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윤주만목사 2019. 2. 19. 06:45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빌립보서 3:1-6절을 보겠습니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율법의 의

이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은 그냥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고 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왜 자기를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지 이 시대는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흠이 없습니까?

정말 사도 바울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습니까? 몰론 문자적으로는 그렇게 흠이 없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 당시에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은 다 문자적으로는 흠이 없었습니다. 그런 흠 없는 율법의 의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고 있는가를 이 시대는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문자적으로 아무리 흠이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 해도 그것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오히려 복음을 아는데 있어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율법과 복음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제가 그림자로서의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율법을 통해서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문자는 안 그렇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수많은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모양이 있는 이상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면 제가 이렇게까지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도 좋은 것이 좋다고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 시대에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율법은 생명입니다.

사도 바울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것을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으면 그것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는데 왜 배설물과 같이 버렸습니까? 그것은 문자적으로 그렇게 했을지라도 율법을 바로 알고 나니까 자기 역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니 율법의 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복음을 깨닫고 난 이후에 사도 바울은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배설물과 같이 버렸습니다. 그것을 버린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착각을 합니다.

아니 율법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더 맞습니다. 내가 율법을 잘 지키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법이 있습니다. 그 법을 많이 지키면 의롭다 하고 있고 적게 지키고 죄를 범하는 것이 많으면 죄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담은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따 먹고 죽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는 단 하나의 율법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 하나의 율법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전체 율법을 단 하나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아담이 단 하나의 율법을 범해서 죽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담은 단 하나의 율법을 범한 것이 아닐가 율법 전체를 범해서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거의 모든 사람은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 선악과를 하나 따 먹은 것으로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이 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가 아닌 그중에 단 한 가지를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다면 그것을 지켰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도적질 하지 말라는 그 하나의 율법을 아담에게 말씀을 하셨어도 아담은 그 율법을 범했을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담에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따 먹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예표입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어본 아담이 어떻게 죄를 지었는가를 가르쳐 주고자 하는 예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율법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문자적으로는 우리가 어느 정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적으로 보았을 때 율법을 지켰다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자기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하면서 그것을 배설물로 버렸다고 말씀합니까?

 

문자적으로 흠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볼 때 자기가 문자적으로 지킨 흠 없는 율법의 의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기가 살인한 자이고 또 자기가 도적질을 한 자이고 또 자기가 우상을 섬긴 자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지킨 그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버릴 수 있습니다.

 

율법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 문자적인 의미를 모르면 자기가 의롭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의미를 알고 나서 자기가 살인한 자요 간음한 자요 도적질을 한 자라는 것을 알고 나면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릅니다.

그리고 역시 이 시대도 자기들이 율법의 의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 시대도 자기들이 율법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도가 자기가 율법을 잘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모든 사도들이 한 결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의 의가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 누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말씀하는 것은 자기가 율법을 잘 지켰다는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으로서 그렇게 살았지만 이제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버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의 의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난 의입니다. 신약성경에 와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두 가지 의가 서로 싸우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3:21절을 보면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흠 없는 율법의 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이 두가의 의는 생명을 얻는 의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다 지켰을 때 생명을 얻을 수 있고 또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를 믿음으로 그것이 내 의가 되어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의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율법의 의입니다.

그리고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의가 서로 공전할 수 있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둘 다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의입니다. 그러나 한 의는 이제까지 이 세상의 있었던 어느 사람도 생명을 얻지 못 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이 의는 내가 무엇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의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두 가지의 의가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는 방법입니다.

흠 없는 율법의 의도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았다면 그는 에덴에서 영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속한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해서 정녕 죽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생명을 얻는 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이스라엘에게 중보자의 손을 빌어서 반포하신 율법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왜 로마서에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말씀을 하는가 하면 이 의가 있어야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의로는 구원을 받을 사람이 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 해도 그 의로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누가 지킵니까?

율법은 처음부터 사람이 지킬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율법을 반포하신 것은 그것을 통해서 죄가 더하게 하려고 하셨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율법을 완성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그것을 주님이 오셔서 다 이루셨습니다.

 

성도는 이 의를 믿습니다.

내가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 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를 내 것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이 의가 없이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비록 문자적으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있는 사도바울이라고 해도 생명을 얻기 위해서 그 의를 배설물과 같이 버렸습니다.

 

이 의를 알아야 기뻐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알고 이 의를 알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율법에 가입을 해서 내가 모든 율법을 범한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입니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의를 주셨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모두가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에게 다른 한 의를 주셔서 내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모르다 보니까 자기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도 모르고 기뻐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내가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쓰는 것이 나에게는 번거롭지도 않고, 여러분에게는 안전합니다.”

 

종말로

초대 교회는 주님이 빨리 오시기를 바랐습니다. 당시에 성도들이 순교를 당하다 보니까 성경에서는 늘 종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너희가 면류관을 받을 것이라는 격려의 말씀을 많이 한 것을 보게 됩니다.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기뻐하라고 하는가 하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믿음으로 그때에 너희가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릴 것을 믿음으로 기뻐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순교를 당하면서도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천국에 두었기 때문에 비록 순교를 당하는 제물이 될 지라도 기뻐했습니다.

 

천국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천국의 비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성도만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비록 자기 앞에 닥친 환경은 너무도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럴지라도 주님께서 오셔서 자기들을 영접해 주시 것이라는 그 믿음이 있어서 기뻐 할 수 있었습니다.

 

기뻐하라

육의 일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가라지는 육의 일을 보고 기뻐하고 있지만 성도는 영의 일을 믿음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가라지들은 자기들의 교회를 보고 기뻐하고 또 전도와 선교를 하는 것을 기뻐하고 있고 많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면서 자기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영의 성도입니다.

성도는 영의 일로만 기뻐하지 육의 일로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육의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교의 제물이 될지라도 그들은 영의 일을 믿으면서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는 자기들의 육적인 일을 보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육적인 일을 보면서 너무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오직 예수입니다.

예수를 전해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을 받게 하시 위해서 자기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이 예수가 없다면 우리 성도는 이 세상에서 도무지 기뻐할 수 없습니다. 성도는 고아고 과부고 나그네입니다 그리고 가난하여 거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무엇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까?

사실 초대 교회의 많은 성도들은 종들이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종이 아니라 주인의 물건과 같은 종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너무도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은 이 복음을 믿었으면 자기 생명을 잃는 순교의 제물이 되면서도 전혀 슬퍼하지 않고 도리어 기뻐했습니다.

 

겉은 말을 되풀이해서 씁니다.

물론 그것이 사람의 일로는 번거롭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이 말씀을 빌립보서를 통해서 계속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전혀 번거롭지도 않고 너희가 구원을 얻는다면 그것으로 감사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묻습니다.

왜 율법에 대해서 그렇게 같은 말을 쓰느냐고 묻습니다. 율법 말고는 할 말이 없느냐고 묻습니다. 과연 그 사람이 복음을 알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방해가 되는가 하면 그 영혼이 사망을 당하기 때문에 강조를 하고 또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강조를 해도 그리스도편지와 복음과 율법을 보고도 율법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반복을 해서 말씀을 전해도 그들에게는 그저 지식으로만 그치고 있습니다. 저도 율법에 대해서 그만 쓰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율법이 생명과 연결이 되기 때문에 쓰고 또 쓰면서 한 사람이라도 율법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것이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에서 예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의 행위를 보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자기들을 진노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안전하게 하고 있는데도 율법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잠언 18:10절을 보면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여화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고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있습니다. 바로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가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쓰고 또 씁니다.

반복해서 쓰는 것은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안전함을 얻게 하기 위해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가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주지를 못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율법을 의지하고 있고 그렇게 자기 육체로 지키는 율법의 의를 보면서 안전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름이 너희를 안전하게 지켜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구원에 대해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아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저 남들이 하는 신앙생활을 따라 하지 말고 내 영혼이 안전한가를 늘 생각하는 성도가 되기기를 바랍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시편22:16절을 보면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이 개들이 누구입니까?

성경에서 이들을 율법주의라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개들이 나사로의 헌데를 핥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개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다 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유를 잘 알아야 합니다.

누구를 개라고 하는지를 성경을 통해서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런 의미를 모르다 보니까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주 담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개들을 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개가 누군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가난한 자의 상처를 보고 정죄하는 그 사람들입니다.

 

단 한 가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개입니다. 그 율법이 거지 같이 가난한 자를 정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개가 누군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개들을 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사야 1:4절을 보면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을 행악의 종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행악의 종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는 자가 있는 가 살펴본즉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아니 선을 행하려고 하는 자체가 행악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선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선을 행하는 일입니다, 그 외에 모든 종교적인 행위는 다 행악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행악 자들을 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모두가 행악 자가 되어서 누구를 삼가고 말 것이 없습니다.

 

행악의 종자입니다.

그 종자가 선을 자기가 행하려고 하는 것이 행악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선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그것이 선으로 보기기 때문에 사람들은 행악 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씀을 보고 자기들은 행악 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안에 있지 않는 모든 사람은 그가 아무리 교회에 나왔다 해도 행악자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6:13절을 보면

할례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손할례당을 삼가라고 말씀합니다.

초대 교회에 유대인들이 들어오면서 그들이 이방인에게 할례를 하라고 시켰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가 할례를 행했기 때문에 할례를 해야지 하나님의 백성이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왜 할례를 받게 했습니까?

 

육체로 자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비단 할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자기 육체로 표징을 삼는 모든 것이 다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서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이렇게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하는 행위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특히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십일조입니다. 그것으로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례와 같이 표징으로 삼는 그 사람들이 할례당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을 삼가라고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실제 할례는 받지 않고 있지만 자기 육체로 모양을 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은사를 통해서 육체의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무엇입니까?

육체의 모양입니다, 그렇게 육체를 따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삼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오직 주 안에서 기뻐하고 있고 그것은 영의 일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들을 믿기 때문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에는 삼가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번역에서는 조심하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정말 개들을 그리고 행악하는 자들을 그리고 손할례당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갈라디아에서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을 가지고 들어오면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너무도 좋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며, 육신을 의지하지 않는 우리들이야말로, 참으로 할례 받은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종교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자기들의 육체로 예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예배입니다.

그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하는 예배입니까? 그것은 종교적인 예배에 불과합니다. 거기에는 얼마나 많은 율법이 들어가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배로 인하여 율법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런 예배는 종교적인 예배지 주님께서 말씀하신 신령과 진정으로 하는 예배가 아닙니다.

 

갈라디아서6:14절을 보면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오직 예수입니다,

성도는 예수만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의 육체의 행위를 자랑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성도의 예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 드려지고 있는 예배를 보시기 바랍니다. 수많은 예화들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것이 다 육체를 자랑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입니다

성도는 예수만 전해야 합니다, 예수를 반대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행위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개들이 되어 있고 행악하는 자가 되어 있고 손할례당이 되어 있으면서도 그저 예수를 믿는다는 그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다 용납이 되고 있습니다.

 

성도는 육체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왜 신뢰하지 않는가를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려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말로만 죽은 자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을 지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죽은 자가 아닙니다.

 

죽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죽은 자가 자기 육체를 자랑합니까? 그러나 이 시대는 죽었다고 하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내는 십일조를 자랑하고 있고 또 자기가 지키고 있는 주일을 자랑하고 있고 또 헌금을 자항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는 모든 행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죽었습니다.

지식으로만 죽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죽은 자가 무슨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죽은 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살아 있기 때문에 십일조를 하고 있고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하는 가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그는 정말로 죽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형과 진정으로 예배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하지 않습니다. 내가 한 그 어떤 행위도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신뢰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성도가 할례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는 이미 죽은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기야, 나는 육신에도 신뢰를 둘 만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신에 신뢰를 둘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합니다.”

 

육체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복음이 전파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자기 육체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이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자기 육체를 신뢰하느냐 나도 내 육체를 신뢰할 만한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신뢰하는 영의 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 자기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너희가 육체를 신뢰하느냐 나도 신뢰할 만한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신뢰합니까?

개들이 신뢰를 하고 있습니다, 행악하는 자들이 자기 육체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또 손할례당이 자기 육체의 난 할례의 표징을 보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신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 육체의 모습을 보고 신뢰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육체를 신뢰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신뢰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어떤 행위들을 보면서 믿음이 있는 성도라고 스스로를 신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신뢰를 하고 있는가 하면 자기들이 육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보면서 신뢰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죽은 자입니다.

내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 육체를 절제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자기들이 다니고 있는 기독교라는 종교에서의 신앙생활을 보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신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입니까?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입니다, 그는 정통 이스라엘의 민족이었습니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어느 누구도 시비를 걸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교회 안에서 자기를 신뢰하는 자들이 나오니까 사도 바울이 그들을 향해서 자기 육체를 신뢰할 만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더욱 그러하다고 하면서 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족속입니다, 베냐민 지파입니다,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입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개들이 들어오고 그리고 행악하는 자들이 들어오고 또 손할례당들이 들어오니까 너희들이 그것으로 신뢰하느냐고 하면서 자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정통이라는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말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직분도 맡았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율법도 잘 지키고 있습니다. 십일조도 잘 내고 있고 또 주일도 성수하고 있고 모든 예배와 교회에서 하는 일들에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들을 보면서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를 자랑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개들이 있고 행악하는 자들이 있고 손할례당이 있으니까 내가 누군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그렇게 잘 믿고 있느냐 나 또한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기를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진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이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버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정말 자기 육체를 신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죽은 시체가 자랑을 하면 뭐 합니까? 썩은 냄새만 진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그 썩은 것을 자랑하고 있고 그것을 보면서 자기들이 성도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예수를 얻기 위해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흠 없는 의를 얻기 위해서는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진짜 할례당이라고 말씀으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가 되어 주님께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