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에스겔14:1-5절을 보면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나아와 내 앞에 앉으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무릇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많은 대로 응답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 그 우상으로 인하여 나를 배반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의 마음에 먹은 대로 그들을 잡으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이유는 그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랑을 어떻게 우리에게 보여 주셨는가를 알아야 하지만 이 시대는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 할 수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한다면 그는 스스로 속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벌레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구더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들이 왜 벌레이고 구더기인가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뭔가 대단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어린 아이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그리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그 안에서 문자적으로 알고 있어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그런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를 낮추는 자는 주님께서 높여 주시지만 나를 높이는 자는 주님께서 낮추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가치입니다,
이 세상은 자기의 가지를 높이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가 다 자기의 가치를 높임으로 해서 만족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가치를 높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가치가 높아지면 질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과 같이 자기의 가치를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구더기입니다
그리고 벌레입니다, 그것이 가치를 높인다 한들 모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모르고 점점 더 가치를 높이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 세상 종교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은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는 자기의 가치를 높이고 있지만 성도는 자기의 가치가 무엇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닫고 있습니다. 자기 가치를 높이려고 하면 자꾸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가치를 낮추려고 하면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다릅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의 가치를 높이려고 하는 사람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도는 자기 육체의 가치를 높이는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도와 가라지의 차이입니다,
성도는 자기의 가치를 높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자기의 가치를 높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치를 높이는 것이 사람의 이성으로 너무 바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가치를 높이지 말라고 하면 도리어 믿음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자기 가치를 놓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서 수많은 우상들로 변해 있지만 그 가치를 높이는 것이 사람의 이성에 너무 좋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가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가치를 높이려고 하고 있고 그것을 보면서 믿음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을 믿는 것이지 육체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주님의 가치를 높이고 자기의 가지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겸손의 모양을 내면서 자기의 가치를 놓이는 일에 너무 깊이 빠져 들어가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분만이 높아져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말로는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기들이 한 행위를 가지고 영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한 것을 가지고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해서 그것이 주님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자기들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행위에게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해 놓고서 그것을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해서 그것이 주님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됩니까? 그가 어떤 미사여구를 다 쓴다 해도 그것은 자기 가치를 높이는 일입니다, 벌레와 같은 자기의 가치를 높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모르고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닙니다,
자기 행위를 보고 믿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자기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지 주님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가치를 높이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의 이성에는 그것이 너무 좋아서 서로 칭찬을 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 육체의 모습이 아닙니다, 내가 교회 안에 있는 것을 보고 성도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것은 이제 광야라는 교회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가나안에 들어가야지 성도가 되는 것이지 광야에서 자기의 가치를 높이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자기의 가치를 높이는 일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가 그렇게 우상을 섬기고 있는데 교회 역시 그 우상에게 미혹을 당해서 우상을 섬기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습니다, 아니 우상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스스로 우상이 되어 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그것은 내 가치를 높여서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탈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까? 성경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없다고 분병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를 높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도와주시면 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자기들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이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교인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 육체의 사람은 썩어 없어진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육체의 사람은 절대로 가치가 높아질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무시하고 자기들이 육체로 하는 그것을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썩을 것을 잘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영의 비밀입니다,
바로 아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육체는 반드시 썩습니다, 그 썩을 것을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썩지 아니할 씨를 주시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썩을 것은 썩는 그대로 두고 이제 썩지 아니할 씨를 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 썩을 것이 썩지 않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썩을 것을 가지고 썩지 아니할 것을 만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썩을 것으로는 절대로 썩지 아니할 것을 만들지 못하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썩을 것에 썩지 아니할 씨를 주시고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썩을 것이 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우상을 섬기느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그 썩을 것을 가지고 수많은 우상들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섬기느라 모두가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자기들이 어떻게 우상을 섬기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내 가치를 높입니까?
그것이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구약의 우상이 이렇게 신약에 와서 자기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우상이 되어 있지만 그 우상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면서 자기들이 믿음이 있다고 하고 있고 또 천국에 간다는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나아와 내 앞에 앉으니”
새번역입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 내게로 와서, 내 앞에 앉았다.”
에스겔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마다 선지자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책망하시자 이스라엘의 장로 몇 사람이 에스겔 선지자 앞에 앉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장로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부르고 있는 장로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목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장로가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 장로는 성경적으로 볼 때 장로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그런 직책을 부르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능한 성경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디모데전서4:14절을 보면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서신입니다,
이 시대 목회 서신이라고도 말을 합니다. 그런 말을 하지 말고 그냥 성경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냈을지라도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입니다, 장로에게만 해당이 되는 성경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보아야 하는 성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장로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장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디모데를 속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어느 것으로 부르든지 그것은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성경에서 장로라고 하면 장로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장로가 누구입니까?
성경에는 목사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장로라고 하는 것이 맞고 또 집사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시대와 같은 그런 장로와 집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장로와 집사는 반드시 구원을 받은 성도여야 합니다. 또 그가 복음의 비밀을 아는 자로서 이 복음을 가르칠 수 있는 자라야 합니다,
목사입니다,
사실은 장로라고 해야 맞습니다. 그런 것까지 시비를 걸고자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로가 누구라는 것을 알아야 성경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장로라는 단어를 보고 마치 이 시대 생각하는 그런 장로로 알고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 두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로 하면 목사 두어 사람이 에스겔 선지자 앞에 앉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는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에스겔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공동번역입니다.
“여호와께서 나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너 사람아, 이들은 우상에나 마음이 쏠려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죄짓게 하는 올가미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어처구니없게도 나에게 알아볼 일이 있어 왔구나.”
목사입니다.
이 시대의 목사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에스겔 시대에 있었던 일이지만 이 시대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는 시각부터 바꾸시기 바랍니다, 에스겔 시대의 어느 장로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목사들에게 똑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나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이 시대 목사들이 이 말씀을 보고 있다면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지 않으니까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실제 이 시대 보이는 우상을 섬기는 목사가 없기 때문에 굳이 이 말씀을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육입니다,
그것은 이 시대 영의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장로가 우상을 섬기는 일을 했다면 이 시대 목사들 역시도 우상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우상을 어떻게 섬기는 줄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차라리 성경을 안 보는 것이 더 낫습니다,
목사입니다,
그가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그가 우상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우상을 섬기는 줄을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그 목사에게서 배우는 모든 사람이 다 우상을 섬기면서도 우상을 섬기는 줄을 모르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목사에게서 배우는 모든 사람이 우상 숭배를 하게 되어서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일반 교인 하나가 우상을 섬기면 그는 그 혼자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우상을 섬기는 순간에 그에게서 배우는 모든 사람이 다 우상을 섬기게 되어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장로 두어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두어 사람에 의해서 진노를 받을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상을 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장로들이 우상에게 마음이 쏠려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있으면서도 어처구니없게도 하나님께 물으러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목사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똑같습니다,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자기들이 우상숭배를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골로새서3:5절을 보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우상입니다,
이 시대는 우상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부처와 같이 어떤 신상을 세워 놓는 것을 우상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천주교에서 마리아 상을 세워 놓고 그 앞에서 경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우상숭배를 한다고 하고 자기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으니까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상입니다,
물론 그것도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영의 시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영의 일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그런 우상을 세워 놓은 것을 보고 우상을 숭배한다고 하고 자기들에게서는 그런 것이 없으니까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마치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상입니까?
땅에 있는 지체가 우상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 우상이 무엇이 되었는가 하면 땅에 있는 지체가 우상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보아도 국어를 모르다 보니까 땅에 있는 지체가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지체는 바로 우리의 육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우상이 신약에 와서는 우리의 육체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않으면 그것이 우상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가 살아 있으면 그것이 우상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상입니다,
우리 육체가 우상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아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죽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저 그것을 알고 있고 감성적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지체를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우상을 숭배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는 자기 육체의 정과 역심을 십자가에 목 박았습니다, 그러나 우상 숭배자들은 절대로 지체를 죽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체를 죽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체로 탐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지체가 탐심을 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으로 탐심을 내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기 위해서 탐심을 냈습니다, 자기 지체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갖기 위해서 탐심을 부렸습니다.
탐심입니다,
나쁜 것만 탐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쉽게 말을 해서 학생이 공부를 잘하려고 열심히 하는 것도 탐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와 같이 교회 안에서 열심을 내는 것을 탐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다 우상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려고 자기 지체를 죽이지 않고 탐심을 내다가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탐심을 내는 이스라엘에게 주님께서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나쁩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백번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탐심이라고 하고 있고 지체를 죽이지 않은 행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는 것을 우상으로 삼고 그것을 지키려고 자기 지체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8:1절을 보면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우상의 제물입니다,
이 시대는 우상의 제물이 무엇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린도 지방에 있었던 우상을 섬기는 일을 비유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것을 실제 자기 입으로 먹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설령 우상의 제물이라고 해도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상의 제물입니다,
그것이 실제 우상에게 드렸던 음식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자기 지체를 살리는 것을 우상의 제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체가 살아서 하는 것을 보고 우상의 제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하나님을 위한 좋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니까 너무 좋아서 나도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우상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교회 안에서 찬양을 너무 잘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찬양이 너무 감동을 주어서 자기도 그렇게 부르고 싶어서 매일 찬양을 부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입니다,
그것이 우상이 되어서 지체를 죽이지 않고 탐심에 빠져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모든 것이 다 우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자기 지체를 죽이지 않고 그 지체로 남과 같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그리고 성경에 육체로 행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하는 것 모두가 우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바울처럼 예수님처럼 살 수 없을까~~
그렇게 살고 싶다면 바울이 우상이 되었고 예수님이 우상이 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지 예수 그리스도를 우상으로 섬기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아주 쉽게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예수라는 우상을 섬기겠다는 것과 바울이라는 우상을 섬기겠다는 말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듣기에 좋다고 해서 미혹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 지체가 그렇게 되고 싶어 하는 순간에 그것은 우상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이렇게 설명을 드려서 도무지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이 무엇입니까?
누군가의 행위를 하는 것을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우상의 제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 여행을 다녔습니까? 물론 우리는 전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셨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사도 바울과 같이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사도 바울이 될 수도 없고 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율법을 지키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상의 제물이고 우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목사가 이렇게 했다 하면 그 목사와 같이 하고 싶어서 심지어는 그 목사가 하루에 두 시간을 기도했다고 하면 자기도 같이 그렇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 목사가 우상이 되어서 자기 지체를 죽이지 못하고 탐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8:9절을 보면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성도는 자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죄악에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에스겔 선지자 앞에 온 두어 사람의 장로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자유 하지 못하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이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악한 일입니다,
죄악의 거치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 앞에 온 이 두어 사람의 장로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상을 숭배하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어처구니없게도 나에게 물어볼 일이 있어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자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자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어떠한 악을 행하는 줄을 모르고 하나님 앞에서 와서 물어 보려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이미 교회 안에는 수많은 우상들이 있고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그런데도 이 장로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도 모르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상숭배를 하고 율법을 지키는 그들이 주님을 찾는다고 해서 주님이 대답을 해 주시겠습니까? 그런데도 이 시대 목사들은 기도를 하면서 대답을 듣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무릇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많은 대로 응답하리니”
새번역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서 누구든지, 우상들을 마음으로 떠받들고, 걸려 넘어져서 죄를 짓게 하는 그 올가미를 자기들 앞에 두고, 예언자에게 오면, 나 주가 직접, 그 많은 우상에 걸맞게 그에게 답변하겠다.”
장로입니다,
이 시대 목사들입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있고 죄악에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도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도무지 깨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우상을 섬기는 대로 대답을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이 많습니다.
이 시대 우상이 얼마나 많은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우상을 섬기면서도 그것을 우상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예표로 이렇게 보여주셔서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지만 이 시대는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서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상입니다.
얼마나 많은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여러분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대로 우상의 숫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 합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는 신이 엄청나게 만다고 말을 합니다, 그들은 보이는 우상을 세우고 신을 만들어서 섬기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그보다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상이 얼마나 많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이 장로들과 같이 선지자에게 와서 묻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수많은 목사들이 교회 안에서 우상을 섬기면서 그리고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께 묻는다고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곧 사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섬기는 우상의 수대로 대답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신이 많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보다 더 많은 것이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섬기고 있는 우상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우상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우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됩니까?
요한계시록에서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상이 무엇이라는 것을 몰라서 숭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누군가 어떠한 행위를 하더라도 그것을 마음에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우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이미 육체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지체를 죽인 성도는 절대로 그런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 그 우상으로 인하여 나를 배반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의 마음에 먹은 대로 그들을 잡으려 함이니라”
새번역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모두 우상 때문에 나에게서 떠났으니, 이제는 내가 직접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 하여라.”
두어 장로입니다
그들만 우상을 숭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다 우상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배반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어떻게 이스라엘이 다 우상을 섬김으로 해서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나 모두 다 우상을 송배했습니다,
이 시대는 다릅니까?
이스라엘은 우리의 예표와 그림자입니다, 이스라엘이 다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배반했으면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도 다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어도 이스라엘은 그랬어도 자기들은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우상 숭배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체를 죽이지 않고 자기 지체로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이 다 우상 숭배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다 우상을 숭배했으면 이 시대 역시 다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모든 행위입니다,
그 행위를 따라 하고자 하고 있다면 다 우상숭배입니다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를 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다 우상 숭배를 하면서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이제 그 마음을 다시 잡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를 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다시 잡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다시 잡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이 다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을 보고 우상을 숭배해서는 안 되고 또 거치는 죄악을 행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참 빛을 비춰 주셨습니다. 이제 우상 숭배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성도는 지체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지체를 죽인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가 되어서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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