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강,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요한복음 1:9-13절을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아는 정도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마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모르면서 믿었던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전혀 몰랐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어왔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보내셔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호세아 선지자의 그런 외침에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진행형입니다
이 시대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구약의 이스라엘에게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방인들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이 지혜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물론 당시 이스라엘을 예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방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히브리어로 되어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이름을 아는 것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성경 말씀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알고 있어도 자기들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육적으로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신 선민으로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을 몰랐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겨우 교회에 나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찌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가르쳤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은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성경을 부지런히 가르쳤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행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부지런히 가르쳤는가 하면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율법을 강론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정말 이 율법 그대로 살아온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보내셔서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성경에 있는 문자 그대로 살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지식이 없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제 이스라엘은 성경을 거의 외울 정도로 성경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기독교인입니까?
이스라엘과 비교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성경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이 다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성경을 많이 보고 그것을 문자적으로 외운다고 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정말로 성경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힘썼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기독교인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성경을 많이 보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영생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성경을 보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역시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이성적인 지식을 가지고 자기들이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인들입니까?
그리고 기독교인들입니까? 이 둘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도 이 둘을 짐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들이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그저 종교적인 행위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참 빛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구속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입니다
그것은 진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그것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생에 대한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참 빛이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 56:13절을 보면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빛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빛이 아니라 영의 일에 대해서 빛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일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가 생명을 얻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지 않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에 있습니까?
빛에 비췸을 받고 있습니까? 성경은 그것을 생명에 다니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빛에 비췸을 받으면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빛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참 빛이 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 빛에 비췸을 받으면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빛으로 오셨고 우리 인생들에게 이 빛을 비추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안에 비췸을 받음으로 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비췸을 받고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빛에 비췸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어떻게 비췸을 받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비췸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참 빛입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라고 하니까 우리 육체의 생명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영과 육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참 빛에 생명이 있다고 하니까 자기들의 육체에 생명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 육체가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자기들의 육체가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생명은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1:5절을 보면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영이십니다. 그런데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빛에 비췸을 받으면 하나님과 같은 영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빛입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빛에 비췸을 받으면 우리에게 하나님과 같은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이제 마지막에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빛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참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참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또 하나님을 빛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빛이고 하나님도 역시 빛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까?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성자로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없는 성자라는 단어를 쓰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폄하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참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빛이고 하나님도 빛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에 참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참 빛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 믿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그 분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을 보고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사야서에서는 그 아들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빛을 알고 있습니까?
대충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믿는 것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 삼위에 한 위로 믿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삼위입니다
성경 어디에 삼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삼위에 하나님 중에 성자라고 믿는 것과 그리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믿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에도 기록이 되지 않은 삼위일체를 믿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폄하를 하면서 성자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참 빛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빛은 아버지가 있고 성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빛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도 빛이고 하나님도 빛입니다 다만 주님이 이 세상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을 때는 아들로서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아들이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하늘에 올라가심으로 해서 다시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입니다
이 시대 삼위일체를 믿지 않으면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차라리 이단이 되겠습니다. 아니 삼위일체를 믿을 바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차피 구원을 받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안 믿는 것이 유익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삼위일체를 믿는다 해도 저는 유일하심 참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아니 저에게 삼위일체를 믿으라고 강요를 한다면 저는 차라리 이 세상에서 짐승과 같이 살다가 죽는 것을 택하겠습니다.
참 빛입니다
이 빛이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빛에 대해서 모르면서 아니 잘못 알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라는 종교는 313년 니케아 공회에서 채택이 된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1700년 이상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 빛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빛이 서로 다릅니까? 이 빛에 위가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추시는 빛이 다르고 하나님께서 비추시는 빛이 다릅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삼위일체가 맞을 수 있겠지만 그 빛이 같다면 삼위일체는 허구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인입니다
그들 전부가 삼위일체의 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그것에 대해서 반대를 하겠습니까? 저 역시도 사람의 이성에 따라 그들과 같이 이야기를 하면 편합니다. 굳이 기독교인들에게 싫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습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반대를 합니까?
그것은 우리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영생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반대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를 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삼위일체에 대해서 근거를 할 수 있는 말씀을 찾아 주셔서 반박을 해 주면 저 역시 삼위일체를 믿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비유로라도 그것을 근거할 수 있는 말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과 그리고 그분을 성자로 그러면서 삼위의 한 위로 믿는 것은 전혀 다른 믿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어느 한 가지는 분명히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호세아 선자지자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잘못 알고 있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 영이신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 분을 참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해서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으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입니다
사람이 만든 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누가 삼위일체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 비유라도 그것을 근거할 수 있는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저 종교가 가르치는 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라는 것을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보고도 예수 그리스도를 성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자기를 구원해 주실 하나님을 성자라고 폄하를 하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그분이 이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보고 그가 세상에 계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자가 아닙니다.
지금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가 믿는 아니 자기들의 민족이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자로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조상들이 이제까지 믿어왔던 유일하신 하나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3:3-4절을 보면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에 대해서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그는 광야에서 성막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서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비록 육적으로 성막을 지었지만 그 집보다 그러니까 모세가 지은 집보다 그 집을 원래부터 지은 이가 있으니 그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그가 더욱 영광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집마다 지으신 이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모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인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보고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성자로 믿고 있고 더구나 성경에 기록이 되지도 않은 삼위의 한 위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믿는가에 따라 구원을 받을 수 있고 또 구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분명히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인생과 같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을 한 그대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영존하시는 아버지가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너무 중요합니다.
아니 구원의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이 문제가 자기들의 육체의 죽음의 문제라면 이렇게 대충 넘어가겠습니까?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를 해서 반드시 이것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고 그렇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것이 영의 일이다보니까 어떻게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은 오직 믿음으로만 역사를 하는데 믿으려면 반드시 성경에서 영의 일을 알아야 하는데 어느 누구 하나도 이 영의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다보니까 사람들이 무관심하게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입니다
이것을 누가 느낄 수 있습니까? 누가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가 되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누가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할 수 있습니까? 영은 말씀 그대로 영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은 종교에 의해서 거의 세뇌가 되고 있고 종교가 그렇다고 하면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에 대해서 지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도 알 수 있는 이 영의 일을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성으로 이해를 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이 그를 알지 못 했습니다.
어느 세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사도 요한이 이 세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당시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과 같이 교통과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000년 전의 세상은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그곳이 세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입니다
이스라엘을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세상이 아닙니다. 그때는 자기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곳이 세상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유대교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곳이 세상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선민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자기 땅에 오셨지만 그 백성이 영접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영접지 않았는가 하면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창조주 하나님으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혜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입니다
주님의 외모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그림입니다.
사실 그런 그림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잘 생겼습니까? 아마도 그런 모습으로 오셨다면 이스라엘은 그래도 혹시 어느 정도는 영접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라고 오신 그분을 보니까 보통의 사람보다도 더 못했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외모입니다.
만약에 고운 모양이 있고 풍채가 있고 흠모할 만한 것이 있었다면 이스라엘은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으로 보아도 아무 볼품이 없는 사람과 같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하니까 이스라엘로서는 도무지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어느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가고 있습니까? 고운 모양도 있고 풍채도 있고 흠모할 만한 것이 있는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라고 오신 그분이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이스라엘이 영졉 할 수 있었겠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자기들을 구원해 주실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 외모를 보니까 일반 사람보다도 더 못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영접한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또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 것을 사람들이 분별할 수 있습니까? 분별이 안 되니까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의 이성으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기들이 눈으로 보았을 때 믿을만한 곳으로 사람들이 가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느냐 다른 복음을 전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영접하는 자
사람들은 성경의 문자를 참으로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자기들이 그렇게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을 하는 것으로 영접을 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상고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 땅에 주님이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냉정하게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영접을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는 종교적인 그런 믿음이 아니라 먼저 주님이 누군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그가 누군가를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앞에서 말씀을 드렸듯이 이 시대는 주님이 누군가를 전혀 모르고 그저 종교에 의해서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가 많습니까?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주님을 영접할 것 같습니까? 영의 일도 모르고 영의 생명도 모르고 그가 누군가도 모르고 있는 그들이 영접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영접하는 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사도 요한이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영접하는 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 것입니까? 그런데 이 권세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사도 요한이 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자녀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 육체를 보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인 자기 육체를 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누군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의 육체를 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들은 혈통에서나, 육정에서나, 사람의 뜻에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났다.”
육체입니다
우리 인생의 육체는 어디로서 났습니까? 우리 인생은 혈통으로 그리고 육정으로 사람의 뜻으로 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영의 일과 육의 일을 전혀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저 윤주만입니다
어떻게 대어났습니까?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윤주만이를 기도를 해서 하나님께서 줘서 났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 윤주만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이 윤주만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성경에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 윤주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영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제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으로 뜻으로 났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각 사람에게 참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빛에 생명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무엇인가 하면 영이고 이 영이 있는 성도를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먼저 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참 빛을 비췸을 받았습니다. 그 빛에 생명이 있음으로 해서 이제 하나님께로서 다시 났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에 비췸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는데 그 자녀가 누군가 하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입니다
우리는 먼저 육으로 한번 났습니다. 그 육체는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참 빛을 비취주셨습니다. 그 빛에 생명에 았는데 그 생명은 우리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영의 생명이고 그것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일을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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