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구하는 것을 주니
열왕기상 10:13절을 보면
“솔로몬 왕이 왕의 규례대로 스바 여왕에게 물건을 준 외에 또 저의 소원대로 무릇 구하는 것을 주니 이에 저가 그 신복들로 더불어 본국으로 돌아갔더라”
복음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나라만큼이나 기독교에 열광을 한 나라가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전파가 된 이후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없었던 그런 급속한 부흥이 있는 나라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복음이 전파된 것이 아니라 종교가 전파가 되었습니다,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종교지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유대교 못지않은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이 유대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는 기독교가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미 종교가 되었습니다, 아니 초대 교회를 지나오면서 불과 100여년이 지나기도 전에 종교가 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가 되어 버린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시대 교회가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면 아마도 저를 공격할 사람이 많을 줄 알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제가 교회를 비판하고 있습니까? 저는 한 번도 교회가 육적으로 잘못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이 영적으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을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교회를 판단하는 그것이 마음에 걸린다면 그는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왜 교회를 판단하는데 화를 내고 있습니까?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말라고 했습니까? 아마도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말라고 했으면 이 정도까지는 심하게 반발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기들의 교회를 판단하는 그것에 대해서 분을 내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 하면 그 교회가 아세라로 자기 마음에 있기 때문에 참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선지자입니까?
이스라엘은 교회입니다, 그 교회를 칭찬 했던 선지자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를 정통이라고 인정을 했던 선지자가 누구입니까? 제가 보는 성경에서는 그런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이스라엘이라는 교회를 책망을 했지 그들을 칭찬했던 선지자는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지자입니다,
그들이 말씀을 전할 때 이스라엘이 언제 그 선지자의 말씀에 따랐던 적이 있습니까? 물론 학개 선지자가 성전을 지으라고 예언을 할 때 이스라엘이 성전을 지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학개 선지자가 지으라는 성전은 육적인 성전이 아니라 영의 성전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잠깐입니다,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오고 난 후에 에스라, 느헤미야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치리를 할 때 조금 들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지자들의 말씀을 듣지를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판단하는 그것이 마음에 걸리고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도리어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합니다,
복음입니다,
정말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전하는 말씀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과 다르게 전하는 말씀이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제가 깨닫지를 못하는 것이 가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복음에 있어서는 구원을 받는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있는 설교를 보고 성경을 본다면 저는 누구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성이 있고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복음이 전해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복음에 대해서 너무 무감각한 것 같습니다, 물론 한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리스도편지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벽을 보고 전하는 것 같습니다,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제가 그것을 원한다면 저 역시도 악한 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래도 그리스도편지에서 말씀을 보고 감동을 받았는데도 사람들이 다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생명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생명에 대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편지에서 감동을 받았으면 이 복음의 말씀이 있는 곳을 따라와야 하는데 이 세상에 수많은 말씀들이 넘쳐나다 보니까 다시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67-68절을 보면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영생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무엇을 전하고 있습니까? 분명히 영생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영혼 구원에 대해서만 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영생의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만약에 영생의 말씀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진다면 그는 분명히 그리스도편지에 와서 함께 교제를 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영생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입니다, 그리스도편지는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은혜만을 전하고 있습니다. 때로 가끔 전화를 받으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어느 말씀으로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말씀을 안 보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 말씀으로 은혜를 받았으면 다른 말씀도 보면서 영생의 말씀이 있는가를 살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성경입니다,
어느 한 말씀을 안다고 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매주 일요일에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성도들과 주의 만찬을 나누고 있습니다. 서울 대방동에서 하는데 참석하는 성도님이 다 멀리서 오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경기도고 강원도에서도 오고 있습니다.
제가 지방에 계시는 분들께 드리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또 진짜 생업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분들께 드리는 말씀도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사람을 많이 모으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한 시대에 구원을 받는 성도가 적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제 시대에 구원을 받는 성도가 100명만 넘어도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믿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교회를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도의 교제를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무리 복음을 전한다 해도 어떤 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서울 근교에 있으면서 충분히 참석할 수 있는데도 그리스도편지를 그저 글로만 보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영지주의를 원치 않습니다,
성도는 반드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저와 교제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성도들끼리 교제를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런 교제도 없이 그리스도편지에서 복음의 말씀을 보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구원을 받은 성도나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16장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함께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도의 교제가 있는데도 그 교제에 충분히 참석할 수 있는데도 오지 않는다는 것은 영지주의 사상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진짜 멀어서 못 오시는 분들과 생업에 연결이 되어 있는 분들에게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편지를 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성도의 교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에 영생의 말씀이 있다고 하면서도 성도의 교제를 한 번도 하지 않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차라리 세상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편안합니까?
그렇게 편안하시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마시고 세상에서 나 혼자 아니 내 이성에 따라 그렇게 사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생명의 말씀이 있다고 하면서도 그 생명의 말씀이 있는 곳과 교제를 하지 않고 있다면 그는 속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배입니다,
성도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예배조차도 복음이라는 핑계를 대고 편안하게 보내고자 한다면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 하고 또 그 안에서 새로 들어오는 성도들을 함께 세워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영생의 말씀이 있으면 이 말씀을 전하는데 함께 협력을 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은 성도라 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무리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그런 사람은 성도라고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영생의 말씀이 있는데 그것을 자기만 받고 예배조차도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을 성도라 할 수 있습니까?
거리가 문제입니까?
시간이 문제입니까? 그리스도편지에서 언제 율법적으로 지키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다 핑계에 불과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이 영생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최소한 예배에 그래도 참석이 가능한 시간에 교제를 하는 것이 성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말씀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지 모릅니까? 나 혼자 구원을 받을 것 같으면 저 역시도 안 하면 그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정말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을 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적은 수의 성도님들이지만 함께 예배를 하고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도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하는 자입니다, 그 예배를 무시하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지방에 계시거나 생업이 있는 분들은 이 말씀을 보고 정죄를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오늘 말씀입니다,
스바 여왕입니다,
그가 솔로몬을 찾아 왔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라비아 남쪽에서 에티오피아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교통이 발달한 시대가 아닙니다, 그리고 치안이 확보되어 있었던 때도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중동 지역에서 아프리카는 사막이 많이 있습니다, 그 먼 길을 스바 여왕이 솔로몬을 찾아왔습니다,
열왕기상 10:1-3절을 보면
“스바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예를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저를 시험코자 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니 수원이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약대에 실었더라 저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솔로몬이 그 묻는 말을 다 대답하였으니 왕이 은미하여 대답지 못한 것이 없었더라”
솔로몬입니다,
평강의 왕입니다, 누구를 예표하는 왕입니까? 하나님을 예표하는 왕입니다 솔로몬에게 명예가 있는 것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저를 시험하고자 예루살렘에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에게 명예가 있다는 것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려운 문제를 솔로몬을 시험했습니다,
참 이런 말씀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어려운 문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아무도 모르는 지식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육의 그런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18:24절을 보면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스바 여왕이 그 먼 길을 왜 왔습니까?
어려운 문제를 듣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 어려운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영생에 관한 문제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영혼에 대한 어려운 문제를 듣고자 솔로몬에게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솔로몬 왕에서 와서 자기 영혼의 구원의 문제를 듣고 있습니다,
거리가 문제입니까?
시간이 문제가 됩니까? 정말 이런 문제가 되는 분들께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영생의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가 영생의 어려운 말씀을 전하고 있다면 와서 들어야 합니다, 듣지를 않고 그저 글로만 보고 혼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제가 볼 때 회의적입니다 아니 너무 이기적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성도는 이 세상에서 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직무를 가졌습니다, 그것을 그리스도편지에서 저 혼자 해야 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정말로 영지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율법의 문제는 강경합니다,
정말 단 한 가지의 율법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성도로서 해야 하는 일까지도 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물론 구원이라는 것은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제가 부정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가까이 계신 분들은 오셔서 교제를 해야 합니다,
경기도가 멉니까?
홍천에서도 오고 있습니다, 강원도 홍천에서 와서 예배를 하고 정말 잠깐의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이 말씀만 듣고 급히 가야 막차를 겨우 탈 수 있습니다, 경기도가 멀다고 느끼는 사람은 거리가 먼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편지가 그 사람에게는 영생의 말씀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서울에 있는 분은 거의 안 옵니다, 아니 그분들에게는 그리스도편지는 그저 누군가 어느 목사가 나름대로 복음을 전하는 한 사이트에 불과합니다, 이 시대 영생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가 있다면 아니 그런 곳이 있다면 저 역시 가서 배우고 싶습니다, 제가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에서 드리고 있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영생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제가 언젠가도 말씀을 드렸지만 글로 보는 것과 와서 들으시는 것은 천지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스바 여왕이 그 먼 거리를 왔다고 생각합니까? 더구나 여왕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그 먼 길을 왔습니다,
듣기 위해서입니다.
여왕이면 자기가 직접 오지 않고 그 나라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보내서 듣고 오게 하면 됩니다, 굳이 자기가 그 먼 길을 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스바 여왕은 자기 영혼의 문제를 남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집적 와서 들었습니다,
영혼의 문제입니다,
생명의 문제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문제를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솔로몬 밖에는 없기 때문에 스바 여왕은 그 어려운 문제를 듣기 위해서 정말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당시 왕이 이동을 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스바 여왕은 자기 영혼의 문제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솔로몬에게 왔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리스도편지의 말씀을 보면서 또 다른 곳에 있는 말씀을 보면서 여러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런 곳이 있다면 저에게 말씀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교만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런 분이 있다면 저는 가서 배우고 싶습니다. 정말 어디가 된다 해도 제가 모르는 것이 있다면 가서 배우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데 아무 것도 도움을 주지 않고 있는 그 사람이 과연 구원을 받은 성도라고 할 수 있는지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정말 영생의 말씀이 있다고 믿는 성도라면 당연히 그리스도편지에 와서 교제를 하고 예배를 함께 하면서 이 복음이 전파 되게 서로 협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지주의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16장을 정말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왜 사도 바울이 로마서 16장에 복음을 전하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들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그들을 소개 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으로는 사실 로마서 16장에 사람을 일일이 소개하는 것은 사실 옳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소개했습니다,
분명히 복음을 전하면 영지주의가 나오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 사람들을 소개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의 말씀을 보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단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어느 사람이 혼자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교제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까?
정말 적습니다,
구원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적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되고 거리가 되는 사람은 반드시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모이는 그 예배도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그리스도편지의 설교를 글로만 보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속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근사한 교회를 원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이 그리스도편지의 설교를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따라가고 싶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종교의 모습을 따라가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것이 유익합니다,
스바 여왕이 되시기 바랍니다,
영생의 말씀이 어디에 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이 있는 곳이 있다면 여기 그리스도편지를 기웃거릴 필요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어려운 문제를 대답해 줄 수 있는 그런 곳이 있다면 제가 이렇게까지 말씀을 드리지 않습니다,
열왕기상 10:8절을 보면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복들이여 항상 당신의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솔로몬
하나님의 지혜가 그에게 있습니다, 지혜의 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지혜가 아닙니다, 구원의 대한 지혜를 솔로몬에게 듣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에게 지혜를 듣고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부러워하고 있습니까?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얼마나 부러운 말입니까? 스바 여왕이 자기도 할 수만 있다면 솔로몬의 곁에서 지혜를 듣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에 대한 지혜를 솔로몬이 다 말하고 있는 그것을 듣는 그의 사람들이 얼마나 복됩니까? 정말 여러분에게 이러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저 설교 한 편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천국의 복에 대해서 들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왕입니다,
얼마든지 성경을 가지고 올 수 있고 자기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있습니다, 주의 만찬을 통해서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시대로 하면 주의 만찬을 나누는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의 복입니다,
그 복을 전하고 있는 그리스도편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 그것을 바로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편지의 말씀을 보고 다른 말씀을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안 보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퍼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누룩이 섞이지 않은 설교가 어디 있습니까?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은 설교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이 그런 설교를 듣는다면 저는 정말 이 일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저 같은 사람까지 이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복됩니다, 이 시대 수많은 목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까지의 신학자들이 내 놓은 책들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같은 많은 물 위에 앉은 음녀가 그대로 보이고 있습니다,
진리입니다,
그것이 비 진리와 섞이게 되면 그것은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비진리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 한 마디를 하면 마치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의 문제입니다,
아니 생명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솔로몬에게 와서 지혜를 들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솔로몬과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가 완전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지혜에 있어서는 그래도 이 정도면 되지 않은가 믿고 있습니다,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지혜의 말씀을 바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잠시 지나가는 형적과도 같은 인생이 누리는 복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물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약간의 유익은 있을지 몰라도 영의 생명에 대한 지혜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 왕이 왕의 규례대로 스바 여왕에게 물건을 준 외에 또 저의 소원대로 무릇 구하는 것을 주니 이에 저가 그 신복들로 더불어 본국으로 돌아갔더라”
새번역입니다
“솔로몬 왕은 스바의 여왕에게 왕의 관례에 따라 답례물을 준 것 밖에도, 그 여왕이 요구하는 대로,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모두 주었다. 여왕은 신하들과 함께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솔로몬입니다,
그가 스바 여왕에게 왕의 규례대로 물건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에게 올 때에 가져온 금과 향품과 보석을 생각하면서 솔로몬이 그것을 받았으니까 그 답례로 왕의 규례대로 주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물의 답례입니다,
당연히 멀리 이국에서 왕이 왔으니까 또 그 왕이 엄청난 양의 금과 향품과 보석을 가지고 왔으니까 그 답례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바 여왕이 가져온 것도 다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누구라도 성경을 보고 알 수 있는 지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육의 일입니까?
그리고 육의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구약의 육의 일은 우리의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육의 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거의 모두가 그렇게 육의 일로 만들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으면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아도 이 영의 일을 볼 수 없다면 그는 소경입니다, 그가 아무리 성경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영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소경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지가 눈을 뜨고 있는지 소경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15-16절을 보면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규례입니다,
왕의 규례가 무엇입니까? 새로 지으심을 받은 것이 규례입니다, 그러니까 새로 지으심을 받은 영이 스바 여왕에게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비록 이방의 여왕이지만 솔로몬에게 와서 영혼의 어려운 문제를 듣고서 그가 받은 것이 무엇인가 하면 새로 지으심을 받은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예표하는 왕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왕의 규례대로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영입니다, 영의 생명을 스바 여왕에게 주었습니다, 구약의 모든 말씀이 다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합니다,
문자를 아는 것으로 지혜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고 쓰레기에 불과 합니다, 성경의 문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니 이 세상 책보다 무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을 보는 많은 사람이 저주를 받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책을 보는 사람이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성경을 세상 지혜로 만들어서 저주를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스바 여왕은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자기 영혼의 문제를 듣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런 스바 여왕에게 왕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새로 지으심을 받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 긍휼과 평강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바 여왕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입었고 자기 영혼의 어려운 문제를 들어서 이제 평강을 얻었습니다,
스바 여왕입니다,
그가 솔로몬왕의 부유해서 왔습니까? 그가 솔로몬 왕이 이 세상 지혜가 많아서 그것을 듣기 위해서 왔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자기 영혼의 문제를 듣기 위해서 그 지혜를 얻기 위해서 왔고 솔로몬이 왕의 규례를 따라 새로 지으심을 받을 수 있게 하나님의 지혜를 스바 여왕에게 모두 들려주어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생명이 아니라 영의 생명에 대해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쉽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에게 그것이 있었습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에게 가서 지혜를 들으면 자기 영혼의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명확하게 들을 수 있다고 믿고 왔습니다,
그리고 받았습니다,
새로 지으심을 받은 것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솔로몬을 찾아온 스바 여왕에게 주었습니다, 구원의 어려운 문제를 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럼 그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어려운 문제를 말해줄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자가 없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 지혜를 가진 자가 흔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주 적습니다,
아니 이 시대 교인들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이 누군가 하면 이 어려운 문제를 말해 주는 지혜를 가진 자가 곁에 있어서 들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1:13절을 보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규례대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또 저의 소원대로 무릇 구하는 것을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스바 여왕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그가 성령을 구해서 성령으로 난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정말 보면 볼수록 우리에게 영의 비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모릅니다,
자기가 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아무 것이나 구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하는 것을 바로 구하지 않으면 그는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영생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것을 구하는 자는 반드시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의 소원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이 주님이 오시는 날에 하늘의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을 해서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 성도의 소원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소원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알고는 있지만 자기들이 다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구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구하시기 바랍니다.
받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성도는 이미 받았습니다, 그럴지라도 성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늘 구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구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셨어도 내 소원이 그것이기 때문에 구하고 있습니다,
영혼의 생명입니다,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 시대는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하지도 않으면서 자기들이 이미 받은 것과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천국의 상을 다 받은 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것 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것을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기복을 구하고 또 자기의 신앙생활을 위해서 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 정욕적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주고 있습니다,
거리가 문제입니까?
그리고 시간이 문제입니까? 그것으로 핑계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면서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영지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마치 자기가 성도나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아는 지식도 쓰레기로 변한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역사를 하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복음을 들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진리를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스바 여왕과 같은 사람도 솔로몬에게 왔습니다, 지혜를 말하는 자에게 와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저 문자로 된 설교를 보면서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사단에게 속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는 사람입니다,
저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시 말씀은 드리지만 저는 이 일이 무척이나 힘들고 괴롭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복음을 주셨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보고서 듣고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는 사단에게 속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교회입니다
왜 주님께서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셨습니까? 그 교회를 통해서 주의 만찬을 나누고 그 교회를 통해서 또 다른 생명이 탄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디 영지주의에 빠지지 마시고 복음 안에서 주의 만찬을 함께 나누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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