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이며
출애굽기22:10-13절을 보면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다른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죽거나 상하거나 몰려 가도 본 사람이 없으면 두 사람 사이에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여호와로 맹세할 것이요 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이며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 만일 자기에게서 봉적하였으면 그 임자에게 배상할 것이며 만일 찢겼으면 그것을 가져다가 증거할 것이요 그 찢긴 것에 대하여 배상하지 않을찌니라”
율법
하나남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율법을 정하셨습니다. 만일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율법을 정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 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율법을 보고 도리어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고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시대는 너무 깊이 율법의 행위에 빠져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이 성경을 세상의 일로 만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 싸움입니다,
육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싸움은 주님과 사단과의 싸움을 말씀하고 있고 육의 싸움은 내가 교회 안에서 육체적으로 무엇을 잘하려고 하는 싸움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영의 싸움을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육의 싸움을 하다가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육체로 사망에 이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체의 싸움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이 부분을 바로 알지 못하면 이스라엘과 같이 저주를 받아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의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 해도 그는 이스라엘과 같이 마귀의 자식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육체의 싸움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싸움을 하느라 정욕에 깊이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는 줄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정욕에 빠지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점점 더 정욕에 깊이 들어가고 있으면서도 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싸움을 하느라 정욕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성도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암담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성도라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 통곡할 날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잘 지어진 교회 건물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는 자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천국에 가 있는 것같이 마음에서 한껏 부자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육체로 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잘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다 육체의 정욕에서 나온 싸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싸움을 누가 하게 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사단이 하게 감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육체의 싸움에 얼마나 정욕적으로 빠져 있었는가를 성경만 조금 주의 깊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이 시대는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불륜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것은 로맨스입니다, 똑같이 육체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싸움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스라엘이 하는 것은 불륜이라고 말을 하고 있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것은 로맨스라고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 단 한 가지만 보아도 너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다.
이스라엘이 근체와 박하와 회향의 십일조를 드리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을 성경에서 보고 그들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율법주의에 짜졌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똑같은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 입니까?
이스라엘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들이 하는 것은 로맨스입니다, 아주 타당성이 있는 로맨스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로맨스를 미화하기 위해서 온갖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이스라엘과 같이 자기들의 육체의 정욕을 이기지 못해서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면서 마음에서는 부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욕입니다,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정욕은 사람의 이성에는 다 좋은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정욕에 빠져 있으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내 육체로 하는 모든 일입니다.
그것이 세상 일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다 육체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립니까?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전도를 하기 위해서 산과 바다를 두루 다니고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이 다 육체의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왜 이런 육체의 일에 빠져 있습니까?
그것은 단 한 가지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그대로 보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육체의 정욕에 빠져 육체의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단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영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육체의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는 문자는 바로 이렇게 육체의 사람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이렇게 육체의 사람이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영이신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떡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고 있는데 천국에 들어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육체의 일을 합니까?
교회 안에서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다 육체의 일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성경에서 영의 일을 깨달을 수도 없고 또 믿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의미입니다,
아니 그 안에 영의 일이 담겨져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보는 사람은 다 육체의 사람이 되고 성령의 감동을 받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영의 일을 알고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이스라엘이 다 육체의 사람이 되어서 악만 행했다는 것을 안다면 이제 2000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는 어떠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것은 종교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상대가 나에게 믿음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이유는 바로 이 믿음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일을 성경을 통해서 바로 알아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르고 믿습니까?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상대가 나에게 계시를 해 주어야 내가 믿을 수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상대가 자기의 모든 것은 숨김이 없이 가르쳐 주어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고 그것을 아는 성도만이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믿음의 비밀을 모릅니다,
그저 성경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육체의 정욕에 빠져 교회 안에서 자기감정을 따르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이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감성을 자극하는 예배, 찬송, 기도 등을 하면서 자기가 믿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 있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의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교회도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에서 구원을 받을 사람이 있는 것이지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에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그 교회 안에서는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 교회가 세상에서 아무리 정통이라고 하고 있고 또 수십 만 명이 다닌다 해도 다른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면 그 교회에서는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복음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행위로 하는 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이 있으면 그 율법을 보고 자기가 지키겠다고 하는 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과연 이 다른 복음을 전하지 않은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물론 어딘가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교회가 있겠지만 제가 보고 있는 교회에서는 모두가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다른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죽거나 상하거나 몰려 가도 본 사람이 없으면”
새번역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나귀든지 소든지 양이든지, 그 밖의 어떤 집짐승이든지, 무엇이든지 지켜 달라고 맡겼는데, 그것이 죽거나 다치거나 아무도 모르게 없어졌으면,”
율법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도시화가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농촌이라고 해도 이러한 일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나귀를 기르는 사람도 거의 없고 소나 양을 기르더라도 거의 가 농장으로 운영을 하다 보니까 굳이 이웃에게 맡겨야 할 일이 거의 없고 설령 맡긴다 해도 이웃이 맡아 주는 것을 꺼려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 시대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율법들을 보고 사람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이 나에게 무엇을 맡겼으면 그것을 잘 보관 했다가 주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면서도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이성을 따라 성경을 보면서 굳이 고민해야 할 필요성도 없는 율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보니까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말씀을 율법으로 정하셨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너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이 시대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일을 율법으로 정하신 것이지 현대 사회가 이렇게 발전을 할 것을 모르고 이 율법을 정하셨다고 하면 우리는 더 이상 성경을 볼 필요도 없고 하나님을 믿을 이유도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3:15절을 보면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서신입니다,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이 어느 성경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신약 성경이 아니라 구약 성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이 정경 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능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구약 성경을 보면서 다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자기가 왜 성경을 보아야 하는 줄을 망각하고 그저 문자적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성경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디모데에게 하는 말씀은 구약 성경이라는 것을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구약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그러면 그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깨닫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전혀 성경을 보는 목적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그리고 보면 뭐 합니까?
성경을 수백 번을 읽고 히브리어를 알고 헬라어를 알면 뭐 합니까? 정말 신학자가 되면 뭐 합니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그저 이 세상의 학문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박사입니까?
율법을 보고 그것을 문자 그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그는 세상이 만든 종교에서 신학박사를 받은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왜 보아야 하는가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말씀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까?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율법을 보고 있어도 그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면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정말 성경은 그 모든 비밀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그저 성경에서 문자를 많이 아는 것으로 자기가 지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사람이 분복으로 받은 암기적인 능력이 있으면 당연히 성경을 많이 보면 그 안에 무슨 말씀이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조금 더 알고 모르고 하는 것으로 지혜를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 저주를 받습니다,
교회에 나온 것은 축복과 저주를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축복을 받는 사람이 지극히 적다는 것을 또한 바로 알아야 하고 성도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천국이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입니다,
요한복음 3:13절을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율법은 영의 일입니다
사람이 그것을 문자 그대로 지키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보고 세상 초등학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그림자를 걷어 내고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주님이 안 계십니다, 만약에 이 세상에 주님이 계셨다면 주님은 절대로 나귀와 소와 양을 이웃에게 맡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시고 또 천국에 계시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을 세상에 맡겨 둘 수밖에 없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물론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지만 그래도 우리를 맡겨 둘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웃에게 맡겨야 합니다, 아니 맡긴다는 것보다는 이웃이 있는 곳에 우리를 놓아두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귀, 소, 양
다 우리 성도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나귀나 소는 복음의 일을 하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고 양은 성도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주님이 하늘로 데리고 가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맡겨 두어야 합니다. 실제 맡겨 둔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하늘에 올라 가셨으니까 이제 나귀와 소와 양은 세상에 있습니다,
이 세상은 누가 주인입니까?
사단이 주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사단이 주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교회라고 해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교회를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세상에 있다면 그것의 주인은 사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가는 천국에 있습니다, 이 세상은 아담이 범죄를 하는 순간에 사단의 것이 되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이 세상의 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 지구는 사단의 것이 되었고 그것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사단이 가지고 있다가 이 지구 자체가 불못에 던지우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불못에 던집니까?
이 세상은 이미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이 세상은 더러워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단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하늘이 올라가시고 난 이후에 세상에 남아 있는 성도들은 이웃에게 맡겨진 것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죽었습니다,
그리고 상했습니다, 또 물려갔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주의 깊게 잘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상고해야 합니다, 그저 문자를 보고 이해하려고 해서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귀, 소, 양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웃에게 맡겼습니다, 그것은 사단에게 맡겼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 맡길 수 있는 이웃은 사단 밖에는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사단은 원수지만 또 이웃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심으로 이웃에게 맡긴 것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여호와로 맹세할 것이요 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이며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
새번역입니다.
“그것을 맡은 사람이 이웃의 짐승을 가로채지 않았음을 주 앞에서 맹세함으로써, 둘의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 이 경우에 그 임자가 맹세를 받아들이면, 그는 물어 내지 않아도 된다.”
이웃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죽거나 상하거나 몰려갔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단도 보고 있고 하나님도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과 사단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율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 비유로 말씀을 하는 것이지 실제 이것이 율법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영의 일을 육의 것으로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싸움은 하나님과 사단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율법으로 정하셨습니다,
욥기1: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두 사람입니다,
그것은 사단과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귀와 소와 양으로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올라가심으로 성도들을 이 세상에 남겨 두셨습니다, 그런데 이 성도가 죽거나 상하거나 몰려갔습니다, 그것을 누가 보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과 사단이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나귀와 소나 양을 손을 댈 사람은 딱 두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사단과 주님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주인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한 사람은 바로 사단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성도들을 남겨 두셨는데 죽거나 상하거나 몰려갔습니다, 이렇게 할 사람이 누군가 하면 사단이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이 없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있는 일입니다 이 율법을 보고 농촌에서 남의 가축을 맡긴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도시에서도 개들을 많이 기르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맡기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도 안 됩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지 그런 육의 일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단이 손을 안 댔습니다,
그러니까 사단이 죽이거나 상하게 하거나 물어가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여호와 앞에 맹세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단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누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죽었거나 상하거나 몰려갔을 리가 없습니다, 사단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지를 않습니다, 만약에 사단이 손을 대시 않았으면 여호와께 맹세를 하고 그렇게 맹세를 했으면 그 임자는 그것을 그대로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레위기5:1절을 보면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나니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여호와 앞에 맹세입니다,
맹세를 했으면 반드시 그 아는 일을 진술해야 합니다. 사단은 자기가 죽이거나 상허거나 물어 가지 않았다는 것을 증거 해야 합니다, 만약 그것을 그대로 증거 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주님도 지키시지만 사단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맹세가 거짓이면 어떻게 됩니까?
반드시 배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단이 죽이거나 상하게 하거나 물어가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죽이거나 상하게 하거나 물러갈 수 있는 존재는 사단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가 여호와 앞에 맹세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도 그것을 그대로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배상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단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스스로 그렇게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스스로 그렇게 되었다면 그것은 사단이 배상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반드시 여호와 앞에서 자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세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단도 역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 육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렇게 율법은 영의 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단이 아니고는 죽이거나 상하게 하거나 물어갈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에 사단에게서만 맹세를 받으면 됩니다,
주님이 맡겼습니다.
그 이웃인 사단에게 맡겼습니다, 사단은 그 맡긴 마귀나 소나 양이 죽거나 상하거나 물려갔으면 반드시 여호와 앞에 와서 맹세를 해야 합니다, 왜 맹세를 해야 하는가 하면 사단이 아니고는 그렇게 할 자가 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에 사단만 맹세를 하면 됩니다. 그렇게 맹세를 하면 주님께서는 그대로 믿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배상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은 사단이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죽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상하기도 하고 또 물려가는 것과 같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 그러하면 영적인 일들이 있습니다,
“만일 자기에게서 봉적하였으면 그 임자에게 배상할 것이며”
새번역입니다,
“그러나 도둑맞은 것이 확실하면, 그는 그 임자에게 도둑맞은 것을 물어주어야 한다.”
봉적
도적을 만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귀와 소와 양을 맡아가지고 있는데 도적을 맞았으면 그것을 그 임자에게 배상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적맞은 것이 확실하면 그것을 임자에게 배상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0:10절을 보면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도적입니다,
누가 도적입니까? 사단이 도적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사단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도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도적을 맞았습니다, 그러면 누가 이것을 도적을 했습니까? 바로 사단이 도적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배상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입니다,
우리는 도적질 하면 안 됩니다. 사단은 양을 도적질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사단에게 도적질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 세상에 있는 성도를 도적하였으면 반드시 배상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양을 도적질 합니다,
그러면 사단은 반드시 배상해야 합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영혼을 도적질 했습니다, 그것을 사단이 어떻게 배상할 수 있습니까? 만약에 도적질을 해서 그것을 배상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양을 도적질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단이 아무리 우리를 도적해 가고 싶어도 율법에 배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도적질을 할 수 없습니다,
사단은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도적맞지 않게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성도들이 도적을 당하지 않게 사단이 지켜 주라고 율법에 정해 놓았습니다, 이 세상은 사단이 주인입니다. 사단이 주인인 세상에 주님은 우리를 세상에 두고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냥 가신 것이 아니라 사단에게 도적을 맞지 말고 잘 지키라고 율법으로 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율법을 정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를 남겨 두시고 하늘에 올라가시면 사단이 우리를 도적질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율법에 정해 놓아서 사단이 우리를 도적질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도적질을 하면 반드시 배상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배상해야 합니다,
사단이 반드시 배상해야 하는 것을 도적질 하겠습니까? 절대로 주님의 것은 도적질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양의 수를 다 세고 계시기 때문에 사단이 도적질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교인들이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렁 율법을 보고 남이 자기에게 무엇을 맡기면 그것을 도적질 하지 않고 잘 지키고 있다가 주려고 하고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양입니다, 그저 처분만 바라고 있는 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양을 주님이 이 세상에 맡겨 두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양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율법을 보고 자기들이 지키겠다고 코미디를 하고 있습니다,
“만일 찢겼으면 그것을 가져다가 증거할 것이요 그 찢긴 것에 대하여 배상하지 않을찌니라”
공동번역입니다.
“만일 그것이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경우에는 그 증거물을 가져다 보이고 그 찢겨 죽은 것은 보상하지 않아도 된다.”
만일 찢겼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가져다가 증거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증거를 하고 있습니까? 자기가 찢지 않았다는 증거를 해야 합니다, 만약에 자기가 찢지 않았다면 그것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그 증거가 맞으면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증거
어떠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대는 근거를 증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단이 자기가 찢지 않았다는 증거를 해야 합니다, 만일 양이 찢겨 죽었으면 반드시 사단은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가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단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사단은 배상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세상에서 사단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자가 없습니다, 만일이라는 말씀을 잘 아시기 바랍니다, 있을지도 모르는 뜻 밖에 일을 만일이라고 말 합니다, 그러한 일은 없지만 만일 있다면 사단은 반드시 그 찢긴 것을 가지고 와서 그것에 대해서 증거를 내 놓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단입니다,
사단이 찢지 않으면 그런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러한 일이 있다면 사단은 반드시 증거를 해야 합니다, 자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사단은 반드시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아니 율법대로 찢긴 것에 대해서 증거를 하라고 하면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시고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이 세상은 주님의 이웃인 사단이 주인입니다 그 이웃에게 우리를 맡긴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단에게 우리를 잘 맡아 지키라고 율법에 정해 놓았습니다, 사단은 우리 성도를 죽이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닫는 성도만이 은혜가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미 율법에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정해 놓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사대는 지혜가 없어서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사단과 주님이 지키는 것입니다,
이 율법입니다,
우리는 죽을 수도 없고 상할 수도 없고 몰려 갈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도적 맞을 수도 없습니다. 또한 찢겨 지지도 않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율법입니다, 이 율법을 바로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성도가 되어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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