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출애굽기 3:15절을 보겠습니다. (구 85쪽)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구원입니다
모든 성경은 영혼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구원이 없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는 세상에서 더욱 불쌍한 자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우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하시고 400년이 지났는데도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모세를 세워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 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그림자를 통해서 우리가 천국에 대한 소망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취를 하시는 가를 보게 하시고 있고 또 그것을 통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해 주고 있습니다. 구약이라는 그림자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도표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는 도표라는 것을 이해를 하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어떻게 행하는 성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인가를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 의미가 있습니다.
그 안에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예표를 통해서 또 인물들을 통해서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그것을 바로 아는 성도만이 주님께서 오실 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지금 애굽에 있는 자손들은 모두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하실 때 그 자손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시고 이제 모세를 세워서 그들을 인도하여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라면 당연히 400년이 지났으면 가나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자손들을 가나안에 들여보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그들을 인도해서 가나안으로 갔지만 그들은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왜 죽었습니까?
만약 그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라면 반드시 가나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다수는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라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그들의 권리인데도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가 죽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약속이 틀리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을 변경하신 것입니까?
창세기15:13절을 보겠습니다. (구 18쪽)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세웠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자녀가 없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으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브라함의 의로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아브라함에게 내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는데 400년 동안 이방의 객이 되어서 그들을 섬기다가 그 나라를 징치할 때에 네 자손들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와서 다시 가나안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언약 그대로 400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 애굽에게 열 가지 재앙을 내리게 하신 후에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셔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또 이삭의 자손이고 야곱의 자손이라면 당연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갔어야 하는데 애굽에서 나온 20세 이상의 선악을 분별하는 장정은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왜 죽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언약을 폐기하신 것입니까? 물론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여러 가지 죄를 범 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했고 무서워했습니다. 가나안에 살고 있는 민족들을 정탐을 하고 나서 더욱 두려워해서 자기들이 그 민족에게 다 죽을 것이라고 울며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왜 그들이 가나안에 못 들어갔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다면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데 왜 그들이 가나안에 못 들어갔느냐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대로 약속을 했다가 그것을 돌이키고 하시는 분입니까? 이스라엘이 범죄를 했다고 해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우리 역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이유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들이 많이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과 이삭의 자손과 야곱이 자손이 되지를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육적으로는 분명히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자기들의 하나님의 되지를 못 했습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천국에 누가 들어갈 수 있는 가를 지금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조상이 아브라함이어야 하고 또 이삭이어야 하고 또 야곱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이 세 사람의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이 되지 못한다고 하면 그는 절대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바로 이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이 육적으로는 분명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 분명했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야 하고 또 이삭의 자손이 되어야 하고 야곱의 자손이 되어야 하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육적인 그 모습을 보고 자기들의 조상이 아브라함이고 이삭이고 야곱이라고 하다가 결국에는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야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아브라함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그 자손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으면 아브라함과 같은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콩을 심으면 콩이 난다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나오면 그것은 콩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콩과 똑같은 것이 나와야 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상과 자손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안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광야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누구인가를 성경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15:1절을 보겠습니다. (구 18쪽)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성경을 본 사람은 아브라함의 생애를 잘 알고 있습니다.
갈데아 우르에 있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됩니다. 창세기 12장부터 보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 가나안으로 왔지만 그 땅은 그때 가뭄이 아주 심했습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잠시 내려갔습니다.
아내 사라가 심히 아름다워서 애굽 왕이 사라를 궁으로 들어오게 해서 취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힘이 약했기 때문에 사라로 인하여 자기가 죽을까봐서 사라에게 자기를 오라비라고 이야기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그 일로 하나님께서 애굽에 큰 재앙을 내리심으로 애굽 왕이 아브라함을 불러 왜 네 아내를 누이라고 해서 내가 죄를 범하게 하였냐고 하면서 다시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옵니다.
아브라함이 거부가 되어서 자기 조카 롯과 함께 거할 수 없어서 롯에게 네게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다고 하니까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보니까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이 비옥했으므로 그 길로 가고 아브라함은 헤브론 쪽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두려웠습니다.
사실 자기가 살던 갈데아 우르와는 달리 가나안은 아는 사람도 없어 이방인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기 아내를 빼앗기기도 했고 또 자기 조카 롯이 다른 나라의 왕들의 침략으로 인하여 포로가 되어 가는 것을 구해 주기도 했지만 아브라함은 두려워했습니다. 자기도 어떻게 될지를 모르는 그런 낮선 곳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늘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당하다 보니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아 부르시고 두려워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두려워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에 왔지만 아브라함에게는 아무 것도 정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육축을 하는 사람이라서 땅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또 자손도 없었습니다. 아들이라도 있으면 의지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들도 없었습니다. 롯도 자기 곁을 떠나고 나니까 정말 피붙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혼자서 이방에 객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두려워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왜 두려워합니까? 그 이유는 아직 믿음이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일 죽는다 해도 다시 사는 것을 믿는다면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워 말라 하시고 난 후에 나는 너의 방패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6:16절을 보겠습니다. (신 317쪽)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지금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주고 있습니까?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믿음의 방패가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방패와 같습니다.
사단이 어떤 공격을 해 와도 믿음의 든든한 방패가 있는 성도는 세상이 절대로 두렵지가 않습니다. 설령 생명을 위협하는 공격을 해 온다 해도 내 소중한 것을 빼앗아가는 일을 한다 해도 절대로 두렵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방패가 있습니다.
전쟁에서 화살이 아무리 많이 날아 와도 든든한 방패가 있으면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아브라함의 믿음의 방패가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방패가 있는 사람만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두려움을 쫓아내는 방패가 있는 성도가 믿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믿음이 없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방패가 되어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15:2-6절을 보겠습니다. (구 18쪽)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은 혈혈단신입니다.
그나마 롯이라는 조카가 있었는데 롯도 자기와 함께 거할 수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로 가고 이제는 정말 아무도 없습니다. 아들이라도 있으면 의지를 할 수 있는데 나이는 자꾸 들어가고 있는데 아들도 없으니까 하나님께 자기가 데리고 있는 종 엘리에셀을 가르치면서 나의 상속자가 아니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에 하나님께서 하늘의 뭇 별을 보라고 말씀합니다.
하늘의 뭇 별을 셀 수 없는 것 같이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말씀을 믿었다고 성경이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손이 하늘의 뭇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는 그 말씀을 아브라함이 믿으니까 하나님께서 이것을 그의 의로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입니다
이 세상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믿음이 무엇이고 그 믿음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 이전에 사람들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은혜를 받았을 뿐이지 믿음을 가지고 그 의로 정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처음이라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믿을 수 있습니까?
물론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자기도 나이가 많이 먹고 또 사라의 나이도 늙어가고 있는 그때에 자기 자손이 하늘의 뭇 별과 같이 많으리라는 말씀을 믿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더구나 사라는 아직까지 자녀를 낳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믿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시고 있고 또 믿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비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해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히브리서1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64쪽)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자손이 하늘의 뭇 별과 같이 많아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내게 무엇을 주시려 합니까? 하면서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 나의 상속자가 되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을 합니다.
아니다 다메섹 엘리에셀은 너의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너의 후사가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하늘의 뭇별을 보게 하시고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자녀가 없었는데 네 자손이 하늘의 뭇별과 같으리라는 이 말씀을 사실 믿기가 힘이 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아들이 하나도 없는 아브라함이 하늘의 뭇별과 같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의 의로 정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의가 수반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의 의로 정한 것이 무엇입니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시고 있고 아브라함의 그 믿음을 의로 정하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면 그 자손은 당연히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그 자손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 아브라함은 아들을 그 후에 8명을 낳았습니다.
하갈에게서 장자 이스마엘을 낳고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고 그리고 사라가 죽고 난 후에 후처에게서 6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7명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었습니다. 왜 자손이 되지 못했는가 하면 그들은 육적으로는 분명히 아브라함의 자손이 맞지만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부르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었습니까?
아브라함이 믿음이 좋아서 하나님께서 하늘의 뭇별들을 보이면서 그와 같이 네 자손이 많으리라는 그 말씀을 믿었습니까?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니까 그냥 척하고 믿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해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웠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마치 우리와 남다른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로마서4:18절을 보겠습니다. (신 244쪽)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런데 그가 처음부터 그의 이성적 지식으로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그가 다른 사람보다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많은 민족의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믿음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조상으로 세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세워서 그로 믿음의 조상으로 세운 것이지 아브라함이 남들보다 더 하나님을 잘 믿어서가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를 믿고 싶습니다.
그것이 그냥 믿어집니까? 믿게 하는 상대가 나를 믿게 해 주어야 믿을 수 있는 것이지 믿음은 나 혼자가 믿겠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아브라함을 그 후손에게 줄 땅 가나안으로 부르시고 그에게 믿음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믿게 했습니다.
사실 인생의 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부활을 한다는 것이 쉽게 믿어집니까? 내가 믿고 싶어도 그것이 안 믿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물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영혼이 부활을 해서 영원히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린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 너나 잘 믿고 그렇게 영원히 천국에서 살라고 조롱을 할 것이 너무도 분명 합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믿게 역사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바랄 수 있는 그것을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바랄 수 없는 그것을 믿게 역사를 하고 있고 그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 있습니다.
요한복음8:33절을 보겠습니다. (신 159쪽)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고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라고 하시니까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믿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진리를 모르고 있다고 말씀을 하니까 무슨 소리냐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스라엘은 육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행위로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같이 보였지만 실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조상이 아브라함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없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분명히 육적으로는 예수님께서도 인정을 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맞지만 영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혈통을 믿고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강하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8:39절을 보겠습니다. (신 159쪽)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조상과 자손이 무엇입니까?
콩을 심으면 콩이 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조상과 자손입니다 우리가 육적으로 보는 조상과 자손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내가 성이 김씨면 내 아들도 김씨가 되는 것이 바로 조상과 자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런 육적인 것으로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을 하십니까?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해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가지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렇게 표면적으로 자기가 성도라고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마치 성도가 된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생각할 때는 분명히 아니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이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표면적인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행사를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없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에 나와 있다고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없다면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도 없고 또 하늘의 상급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조상이 무엇입니까?
같은 행사를 해야 그를 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와는 전혀 다르게 행사를 하면서 그를 자기 조상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어느 누구도 인정을 해 주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믿음을 모르고 율법에 빠져 아브라함과는 전혀 다른 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었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율법의 행위에 빠져 천국의 유업을 얻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을 스스로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그렇게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자기들이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7절을 보겠습니다. (신 (신 304쪽)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믿으니까 그것을 그의 의로 정했습니다.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창세기에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육적으로 보여 지는 교인의 모습을 보고 자기가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분명히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맞지만 그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없다면 그는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습니다.
콩 심은데 콩 납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면 그 자손 역시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조금이라도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로 여기심을 받은 그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믿음을 모르면 안 됩니다
아브라함과 내 믿음이 동일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더 좋고 나는 믿음이 아브라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아브라함과 같이 동일한 믿음을 가진 성도만이 이 시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적으로는 같은 혈통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그런 같은 혈통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요한복음 1장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반드시 같은 영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믿음을 가졌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당연히 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동일한 믿음이 없다면 그 자손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은 바로 너희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은 했지만 실제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육정으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정으로 난 자들은 절대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습니다. 육적으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까?
그리고 누가 자기의 조상이 아브라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교회에 나와서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성도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4:2절을 보겠습니다. (신 243쪽)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까?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행위로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행위를 보고 의롭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성경을 보고도 몰랐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아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는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후에 행한 할례를 가지고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표징으로 삼고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도 그렇게 자기들의 겉모양으로 나타나는 할례와 같은 그런 표징을 가지고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착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조상이 아브라함이라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해야 하고 또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야 합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와서 자기가 하는 행위를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3:29절을 보겠습니다. (신 306쪽)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까?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닙니다. 물론 육정으로는 분명히 아브라함의 자손이 맞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바울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아브라함과는 육정으로 아무 상관이 없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에서 있어서는 아브라함과 동일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낳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로 낳지 않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에 나와 있다고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이 탄생이 된 성도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네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 가나안에 들어갑니까?
반드시 아브라함의 자손만 들어갑니다. 그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손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여호수아가 들어갔고 또 이방을 대표해서 갈렙이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손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당신이 누구인가를 말씀을 해 주셨고 그렇게 아브라함의 자손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광야입니다
육정으로 난 자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육정으로 난 자들은 반드시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행위로 자기가 성도라는 것을 나타내려고 하는 자들은 반드시 교회라는 광야에서 다 죽고 절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기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어떤 행사를 해서 의롭다 함을 얻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삭의 자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삭의 하나님이라고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성도는 반드시 이삭의 자손도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이렇게 기록했는가를 모르고 그저 사람의 이성적 지식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창세기 17:19절을 보겠습니다. (구 21쪽)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약속의 자녀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이를 낳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세가 가깝게 그리고 사라의 나이가 구십이 되도록 살았지만 둘 사이에서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네 아내 사라가 정녕 아들을 낳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으로 태어났습니다.
약속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장자 이스마엘은 물론 사라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그 종 하갈에게서 낳지만 이스마엘은 사람의 육정으로 태어난 아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을 씨로 생각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인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사라에게서 난 아들 이삭을 그 씨로 인정을 했습니다.
창세기18:11절을 보겠습니다. (구 22쪽)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이삭을 낳을 수 있습니까?
사라는 나이가 많아 이미 경수가 끊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태어날 수 없는 이삭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약속을 해 주셔서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온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왔습니까?
그것은 이스마엘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얼마든지 사람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얼마든지 인관관계를 통해서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치 그것은 이스마엘을 낳는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에 생식 능력이 있고 또 하갈이 생식 능력이 있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쉽다고 하는 것 역시 아닙니다.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그것이 얼마나 큰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능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이스마엘을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절대로 안 됩니다 왜 능력이 있어도 안 되는가 하면 이미 사라의 경수가 끊어졌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육정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고 그것이 마치 이삭의 탄생으로 알고 있으면 큰일이 납니다.
경수가 끊겼습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삭은 그와 같이 약속에 의해서 태어난 아들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네 조상 이삭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이삭과 같이 그렇게 태어난 성도만이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나온 것 육정입니다
그것을 영의 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내 육이 나옵니까? 영이 나옵니까? 내 육이 교회에 나가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행위는 아니 그 자체는 모두가 육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 있는 그 상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마치 구원의 방주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육과 영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차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들어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육정인 자손으로 태어난 것과 다르지가 않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자기가 약속에 의해서 태어났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복음1:13절을 보겠습니다. (신 142쪽)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사람의 뜻으로는 낳을 수 없습니다.
아니 불가능 하다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혈통이나 육정으로 난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낳을 수 없는 이삭을 약속에 의해서 낳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으로는 도저히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일입니다
그러니까 웃습니다.
이삭을 주시겠다고 하니까 아브라함도 웃고 사라도 웃습니다. 왜 사람의 뜻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듭남의 비밀을 모르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교회에 나와 있어도 자기가 어떻게 다시 태어나야 하는 가를 모르고 육정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인생으로 난 사람의 뜻으로 난 사람은 안 됩니다 그 사람은 이삭의 자손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얼마든지 인생의 뜻에 따라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이삭과 같이 약속으로 태어난 성도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이 세상 육을 따라 행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비밀을 알고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믿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가 어떻게 낳아야 하는 가를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사람들이 미혹이 되어서 교회라는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1: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71쪽)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말이 됩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니고데모가 예수님께서 거듭나라고 말씀을 하니까 어떻게 모태에 들어갔다 다시 날 수 있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삭과 같이 약속에 의해서 태어나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육정으로나 혈통으로는 분명히 이삭의 자손이었습니다. 아니 이삭을 자기 조상이라고 하는데 있어서 아무도 의심을 하지 않고 당당하게 이삭의 자손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뜻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따라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의 자손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는다 해서 다 이삭과 같이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 자체가 진리에서 벗어나고 있는 말씀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는 시각에 따라 그렇게 보여 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았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은 진리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를 하면서 살았지만 자기들이 진리를 모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은 이 세상 어느 민족 보다 하나님을 잘 알고 또 잘 믿고 있다고 자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진리를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 역시 성경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지만 사실 진리를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를 않습니다. 왜 그러냐면 성경을 보고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소경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진리로 행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낳은 자녀가 되려면 반드시 진리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본다고 다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진리를 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도 거의 다 문자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시적인 언어를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들이 제사를 드리고 있는 성막을 보고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으로 난 자들은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그것을 알 수 있게 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진리를 보아야 합니다.
성경의 문자에 갇혀 있는 사람은 절대로 진리를 알 수 없고 그런 사람은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는 것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이삭은 그렇게 탄생이 된 아들입니다 이삭의 자손이라면 당연히 이삭과 같이 그렇게 진리의 말씀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이삭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이삭과 같이 그렇게 태어나지를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아들 하나님의 뜻으로 태어난 아들이 이삭의 자손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26절을 보겠습니다. (신 305쪽)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진리로 태어났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육정으로 난 이스라엘을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들을 약속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 됩니다.
우리는 먼저 사람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거듭남이고 영의 비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종교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종교에 빠지니까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또 자기들의 조상이 아브라함이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행위를 보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고 육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의 비밀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육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로서는 그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난 자들만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 있으면서도 이렇게 하나님께 로서 난 자가 안 되고 있다면 그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고 또 이스라엘과 같이 멸망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4:28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이삭의 자녀입니다
이삭의 자손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 갈라디아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육정으로나 혈통으로 태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누가 내 상속자입니까?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약속에 의해서 태어나야 하는데 사람들은 자기 육정이나 혈통을 보면서 교회 안에 있는 자기를 보면서 거듭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천국의 유업을 이을 자라는 약속을 받고 태어난 자만이 이삭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천국의 유업을 이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약속을 믿고 있고 그 약속이 우리에게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약속을 받았습니까?
교회 안에서 자기가 무슨 약속을 받았는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것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마치 그것을 전부 약속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모릅니다.
자기에게 무슨 약속을 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약속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면 그는 이삭의 자손이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을 해 주셔야 하고 또 그 약속을 가지고 있는 성도만이 이 시대 이삭의 자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의 조상이 이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약속으로 태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이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우리 조상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서 약속을 통해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고 있습니다.
요한일서2: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90쪽)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무엇을 약속했습니까?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생명이 없다면 약속의 자녀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에 나왔지만 이 생명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고 마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생명을 얻은 것같이 이 시대 종교가 미혹을 하고 있고 거기에 다 넘어가고 있습니다.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있어야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이 시대 교회를 소경으로 만들어 버려서 자기들이 생명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생명이 없습니다. 반드시 예수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저 자기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른다 해서 마치 그 생명이 자기 안에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는 있지만 이 생명에 대해서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그들의 안에는 약속이 없기 때문에 이 생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의 되어야 합니다. 이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동일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또 이삭과 같이 하나님의 뜻으로 낳아서 생명을 약속으로 받은 성도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41:14절을 보겠습니다. (구 1016쪽)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지렁이 같은 야곱아
지렁이가 땅 밖으로 나오면 어떻게 됩니까? 땅 속에 있을 때는 그래도 그 안에서 잘 살아가고 있지만 일단 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지렁이는 가장 약한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그런 지렁이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렁이가 무엇을 합니까?
그저 자기 살기에 급급해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야곱을 하나님께서 그런 지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이 세상에서 햇빛을 보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꿈틀거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햇빛에 의해서 죽게 되는 것이 지렁이입니다 얼마나 비참한 인생이면 지렁이라고 말씀을 하겠습니까?
야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야곱이 되기를 거절하고 있고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기 존재가 이 야곱과 같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지렁이에게 뭐라고 말씀을 하십니까?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고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이 인생들의 눈을 소경으로 만들어서 자기가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 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렁이는 햇빛이 있는 곳에 나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장 작은 개미에게도 꼼짝을 못하고 죽는 것이 지렁이입니다
나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가 누구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야곱과 같습니다. 아니 야곱이 우리 조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이름의 뜻이 사기꾼입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야곱을 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속을 하셨습니다. 사람의 이성에 따르면 당연히 에서가 장자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간사한 야곱을 선택하셔서 그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구속을 하신 야곱의 자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속이 무엇입니까?
대가를 지불하고 구해주는 것을 구속이라고 합니다. 같은 의미로 속량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대가를 지불하고 구원해 낸 사람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가를 지불하고 구원해 내 주셨습니다. 이 야곱의 하나님이 내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6:20절을 보겠습니다. (신 269쪽)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값으로 샀습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을 하나님께서 구속하셨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하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값을 지불하시고 사셨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생은 죄로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이 빚을 스스로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입니다
아담이 범죄를 했을 때부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죽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범죄를 했을 때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장 육체는 죽지 않았지만 그 영혼은 죽었습니다. 아담의 자손인 인생들은 다 영혼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죽은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린 양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리 양으로 오셔서 우리 인생들의 죄 값을 지불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이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졌습니다. 의인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의 죄 값을 지불하시고 살리셨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반드시 야곱과 같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값으로 사신 자만이 야곱의 자손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야곱과 같은 인생입니다
사단에게 다 팔려서 죽어야 하는 인생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자기가 누구인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큰 빚을 진 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죽어야 하는 만큼의 빚을 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보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불러서는 안 됩니다.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죄인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당연히 에서의 하나님과 같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지렁이 같은 야곱을 구속하시고 그를 돕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서 보내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속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31:11절을 보겠습니다. (구 1101쪽)
“여호와께서 야곱을 속량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속하셨으니”
강한 자에게서 구속을 하셨습니다.
사단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사단은 지금 이 시대 율법의 의를 보이면서 그 율법으로 완전해 지라고 계속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율법의 강한 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빚을 지었습니다.
얼마나 빚을 지었습니까?
마태복음에서 일만 달란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 일만 달란트는 지금 돈으로 하면 20조가 넘는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빚이 20조가 넘는다는 말씀입니다 그 빚을 갚아야 하는데 우리 인생의 능력으로는 어느 누구도 갚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세상 최고의 부자는 20조를 넘게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그 돈으로는 우리의 빚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빚이 일만 달란트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죽어야 하는 야곱을 하나님께서 강한 자의 손에서 구원을 해 주셨습니다. 아니 값을 주고 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값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의인이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의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은혜입니다
우리의 죄의 값을 갚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은혜로만 갚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를 주었을 때 그것을 은혜로 받는 성도에게만 이 빚이 갚아진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강한 자의 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야곱과 같이 구속을 해 주셨습니다.
로마서9:13절을 보겠습니다. (신 251쪽)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야곱은 사랑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그들이 낳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이 선택에 대해서 상당히 불쾌해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불쾌합니까?
자기가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 최소한 세상 사람보다는 낫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선택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기는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아주 열심히 하고 있고 또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그 모습을 볼 때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 지렁이입니다
그리고 다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데 그것을 아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해 주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라는 것을 알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위를 보는 사람은 자기의 행위를 보는 순간에 절대로 자기는 세상 사람에 비해 죽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문제가 교회 안에서 큰 걸림이 되고 있고 이 문제로 인하여 바른 진리에 갈 수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어떤 행위를 보인다 해도 나 역시 야곱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출애굽기3:1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구 85쪽)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조상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이 우리의 조상입니다
육적으로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우리의 조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육적으로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하던 이스라엘은 예수님께서 오셨지만 영접하지를 않았습니다.
왜 영접을 안 했습니까?
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 아니기 때문에 영접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도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나와서 자기가 부르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이 누구의 하나님인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다니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라고 부르니까 따라 부르고 있다면 그는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습니다.
조상
그 자손은 조상이 가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타고 나야 합니다. 조상과 다른 행실을 하고 있다면 그는 그 자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의 기모노를 입고 일본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따라 하고 있다면 누가 그를 보고 우리나라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자손은 조상이 했던 그대로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행위를 가르치고자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행위를 했고 이삭이 어떤 행위를 했고 또 야곱이 어떤 행위를 했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늘 강조를 드리지만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 사람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역사를 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 사람을 표본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는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주셨습니다. 믿음을 어떻게 주시는 가를 가르쳐 주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이삭은 약속에 의해서 태어났습니다. 그 약속이 무엇인가를 이삭을 통해서 배우게 하셨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또 야곱을 구속을 하셨습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을 죽을 수밖에 아니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야곱을 값으로 사시고 사랑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15절 새 변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한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바로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다.”
이것이 나의 영원한 이름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의 영원한 이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구의 자손이 되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가 대대로 기억해야 하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우리 육의 조상이 아니라 영의 조상인 이 세 사람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또 약속을 받아야 하고 또 구속이 되어서 값으로 사셔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입니다
이삭의 하나님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하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이름이 주고 있는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누구의 하나님인가를 바로 알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영적으로 그들의 자손이 되어야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교회에 나왔다고 다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자기 조상이 아브라함이 되어야 하고 또 이삭이 되어야 하고 또 야곱이 되어야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조상의 하나님의 이름을 영원히 부르는 성도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불러서 영혼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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