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거듭난자
요한복음 3:1-6절을 보겠습니다. (신 145쪽)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기독교는 세상 종교와 다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는 자기가 어떤 선한 일을 하거나, 그 주변 사람의 공으로 그들이 말하는 내세를 간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런 행위의 종교가 아니라 오직 거듭남으로 천국에 갈 수 있는 성도가 됩니다.
교회 안에 거듭남에 대해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나쁜 행실을 하다가 그 사람이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할 때 거듭났다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육체의 행위가 약간 좋아진 것이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거듭남이 아닙니다. 육체의 행위가 좋아진 것과 거듭남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 율법주의 사상이 만연을 하는 것입니다
행위가 달라진 것과 거듭남은 전혀 다릅니다.
이 거듭남에 대해서 잘 모르다 보니까 자기가 하고 있는 어떤 율법의 행위를 보고 마치 거듭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지 새로운 생명이 그 안에서 태어난 것이 절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비교하는 눈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세상에서는 술 담배를 하다가 예수를 믿고 그런 것을 안 하면 세상 사람들과 비교를 해서 거듭났다고 말을 합니다. 또 교회 안에 들어와서 그가 하는 행위를 보면 세상에서 살 때와 다른 삶을 살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고 거듭났다고 말 합니다 또한 죄를 안 짓고 어떤 행위를 잘하려고 노력을 하는 그를 보고 거듭났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들은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거듭남, 믿음, 회개, 거룩함, 중생, 구원, 이런 모든 것은 단 번에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단번에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구원관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단번에 주신 것입니다
행위가 좋아지는 것은 꾸준히 노력을 해서 좋아지지만 거듭나는 것은 우리에게서 단번이 일어나는 일회적인 사건입니다 거듭나고, 믿고, 회개하고, 구원을 받고 하는 것이 점차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시면 단번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물론 아는 것은 단번에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도 경험을 했겠지만 신앙생활을 수십 년간 했어도 너무도 몰랐던 것이 많이 있습니다. 단번에 거듭났을지라도 이렇게 모르게 살다가 어느 순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고 알게 됩니다. 비록 거듭났을지라도 성경을 아는 것은 점차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듭남이나 믿음이 점차적으로 된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알아가는 것이 그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듭남에 대해서 바로 가르치지를 않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율법주의 화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단번에 거듭나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거짓 선지자들 입장에서는 아주 많은 차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단번에 거듭나는 말씀을 가르치면 거짓선지자들에게 있어서는 여러 가지로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거듭남에 대해서 바로 가르치지를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단번에 거듭났다고 하면 그들을 더 이상 구속할 수 있는 어떤 명분도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 한번 거듭난 성도는 그의 행위가 타락을 하고 또 그를 보면 전혀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지라도 반드시 천국에 갑니다.
정확히 말씀을 드리면 아무 것도 안 해도 됩니다.
한 번 거듭난 사람은 설령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다 해도 그는 분명히 천국에 갑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서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해 주신 성도는 성령께서 감동을 해 주심으로 가능한 복음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이 세상 사람보다 더 선하고 의롭게 살려고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럴지라도 육신이 연약해서 어쩔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거듭남이란 문제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거듭남에 대해 잘못 생각함으로 복음과 반대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가 예수님에게 왔을 때는 단 한 가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은 자기 영혼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찾아 왔습니다.
바리세인은 율법에 정통하며 그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유대인의 관원은 그 당시 족보가 정확한 사람입니다 바리세인 중에 니고데모라고 하는 사람이 밤에 찾아와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예수님을 말하며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당신이 행하는 표적을 아무나 행할 수 없다고 예수님께 말을 합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동문서답을 하고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라고 대답을 하십니다.
니고데모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은 다른 답변같이 보입니다.
사실 니고데모는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를 알기 위해서 찾아 왔습니다. 니고데모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그 대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유대인의 관원이고 율법을 잘 지키며 모든 행사에 깨끗하게 살고 있지만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를 못 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구원에 대한 대답을 듣기 원하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수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거듭나는 것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거듭남에 대해서 오해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에 나오기 전에 불량하게 살던 사람이 교회에 출석하면서 술도 안 먹고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고 거듭난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또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면 저 사람은 아직 거듭나지 못해서 저렇게 한다고 말 합니다 거듭남이란 이런 육적인 상태의 모습을 보고 거듭났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에 나오면서 약간의 행위가 좋아지는 현상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그것은 육체의 행위가 조금 나아지는 것이지 사실 영의 거듭남은 아닙니다.
우리가 변화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변화의 사전적인 뜻은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이 바뀌어 달라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변화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모양이나 성질이 바뀐 것이 아니라 행위가 조금 좋아진 것입니다 좋아진 것과 성질이 바뀐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변화라는 단어가 다섯 번 나옵니다.
그런데 어느 사람이 행위가 좋아졌을 때 그가 율법을 잘 지켰을 때 변화라는 말씀을 사용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로 변화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마지막 때 우리가 변화 되는 부활의 모습을 말씀하실 때 변화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행위가 좋아진 것이지 그가 변화된 것이 아닙니다.
변화는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된 것이 변화입니다
육의 사람이 신령한 몸을 입고 하늘의 사람이 된 것을 변화라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있지만 아직은 변화 된 것은 아니라 다만 우리 안에 새로운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임재 해 있어 새로운 생명이 탄생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있다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가 공중으로 들임을 받아 그 영에다가 신령한 몸을 입었을 때 변화 되었다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행위가 조금 좋아진 것입니다
교회를 안 나오던 사람이 교회에 나오고 예배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 또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을 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 그가 변화된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의 성질이 변화된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이 신앙인의 모습으로 바뀐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듭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어느 한도 까지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목표로 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변화되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조금 나아진 것입니다 그렇게 행위가 조금 나아진 것과 거듭남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나뭇잎이 가을이 되어 빨갛게 단풍으로 바뀌었습니다.
거듭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이 다시 탄생되는 것을 거듭난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거듭남에 대해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은 빨갛게 물든 단풍을 보며 거듭났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빨갛게 물들었지만 그 단풍은 곧 떨어지고 맙니다. 그 단풍의 성질이 변해서 다른 것이 된 것이 아니라 나뭇잎의 색깔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겨울이 되어 떨어지는 고운 단풍을 보고 거듭났다고 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맞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거듭남은 다시는 떨어지지 않고 영원히 있을 것으로 변하는 것을 거듭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아무리 선해 졌다 해도 그 역시도 죽습니다.
그렇게 죽는 생명은 거듭났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거듭난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는 그런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그 생명이 죽는다면 그것은 거듭난 것이 아니라 잠시 순간적으로 그 색을 곱게 나타내고 있을 뿐입니다 그 색이 아무리 고와도 떨어지는 단풍과 같이 흙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한문풀이로 쓴 것이지만 순 우리말로는 두 번 난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 낳는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 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 갈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두 번 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거듭났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 니고데모가 4절에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수 있삽나이까 라고 묻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번은 날수 있지만 늙어서 어떻게 큰 몸이 다시 날수 있습니까? 라고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거듭나라는 말씀은 두 번 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두 번 낳는 것과 율법의 행위가 조금 나아지는 것과는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낳는 것은 엄마 배속에서 태아가 탄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나아지는 것은 아이가 자라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조금 나아지는 것을 보면서 거듭났다 또 그렇게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를 하는데 그것은 결코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반드시 낳아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두 번 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니까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은 정확한 니고데모의 답변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정확히 이해를 하고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오해를 하다가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만약 여기서 니고데모가 어떻게 모태에 들어가서 날 수 있습니까? 질문을 하지 않고 예, 예수님의 말씀대로 거듭나려고 노력을 하면서 더욱 선하게 살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돌아갔다면 니고데모는 영생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 나라고 말씀을 하는데 자기는 예, 선하고 의롭게 살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대답을 한다면 그는 유머에 나오는 사오정과 같은 사람입니다 아니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어서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노력을 하며 헌신을 했지만 천국에 가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교회 밖에 있는 사람입니까? 성경을 바로 안다면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는 세상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에 들어와서 예수를 믿는다고 평생을 신앙생활을 하다가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보고 불쌍하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받은 벌과 교회 안에 들어와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받을 벌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더 큰 벌을 받느냐면 교회 안에 있다가 구원을 못 받는 사람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는 자기만 구원을 못 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영혼까지도 구원 받는 것을 방해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 저는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구원을 못 받을 것 같으면 차라리 세상에서 예수 안 믿고 사는 것이 좋다고 말 합니다. 이 아카데미와 복음과 율법을 통해서 그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구원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하지만 교회에 나와서 구원을 못 받는다면 그것은 가장 큰 저주라는 것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니고데모가 한번은 아기로 날수 있지만 늙어서 어떻게 엄마 배속에 들어갔다가 날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대답 합니다
5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먼저 어떤 것이 물로 낳는 것입니까? 말씀에 물로 낳고 성령으로 낳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쉽게 표현해서 물 플러스 성령으로 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따로따로가 아닌 동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바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구원은 단회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구원을 단회적인 사건으로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모두 이단적인 사상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율법주의는 구원을 단 회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구원이 단 회적이 되면 자기들이 교인들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물을 말씀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과 말씀을 동일한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로 씻는 것과 같이 말씀으로 씻는다는 말씀입니다 물은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큰 음녀를 보면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물은 진리의 말씀이 아니라 온갖 세상적인 말로 진리를 희석시키는 말입니다
바른 말씀이어야 깨끗하게 될 수 있습니다.
어느 말씀이어야 깨끗하게 되는 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냥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는다 해서 깨끗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5:3절을 보겠습니다. (신 174쪽)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예수님께서 일러 준 말씀이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깨끗해 졌다고 하십니다. 성도들이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이 세상 말로 내가 깨끗해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반드시 예수님께서 일러 준 말이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예화가 예수님께서 일러 준 말씀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세상 정치 이야기를 하고 또 심지어는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유머를 찾아다니는 목사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에 있었던 유명한 목사가 행한 일들의 말이나 저명한 사람들의 명언 등을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은 절대로 예수님께서 일러준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단의 계략일 뿐입니다.
제 설교가 지루합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바울의 강론이 길어지고 얼마나 지루했으면 졸다가 떨어져 죽고 맙니다. 삼층이나 되는 누에게 떨어져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만 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얼마나 지루하고 졸렸겠습니까? 하지만 그럴지라도 설령 졸려서 죽는 한이 있다 해도 사도 바울은 세상의 말로 재미있게 하지를 않았고 오직 예수만 전했습니다. 지금 교회가 어떻습니까? 목사들이 예화를 찾아다니고 있고 또 유머를 찾아다니고 있고 또 이 세상 이야기를 찾아다니면서 교인들을 즐겁게 해 주려고 합니다.
망 합니다
그런 말을 듣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말에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자기가 무엇을 듣고 있는지 조차 감각이 없어져 결국에는 세상과 같이 되고 만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 말을 듣고 은혜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으로는 여러분을 깨끗하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망으로 끌고 내려가는 아주 더러운 말이라는 것을 바로 분별을 해야 합니다. 내가 물로 깨끗해 져서 거듭나려면 반드시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말씀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불행하게도 예수님의 말씀이 사라졌습니다.
아니 기복주의에 만연한 작금의 현실에서 교인들은 기복을 바라고 그런 사상이 목사들로 하여금 더욱 세상적인 이야기를 하게끔 부채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듣고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은혜 받았다고 말 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반드시 예수님께서 일러 준 말씀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고 십자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말을 듣고 있는 가를 냉정하게 분별을 하시고 나를 깨끗하게 해서 거듭나려면 반드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분별을 해서 듣는 성령의 감동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물로 거듭났다, 말씀으로 거듭났다는 말씀은 말씀을 듣고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거듭난다는 말씀입니다 물과 성령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거듭날 수 없습니다. 말씀만 들어서도 안 되고 그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야지만 거듭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23절을 보겠습니다. (신 378쪽)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베드로전서는 직접적으로 말씀 합니다
썩지 아니할 씨로 하나님의 살아있고 살아있는 말씀으로 거듭났다고 말씀 합니다 말씀으로 거듭났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럼 말씀이 성령입니까?
말씀은 말씀이고 성령은 성령입니다 말씀은 성령이 아닙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반드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그 말씀을 믿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칼뱅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까?
웨슬레에 대해서 그리고 로이드 존슨에 대해서 그리고 록펠러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까? 그러나 지금 설교를 들어 보면 유명한 목사들의 말이 예수님의 말씀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로는 절대 거듭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성도가 거듭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믿음의 선진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을 가르치는 말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행위를 가르치는 말이기 때문에 오히려 복음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말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은 절대로 거듭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나는 나고 사도 바울은 사도 바울입니다. 내가 사도 바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거듭날 수는 있어도 사도 바울의 행위를 따라 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이라고 하면 하나님 말씀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율법을 전하는 것도 있고 또한 성도의 삶에 대한 말씀도 있고 또 어떤 규례에 대한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거듭날 수 있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 곧 복음입니다
베드로전서 1:24-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78쪽)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 이니라”
너희에게 전한 말씀이 곧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는 것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복음이 심어지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 이 복음의 말씀은 예수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가 속죄함을 받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나의 부분적인 죄가 아니라 내 평생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없어졌다고 믿는 것이 복음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는 말씀은 육과 성령으로 나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니 라고 말씀하신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사람 첫 번째는 육에서 났습니다. 아담이 육을 가졌습니다. 육에서 난 사람이 죄를 하나도 안지면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죄를 하나도 안 져도 죄인이라고 성경은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의인에게서 나면 죄를 져도 의인입니까?
죄인에게서 나면 죄를 안 져도 죄인이라는 것을 믿는데 의인에게서 나면 죄를 져도 의인이라는 것은 안 믿어집니다. 먼저 왜 죄인에게서 나면 죄를 안 져도 죄인인가를 보겠습니다.
이사야 1:4절을 보겠습니다. (구 968쪽))
“슬프다 범죄 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슬프다 범죄 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종자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안 져도 죄인인 것입니다 종자가 죄인이기 때문에 이 종자로 나면 죄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깨끗하게 살면 죄가 없어지는 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깨끗하게 한다 해도 종자가 죄인의 종자이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우리는 죄를 안 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데 죄를 짓는 것과 자기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의롭게 사는 것을 상쇄하려고 합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고 의롭게 사는 것은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의롭게 살았다 해도 내가 진 죄를 없앨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개를 잘 훈련시키면 슈퍼에 가서 물건도 사오고 사람도 구조하고 주인이 할일을 많이 도와줍니다. 그 개가 자기 집에 심부름 못하는 아들보다 날수가 있습니까? 어린 아이들보다 개가 났다고 해서 개가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개는 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종자가 개이기 때문입니다 종자가 그렇기 때문에 어떤 훈련을 받아서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종자가 마찬 가지이면 종자 개량을 해야 합니다 집에서 토마토를 심어서 정성스럽게 가꾸고 있습니다. 얼마 지난 후에 밭에 나가보니 밭의 토마토는 크고 굵게 열립니다. 그런데 자기 집에 것은 아주 자그만하게 열립니다.
그래서 걸음도 주어보고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지만 역시 자기 집에 것은 자그마한 것입니다 자기 집의 토마토는 방울토마토였습니다. 종자가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정성을 들여 봐도 그런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큰 토마토를 얻으려면 반드시 종자 개량을 해서 심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말씀 하시고 두 번 나야 한다고 하신 것은 종자가 개량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성경적인 속담 하나가 콩 심은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입니다 씨가 다른 종자를 심어야 합니다.
예수님 탄생에 대해서 우리가 말할 때 예수님은 처녀에게서 났다고 말 합니다 처녀에게서 나는 중요한 뜻은 아담은 행악의 종자입니다 예수님은 의 의종자입니다 의의 종자는 의를 낳습니다. 이것이 처녀에게서 아들을 낳는 것입니다
처녀가 아무리 깨끗해도 악의 종자의 씨가 들어가면 악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밭이 씨를 종자 개량할 수 없습니다. 아담의 씨는 죄악의 종자요 예수님의 씨는 하늘에서 내려온 의의 씨 입니다 의의 종자를 심었더니 의가 탄생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종자로 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 말씀은 씨를 안 받겠다는 중요한 뜻의 말씀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가 죄가 없다고 말 합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무염시태라고 합니다. 죄 없는 상태에서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주장입니다
마리아가 죄 없는 상태에서 예수님을 잉태하여 예수님이 죄가 없다고 말 합니다 그것은 정신 나간 사람들의 말과 같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깨끗한 개가 새끼나면 사람 된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개는 개를 날 수밖에 없습니다. 마리아도 역시 우리와 같이 행악의 종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죄가 없는 상태에서 잉태하여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씨가 죄가 없기 때문에 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많은 의심을 합니다. 마리아가 죄가 있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죄가 없을까라는 의심을 합니다. 밭은 씨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가 없습니다. 씨가 잉태 되서 자라게는 할 수 있어도 밭이 씨를 종자 개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밭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 밭에 팥을 심었는데 콩이 날 수 있습니까? 콩을 자라게는 할 수 있어도 그 종자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은 밭에는 없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해서 육체적으로 자라게는 할 수 있어도 예수님의 종자를 변하게 할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밭도 종자를 개량할 수는 없습니다.
종자가 금값보다 비싸다고 합니다.
좋은 종자는 금1kg 보다 더 비싸게 팔리고 있는 것을 얼마 전에 뉴스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만약 밭이 그 종자를 좋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비싼 종자를 구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밭은 종자를 자라게 할 뿐이지 좋은 종자로 개량할 수는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47절을 보겠습니다. (신 284쪽)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종자가 다릅니다.
인생은 모두가 땅에서 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나셨다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나셨지만 다만 땅의 몸을 잠시 빌렸을 뿐입니다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하늘에서 나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나셨지만 우리와 같이 모든 고난에 참여를 하시기 위해, 육체를 입고 오시기 위해서 마리아의 몸을 빌렸을 뿐입니다 마리아는 땅에 불과 합니다 땅이 그 종자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종자는 이미 결정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만 땅은 그 종자를 자라게 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의의 종자이기 때문에 의로 태어난 것입니다
죄의 종자에서 나면 죄인이 되고 의 의 종자에서 나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죄인의 종자에서 나면 죄가 없어도 죄인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 합니다
말씀으로 거듭나는 새로운 영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고 우리 육신이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의 종자는 의로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죄인에게서 한번 낳고 이것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또 한 번 나야 천국에 들어 갈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거듭나야 천국갈수 있다는 말씀은 죄인에게서 한번 낳고 또 다시 의인에게서 나야 거듭난 사람으로 천국에 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인에게서 낳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과 같이 의의 종자로 다시 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고 우리는 땅에서 났지만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새로운 종자를 받아들여서 두 번 난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의의 종자를 받아들여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71쪽)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낳으려면 예수님께서 우리 죄악을 담당하시고 우리의 모든 더러운 것을 없애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의인에게서 나면 죄를 져도 의인이 된다는 하는 말이 안 믿어지는데 왜 의인에게서 난 사람이 죄를 져도 의인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의인에게서 난 사람의 죄를 십자가로 값을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죄를 없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 예수를 받아 들여야만 합니다.
받아들인 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처녀총각이 손잡고 다닌다고 애를 날수 있습니까? 죽을 때 까지 손잡고 다녀도 아들을 낳을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는 남편 되시는 예수님 손만 잡고 다니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손을 잡아서는 안 되고 반드시 영접을 해야 합니다.
손을 잡는 다는 것은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영접하는 것은 그와 하나가 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손잡은 사람은 많아도 그와 하나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요한복음 1:12절을 보겠습니다. (신 142쪽)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하는 자에게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 합니다
처녀가 아무리 남자 손잡고 다녀도 아들을 못 낳습니다. 하지만 영접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과 손잡고 다니면 못 낳습니다. 아들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영접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죄를 용서 하셨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내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으면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영접하는 것은 그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그 이름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니 안다고 해도 그것을 내 마음에서 받아들이지를 못 합니다
마태복음 1:21절을 보겠습니다. (신 1쪽)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죄에서 구원 하실 자로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죄에서 구원할 자로 받아 들여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로 믿어야 합니다. 내가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니라 나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내 죄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죄를 안 지려고 노력은 많이 해도 내 죄에서 구원하실 자로 완전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예수를 영접해서 난 것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13절을 보겠습니다. (신 142쪽)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닙니다.
첫 번째는 사람의 뜻으로 육정으로 나았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 아들이 되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낳은 자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낳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 복음의 말씀을 100%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영접했을 때 거듭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단번에 거듭난다고 믿는 것은 창조입니다 점차적으로 난다고 하는 것은 진화론적인 주장입니다 점차적으로 낳는 것은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번에 거듭나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구원 받았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교만하다고 합니다.
매일 죄를 지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하면서 교만하다고 말 합니다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교만은 같은 것처럼 보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이 믿음이고 교만은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것은 절대로 교만이 아닙니다. 자신이 변화되어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내가 다됐다고 주장하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거듭난 성경적 사실을 찾아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30-34절을 보겠습니다. (신 87쪽)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전하여 주는 말을 마리아는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라고 말하면서 천사의 전해주는 말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없이 어떻게 잉태할 수 있냐고 반문 합니다 사실 이 말을 그냥 믿는 다는 것이 더 이상할 것입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말하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천사가 나타나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전하니까 남자가 없이 어떻게 아이를 잉태 합니까 라고 말하면서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믿어지지 않을 때 그 배속에는 예수가 잉태되지 않았습니다. 안 믿는 마리아에게 지금 믿음을 넣어 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35-36절을 보겠습니다. (신 87쪽)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남자 없이 어떻게 아이를 잉태 합니까 라는 반문에 네 친척 엘리사벳의 소문을 못 들었느냐 할머니가 아이를 잉태한 것 모르냐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천사의 전해주는 말을 듣고 할머니가 아이를 잉태한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소문을 알고 있었지만 마리아는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전해주는 말을 안 믿으니까 네 친척 엘리사벳의 소문을 모르냐고 말하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아이를 잉태한다면 처녀도 아이를 잉태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진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마리아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믿음을 주고 있습니다. 천사가 전해주는 말을 믿을 수 있게 미리 있었던 일을 예로 들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이 믿어지는 사건이 내 안에 있을 때 거듭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1:36-38절을 보겠습니다. (신 87쪽)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천사가 전해주던 말이 안 믿어지던 마리아가 말씀을 듣고 믿어 졌습니다.
마리아가 믿어 질 때 예수의 생명이 잉태 되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어질 때 마리아 육신의 생명과 또 다른 생명이 잉태 되었습니다 생명이 둘이 되었습니다. 하나는 육신의 생명이요 다른 하나는 영의 생명입니다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육신의 생명을 똑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의 말씀이 믿어지면 그 순간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새로운 영이 탄생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가 탄생되는 것 같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온전히 믿어질 때 내 안에 성령이 임재를 하는 것입니다 새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입니다
한번은 육체로 낳고 다시 한 번 영으로 낳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영이 탄생된 것을 가르쳐서 거듭남이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두 번 났다는 말씀입니다 한번은 육체의 몸으로 낳고 다시 한 번은 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두 번 낳은 것이 느껴지거나 만져지거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믿기가 힘이 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오해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을 보고 새것이 된 줄 알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니까 새것이 된다고 했다고 말하면서 지금 새것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 합니다 우리 육신의 겉모습은 새것이 안 됩니다
우리 속에 새로운 영이 탄생된 것을 가르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겉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마리아의 나이가 들어가지만 속의 예수는 점점 커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육신의 모습은 점점 죄로 인하여 죽어가고 있지만 내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으로 인하여 날마다 새롭게 되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라서 예수가 탄생됐을 때 생명이 둘로 나누어 졌습니다.
마리아는 예수가 탄생되었어도 역시 죄인입니다 새로 탄생된 예수만 의인입니다 여러분의 육신은 죽을 때 까지 죄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속에 탄생된 새로운 피조물은 나면서부터 의인입니다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된 것은 새롭게 탄생된 피조물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겉이 의롭게 되는 줄 알고 노력을 합니다.
많은 노력을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겉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에 따라 약간 모습이 변할 수 있지만 인생의 근본은 바뀌지 않습니다. 바뀌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죽는 것입니다 우리 겉이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 되어 그것이 날로 새롭게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6-8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바람이 오고 가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난사람은 난지 안 난지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겉으로 보아서는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는 행위로는 도무지 분별이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습니까?
이 바람과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도 전혀 그가 성령으로 난 사람인지 아닌지를 겉을 보고는 알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겉을 보고 거듭난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물론 성령으로 난 사람은 한 성령 안에서 서로를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이 볼 때는 그가 성령으로 난 사람인지 아닌지를 전혀 분별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는 거듭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육체는 거듭난 사람이나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나 역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전해주는 말을 마리아가 처음에는 믿지를 못 했습니다
조금 후에 전하는 말을 듣고 받아들입니다. 전하여주는 말이 믿어 졌을 때 예수가 탄생된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 조금 전의 마리아나 조금 후의 마리아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겉의 모습은 같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배속에 예수가 잉태 되었다고 해서 그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가 원래 착한 사람이라면 착할 것이고 마리아가 착하지 못하다면 예수를 가졌어도 착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착하냐. 안 착하냐가 그 속에 예수가 있냐. 없냐를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듭난 사람은 겉이 다르다고 말 합니다
물론 조금 달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속담에 성경적인 속담이 있습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의 겉모습은 타고난 대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이치에 따라 조금 자기 처신을 잘하는 것이지 그가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거듭나지 못해서 그렇다고 말 합니다 분명한 것은 거듭난 사람도 문제를 일으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거듭난 것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새로운 피조물이 탄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하신 말씀은 육으로 난 것은 아무리 잘해 봐도 육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영으로 난 것은 아무리 못해도 영입니다
로마서 8:9절을 보겠습니다. (신 249쪽)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는 육신에 있지 아니한다고 말씀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세상일을 할지라도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이 아무리 교회 일을 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육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나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위가 조금 나아지는 것을 거듭나는 것으로 오해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품성이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고 주장 합니다 이 세상에서 마음이 얼마나 고쳐지고 깨끗해진다고 그것을 가지고 천국에 갈수 있겠습니까?
아마 그 마음들을 고쳐 가지고 천국 간다면 그곳은 결코 천국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품성을 고쳐 가지고 천국에 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개도 훈련시키면 사람 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안 되기 때문에 거듭나라는 것입니다 두 번 낳으라는 말씀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는 말씀은, 육으로 난 것은 어떤 변화를 가져와도 육이라는 말씀입니다 행위가 조금 나아져서 천국갈수 있다는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기가 잘해서 천국 간다고 하는 사람은 불교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행위를 좋게 해서, 득도해서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거듭나서 천국 가는 종교입니다
거듭남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 육체의 행위가 좋아 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입니다 마리아가 자신을 아무리 깨끗하고 정직하게 한다 해도 그 배속에 예수의 생명이 잉태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일방적으로 하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믿기만 한 것입니다 우리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듭나야 천국갈수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으려 하기 보다는 자기 행위를 좋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9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니고데모가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라는 이 말은 나도 좀 그렇게 해 주세요 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지금 간절하게 예수님께 구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14-15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거듭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불 뱀에게 물려 죽어가고 있을 때 장대위에 달아맨 뱀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을 것인데 그것을 바라보면 산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거듭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3:16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심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관원이며 바리새인으로 율법을 철저하게 잘 지켜서 의롭게 되어서 천국 갈 줄 알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자기 육체가 의롭게 되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는 예수를 믿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는 누구든지 구별이 없이 믿는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잘난 자나 못난 자나 모두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처럼은 어떤 사람이라도 차별이 없이 은혜로 천국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마리아도 강도짓을 하다가 십자가형을 당하는 한편 강도도 믿음으로 천국에 가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죄의 값을 지불하고 은혜로 구원하신 것이 이처럼 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요한복음 3:17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인 니고데모는 자기가 합격이 될지를 물으려고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거듭난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 다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 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유구무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변명도 할 수가 없습니다. 심판을 안 받고 그냥 보내주니까 갈수 있지 심판 받아서 골라서 천국 간다면 예수 믿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냥 세상 사람들과 같이 편하게 사십시오. 어차피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니까요.
우리는 종자가 죄악의 종자이기 때문에 죽었다 살아나도 안 됩니다
거듭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심판을 면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심판을 받게 된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니고데모는 믿었습니다.
믿는 순간 니고데모는 거듭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장사 지냈습니다. 제자들은 아직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도망갔고 거듭난 사람은 담대하게 장사를 지냈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두렵습니다.
죽으면 지옥 갈지 천국 갈지 알지 못하니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 간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기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거듭남의 체험을 가지고 확신이 있기 때문에 사자 밥이 되는 끔찍한 상황에서도 당당히 죽을 수가 있었습니다.
왜 못 죽 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조금 더 잘살아서 합격되고 죽으려고 하니까 못 죽 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천국가기에 담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받아들이십니까? 그것을 믿으면 여러분은 의 의 종자가 되었습니다.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점점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육체가 사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성도는 사실 내가 무엇을 조금 더 잘하고 못하고 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바로 믿을 수 있고 진리 안에 서 있을까를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 의 종자는 육신이 조금 잘못해도 새롭게 탄생된 영은 변함없이 의인인 것입니다 이 거듭남은 육체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새롭게 탄생된 영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생명만 거룩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거룩하지 못하고 마리아속에 있는 예수만 거룩한 것입니다
우리 속에 탄생된 생명은 죽으면 분리 됩니다
그 거룩한 영에다 신령한 몸으로 옷 입혀서 천국으로 인도 하시는 것입니다 거룩하지 못한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47-49절을 보겠습니다. (신 284쪽)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우리는 지금 흙에 속한 형상을 입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천국가면 하늘에 속한 형상 신령한 몸으로 완전히 다른 형상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육체는 죄의 종자입니다 거듭난 새로운 영은 의 의 종자입니다
우리가 율법의 의로 의롭게 되는 것이 거듭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하늘로부터 온 새로운 영이 탄생되는 것이 거듭나는 것이라는 걸 알아야합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가지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가 성도입니다
성도라는 말을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교회에 처음 출석하면 성도이고 시간에 따라 직분을 주는 것으로 아시면 안 됩니다 성도라 함은 교회 출석과는 무관하고 오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이름이 성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난사람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난자는 안 됩니다
소가 새끼를 나면 소가 태어납니다. 개가 새끼를 나면 개가 태어납니다. 사람이 아이를 나면 사람이 태어납니다. 하나님이 나면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나면 신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35-36절을 보겠습니다. (신 164쪽)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신이 됩니다.
여러분도 신이 되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로부터 낳았으니까 신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보이는 우리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 새롭게 탄생된 영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새롭게 탄생 되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낳으면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확실하게 말씀으로 거듭났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사람은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은혜를 받은 성도는 내가 받은 복음의 은혜를 이웃에게 전하려면 선하고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제사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욱 의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도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우리는 더욱 헌신해야 합니다. 이제 이후로는 확신을 가지시고 선하고 의롭게 살아서 복음을 먼저 안자로서 그 복음이 다른 사람에게 가려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초등학문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율법이 아니고는 자기가 어떻게 의롭게 살아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은혜 안에서 자유 함을 누리고 있는 성도는 교회 안에서 의롭다 하는 말을 듣기 보다는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의롭다 하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났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더욱더 이 세상에서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 그러냐면 내가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내 이웃에게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영이 있는 성도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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