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복음과 율법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윤주만목사 2019. 1. 21. 20:53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디모데전서 1:3-11절을 보면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되고 난 후에는 오직 이 복음을 전하는 일만 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방에 복음을 전하고 있는 그때에 벌써 교회 안에는 그가 가르쳤던 복음이 아닌 다른 것을 가지고 가르치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너무 안일하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조금 잘못되면 어떠냐는 생각이 팽배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께서 인도를 하시면 바로 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단 한 가지 이유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영생에 대해서 경계의 말씀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실제 주님께서도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도 구약을 인용을 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고 남은 자를 구원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을 때 어느 때에 이스라엘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심지어는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방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문제는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자의적으로 억지로 해석을 해서 그것을 교회 안에서 가르치고 있다 보니까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그런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누가 칭찬을 했습니까?

어느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칭찬을 했습니까? 어느 사도가 이방에 복음을 전하고 칭찬을 했습니까?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살아 있는 그때에 사도들은 경계의 말씀과 책망의 말씀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입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목회서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 목사들이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경계하기 위해서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도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는 말씀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에 벌써 교회 안에는 다른 교훈을 가지고 가르치는 자들이 들어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보아서도 잘 알고 있지만 사도 바울이 가르친 그 교회 안에 다른 복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들어와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켰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잠언에서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안일함에 빠져 있는 그들이 자기들이 종교 안에서 하는 행위에 열심을 내면서 그것을 보고 안일함에 빠져 있습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가 마케도니아로 떠날 때에, 그대에게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대가 거기에서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명령하고,”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 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에 복음을 전하고 나면 다른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디모데와 디도를 장로로 세워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했던 것을 알고 있고 이 디모데서는 그런 서신입니다

 

디모데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너를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 친 아들과 같이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영적으로 낳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떠나는 교회에 디모데를 머물게 하고 그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했던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에베소에 있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디모데를 에베소에 있으라고 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정말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듣고 있는 말씀이 교훈인가 아니면 다른 교훈인가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교회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바른 교훈을 들었겠습니까? 정말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완전하게 전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로 가고 나니까 에베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교훈을 듣고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에베소교회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를 떠나면서 내가 삼년을 밤낮으로 눈물로 훈계를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삼년을 밤낮으로 복음을 전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교회에 사도 바울이 떠나니까 어떤 사람들이 다른 교훈을 전하고 있다고 하면서 디모데에게 네가 머물며 그들에게 명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성경을 냉정하게 보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복음이 완전하게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지만 사람들은 종교에 빠져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너무 안일하게 보고 있고 일반 교인들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고 자기 목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교회 안에서 내가 듣고 있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다른 교훈을 듣고 있다면 반드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을 한 것과 같이 다른 교훈을 듣고 있으면 모두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거의 모든 말씀은 영생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교훈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으면 이 다른 교훈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자기들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는 바른 교훈을 하고 있고 혹시 이단은 다른 교훈을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교훈입니다

니골라당의 교훈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교훈입니다 발람의 교훈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교훈입니다 이 외에도 성경은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대해서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른 교훈이 초대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교회 안에 성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교훈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알기 쉬운 율법 한 가지만 해도 이 시대 교회 중에서 어느 교회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까? 사실 이런 교훈들이 교회 안에서 다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를 못해서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그저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정신을 팔지 못하도록 명령하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믿음 안에 세우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보다는, 도리어 쓸데없는 변론을 일으킬 뿐입니다.”

 

신화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허탄한 신화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허탄한 신화가 무엇인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거의 자기들의 생각으로 풀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16절을 보면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허탄한 신화입니다

그것을 주의 형제 야고보가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눈에는 정말 좋게 보입니다. 우리가 지금도 어떤 목사들이 행했던 신앙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가 한 행위를 듣고 있고 그것이 마치 신화가 되어서 들려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입니다

누군가 행위를 하면 그것을 포장을 해서 신화를 만들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이미 초대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신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디모데에게 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신화를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한 모든 행위는 다 허탄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가 어거스틴입니까? 그가 참회록을 썼어도 그것 역시 허탄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가 쓴 참회록으로 신화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회개를 했습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까? 제가 볼 때는 하나의 신화에 불과합니다. 아니 기독교인들이 만든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신화에 정신이 팔리면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거스틴 뿐 아닙니다.

이 시대는 웨슬레 역시도 신화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가 미국에서 영국으로 가는 중에 배 안에서 참회를 했다고 하면서 그것을 신화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가 무엇을 했다 해도 그것으로 해서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마치 그런 것으로 생각하게 신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신화를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사람이 한 행위를 가지고 그것으로 신화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그를 따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다른 교훈이라는 것을 모르고 목사들이 설교시간에 얼마나 많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그런 신화는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는 도리어 구원에 있어서 변론만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끝없는 족보이야기입니다

성경에서 족보를 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 족보를 보고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었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가 한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런 족보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입니까?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가 어떠한 믿음을 가졌는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저 그가 누군가를 이야기를 하고 있고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과 내 믿음이 같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믿음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족보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족보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족보도 있고 또 교회 안에서 족보도 있습니다. 그런 족보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알면 뭐합니까? 그런 족보를 알면 뭐합니까? 그가 어떠한 믿음을 가졌고 그가 가진 믿음과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같은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족보를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미 초대교회에 그것도 사도 바울이 삼년을 밤낮으로 훈계를 했던 그 교회에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디모데에게 명하여서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초대교회가 그랬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왜 기록했다고 생각을 합니까? 초대교회에 있었던 일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까? 물론 그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일을 미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의 교회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어떻습니까?

신화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끝없는 족보이야기를 하면서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 믿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 명령의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경계입니다

지나간 것을 거울삼아 다시 그러한 일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있는 사람들을 경계하기 위해서 디모데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다른 교훈을 가르치면서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서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것을 경계를 하는 목적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똑같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이것에 경계가 될 수 있습니다.

 

청결한 마음입니다

마태복음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디모데전서에서는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경계를 하는 것은 바로 이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양심입니다

이 선한 양심에 대해서 사도 베드로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갑니다.

이 시대도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감으로 해서 하나님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세례를 비유로 말씀을 하면서 이것이 너희를 구원하는 표라고 말씀을 하면서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선한 양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신화를 이야기를 하고 있고 끝없는 족보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것이 다른 교훈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입니다.

이 시대는 온전한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악을 먼저 깨달아야 하는데 악에 무엇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악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어느 누구도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온전한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은 이러한 목적에서 벗어나서 쓸데없는 토론에 빠졌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단 한 가지 목적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지도 모르고 있고 이 믿음의 비밀도 모르면서 모두가 종교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디도서 3:9절을 보면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시편39:6절을 보면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헛된 말입니다

에베소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헛된 말에 빠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에베소 교회에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헛된 것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씀을 하고 있는 이 말씀 그대로 사람들이 믿음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있습니다.

 

모릅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무엇이 헛된 말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분명히 다른 성경을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 문장에서만 그것을 알려고 하다가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경계의 목적을 가지고 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헛된 말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없어서 전혀 경계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을 문자 그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헛됩니다. 왜 헛된가 하면 그것으로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 뿐 아니라 시편에서 그것을 정확하게 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헛된 일을 합니다.

사람이 교회 안에서 이 헛된 일을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데 그것을 재물을 쌓고 있는데 누가 취할지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교인들이 율법을 지키는데 그것을 누가 취할지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을 누가 취할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누가 취할지도 모를 그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조금이라도 유익이 된다면 지켜야겠지만 누가 취할지도 모를 것에 열심을 내면서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율법교사가 되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또는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입니다

이제 그것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다른 교훈으로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의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를 그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그가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는 그 말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가르치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면 어떻게 되고 못 지키면 어떻게 된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했을 때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이 시대 무책임하게 교인들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 어떻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알기로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 사용하면, 선한 것입니다.”

 

율법입니다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선한 것이 됩니다. 어떻게 법 있게 씁니까? 율법을 다 지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율법의 기능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법 있게 쓰면 그것은 선한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항상 다 지키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이 성경적인 정의를 모르고 율법을 법 있게 쓰려고 하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 있으면 지키시기 바랍니다.

아니 법 있게 쓸 수 있으면 지키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키고 싶은 율법만 지키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분명히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몇 가지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율법을 법 있게 쓰려고 하고 있고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10절을 보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 선합니다.

어떻게 했을 때 율법이 선합니까? 그것을 갈라디아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이 말씀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법 있게 쓰는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는 것이 율법을 법 있게 쓰는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이 선한 것이 되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항상 다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또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법 있게 쓰고 싶습니까?

자신이 있으면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포기를 하겠습니다. 이 시대는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법 있게 쓸 수 없기 때문에 그것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무리 이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도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항상 다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두려운 마음이 없습니다.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는 그것으로 너무 안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율법을 법 있게 쓰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런 말씀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칼뱅주의가 말하고 있는 도덕법이 살아 있다는 그 말에 미혹이 되어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율법을 법 있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율법은 선한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서의 말씀과 같이 저주 아래 있는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율법이 제정된 것은, 의로운 사람 때문이 아니라, 법을 어기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와, 경건하지 않은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않은 자와, 속된 자와, 아비를 살해하는 자와, 어미를 살해하는 자와, 살인자와, 간음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사람을 유괴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를 하는 자와, 그 밖에도, 무엇이든지 건전한 교훈에 배치되는 일 때문임을 우리는 압니다.”

 

율법입니다.

왜 율법을 세우셨습니까? 이 세상에 율법을 지켜서 율법을 법 있게 쓰게 하기 위해서 세우셨습니까? 성경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니라 율법을 세우신 것은 그 율법을 보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는가 하면 우리 인생은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을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입니다

율법의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비유로 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이 율법을 지켜서 옳다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옳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켜서는 옳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더욱 더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선한 것이 된다는 그 말씀만 보고 있습니다. 법 있게 쓰지 못할 때는 어떻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기독교의 교리에 따라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은 상고하지도 않는 그들이 교리를 따라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건전한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 나는 이 복음을 선포할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 교훈입니다

사도 바울이 무슨 교훈을 하고 있습니까? 영혼 구원에 대해서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맡기신바 되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이 복음을 전했는데 사도 바울이 가고 난 후에 율법을 지키는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과 율법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과 율법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이방인의 교회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자기들이 어떻게 될지도 깨닫지를 못하면서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서에서는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아무 생각이 없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을 보고도 두려움이 없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왜 그런가 하면 교회 안에 다른 교훈을 하는 자들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이 복음인데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방의 교회도 그렇고 문자 그대로 보면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경에서 이 복음을 알아서 믿는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