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잠언 26:13-16절을 보면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와하느니라 게으른 자는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사람들이 이 잠언을 보고 마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이 세상의 지혜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특히 이 잠언의 말씀을 보고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깨달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인들이 보는 성경입니다, 그 중에서도 잠언은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잠언을 보는 이유는 세상을 살아갈 때 지혜를 얻기 위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를 얻어서 성공을 하기 위해서 보고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다보니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뜻을 전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봅니까? 특히 이 잠언은 거의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자에 적혀 있는 그대로를 보면서 그것을 많이 아는 것으로 자기가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그런 문자를 아는 것으로는 성경에서 지혜 있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이 세상에서 출세를 하고 성공을 하고 또 재물을 많이 벌어서 편하게 살고 싶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런 것을 주기 위해서 기록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입니다, 이 썩을 것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그것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기 보다는 자기 육체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아주 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창세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가인의 제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이미 종교화가 되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이 유대교가 된 것과 같이 기독교도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제사에 짚이 빠져서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고 그런 제사에 열심을 내면서 정작 자기들의 생명이 걸려 있는 영의 일을 아는 것에 있어서는 너무도 게으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육체로 부지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육체의 부지런함을 보고 자기들이 게으르다는 것을 잊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육체로 행하는 제사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사망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종교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번 종교에 빠지게 되면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 중에서 10만 명 중에서 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정말로 하나님의 큰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에 빠져 있는 교회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빼내어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유대교인은 구원을 받지 못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 기독교인 역시도 구원을 받지 못 합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면 지금 교회 안에서 있는 사람들이 저를 비난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 안에서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구원을 받지 못 합니까? 그들은 게으르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은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는 참 부지런한 것과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게으른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종교에 한번 빠지면 사람들은 자기가 부지런한지 게으른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 31;4절을 보면 “저희가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어 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종교입니다. 사람들은 종교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기들을 기독교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인이라는 뜻이 있지만 기독교는 이미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순수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종교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유대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종교에 빠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선민이라고만 생각했지 유대교라는 종교에 빠져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기독교라는 종교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종교라고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종교는 그물을 쳐 놓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그물을 치는가 하면 이 시대 교인이 너무도 지키고 싶어 하는 율법으로 그물을 쳐 놓고 있습니다, 율법이 성경에 있다 보니까 사람들은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물이라기보다는 자기들이 더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 맞습니다, 저주의 그물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에는 너무도 좋은 그물입니다, 게으른 자는 모두가 그 그물에 걸려 꼼짝을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종교에서 하는 모든 일이 참 좋다는 것을 저 역시도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그물입니다, 종교는 사람의 이성에 좋은 것을 가지고 그물을 쳐 놓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좋기 때문에 그 그물에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물에 걸리게 되는 순간 사망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어떤 그물을 자기들 앞에 쳐 놓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물을 압니까? 새가 그물을 압니까? 물고기가 그물을 알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말씀하는 그물을 사람의 이성으로 알 수 있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성경에서 그물이라고 말씀하는 것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저희가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이 시편의 말씀을 보고도 자기가 어떤 그물에 걸려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부지런하게 만듭니다, 사단은 육적으로 부지런하게 만드는 그물을 쳐 놓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것을 다 따라하려면 얼마나 부지런해야 합니다, 수많은 율법들을 세워 놓고서 그것을 다 지키려면 육체적으로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겠습니까? 제사 제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레위 인들이 성막을 섬기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일을 하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사단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가지고 육체로 부지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육체의 부지런함이 영의 일에 있어서는 아주 게으르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종교입니다, 불교의 스님들이 논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진리가 아닌 것을 찾기 위해서 새벽 3시 반이면 일어나서 예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교회가 따라 하기 위해서 새벽기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위들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들이 부지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배우고 있습니다, 종교는 가르치는 것을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가 없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부지런한 것이 아니라 게으른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마다 수많은 교재가 있고 그것을 배우느라 자기 시간이 없을 정도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히 종교의 부지런함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인이 되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성도는 영생에 있어서 게으른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게으른 자인지 부지런한 자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위에 열심을 갖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게으르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까? 그러나 실제 그들의 모든 행위는 다 게으른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하는 행위가 게으른 것인지 부지런한 것인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게으른 자가 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체의 게으름이 아닙니다, 생명에 대해서 게으른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인들은 그저 교회 안에 나와서 주여 주여 하는 것으로 그리고 자기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사단이 쳐 놓은 그물에 빠져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새번역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핑계 대기를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한다.” 게으른 자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게으른 자입니다, 이 세상에 게으른 자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이런 게으른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하는 것이지 이 세상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육체의 게으른 자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아는 게으른 자가 있습니다. 그런 게으른 자를 지금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잠언을 보면서 육체의 게으른 자에게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 말씀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육체의 일이 아니라 우리 성도가 교회 안에서 마주치고 있는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게으른 자입니다, 길에 사자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 어느 길입니까?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는 그 길을 가는 것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아니 믿음이 없어서 그 길을 가려고 해도 무서워서 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율법주의입니다, 태생적으로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어느 종교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영생의 길이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모든 종교입니다, 그 길을 가지 않고 있습니다, 왜 가지 않고 있는가 하면 그 길에는 사자가 있습니다, 무서운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사자가 그 길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을 수 없습니다, 왜 그런 마음이 있는가 하면 성경에서 영의 일을 모르고 믿음의 비밀을 모르다 보니까 그 길을 가려고 하니까 사자가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됩니다, 세상의 생각입니다, 아니 사람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는 그 길에 무엇이 있는가를 모르기 때문에 길에 사자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니까 그 길을 가는 것이 너무도 두려워서 사자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가 되는 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믿음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의 눈에는 그 길이 전혀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하다가 그 길에 사자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10절을 보면 “이 구원에 대해서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구원입니다, 영혼의 구원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 구원에 대해서 성경에서 부지런히 연구하고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 길로 가는 것을 너무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끔 가다가 사람들을 만나서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율법을 폐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영의 일에 대해서 2-3시간 대화를 하다 보면 그 사람들이 거의 다 공항상태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들이 이제까지 알고 있던 모든 성경적인 지식이 뒤집어 지는 것을 보고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아니 자기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지를 모르고 당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됩니까? 그렇게 대화를 한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마치 사자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에서 부지런히 찾아서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율법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제가 말씀을 드리는 길이 자기들을 죽이는 사자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되기 때문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죽을 것 같으니까 다시 율법을 지키는 것이 편해서 그 길을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율법이 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길입니다, 게으른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생명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살피는 자가 되어야 부지런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무엇이 부지런한지 게으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거의 모든 사람이 율법의 행위에 빠져 무서워서 생명의 길을 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자가 있다고 합니다, 자기가 그 길로 가면 죽는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해서 그 길로 가면 반드시 죽을 것 같으니까 길에 사자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오직 믿음이라고 하면 아무도 거의 모든 사람이 그 길에 사자가 있다고 하면서 그 길을 가라고 하는 사람에게 도리어 화를 낼 것이 분명합니다, 게으른 자입니다, 그들의 이성적 지식에는 반드시 믿음의 길에는 사자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그 길로 가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아예 밖으로 나가지를 않고 교회 안에서 열심히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에서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사자가 있는 것 같이 무섭습니다. 어떻게 율법을 하나도 안 지키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분명히 그 길은 사자가 있는 것 같은 생각을 버릴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이성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그 길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사자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그 길이 너무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거리로 안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음녀가 되어 있는 교회 안에서 꼼짝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기들을 보면서 너무도 안전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거리로 나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거리고 나가면 사자에게 잡혀 먹을 것 같아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잠언8:2절을 보면 “그가 길 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그가 누구입니까? 지혜를 의인화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어디서 부르고 있는가 하면 길가에 높은 곳과 사거리에서 부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지혜가 어디에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 안에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성전에 지혜가 있었습니까? 이스라엘은 율법주의가 되어서 그 성전을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자기들의 육체로 지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 안에는 지혜가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전에 있어야 하는 지혜가 없다 보니까 그 지혜가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서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물론 회당에서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어디에 계셨습니까? 주님은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계셔야 하는 성전에는 이미 율법주의자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스라엘에 오셔서 길가에서 그리고 사거리에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서는 진리가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거기서 나와서 길가로 그리고 사거리로 가면 사자에게 잡혀 먹힐 것 같아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자가 있습니다, 어디에 사자가 있습니까? 주님의 몸이라고 하는 성전에 율법주의자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영혼들을 죽이는 사자가 어디에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지만 그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오셨을 때 성전이 되지를 못하셨습니다, 물론 성전에서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로 인하여 그 성전에서 쫓겨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길에서 사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어디서 전하셨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길입니다 주님께서 사거리에 계시고 있습니다,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 새번역입니다. “문짝이 돌쩌귀에 붙어서 돌아가듯이, 게으른 사람은 침대에만 붙어서 뒹군다.” 요한계시록 2:22절을 보면 “볼찌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서 던질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로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란 가운데 던지고” 게으른 자가 누구입니까? 여자 이세밸과 더불어서 행음을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자 이세벨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침상에서 뒹군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교회와 얼마나 행음을 하고 있습니까? 그 안에서 우상의 제물을 얼마나 많이 먹고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을 모르다 보니까 자기가 게으른 자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이 시대는 교회가 아니라 여자 이세벨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구약의 아세라가 신약에 와서 여자 이세벨로 바뀌어 있고 그것과 행음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진리에 대해서 게을러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침상에서 뒹굴고 있습니다, 여자 이세벨이 얼마나 좋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마치 이 세상에 남자가 정말 예쁜 여자를 만나서 그와 침상에서 뒹굴면서 나오기를 싫어하는 것과 같이 게으른 자는 여자 이세벨과 그렇게 행음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여자 이세벨과 행음을 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침상에서 왜 뒹굽니까? 그것이 너무도 좋기 때문입니다, 마치 남자와 여자가 너무 좋아서 침상에서 뒹굴며 일어나기를 싫어하는 것과 같이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게을러서 그렇게 교회 안에서 온갖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행음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회개를 안 합니다, 게을러서 자기가 무엇을 하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회개할 수도 없습니다, 아니 회개할 수 있는 지혜가 있으면 그마나 다행입니다, 여자 이세벨과 행음을 하는 것이 사람의 이성에는 너무도 좋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행위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세벨이 무엇을 먹입니까? 우상의 제물을 먹이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 우상의 제물이 너무 맛이 있어서 침상에서 뒹굴고 일어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침상에서 벗어나면 사자에게 잡혀 먹힐 것 같아 침상에서 떠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문짝이 돌고 있습니다, 그것과 같이 붙어서 떨어지지를 않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자 이세벨이 먹이고 있는 우상의 제물이 너무 맛이 있어서 침상에서 떠나려고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여자 이세벨이 주는 우상의 제물이 자기들의 이성에는 너무도 좋습니다, 우상의 제물이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8장에서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그것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제사 음식이라든지 다른 종교에서 밥을 먹는 것을 마치 우상의 제물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의 일입니다, 교회 밖에서 제사를 그리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당시 고린도지방에 성행을 했던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일로 인하여 제물이 시장에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일을 비유로 해서 교회 안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 이세벨이 주는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서 그 침상에서 뒹구는 것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비유입니다, 문자 그대로를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잠언의 말씀이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이 시대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뒹굴고 있습니다, 누구와 뒹굴고 있는가 하면 여자 이세벨과 뒹굴면서 음행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와 복음과 율법에서와 아카데미 강의에 이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는 강의를 했습니다, 그것을 보시면 됩니다, 우상의 제물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우상의 제물입니다, 그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서 여자 이세벨과 행음을 하느라고 생명에 대해서는 너무도 게으르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을 다 지키려면 얼마나 부지런합니까? 그러나 그것이 우상의 제물이라는 것을 이 시대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 우상의 제물을 먹기 위해서 여자 이세벨과 행음을 하고 있고 그렇게 행음을 하는 것을 침상에서 뒹군다고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게으른 자입니다 진리를 알아 가는데 있어서는 게으른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가 율법을 지키면서 진리를 알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진리를 알아 가는데도 시간이 부족한데 언제 율법을 지키면서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은 여자 이세벨이 주는 우상의 제물을 먹고 침상에서 함께 뒹굴고 있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서 침상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게으르게 살면서도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늘 진리를 알기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으라고 하니까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에 대해서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여자 이세벨과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서 침상에서 뒹굴고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음행하는 것을 이 세상으로 표현하면 침상에서 뒹구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상의 제물을 먹고 그것을 행하느라 진리를 찾지 않고 있는 것을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누가 게으른 자인지 누가 부지런한 자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새번역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밥그릇에 손을 대고서도, 입에 떠 넣기조차 귀찮아한다.” 게으른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얼마나 괴로우면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에 올리기를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실제 이 세상에서 게으른 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게으르면 먹을 것이 있는데 그것이 손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입으로 먹기를 괴로워하겠습니까? 이 세상 일로 괴로워하는 사람은 정말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서 게으른 사람은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 보다 더 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사람도 하지 않은 그 일을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들은 그것이 게으른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26절을 보면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각자에게 모두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각각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주고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이 게으르므로 악한 종은 달란트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남기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달란트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 나온 모든 사람들에게 달란트를 주시고 또 그것을 남길 수 있는 재능까지 주셨습니다, 그 재능이 얼마나 쉬운가 하면 우리말에 누워서 떡 먹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니 잠언의 말씀과 같이 밥상까지 다 차려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떠먹는 것조차 괴로워 하다가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에 취해 있어서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는 일에는 너무도 게으른 것입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교인들이 율법을 지키느라고 너무도 쉬운 믿음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냥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조차도 못하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입니다, 그는 믿지를 않는 자입니다. 믿기만 하면 생명의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데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믿는 것을 괴로워하고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누워서 떡 먹는 것은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아니 믿음을 괴로워하여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너무도 쉬운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생명을 얻는 그것을 괴로워하고 있고 도리어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에 있어서 게으른 자는 이렇게 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게으른 자는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새번역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재치 있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가 더 지혜롭다고 생각한다.” 베드로전서3:15절을 보면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히 대답을 합니다,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항상 대답할 것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에 대해서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는 이 구원에 대해서 대답도 하지 못하면서 자기가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입니다, 구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구원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자기는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영의 일에 있어서 게으른 자는 구원에 대해서 확신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습니다, 그러면 그것에 대해서 대답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대답을 하는 일곱 사람보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는 모든 사람보다 자기가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교회 안에 있는 게으른 사람입니다, 영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자기가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육의 일은 조금 게을러도 됩니다. 그러나 영의 일에 있어서는 절대로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늘 깨어서 성경을 보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부지런하게 연구해서 예언의 말씀에서 영생을 얻는 성도가 되어서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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