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방황하는 교인들에게

34강, 음부

윤주만목사 2019. 3. 19. 20:48


34, 음부

 

누가복음 16:19-24절을 보겠습니다. (124)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성경을 봅니다.

그러나 보는 생각에 따라 너무 큰 차이가 있고 서로 각각의 해석을 내 놓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나사로와 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뜻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문자 그대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비유입니다

한 부자와 나사로라는 인물을 말씀을 하면서 누가 천국에 갔고 또 누가 음부에 갔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이렇게 비유를 하실 때는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비유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경계를 해 주시기 위해서 이런 비유를 통해서 깨닫게 해 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 사용되고 있는 단어는 하나하나가 그냥 쓰인 것이 없이 다 그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는 분명히 부자와 같은 사람이 있고 거지 나사로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부자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부자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막연하게 자기는 나사로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부자가 누구고 나사로가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한 부자는 교회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는 하지만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을 대표해서 한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부자가 아닙니다.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나사로와 같고 하나는 부자와 같다면 그래도 확률이 50%가 되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사람들이 너무 태연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 안에 부자가 한 명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을 대표해서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다고 보면 맞습니다. 내가 부자가 아닌가를 스스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가 부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에 싸움입니다.

천국은 의에 싸움을 해서 이기느냐 지느냐에 따라 결정이 된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같이 더욱 부자가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음부에 가겠다고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왜 믿습니까?

그 이유는 천국에 가서 모든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왜 예수를 믿고 있는지 가장 기본적인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다니고 있는 자기 모습에 취해서 모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6:23-24절을 보겠습니다. (1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하면서 자기가 믿음이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니까 자기도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부자도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죽고 난 후에 보니까 거지 나사로는 천국에 들어가 아브라함 품에 있고 부자는 음부의 고통 중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둘 다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부자는 음부의 고통 중에서 천국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부가 어떤 곳입니까?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이 음부와 지옥 그리고 천국에 대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부하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서 음부는 지옥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죽으면 지옥으로 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잘 믿은 자기들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안 믿은 사람들은 음부에서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누가복음 16장의 말씀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게 정립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음부라고 하면 마치 지옥을 가기 전에 대기소가 있는데 그곳이 음부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음부, 지옥, 천국, 낙원,

성경에는 이런 단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맞이하는 것이 아니며 또 우리의 상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또 인생의 지식으로는 안다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은 자세히 몰라도 천국을 가는데 있어 큰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음부, 지옥, 천국, 낙원, 불못,

이런 것을 모른다 해서 천국을 가는데 있어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래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이것에 대해서 바로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것에 대해서 알고 모르고가 천국을 가는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 아는 지식으로 인하여 진리가 변질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천국에 가고 싶어서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와서 보니까 천국만 있으면 참 좋은데 지옥이 있습니다. 천국만 말씀을 해서 믿으면 천국에 들어가면 너무 좋은데 지옥이라는 것이 있고 또 오늘 말씀과 같이 음부에서 고통 가운데서 고민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보니까 이제 스스로가 고민이 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부자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을 보고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자기도 믿음이 있는 성도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에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보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그렇게 부르겠습니까?

설령 그가 음부의 고통 중에 있을지라도 세상 사람은 절대로 아브라함을 보고 아버지라고 부르지를 않습니다.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혈통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되거나 갈라디아서의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한 부자는 교회 안에 들어와 있지만 부자가 되어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대표해서 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자가 있으면 그에 따르는 개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1절에 보면 개들이 그 헌데를 핥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있습니다.

반드시 그에 따르는 개들이 많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개들은 부자에게서 배우고 있는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주의자인 부자에게서 배우고 있는 사람들을 개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부자의 미혹이 걸려들어서 부자에게서 배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개들이라고 하면 맞을 것입니다

 

부자가 음부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역시 개들도 음부에 들어간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단은 이 시대 이렇게 부자들을 세워 놓고 있습니다.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개들이 늘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개들이 부자보다 더 나사로를 핍박을 하고 있습니다.

 

딱 이 세대를 보는 것 같습니다.

부자는 복음에 대해 감히 대적을 하지 못합니다. 율법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들은 복음을 전하면 감히 대적을 하지 못합니다. 자기도 어느 정도 성경적인 지식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감히 반박을 하지 못하고 그저 보고만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개들이 더 사납게 달려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사로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부자는 나사로를 보고 판단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개들은 안 그렇습니다. 부자에게 미혹이 되어 나사로의 헌데를 핥으면서 자기들의 생각대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그래도 누릴 것 다 누리고 존경을 받으면서 이 세상에서 살지만 개들은 부자가 되지도 못하면서 부자를 존경하면서 살다가 진리에 대해서 대항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그 개들은 자기가 불쌍하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오히려 부자를 대신해서 나사로와 같은 사람들의 상처를 판단을 하면서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복음을 전하다 보면 그렇습니다. 목사는 아직까지 전적으로 반박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직 성경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서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개가 되어 있습니다.

율법주의로 부자가 기르고 있는 개가 되어 있습니다. 그 부자가 음부에 들어가면 자기 역시 음부에 간다는 것을 모르고 부자가 기르는 개로 잘 훈련을 받아서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더 진리에 대해서 대항을 하고 있는 것이 현 시대의 모습니다.

 

저는 성경을 볼 때마다 참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모습을 다 아시고 그 생각까지 아시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만 보아도 이 시대 얼마나 많은 개들이 있는 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개들은 자기가 개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부자도 자기가 아브라함을 보고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개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시편22:16절을 보겠습니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실제 이 말씀 그대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개들에게 에워싸여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개가 되었지만 자기들이 개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은 이 개가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자는 그래도 누릴 것 아닙니까?

이 세상에서 종교인으로서 존경을 받으면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의 기르는 개가 되어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개로 살면서 교회 안에서 온갖 악을 행하고 있지만 자기가 행하는 행위가 악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부자가 개들을 얼마나 잘 기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음부로 가고 있습니다.

스스로 자청을 해서 부자가 기르는 개가 되어서 음부로 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또 자기들과 같이 믿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개들과 같이 판단을 하고 음부에서 고통을 받을 사람들이라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니까 음부에서 고통 중에 부르짖었다고 말씀하는데 틀림없이 누가복음16장에 나오는 음부는 지옥 같이 보입니다. 만약 이것이 지옥이라면 지금 지옥에 있는 사람하고 천국에 있는 사람하고 같이 보면서 말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지옥에 있는 사람이 아브라함 품에 있는 나사로를 나에게 보내 달라고 말을 합니다. 아브라함 품에 있는 나사로를 부자가 보고 있습니다. 나사로는 어디 갔습니까? 낙원이든 천국이든 좋은 곳에 가 있습니다. 천국이라고는 말씀 안했지만 아브라함 품에 있다는 말씀은 천국 하나님 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비유를 보고 문자 그대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신 그대로 부자가 음부에 들어갔는데 그것이 지옥이라면 지옥에 있는 부자가 나사로를 보고 있다면 나사로 역시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만약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 품에 가 있고 여러분의 부모나 자녀가 이렇게 지옥에서 고통 하는 것을 여러분이 보고 있다면 그 장소가 천국이 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자녀가 고통 받으면서 죽어가고 있다면 여러분이 천국에 앉아서 그것을 보고 있다면 그곳이 천국이 될 수 있을까요? 자녀가 그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너무 뜨거워 자기 혀를 서늘하게 물 한 방울을 찍어 달라고 하면 그곳이 천국이 되겠습니까?

 

성경을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서 그저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무조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 시대 교회라는 거대한 종교가 다 그렇게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부자가 가르쳐 주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거지 나사로가 누구인가를 가르쳐 주지 않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너희는 잘 믿고 있으니까 나사로와 같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릴 것이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 부자와 같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누리며 마음대로 살다가 나중에 죽어서 음부의 고통 중에서 호소를 해 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는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는 서로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음부의 고통 중에 있는 부자도 아브라함을 보고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믿음이 있는 줄 모릅니다. 내 아들이 믿음이 있는지 내 부모가 믿음이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하나는 음부의 고통 중에 있고 한 사람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고 있어 서로를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차라리 나도 그곳에 가겠다고 할 것입니다

천국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다든지 천국에 있는 사람이 지옥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다면 이런 곳은 천국도 될 수 없고 지옥도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자기 형제 자녀가 고통 중에 있다면 평생을 고민 가운데 지내야 할 것입니다

 

천국에 가서 매일 고민할 것 아닙니까?

저것을 천국에 데려와야 할텐데... 만약 자기 자녀가 그런 곳에 있다면 천국에서 매일 울고 있을 것 아닙니까? 그렇게 매일 울고 있는 곳이 천국입니까?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내세에 대해서 이 시대 너무 이 세상의 사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그래도 어느 정도 분별을 해 나가야 하는데 이 세상의 생각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 천국과 지옥을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냉정하게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21:3-4절을 보겠습니다. (420)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눈물이 없는 곳입니다

사망도 없고 고통도 없는 곳입니다 만약 누가복음 16장과 같이 부자가 나사로를 볼 수 있는 장소가 천국과 지옥이라면 눈물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고통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평생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내 아들이 음부의 고통 중에서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면 그곳은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인생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내세에 대해서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물론 정확하게는 우리가 알 수 없을지라도 그래도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또 내세에 대해서는 거의 비유적인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 그 말씀을 볼 때 주위 깊게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생각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보인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사상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불교에서도 극락과 아비지옥을 말할 때 거의 비슷하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생각에는 그런 사상이 이미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어떻고 지옥은 어떻다는 것을 이미 정의를 내리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문자에 갇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문자 그대로를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른 그가 음부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가 다만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음부에 들어가면 우리는 다 거지와 같이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부자 거지 비교입니다

누군가에 대해서 부자인 사람은 또 누군가에 대해서 거지와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나사로와 같이 문자 그대로 거지로 살다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이것은 비유로 가르쳐 주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이곳은 천국도 아니요 지옥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로 예수님께서 천국은 이렇게 좋은 곳이며 지옥은 이렇게 나쁜 곳이라는 것을 비유로 말씀 하신 것입니다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비유를 마치 실제가 되는 것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그 때문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가 아니고 비유입니다

만약 실제라면 어떤 사람도 그런 천국에 가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 보다 더 고통이 많지 않습니까? 이 세상이야 끝이 나면 다 안보이지만 매일 보고 있다면 그곳은 세상 보다 더 고통스러운 곳이 될 텐데 그곳이 어떻게 천국이 될 수 있겠습니까?

 

나만 누리면 천국입니까?

내 형제나 부모가 음부의 고통 중에 나를 보면서 물 한 방울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고 있는데 나는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받으면서 살아가면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만약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며 구원에서 멀어져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으면 바로 이렇게 된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모두가 믿은 사람은 천국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고 믿지 않은 사람이 음부의 고통에 있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수천 년을 고통 중에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도 죽으면 언제 예수님께서 오실지 모르겠지만 오실 때 까지 그렇게 고통 중에 있어야 한다면 하나님은 사랑이 아니라 정말 잔인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세입니다

우리 인생들의 생각으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는 내세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사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속성을 모르고 내세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라고 스스로 자부를 하면서 살았지만 실제 그들의 사상에는 하나님의 뜻이 전혀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천국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또 비유로 말씀을 하실 때 마다 그들은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하고 비웃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16:14-15절을 보겠습니다. (123)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바리세인들이 듣고 비웃었습니다.

왜 비웃었습니까? 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비웃었습니다. 지금 돈에 대한 비유를 말씀 하시니까 바리새인이 비웃는 것입니다 그들은 돈이 많으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었습니다. 물론 육적인 돈도 많았지만 그들은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어서 두 주인을 다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지금 비유로 말씀하시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은 거지가 안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면 세상에서 축복을 받고 계명을 못 지키면 죄의 값을 받고 살아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상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했지만 실제 그들의 사상에 얼마나 세상 적이었는가를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복 받은 사람은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부자는 누가 도와줍니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저주 받아서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이 안도와 주는 사람입니다 그때 당시에 사람들의 사상은 그랬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사상에 물들어 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온 대로 저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버림받은 사람들이고 부자로 잘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어서 부자로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율법을 잘 지키니까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축복해 주셨고 그런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으나 저 가난한 거지들은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지들은 못 간다는 그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 하시고 이 세상에서는 거지였지만 부자라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가난하다고 못 가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도 천국 갈 수 있고 부자도 지옥 갈 수 있다는 것을 바리새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다 부자입니다

세상 적으로 잘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은 축복 받아서 이렇게 잘 살지만 거지들은 다 지옥 갈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이라고 지옥 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나사로와 같이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만 먹는 사람도 천국 간다고 하는 것을 비유로 말씀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비유지 실제가 아닙니다.

만약 실제라면 나사로는 천국이 아닙니다. 비록 자기가 이 세상에서 살 때에는 거지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었을지라도 나사로가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얻어먹은 부자가 불꽃 속에서 고통당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편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거지라도 편하지가 않습니다.

나사로의 마음은 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곳은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어떤 비유냐면 천국은 얼마나 좋은 그리고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 얼마나 나쁜 가를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제 누구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음부가 어떤 곳인가를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전도서9:10절을 보겠습니다. (957)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음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부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음부에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음부는 생명 자체가 없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음부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음부라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음부는 하나의 비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음부가 어떤 곳인가를 보겠습니다. 현대인에 성경에는 조금 더 쉽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아니 구체적으로 번역이 되어서 음부가 죽음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네가 들어갈 무덤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으며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다

네가 들어갈 무덤이라는 것입니다

 

시편6:5절을 보겠습니다. (807)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음부에서는 감사할 수 없습니다.

사망 중에는 주를 기억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음 가운데서는 주님을 기억함이 없습니다. 음부가 죽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들어갈 음부에는 하나님 앞에 찬송할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이것이 고통 중이라면 누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를 하겠습니까?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음부는 사람이 사망을 당해서 죽는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와 같이 음부에 들어가서 고통 중에 천국에 있는 나사로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볼 수 있다면 생각을 하고 지혜도 있고 지식도 있을 것입니다 지식이 있으니까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 자기가 있는 음부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89:48절을 보겠습니다. (869)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셀라)”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를 말씀 하고 있습니다.

죽는 것이 음부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 있는 상태를 음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이 정해진 것인데 이 죽음을 음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모두가 음부로 들어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음부를 현대인의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영원히 살자가 어디 있으며 무덤에 들어가지 아니할 자가 어디 있으리이까? 영원히 살자가 어디 있으며 죽지 아니할 자가 어디 있습니까 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하는 말씀은 누가 죽지 않을 수 있습니까 라는 말씀입니다

 

모두 죽습니다.

인생의 모든 육체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지 못 합니다. 이것은 이미 아담이 범죄를 한 후에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것이라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죽어서 가는 곳이 음부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다 있고 사랑이 넘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 곳이 예비 되어 있다면 죽는다는 것은 정말로 고통을 당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도 자기가 평생을 노력해서 많은 것을 이루었는데 그것을 놓고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싫은지 불로초를 구하기도 하고 또 죽지 않으려고 하면서 죽는 것 자체를 억울해 하고 있습니다.

 

시편55:15절을 보겠습니다. (841)

사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며 산 채로 음부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저희 거처에 있고 저희 가운데 있음이로다

 

산체로 음부에 내려간다고 말씀 합니다

지옥도 산 채로 갈 수 있습니까? 지옥을 산 채로 갑니까? 산채로 가는 지옥은 없습니다. 지옥은 죽은 후에 가는 곳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둘째 부활에 참예를 한 사람들이 둘째 사망을 당하는 곳 불 못에 던지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 있습니다.

우리 살아 있는 사람이 직접 지옥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산 채로 죽을 수는 있어도 산 채로 지옥에 들어간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맞지 않는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한번 죽은 후에 반드시 심판이 있고 그 심판 후에 생명책에 기록이 된 자들은 천국으로 가고 생명책에 기록이 되지 않는 자들은 불 못에 던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부는 산 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니 산 사람이 죽는 것이 바로 음부라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는 그 자체가 음부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산 사람이 직접 지옥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성경말씀이 아니라 이 세상의 사상입니다.

 

어떤 것을 음부라고 말씀 합니까?

현대인의 성경에는 산채로 무덤 속에 넣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덤 속에는 산채로 들어갈 수 있겠지요? 산채로 집어넣으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땅을 파서 산채로 집어넣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산채로 들어가는 음부는 무덤을 가르쳐서 음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30:3절을 보겠습니다. (822)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이것은 구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어서 음부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 죽음에서 내 영혼을 살리사 내 영혼이 죽지 않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죽으면 음부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육체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육체는 죽으면 사망이라는 음부로 들어가는데 그 육체를 살리신 것이 아니라 그 음부에서 끌어내어 내 영혼을 살리셔서 아주 죽게 하지 않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도 죽었습니다. 둘 다 육체는 음부로 내려가서 무덤 속으로 분명히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그렇게 그냥 놓아 두셨고 나사로는 그 영혼을 음부에서 건져 내셨다는 말씀입니다 나사로 역시 음부로 안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그 육체는 분명히 음부로 들어가 무덤으로 들어갔지만 그 영혼은 살리셔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부분도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자는 지금 당장 죽어서 음부로 내려간 상태로 있고 나사로는 천국에 들어갔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문제는 내세에 대한 설교를 할 때 계속해서 언급이 되겠지만 나사로는 죽어서 바로 천국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살리셨다는 말씀입니다

 

언제 살리셨습니까?

음부에 들어갈 때 살리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 나사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 생명이 그 안에 탄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나사로의 육체는 부자와 같이 음부로 내려가 죽었지만 그 영혼은 이미 살아 있는 것이고 또 그 영혼을 하나님께서 보호를 해 주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나사로가 죽은 후에 천국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누가복음의 말씀을 보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죽은 후에는 그 영혼이 잠자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담이 범죄를 한 이후에 모든 육체의 영혼은 죽어 있습니다. 그 육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그 육체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됩니다.

 

육체를 살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영혼을 살리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그 죽어 있는 영혼이 음부로 내려갑니다. 그 후에 주님께서 다시 오시고 천년 왕국이 지나간 후에 둘째 부활이 있은 후에 최후에 심판을 받고 둘째 사망을 당하게 된다고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죽음 무덤을 음부라고 표현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주께서는 나를 죽음 직전에서 구출하시고 나를 무덤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 번역이 그렇게 번역되어서 무덤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무덤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성경 가운데는 여러 곳에 나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면 음부가 무덤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88:3-4절을 보겠습니다. (866)

대저 나의 영혼에 곤란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음부에 가까왔사오니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인정되고 힘이 없는 사람과 같으며

 

내 영혼이 곤란이 가득하여...

어려운 일이 많아서 나의 생명은 음부에 가까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죽음 직전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표현을 이렇게 한 것이지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이미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은 비유입니다

영혼 구원에 대해서 간절히 바라고 있는 마음을 이렇게 비유로 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영혼은 이미 죽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성도는 그 안에 성령이 임해서 새 생명이 탄생이 됩니다. 그런 절박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마치 지금 당장 죽는 것과 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입니다

시는 어떤 표현도 다 할 수 있습니다. 시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이 말씀을 보아야지 문자 그대로 보아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탄생이 된 영혼이 이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새 생명을 얻기 위해서 자기의 간절함을 시로 이렇게 표현을 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호소입니다

내가 죽게 되었습니다. 나를 구원해 주세요. 하는 것을 나는 도무지 구원을 받을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세요. 하는 것을 이렇게 시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잘 이해를 하지 못하게 되면 전혀 다른 해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습니다. 아니 분명히 무덤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나를 구원해 달라고 다급하게 호소를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시적인 언어를 모르고 성경을 본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이런 말씀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을 하면서 구원을 받을 자들을 위해서 그 말씀을 감추어 두셨습니다.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인정되고 힘이 없는 사람과 같으며...

죽을 수밖에 없는 자기를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영혼이 음부에 내려간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고 주님께서 구원해 주셔야지 살 수 있다는 것을 시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참으로 우리에게 정말로 내세의 깊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열왕기상2:6절을 보겠습니다. (511)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다윗이 솔로몬에게 한 말입니다

다윗의 원수를 솔로몬에게 부탁했습니다. 음부에 내려가는 것도 평안히 내려갑니까? 지금 솔로몬에게 평안히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고 말 합니다 이 말은 제명대로 죽지 못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자기 정적을 평안히 죽게 하지 말라고 다윗이 솔로몬에게 유언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사를 하는 것은 평안하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 합니다

나이가 늙어서 백발이 될 때까지를 그를 그냥 두지 말고 백발이 되기 전에 반드시 죽이라고 유언을 하고 있습니다.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피 흘리는 것보다 음부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하는 말입니다 고통당하는 것보다 음부에 내려가는 것이 더 좋다 여러분은 고통당하는 것보다 지옥 가는 것이 더 좋습니까?

 

지옥 가는 것이 더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여기 음부는 지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통당하는 것보다 지옥 가는 것이 더 편할 수가 없습니다. 더 괴롭지요. 평안히 지옥가게 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평안히 죽지 않게 하라 고통당하면서 죽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너는 지혜로운 사람이니 피를 흘리며 죽도록 잘 알아서 하라 피를 흘리고 죽게 하라는 것입니다

 

평안히 음부에 내려갑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평안히 음부에 내러가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 날 잠을 자다가 죽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윗이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자기 원수를 말하면서 이 사람 그냥 평안히 죽게 하지 말고 피를 흘려서 죽게 하라고 합니다. 자기 아들 보고 이사람 제 명대로 살게 하지 말고 네가 죽이라는 말입니다

 

다윗이 참 지독한 사람입니다

죽어 가면서도 자기 원수를 꼭 죽이도록 자기 아들에게 까지 부탁합니다. 솔로몬은 그 부탁을 듣고 또 죽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다윗이 아닙니다. 다윗하면 믿음의 사람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윗이 솔로몬에게 자기 원수를 죽이라고 부탁합니다.

 

나는 죽지만 반드시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자기가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자기는 약속했으니까 못 죽이고 아들보고 죽이라고 합니다. 난 못 죽이니까 네가 죽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믿음의 사람인가 의심이 될 정도입니다 오늘은 음부가 무엇인가를 보고 있습니다.

 

열왕기상2:9절을 보겠습니다. (511)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

 

피 흘려서 죽도록 하란 말입니다

만약 음부가 지옥이라면 솔로몬이 이 사람을 지옥 보낼 수 있습니까? 다윗이 음부에 보내라고 합니다. 솔로몬 마음대로 지옥에 보낼 수 있을까요? 만약 이 사람이 믿음이 있다면 솔로몬이 죽인다 할지라도 지옥에 안 갈 것 아닙니까?

 

솔로몬이 그를 죽인다 할지라도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솔로몬이 사람을 죽여 지옥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음부는 지옥이 아닙니다. 본문은 솔로몬에게 음부에 보내라고 합니다. 피 흘려서 죽도록 하란 말입니다 그것은 육체의 생명을 죽이라고 하는 것이지 사람이 지옥을 보내고 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내세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누가 천국에 가고 누가 지옥에 가는가에 대해서는 우리 인생이 개입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내가 지옥을 보내고 싶다 해서 지옥을 보내고 또 천국을 보내고 싶다 해서 보낼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물론 천국을 내 뜻대로 보낼 수는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이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민수기16:30절을 보겠습니다. (233)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 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것은 고라에게 모세가 한 말입니다

어떻게 산채로 음부에 빠집니까? 산채로 음부에 빠진다는 말은 땅속에 빠진다는 말입니다 땅속이 어디입니까? 음부입니다 땅속이 음부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땅속에 빠지도록 하라 하나님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말은 산채로 땅속에 빠지게 하시면 그 말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을 보겠습니다.

산채로 깊은 구덩이에 빠져 죽게 하시면... 구덩이는 땅 속입니다 그 땅속을 가르쳐서 음부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음부에 빠진다는 것은 사람이 죽는 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지 그것이 지옥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에서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모세의 말대로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땅이 그 위에 합하여 졌습니다. 땅이 벌어져서 빠진 그곳이 음부입니다 그곳이 지옥이라면 고라 자손이 빠진 그곳으로 지옥 갈 사람은 가는 것입니다 음부라는 것은 어떤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땅속이나 죽음을 표현한 말로 사용 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산채로 깊은 구덩이에 빠지자 그들은 생매장이 되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고 번역 되었습니다 그들은 깊은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그 깊은 구덩이를 음부라고 했습니다.

더 실감나게 지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까? 없는 사람입니까? 믿음이 있어 천국 갈 사람입니다 음부에 들어갈 사람이 아닙니다. 지옥 갈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음부가 지옥이라면 야곱의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37:35절을 보겠습니다. (58)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형제들이 요셉을 팔아 버리고 그 옷에 피를 묻혀서 야곱에게 가져다주었을 때 야곱이 한 말입니다 요셉의 옷이라고 형들이 가져오니까 야곱이 한 말입니다 지옥 가겠다는 말 입니까? 지옥 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요셉이 죽었다면 어디로 가는 것이 맞습니까? 요셉은 믿음이 있으니까 죽었다면 천국에 갑니다. 야곱도 죽으면 천국에 가야 하는데 요셉이 간 곳에 가리라고 말 합니다

 

음부가 지옥이라면 요셉이 지옥 갔으니까 나도 지옥 가겠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요셉이 죽었으니까 나도 같이 죽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보통 사람들도 그런 말을 합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죽으면 나도 같이 죽겠다고 말 합니다 바로 그런 표현입니다 그런 표현을 음부에 내려가겠다고 말 합니다

 

음부는 절대로 지옥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음부는 죽음 그 자체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나 무덤 같은 말입니다 음자가 무슨 음자 입니까? 그늘 음 자입니다 양지 음지 할 때 씁니다. 빛이 없는 데를 말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깜깜 합니다 음지입니다

 

창세기42:38절을 보겠습니다. (67)

야곱이 가로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 행하는 길에서 재난이 그 몸에 미치면 너희가 나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갔다 와서 베냐민을 데려가려 합니다.

요셉이 동생을 데려오라 하니까 그 형제들이 야곱 앞에 와서 베냐민을 데려가겠다고 하니까 요셉도 죽었는데 작은 아들 베냐민도 데려가서 죽으면 나는 어떻게 하려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만약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데려가다가 죽으면 야곱은 음부에 내려간다고 말 합니다 이 말은 작은 아들 하나를 보고 사는데 이아들마저 죽으면 나를 죽게 만드는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죽음 자체를 음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욥기에는 음부가 나쁜 곳이 아니라 좋은 곳으로 표현을 합니다. 욥은 고난 중에 음부를 좋은 곳으로 말 합니다

 

욥기14:12-13절을 보겠습니다. (775)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음부에다 감춰 달라고 말 합니다

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현대인의 성경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여 나를 죽은 자들과 함께 감추어 주시고 주의 분노가 그칠 때까지 나를 숨겨 주시며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욥은 지금 고통 중에 있습니다.

죽고 싶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고통당할 바에는 잠깐 죽었다가 주의 진노가 끝난 후에 다시 살아나게 해 달라는 말입니다 음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우니까 병이 들면 사람이 그렇습니다. 죽고 싶다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정말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신 복이 무엇인 줄 압니까?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만약에 죄를 진 인생들이 죽지 않고 영생을 한다는 것은 그것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불쌍히 여시기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것을 주셨고 우리는 고통을 덜 당하고 죽음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모스 9:2-3절을 보겠습니다. (1283)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찌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찌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갈멜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요

 

저희가 파고 음부에 들어갈찌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음부를 어떤 곳으로 말씀 하고 있습니까?

땅을 파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땅을 파고 들어가도 하나님은 거기서 찾으시고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서 찾아내고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도 거기서 찾아내고 바다 속에 숨을지라도 거기서 찾아내고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은 찾아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씀을 하겠습니다.

저희가 스스로 죽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찾아내시겠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이 고통 중에 죽고 싶다고 해서 스스로 자기를 학대를 한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찾아내시겠다고 합니다. 이 음부는 땅 속을 말씀하는 것이지 지옥이 아닙니다. 땅속이나 무덤 죽음을 표현한 것이지 만약 음부가 지옥이라면 굉장히 큰 문제가 생깁니다.

 

예수님이 지옥에 갔을까요? 안 갔을까요?

예수님은 지옥에 안 가셨습니다.

 

사도행전2:25-32절을 보겠습니다. (195)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예수님이 죽었다 살아나실 것을 시편에 예언 했습니다

다윗이 시편에서 예수님이 살아날 것을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예수님이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이 어디에 갔다 나왔습니까?

음부에 갔다 나왔습니다. 음부에 갔는데 그냥 버림이 되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간 음부가 어디입니까? 무덤속입니다 그 무덤 속을 음부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음부에 그냥 버림이 되지 않았습니다. 버림이 되지 않고 거기서 살려 내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 자체를 땅속을 음부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음부가 지옥이라면 예수님은 지옥에 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안 갔습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안 가셨기 때문에 음부는 지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 되었습니다

그분은 무덤에 버림을 당하지 아니하고... 음부에 버림을 당하지 아니하고 하는 말씀을 그분은 무덤에 버림을 당하지 아니하고 로 번역 되었습니다 육체로 썩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라고 번역 되었습니다

 

음부는 어떤 곳입니까?

음부는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지옥을 음부라고 말할 수 없느냐는 것입니다 지옥을 음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영원히 사는 곳이 천국이지만 영원히 죽는 곳은 지옥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살지 못하고 버림이 되었다면 그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은 지옥입니다 그런 뜻으로 표현 한다면 지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 자체를 말한다면 음부가 지옥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옥 가는 사람이 어디에 가는 가를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 후에 최후의 심판이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양과 염소를 나누는 그와 같은 심판입니다 이 심판 앞에서 어떻게 하는가를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20:11-15절을 보겠습니다. (420)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최후의 심판은 불못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최후의 심판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이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못이 어디입니까? 바로 지옥입니다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육체로 한번 죽습니다.

그 다음에는 영혼까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그런 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심판의 부활을 받으면 불못에 들어갑니다. 불못에 들어가는 것을 가르쳐서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고 말씀합니다.

 

지옥을 무엇으로 표현했습니까?

불못으로 표현 했습니다 죽음 그 자체가 음부고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지옥을 음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덤이나 죽음자체를 음부라고 했으며 성경 전체를 보면 죽음이나 무덤 그 자체를 음부라고 표현했습니다.

 

영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은 살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죽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는 천국이냐 지옥이냐 하는 문제와 마찬가지입니다 지옥이다 라고 표현할 수는 있지만 성경에는 지옥을 음부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무덤이나 죽음을 음부라고 했지 지옥을 음부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음부가 지옥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20:13절을 보겠습니다. (420)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음부에서 죽은 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럼 지옥에서 나왔다는 말이 됩니까? 아닙니다. 무덤 속에서 나왔다는 말씀입니다 사망과 음부가 무덤 속에서 나왔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믿지 않은 사람들의 둘째 부활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0:14절을 보겠습니다. (420)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운다고 말씀합니다.

불못은 어디입니까? 지옥입니다 볼못은 지옥인데 음부도 그곳에 던지 운다고 말씀합니다. 그럼 음부는 지옥이 아닙니다. 분명히 음부도 불못에 던지 운다고 말씀합니다. 음부도 지옥으로 던지 운다는 말씀은 음부는 무덤 땅속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심판 때는 땅도 심판을 받습니다. 불속으로 던져 집니다. 그래서 음부도 불못에 던지 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3:10절을 보겠습니다. (387)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체질이 무엇입니까?

땅 자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땅 그 자체가 녹아 진다는 것입니다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진다고 말씀합니다.

 

베드로후서3:12절을 보겠습니다. (387)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진다는 말씀은 땅이 녹아진다는 말씀입니다

땅도 불못에 던지 운다는 말씀입니다 지옥은 최후에 불살라지는 곳입니다 그 지옥에는 지금 있는 땅도 던져지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땅은 모든 사람이 들어가는 음부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다 음부에 들어가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음부에 버려지지 않고 음부에서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건져낸 후에 이 음부도 불못에 던지 우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설명으로 음부가 어떤 곳이라는 것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음부도 지옥에 던져진다고 말씀합니다.

음부가 지옥 자체는 아닙니다. 지옥에 던져질 때 그때는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음부가 지옥 대기소라 말하고 음부는 지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자체가 지옥은 아니고 죽음이나 무덤을 가르쳐서 한 말씀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이제까지 성경을 보았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부자가 죽어 음부에 들어갔다는 말씀은 하나의 비유로 말씀을 한 것이지 그것이 실제 지옥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사는 것이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는 것입니다 그 죽음 자체가 음부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옥으로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는 죽음 자체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이 서로 보이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말씀 하신 것처럼 나사로가 있는 곳 천국하고 부자가 있는 곳 지옥 하고 같이 보이고 서로 말을 주고받는 다면 천국 간 어머니에게 지옥 간 자식을 보고 아우성을 칠 것 아닙니까?

 

물 조금 주세요?

어머니 그렇게 냉정합니까? 하고 울부짖을 것 아닙니까? 그 소리를 들으면서 어떻게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은 서로 보이는 장소가 아닙니다. 천국은 모든 눈물을 씻기시며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니라 다 지나가고 없습니다.

 

우리가 가는 천국은 죽음이나 눈물이나 애통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없는 곳이 되어야만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있는 곳이라면 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서 어려운 일당하고 고민을 많이 하면 무엇 하러 갑니까? 생지옥이라고 말 합니다 고통 받는 것이 지옥입니다 그런 곳이 지옥이라면 천국과 지옥은 같이 보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곳이 천국이라면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천국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화 같은 곳에서 보면 취조를 할 때 부모 앞에서 아들을 때리면서 취조할 때 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합니다. 진짜 세상에서 잠깐 고통당하는 것도 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하는데 천국에서 지옥을 볼 수 있다면 그곳은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땅속에 있는 것과 하늘에 있는 그런 큰 차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나사로는 죽어 하늘에 있고 부자는 죽어 땅속에 있습니다. 땅과 하늘만큼 그렇게 큰 차이를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늘은 이렇게 좋은 곳이고 땅속은 이렇게 나쁜 곳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좋은 곳이고 지옥은 이렇게 나쁜 곳이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음부가 지옥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자가 죽어 음부에 간 것은 결국 지옥에 간다는 것을 우리가 또한 잘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의 말씀은 비유지만 부자는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서서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는 것을 확대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음부는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 인생이 죽어서 가는 땅 속을 음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음부에 들어갈지라도 거기서 썩음을 당할지라도 그 영혼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은 그 음부 자체가 지옥으로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직접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람이 음부에 들어갔다는 것은 또 다른 말로는 지옥으로 간다는 말로 해석이 될 수 있습니다. 부자가 음부에 있다는 말씀은 부자는 심판을 받고 난 후에 지옥 불에 던져 진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자가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많이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또 그 부자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음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음부가 지옥 가는 대기소와 같이 생각했던 음부 그런 곳이 아니라 지옥 자체도 아니고 하나의 죽음이나 무덤 자체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그것을 지옥이라 표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그 자체는 아니지만 음부도 결국 불 못에 빠뜨리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 자체를 지옥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낙원이 천국가는 대기소다 음부가 지옥 가는 대기소라고 한다면 천주교의 연옥설과 틀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천주교의 연옥은 천국가기 전에 있는 곳이지만 기독교에서는 연옥 설을 부정합니다.

 

연옥 설을 부정하면서 낙원을 천국 가는 대기소 음부를 지옥 가는 대기소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순된 것입니다 차라리 천주교처럼 연옥이 있다고 하든지 없다고 하려면 대기소라는 말은 없애 버려야 합니다. 대기소는 없습니다. 천국 가냐 지옥 가냐 하는 것이지 대기소는 없습니다. 만약 대기소가 있으면 천주교와 교리가 같습니다. 천주교를 비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비유입니다

그런데 누가 복음의 말씀을 실제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실제로 보고 있기 때문에 지옥에 대해서 오해를 하기도 하고 또 사람들이 그런 고통이 있는 지옥에 가지 않으려고 더 행위에 열심을 내다가 자기 영혼을 빼앗기는 불행한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내세의 일입니다

우리 인생의 생각으로 성경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은 음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세의 일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비유로 한 말씀인데 사람들은 그 비유를 보고 지옥이라고 쉽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그런 지옥에 대해서 성경과는 전혀 다른 주장들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성경을 본다면 오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한 시간으로는 음부와 지옥에 대해서 다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지옥에 대해서는 말씀을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그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그것입니다. 내세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을 너무 확대 해석을 하는 것에 대해서 경계를 해야 합니다. 비유이기 때문에 실제를 그대로 설명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세에 대해서 어느 정도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천국이 너무 좋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얻지 못하고 죽는 것은 그 자체가 불행이고 지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죽음 자체가 지옥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천국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바로 알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