당에게 찾아가 복을 비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그 복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대입 시험 때만 되면 작정 기도를 하고 있고 취업을 위해 승진을 위해 그리고 심지어는 아파트 당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복은 이 세상 사람들도 모두가 따라가는 복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를 나그네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그네는 주인의 것을 탐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작금의 교회를 보면 나그네가 주인의 것을 탐을 내면서 세상 사람보다 더욱 탐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복을 누릴 수 있다면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 세상에 있는 그것을 복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늘의 것을 복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더 큰 복을 얻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하늘의 복과 세상의 복을 다 누리려 한다면 그것은 정욕에서 나온 것입니다
복 있는 자가 누구인가를 시편 32편을 보면서 살펴보겠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허물의 사전적 뜻은 잘못 저지른 실수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면서 실수를 안 하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실수라는 것은 조심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을 실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입니다
세상의 모든 동식물을 잘 다스리고 보존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보면 자기는 잘 한다고 했는데 그것으로 인하여 다른 것에 피해를 주는 경우가 발생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핵은 사용하기에 따라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못 다루는 순간 수많은 생명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실제 러시아에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을 하면서 수많은 인명이 죽고 아직까지도 그곳에 거하던 사람들에게 방사능에 대한 피해를 보고 있고 그 후손들이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은 큰 실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 마다 실수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 남의 발을 밟는다든지 지나가다가 사람을 툭 쳐서 그가 들고 가던 물건이 다 부서진다든지 내 생각과는 다르게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생은 산다는 자체가 실수입니다
자기가 원치 않았어도 그런 실수를 했다면 당연히 죄를 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깜빡하는 순간에 앞 차를 들이 받았다면 그것이 아무리 실수라 해도 변상을 해 주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알고 모르고 실수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어 그런 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선한 행위를 한다고 한 그 행동에서도 다른 사람의 마음이 상했다면 그것은 실수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상해서 복음을 거절하게 했다면 우리는 정말 씻을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입니다 사실 이런 실수를 안 하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가졌는데 그것이 지나쳐 다른 사람에게 안 좋게 보였다면 그 사람이 복음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앞 차를 들이 받는 그런 실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씻을 수 없는 실수입니다 나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실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는 동안 모두가 실수인 나의 허물을 사함을 받은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실수를 하고 그것을 깨닫는 것보다는 실수를 하고도 그것이 실수인지를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허물을 사함 받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사함을 받는 것은 내가 무엇을 잘 해서 그것이 갚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해 주는 이가 조건이 없이 사해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실수를 안 하는 것보다는 실수하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하는 것으로는 내 실수를 만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내가 허물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가장 큰 복중에 하나입니다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허물과 죄는 조금 다릅니다. 허물은 실수에 속한 것이라면 죄는 자유의지로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짓는 것을 죄라고 말 합니다.
기독교인들의 사상이 바뀌어야 합니다.
죄를 알고 지면 안 된다는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짓는 거의 모든 죄는 사실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고 짓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내가 짓는 죄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알고 짓습니까? 아니면 모르고 짓습니까?
아마 거의 모든 죄 90%이상 내가 짓고 있는 죄는 그것이 죄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죄를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죄를 질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8:3절을 보면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우리는 율법에 연약합니다.
율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율법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살인하는 게 나쁘다는 것, 간음하는 것이 죄라는 것, 도적질 하는 것이 죄라는 것, 거짓 증거 하는 것이 죄라는 것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거짓말 하는 것이 죄라는 것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제가 이런 것을 해도 된다는 방종을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온 율법을 다 지키다가도 하나를 범하면 다 범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거짓말을 했으면 살인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돕지 않았다면 죄입니다. 우리는 매일 알면서도 죄를 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형제가 꾸어 달라고 하면 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고 오른 뺨을 치면 왼뺨도 돌려 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지키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성경을 통해 다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알면서도 이러한 것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 못하는 이유는 율법에 대해 육신이 연약하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살인 안 했다고 해서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도적질 안 했다고 내가 간음을 안 했다고 무슨 죄가 있느냐고 하는 사람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내가 선을 행할 줄 알고도 그것을 행치 아니하면 죄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선을 행하는 것인 줄 너무도 잘 알면서도 우리 육신이 연약해서 선을 다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런 죄인의 죄를 가리워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그 죄를 안 졌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죄를 가리워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죄를 가리움을 받으려 하기 보다는 자기가 죄를 안 지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노력을 하지만 역시나 죄인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의 죄를 하나님께서 가리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죄의 가리움을 받은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서울 대학을 나오고 재물을 많이 벌고 출세를 하면 무엇 할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성자처럼 보이면 무엇 할 것입니까? 그 역시도 허물이 있을 수밖에 없고 또한 죄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깨끗하게 살아도 인생은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그 죄를 자기가 씻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교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는 허물과 죄를 내가 씻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살면서 실수한 허물을 하나님께서 사해 주시고 내가 알고 짓는 모든 죄를 하나님께서 가리워 주는 종교입니다 세상 모든 종교는 이것을 자기 노력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그것을 대신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대신 해 주셔서 허물의 사함을 받고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리워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이상한 사상이 자리하면서 자기가 자기 죄를 가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실수를 사해 주시고 내 죄를 가리워 주실 때 내가 복을 받은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복은 바로 하늘의 복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그런 복이 아니라 하늘에 갈 수 있는 복입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복을 누렸다 해도 그가 하늘에 가지 못한다면 그는 복이 없는 자입니다
천국을 가지 못하면 그는 망한 자입니다
인생이 사는 년 수는 80입니다
팔십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고 맙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복을 누리는 것으로 복을 받았다고 하면 그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인생은 안개와 같습니다. 있는 것 같다가도 잠시 후에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 복을 아무리 누리면 무엇 합니까?
이 세상을 다 가진다 한들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겨우 팔십년을 누리고 사망을 당한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팔십년 동안에는 환란과 고생을 당할지라도 영원한 복을 누린다면 그 사람이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를 바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 실수인 허물의 사함을 받고 내 죄의 가리움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한 복을 누리는 사람이 참으로 복을 받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교회를 보면 세상의 복을 추구하는 기복주의 신앙에 빠져 있고 허물과 죄를 자기 스스로 씻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깨끗하게 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가리움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죄를 안 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 복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자기가 스스로 복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해 주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에베소서2:1절을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 인생 모두는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입니다 지금 살아 있다고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이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 허물의 사람을 받고 죄의 가리움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죄와 싸우고 허물과 싸우느라 힘겹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았는데도 아직도 그 허물과 죄와 싸움을 하면서 조금 이기는 자기 모습을 보면서 흡족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죄와 싸워서 이겼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한심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조금은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율법을 다 지킬 정도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입니다
허물과 죄와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방종하면서 살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그것과 싸우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평생의 허물과 죄에서 벗어난 성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 바로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복 있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허물을 사해 주시고 내 죄를 가리워 주실 때 내가 복 있는 자가 되어 천국에서 영원한 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의 복을 따라가는 자가 아니라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누가 세상의 복을 받은 자입니까?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는 고난과 환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이 세상에서 자기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누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허물과 죄의 사함을 받지 못했고 나사로는 허물과 죄의 사함을 받아 아브라함의 품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쫓아가는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있는 복을 누리려 따라가는 자가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복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한국 교회를 보면 금생의 복이 마치 하늘의 복과 연결이 되는 것처럼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말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는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 자가 아니라 사단의 회라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들이 예수를 믿는 것으로 착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 경제를 주무르고 있는 그들이 바로 사단의 회라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10대 재벌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그런데도 기복주의 사상에 빠진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자기들의 주장을 하며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런 복은 참 복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누려봐야 그리고 우리나라에 있는 재벌들이 누려봐야 이생에서 뿐입니다 그들의 복은 그것으로 끝이 난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생에서 누리고 있는 복도 이생에서 뿐이라는 것을 아는 성도는 절대로 기복 사상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복은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또는 거기서 얻는 행복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복은 반드시 행복해야 합니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얻었다 해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세상 모든 사람이 보기에는 초라할지라도 그 마음에 행복이 있다면 그는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다윗이 이 복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4:5-6절을 보면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나는 죄인입니다
그리고 허물이 만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모든 허물과 죄를 사함을 받은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합니다. 그것을 일한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다윗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습니까?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거의 모든 것을 다윗이 미리 준비한 것을 가지고 했습니다.
육적으로는 다윗은 많은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자기가 짓지 못하니까 자기 아들을 통해서 짓기 위해서 자기 모든 재물을 모두 모아 놓은 사람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일한 것이 없다고 자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일은 육적인 의미 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자기 죄가 만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자기 허물과 죄가 큰데 그래서 일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 허물과 죄를 사함을 받은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었기 때문에 천국을 소유한 성도로서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을 바로 깨닫기 바랍니다.
천국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내가 누리고 싶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그 가치가 수천 조원이 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것이 수만 배가 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확신하는 성도는 지금 비록 고난과 환난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내가 가질 기업을 소망하면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행복에 대해 너무 모릅니다.
그저 막연하게 천국은 좋은 곳이다 하는 정도로 알고 있고 천국에 대해서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천국이 실제 가슴에 와 닫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교회 안에서 자꾸 세상 복을 추구하면서 기복주의 사상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입니다
로마서4:7-8절을 보면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흠과 점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천국에 가려면 하나님과 같이 되지 않고는 갈 수도 없습니다. 조금 깨끗한 것으로 남 보다 조금 나은 것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이 천국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그것을 가지고 천국에 가려 하는 사람은 점과 흠이 보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망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 모든 나라를 정복하고 당대의 최고의 왕이 되어서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는 행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세상 적으로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했지 자기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갖고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왕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흠모하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자기가 가진 그것으로 행복을 누리지 않고 자기 죄와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기 죄를 인정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가장 큰 행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불행 합니까?
사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기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복음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지금 가난합니까? 내 연약함으로 어떤 죄를 이기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하는 일마다 실패를 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보며 불행하다고 하는 사람은 행복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지금 내 형편과 처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잠시 후에 얻을 기업 천국을 보며 행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는 자기 눈앞에 놓여 있는 세상적인 행복만을 추구하면서 그것이 좋아 보이면 행복하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행복을 모르는 사람은 불행 합니다.
그러나 비록 가진 것이 없고 세상 사람들에 비해 초라하게 보여도 자기 행복을 아는 성도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 행복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기업 오직 은혜로만 얻을 수 있는 천국입니다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천국은 이 지구를 통째로 여러분에게 주는 것 보다 더 크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옵니다.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아는 성도만이 고백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그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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