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로마서 강해 -

로마서 강해 103강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윤주만목사 2018. 1. 22. 08:04


로마서10:17절을 보겠습니다. (253)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선지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선지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초대교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초대교회는 이제 막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되었던 때입니다 이방에 빛을 처음 비추었던 때라고 보면 맞습니다.

그 초대교회를 지나자마자 종교가 되었습니다.

유럽에 기독교를 보고 그들이 하나님을 믿은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럽의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놓은 교리에 따라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가 공인이 되고 난 후에 기독교는 교리를 세우기 시작을 했고 그 교리에서 벗어나지를 못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만들어진 교리가 이제까지 그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바로 풀었다면 그들이 세운 교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325년에 세운 삼위일체라는 교리부터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만들어진 사도 신경을 지금까지 교회는 주문과 같이 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가 맞습니까?

그리고 사도신경이 맞습니까? 어느 것 한 가지도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니케아 공회에서 그리고 그 후에 콘스탄틴노플 공회에서 채택이 된 교리를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미 그 이전에 돌아설 수 없는 길을 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입니까?

기독교는 복음이 아닌 것을 가지고 논쟁을 했고 그것을 다수에 의해서 결정을 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다수의 사람이 동의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제까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우리는 볼 필요도 없고 성경도 볼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입니다

로마서1장을 시작하면서부터 이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해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 복음입니다 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복음에 순종을 했습니까? 우리가 성경에서 보고 있는 믿음의 선진들 외에는 아무도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였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11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 지극히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대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는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 두 교를 짐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도 그렇고 기독교도 그렇고 복음에 순종치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는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체가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백번 생각해도 옳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누가 알 수 있습니까?

전도서에서도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지혜자인지 누가 우매자인가를 모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잠언에서는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지혜자를 찾을 수도 없고 그리고 주님의 교회를 찾을 수도 없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까?

성경에서 말씀하는 지혜를 찾지 못 합니다 도리어 우매자를 보고 사람들은 지혜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른 교회도 찾지 못 합니다 주의 만찬을 나누는 바른 교회를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가 아무리 세상에서 지혜가 있다 하고 성경을 볼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이 있다 해도 절대로 찾을 수 없습니다.

아니 바른 교회로 인도함을 받아도 떠나갑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지금 보이는 기독교의 교회들이 다 참 교회로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예배를 보고 그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보면 그 안에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과 같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설령 자기 곁에 누군가가 복음을 전한다 해도 그 복음을 듣기 보다는 그런 행위를 따라가는 것이 사람의 이성입니다

누가 믿습니까?

우리가 교제하고 있는 이 영의 일을 누가 들을 수 있습니까? 사람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영의 일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야 한다면 어느 누구도 그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안 믿습니다.

저는 큰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데 긍휼히 여김을 받을 사람이 이 시대 많이 있다면 초대 교회와 같은 놀라운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겠느냐고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누가 믿겠습니까?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오직 예수라고 힘주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로마서를 보아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열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의 말씀과 같이 지식을 좇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의 의를 세우면서 하나님의 의를 힘써 복종치 아니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안 믿습니다.

누가 이 영의 일을 믿을 수 있습니까? 구원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영의 구원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이 시대 우리가 이 영의 일을 믿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다 믿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 영의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입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듣지도 못했으면서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복음을 듣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을 시인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제까지의 기독교에서는 복음이 전해지지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입니까?

이 시대 모든 목사들이 오직 예수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예수가 아닙니다. 아니 복음을 듣지도 못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복음이라고 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신학교에서부터 복음이 아닌 다른복음을 배운 그들이 혼자 나와서 교회를 개척하고 성경을 보면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반드시 들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들어야 믿을 수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들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의 문자를 듣는 것으로 자기들이 복음을 들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까?

그것은 절대로 복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복음이 무엇이고 다른 복음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그대로 행하는 것을 다른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성경의 문자에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이 복음입니다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율법을 보았을 때 같은 말씀을 보더라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복음이 될 수 있고 다른 복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신약에서 문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도 물로 필요하겠지만 우리는 구약에서 복음이 무엇이고 다른 복음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들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신학자들이 기록한 주석이나 강해를 보더라도 복음이 전혀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반박을 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는 그들의 글을 보면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저는 그렇게 밖에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구약을 어떻게 보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3:19절을 보겠습니다. (1154)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요한복음7:7절을 보겠습니다. (155)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또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저 역시도 예전에 기록했던 설교들을 다시 보면 그때는 제가 몰랐던 말씀들이 참 많이 있었다는 것을 늘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글로 남겨졌던 모든 사람들의 글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시대 기독교를 보면 대강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기독교를 보면 복음이 전혀 전해지지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서의 말씀입니다

예전에 썼던 설교를 제가 안 찾아봤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도 이 말씀을 잘못 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들음으로 해서 내 안에 믿음이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인자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직접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말씀은 교회 안에서 설교로 한두 번쯤은 누구나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교인들에게 전도를 강요를 할 때 거의 모든 목사들이 이 말씀을 가지고 설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시대 우리가 에스겔과 같은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합니다.

거의 모든 이단들이 이 말씀을 강조를 하면서 교인들을 거리로 내 몰고 있고 어떻게 하든지 자기들의 종교를 전하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말을 합니까? 네가 악인에게 전파를 하면 네 죄가 아니고 전하지 않으면 네 죄가 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파수꾼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 증인이라는 사람들은 이 파수꾼이라는 책을 들고 다니고 있습니다. 왜 그 책을 들고 다니고 있습니까? 바로 이 에스겔의 말씀을 보면서 자기들은 의인이고 하나님께서 세우셨고 세상 사람들은 악인이니까 자기들이 그들에게 가서 악인들을 깨우쳐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통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파수꾼이라는 책을 들고 다니니까 파수꾼이라는 말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사실 이 말씀을 그대로 전하면서 너희가 세상에 나가서 악인들을 깨우쳐서 그들이 회개를 하게 해서 그 악한 행위에서 돌이켜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에스겔 선지자를 누구에게 보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방에 가서 악인을 깨우치라고 하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있는 악인들에게 가서 그들을 깨우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지금 에스겔 선지자가 누구에게 가서 그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라고 하는 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마치 세상 사람들이 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 역시 악한 자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엄밀히 말을 해서 악인이라고 하기보다는 죄인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20절 말씀을 잘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으면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는다고 말씀을 하니까 더욱 사람들은 자기들이 전도를 해야 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죽지 않으려면 교회 안에 어떻게 하든지 한 사람이라도 전도를 해야 하고 그렇게 전도를 하면 에스겔의 말씀에 그래도 조금이라도 따른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말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그것이 악한 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전도를 해서 누군가 신앙생활을 아주 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마치 자기가 대단한 일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런 것을 간증으로 하면서 자기의 의를 세우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고 있습니다.

악인입니다

세상 사람은 악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악인입니까? 늘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시인하면서 복음에 복종치 아니하는 사람들이 악인입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저희가 다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사람들이 악인입니다

이 시대는 모릅니다.

누가 죄인이고 누가 악인인가를 성경을 보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악인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나오고 있습니까? 제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이 악인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누가 악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너무 단순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자기들은 의인이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악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악인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는 사람이 다 악인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불의에 해당이 되는 율법의 행위와 그리고 신앙생활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이 다 악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리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에스겔 선지자는 누구를 예표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예표하고 우리에게 그것을 하라고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잘 모르면 그는 악한 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악인을 깨우쳤습니까?

사람들은 누가 악인인지도 모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누가 악인인가를 알고 있습니까? 그들은 악인에 대해서 정확한 정의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악인이 누군가를 알아야 그들을 깨우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에스겔 선지자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선지자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선지자로서 하실 일을 에스겔을 통해서 미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파수꾼으로 세우셨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을 미리 예표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누가 악인입니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않은 사람들이 악인입니다 누가 안 믿고 있습니까? 유대인들이 안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유대인들은 믿지를 않습니다. 영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제자들조차 너무 어렵다고 하면서 이 말씀을 누가 받을 수 있겠느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의 행사가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세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물론 전체 세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 그대로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악인들에게 깨우치기 위해서 세상이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이 악하다고 합니까? 우리는 세상이 악한 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에스겔의 말씀 그대로 세상에 대해서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이 악하다고 말씀을 하셨으면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듣지를 않고 도리어 주님을 대적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악인들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들이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대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악인들을 깨우치셨습니다.

이제는 아닙니다.

이미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이 누구를 예표하는 가를 알고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세상이 악하다고 깨우치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세상에 오셔서 세상이 악하다고 증거를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왜 자기들이 악한 가를 모르고 도리어 의롭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어디서 들어야 합니까?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주님이 세상에 대해서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악한 자들이 도리어 진짜 세상에 대해서 악하다고 하면서 그들을 깨우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누가 깨우쳐야 합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깨우쳐서는 안 됩니다 자기들이 성경을 보고 깨우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왜 악한가를 모르고 마치 자기들이 선지자나 된 것으로 생각해서 세상에 나가서 그 악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악한 행위를 전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이 시대는 믿음이 없습니다. 왜 믿음이 없는가 하면 누가 악한 줄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믿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불행한 일은 성경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습니다. 설령 전한다 해도 누가 우리의 전하는 바를 믿겠느냐는 그 말씀대로 아무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성경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자도 없고 또 누군가 복음을 전파한다 해도 그것을 들을 사람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유대인과 같이 악한 자들이 되어서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점점 더 악한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신명기14:28-29절을 보겠습니다. (285)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십일조입니다

십분의 일입니다 이 시대 가장 문제가 되고 있고 더욱 강하게 사람들을 묶고 있는 것이 이 십일조에 대한 율법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런데 잘못 들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는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잘못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에스겔서의 말씀과 같이 교회 안에 있는 악한 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악한 자가 깨우쳐서 악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진리를 대적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 역시 그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리를 대적하면서 악한 자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이스라엘과 같이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왜 합니까?

복음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복음을 들었다면 절대로 십일조를 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 역시 듣지를 못해서 믿지를 못하고 믿지를 못하니까 율법의 행위를 자기들의 육체로 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교회가 왜 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는 이단이고 정통이고 할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들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해서 믿음의 비밀을 모르니까 점점 더 율법주의로 빠져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들어야 합니다.

어디서 들어야 합니까? 물론 성경 전체에서 복음을 알고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복음을 듣지를 못해서 자기들이 소득의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소득의 십일조를 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빤히 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은 이레에 이틀을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게 했는가 하면 성경을 보고 그렇게 했습니다. 성경을 보았으면 복음을 들어야 하는데 복음을 듣지를 못하니까 자기들이 소득의 십일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를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까?

세리는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소득의 십일조를 한 바리새인은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 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하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역시 바리새인과 같이 소득의 십일조를 아주 철저하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득의 십일조입니까?

그것이 성경에 있는 말씀입니까? 그것은 바리새인이 만들어 놓은 십일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바리새인이 만들어 놓은 소득의 십일조를 하면서 저주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악한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들어야 합니다. 반드시 복음을 보고 들은 성도만이 믿을 수 있습니다. 왜 바리새인들이 믿지를 못했는가 하면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소득의 십일조만 해도 복음을 대적하는 악한 행위인데도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누가 지켜야 합니까? 율법을 문자 그대로 내가 지키려고 하는 그 자체가 악한 행위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라고 주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율법을 누가 지켜야 하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나라가 있습니다.

왕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대신들도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앉은 대신이라고 해도 왕이 해야 할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왕이 해야 할 일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는 반역자가 되어서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왕이 시킨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왕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백성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은 누가 지켜야 하는가 하면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것을 몰랐고 이 시대 역시 성경을 보면서 누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왕의 일에 침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는 정말로 악한 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과의 싸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다고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새인과 같이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면서 기도는 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그렇게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는 것과 감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바리새인은 구원을 못 받는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믿어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십분의 일입니다.

매년 십분의 일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 삼년 끝에 십분의 일을 드리고 있습니다. 같은 십일조라고 해도 별로 틀리지 않습니다. 매년에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네 권속과 그리고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 삼년 끝에 십일조입니다

그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다 내어 성읍에 저축하여 두고 그것을 분깃이 없는 레위인이나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율법을 보았으면 여기서 복음을 들어야 하고 또 믿어야 합니다.

율법 누가 지킵니까?

늘 기본을 가지고 출발을 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지켜야 하는가 하면 주님이 지키셔야 합니다. 성경에서 너는, 네가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은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토지소산의 십분의 일입니다

토지는 누구의 것입니까? 토지는 이스라엘의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토지는 내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에 하나는 내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토지소산이 누구의 것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객이 누구입니까?

그리고 고아와 과부가 누구입니까? 이미 아카데미 강의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나그네고 고아고 과부라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적으로 객이고 고아고 과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토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토지가 누구의 것입니까?

우리는 토지가 없는 나그네고 고아고 과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기본을 모르니까 바리새인들과 같이 이 시대 교인들이 교회 안에서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악한 일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어디에도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라는 말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매 삼년 끝에 십분의 일입니다

누가 이 십분의 일을 창고에 쌓아 두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 하늘 창고에 쌓아 두셨습니다. 주님이 계시는 성읍은 하늘 예루살렘입니다. 그 창고에 쌓아 두셔서 우리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가 먹고 배부르게 하시고 있습니다.

나를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성경을 보고 믿을 수 있습니까?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바리새인들을 따라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는데 주님께서 그런 바리새인들에게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소득의 십일조를 하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교회를 무너지게 합니까?

이 시대 보이는 그런 교회는 다 무너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대로 지은 이스라엘의 성전도 무너뜨리신 분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보이는 성전을 보고 아세라를 섬기듯이 하고 있으니까 그것을 보고 음행을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완전히 무너뜨리셨습니다.

교회가 중요합니까?

그 보이는 교회가 왜 중요합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 성도들입니다 그런 보이는 교회가 없으면 어떻습니까? 집이면 어떻고 남의 사무실이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예배할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십일조가 없으면 복음을 못 전합니까?

그런 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십일조가 없어도 얼마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한 번도 십일조를 받은 일이 없지만 이제까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누가 하고 있는 줄을 성경을 보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입니다.

토지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그럼 토지소산의 십분의 일을 할 수 있는 분도 주님밖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 토지소산의 십분의 일을 주님이 하늘 창고에 쌓아 두셨습니다. 그것을 우리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가 먹고 배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주님이 성읍에 쌓아 두신 것을 먹으려 하지 않고 자기들이 소득의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십일조가 개 같은 자의 소득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5:6절을 보겠습니다. (5)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토지소산의 십분의 일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하늘 성읍에 쌓아 두신 주님의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의가 없는 나그네고 고아고 과부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아야 이 십일조를 먹을 수 있습니다. 아니 내가 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주님이 성읍에 쌓아 두신 의를 믿어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배고픈 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가 없어서 배가 고픈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면 어떻게 합니까? 주님이 성읍에 쌓아 두신 의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 의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악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성읍에 쌓아 두신 토지소산의 십분의 일을 먹으려 고는 하지 않고 도리어 자기들이 부자가 되어서 바리새인들과 같이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악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 십일조를 정성을 다 해서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혀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마귀의 자식이 되어서 바리새인들과 같이 자기 소득의 십일조를 교회 안에서 하면서 그것을 우상으로 섬기면서 부자가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 합니다 우리는 십분의 일을 할 수 없는 나그네고 고아고 과부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복음을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의에 주린 자입니다 그 의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하늘 성읍에 쌓아 두셨습니다. 그렇게 의에 주린 자는 주님이 성읍에 쌓아 두신 십분의 일을 먹고 배가 부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마태복음7장에서 너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의가 없는 사람에게는 신명기의 말씀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소득의 십일조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복음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복음이 안 보니까 믿을 수 없고 믿지를 못하니까 교회 안에서 자꾸 악만 더 행하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무엇을 믿습니까? 추상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분명한 영의 일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추상적으로 믿는다고 하면서 바리새인들과 같이 악한 자가 되어서 자기가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면서 마음으로 부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는 십일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토지가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토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모르는 무식한 자들은 교회 안에서 개 같은 자의 소득으로 십일조를 드리면서 점점 더 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입니다

우리가 기업이 어디 있습니까? 토지가 어디 있습니까? 영의 일을 모르고 자기 육체로 가지고 있는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성읍에 쌓아 두신 토지소산의 십분의 일을 먹는 것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먹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의 말씀을 들으면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찾아서 믿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보면서 바리새인들과 같이 마귀의 자식들이 되는 것을 자청하고 있습니다. 믿지를 않고 있으면서도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안 믿고 있습니다.

모두가 부자가 되어서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복음을 전하는 자가 없습니다.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아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른 복음에 빠져 지식을 좇지를 않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고 있습니다.

먹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먹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한 자들은 자기들이 소득의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하는 그 행위가 얼마나 악한 행위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들이 십일조를 하면서 어떻게 주님이 성읍에 쌓아 두신 십분의 일을 먹고 배부를 수 있습니까?

절대 못 합니다.

아니 먹지도 않습니다. 이미 배가 불러 있는 그들이 왜 먹겠습니까? 이미 자기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복음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주님이 성읍에 쌓아 두신 토지소산의 십분의 일이 무엇인가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에 빠져 힘써 복음을 복종치 않으면서도 교회 안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배가 고픈 사람만이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배가 부른 사람이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배가 고픈 자인가 아니면 배가 부른 자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막연하게 배가 고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없어 망하는 길로 가면서도 지혜를 구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신명기28:1절을 보겠습니다. (30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히브리서1:4절을 보겠습니다. (353)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빌립보서2:9절을 보겠습니다. (31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성경을 너무 모릅니다.

아니 무지에 가깝다고 해야 맞습니다. 이 시대는 누가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또 누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있는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것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치우쳤으며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명기의 말씀을 보고 자기들이 구약에 있는 율법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 말씀을 보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면서 살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모르면 자기가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자기가 육체로 하려고 하면서 복음에 복종을 하지 않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그의 명령을 지킬 수 없는 인생입니다 만약에 우리 중에 어느 한 사람이라도 그의 명령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신다는 그 말씀을 보고 그의 명령을 지키려고 하면서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까? 점도 없고 흠도 없어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은 생각하지 않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 나게 하신다고 하는 그 말씀에 꽂혀서 앞뒤 생각도 하지 않고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입니다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면 다리가 찢어진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 우리 속담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키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뱁새들이 자기 주제를 모르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우리는 태어나기를 진토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르시겠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오해를 해서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육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지 우리 육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또 그 문장에서만 해석을 하려고 하다가 자기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다가 다리가 찢어지는 불행한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그것의 예표가 이스라엘의 광야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아가고 있는 삶이 예표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에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를 않고 육체로 가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을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와 빌립보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이 명령을 지키셨습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가 천사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신명기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셨습니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이제 의인으로서 죽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명령을 다 지키신 것을 히브리서에서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뛰어납니까?

우리가 아닙니다. 악인들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뛰어 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주님께서 신명기의 말씀을 다 지키시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 나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그것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명령을 지킬 수 있습니까?

그것은 안 됩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시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신 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복을 받음으로 해서 우리가 천국의 복을 받고 있습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된 것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복음이 전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져야 듣고 믿을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복음이 안 보이고 있고 어느 누구도 복음을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명령을 자기들이 지키려고 하다가 저주를 받았는데도 이방의 교회 역시 성경을 똑같이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봅니까?

그 안에서 복음을 보고 듣고 믿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성경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이방의 교회도 역시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 안에서 복음이 보여야 하는데 이스라엘과 같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세상 초등학문에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으려면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이 무엇인가는 이제까지 로마서 강해를 하면서 율법을 보면서 충분히 말씀을 드렸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보고 자기들이 그 율법을 지키려고 하고 있다면 그는 힘써 복음에 복종치 않는 사람이 됩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까? 바로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문제 때문입니다 그 율법을 주님께서 악하다고 하시니까 참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받아들이지를 못 합니다 자기들의 이성으로는 분명히 옳은데 그것이 악하다고 하니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만이 뛰어나신 분입니다 우리 인생은 안 됩니다 우리는 죽으면 그대로 썩어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심으로 우리가 영으로서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골로새서3:16절을 보겠습니다. (327)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못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보아야 하는데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만들어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혀 풍성하지가 않고 있습니다. 구약을 보면서 거의 다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님이 하셔야 하는 일을 자기들이 행하는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도리어 선하고 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믿겠습니까?

몇 가지의 말씀을 인용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합니다. 제가 말씀을 드린 것은 아주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도 다 알지 못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성경을 보면서 복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100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1000개를 보았습니다. 누가 믿을 수 있습니까? 물론 100개만 보고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전혀 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데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없어서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이 시대 교회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까?

아무도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성막을 보면서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막에서도 그리스도를 찾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입니까?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아닙니다. 이 시대는 거의 도덕선생을 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저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고 있고 거의 도덕을 가르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 도덕이 사람의 이성에 옳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참인 줄을 알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 아무리 보아도 그리스도의 말씀이 안 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저 자기들의 종교를 위해서 필요한 장식에 불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누가 믿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말씀도 듣지도 않는 그들이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믿지를 못하니까 교회 안에서 지식을 좇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율법을 지키면서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24절을 보겠습니다. (26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있어 복음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그리스도를 전혀 못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그리스도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지혜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립니다.

이 시대 목사들이 하고 있는 말은 절에 있는 스님이 성경을 30번 정도 읽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되고 있습니다.

구원에 있어 능력입니다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있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무지한 자로 살아가고 있으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있어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교회가 너무 오랜 기간 율법을 지키다보니까 이제는 아예 감각도 없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이제까지 기독교라는 종교는 복음을 전하지 못 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깨어서 복음을 전했다면 그마나 다행이겠지만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어느 누구도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는 교리로 세워지면서 이제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바꿀 수 없는 환경에 까지 이르렀지만 사람들은 바쁜 삶 속에서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끌려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제가 이제까지 본 책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는 책을 못 보았습니다. 모양은 그럴듯한데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억 명의 사람이 아니 수십억 명의 사람이 그렇게 종교에 의해서 사망으로 가고 있고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 바다모래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 복음을 찾아야 합니다. 마치 보화를 캐는 심정으로 복음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 안에서 교제를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성경에서 이 복음을 찾아서 알고 믿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성경에서 이 복음을 보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은 성경에서 이 복음을 못보고 있으면서도 기독교라는 종교에 의해서 포승으로 묶여서 끌려가고 있습니다. 자기 장래의 일을 알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육의 생각만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계시가 되어서 믿고 있습니다.

로마서10:18절을 보겠습니다. (253)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그들은 들은 일이 없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에 "그들의 목소리가 온 땅에 퍼지고, 그들의 말이 땅 끝까지 퍼졌다" 하였습니다.”

복음입니다

이스라엘이 듣지를 못했습니까? 이방에는 아직 복음이 전파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복음이 전파가 되었습니다. 지금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 하면 이스라엘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계속해서 선지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에게 복음이 전파가 된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나타날 때마다 그들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도 알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온 땅에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복음을 듣지 못했다면 핑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아직 이방에는 온 땅에 복음이 전파가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미디어가 발달을 했고 또 성경이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핑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믿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 복음을 전파하시지 않았다면 몰라도 이스라엘 온 땅에 복음을 전파하셨는데도 이스라엘은 복음을 듣기를 즐거워하지 않고 제사를 드리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했지만 이스라엘은 듣지를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늘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자기들이 듣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이 듣지를 못했다고 하니까 그것에 대해서 반박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실제 이스라엘은 복음을 듣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저희가 듣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그렇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전했으면 거기에 복음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소리가 땅 끝까지 이르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소리가 이스라엘 끝까지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선지자들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도 듣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을 보고 있는 그들이 듣지를 않았다고 말을 하니까 사도 바울이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박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가 듣지를 못해서 복음을 믿을 수 없다고 하니까 사도 바울이 그렇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그 문장의 흐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리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구약에서 많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전했지만 이스라엘은 그렇게 듣지를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언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저희가 듣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그렇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런 말씀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국어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는 목사들이 국어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국어도 모르는 그들이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공부를 하면서 성경의 모순만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이 정말 잘 번역이 되어 있는데 자기들이 조금 아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가지고 한글개역성경에서 잘못된 번역을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이 시대 목사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할 때 히브리어나 헬라어 원어 하나 정도는 꼭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한글개역성경이 부족한 것처럼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한글도 모르는 그들이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가지고 자기 지식을 자랑하면서 성경을 폄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한글의 문장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이 어떻게 성경에서 복음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허황된 말에 모두가 속고 있습니다. 마치 그 뜻이 바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알아야 한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한글개역성경은 무의미 하고 우리는 성경을 볼 필요도 없게 됩니다.

마태복음19:8절을 보겠습니다. (31)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신명기24:1절을 보겠습니다. (298)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복음이 안 전해졌습니까?

이스라엘 온 땅에 복음이 전파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이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았습니다. 어느 율법을 보았습니까? 신명기의 말씀을 그들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서 수치가 발견이 되면 이혼 증서를 써서 주고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내라는 말씀을 보고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율법입니까? 복음입니까? 이 말씀을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 연고도 없이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가하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고 명하였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는 본래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혼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은 육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어서 내어 버리라고 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가 너희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 버림을 허락하였으나 본래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복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은 이미 우리가 그리스도편지에서 설교를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내입니다. 누구의 아내입니까? 먼저 율법의 아내였다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이제는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우리가 다시 율법의 남편에게 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온 땅에 이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마음이 완악해져서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육적으로 이혼을 하는데 이 말씀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이혼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이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복음을 들었는데도 그 복음을 가지고 마음이 완악해져서 자기들이 이혼하는 것에 대해서 정당성을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땅에 복음을 전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복음을 듣지도 못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안 들었습니까?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대화를 보더라도 이 사람들은 신명기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분명히 신명기의 말씀은 우리에게 있어 복음입니다 우리가 전부 율법에게서 이혼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천국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남편이 없습니다.

그때 우리가 다시 율법의 남편에게 가면 안 된다고 율법으로 정하셨습니다. 율법의 남편이 우리를 다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율법에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다시 아내로 받아들여서 율법을 지키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은혜가 되는 복음입니까? 분명히 이스라엘은 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이 말씀이 복음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자기들이 이혼을 할 때 자기들의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써서 내어 버리고 있습니다.

저희가 듣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은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온 땅에 이 복음이 퍼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복음이 안 되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역시 구약을 보면서 이스라엘과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희가 듣지 않았습니까?

만약에 듣지를 않았다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앞에 와서 이혼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기들도 들었기 때문에 신명기의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우리를 아내로 삼으셨지만 이스라엘은 이 복음을 듣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것은 이 시대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성경을 누구나 가지고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들 정도나 성경을 볼 수 있었지 일반 백성은 성경을 볼 수 없어서 절기 때에 제사장들이 성경을 읽어주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 안에 있는 누구라도 성경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온 땅에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주셨으면 이제 성경을 보면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역시 아마도 똑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 분명합니다.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성경이 있는데 듣지 못했다는 말이 합당합니까? 자기들이 들으려고 지혜를 구하지 않고 있는 것이지 성경은 모두가 복음입니다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각자가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복음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는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19:4절을 보겠습니다. (815)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그 소리입니다

어떤 소리입니까? 복음을 전하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 시대 거의 모든 나라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소수 부족을 제외하고는 각 나라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이 되어서 전파가 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지 못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방언의 은사를 주시고 거의 모든 나라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듣지를 못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들이 종교에서배운 그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또 있습니다.

지혜를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정말 영혼을 사모해서 성경을 본다면 이 시대 목사들이 전하는 다른 복음에 대해서 성경과 일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도 안 보고 있고 설령 그런 말씀들이 보인다 해도 거대한 종교의 힘에 굴복이 되어서 감히 그 이상을 생각하지도 않고 지혜를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말씀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 말씀을 보았으면 요한복음의 말씀과 서로 문자적으로 배치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을 본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면 왜 신명기에서는 그렇게 기록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르게 말씀을 하시는가를 깨닫기 위해서 지혜를 구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들으면 뭐합니까?

성경을 보면 뭐합니까? 그것이 왜 그런가 생각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저 문자적으로 보고 있고 그것을 많이 아는 것으로 자기가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이 오실 때 우리가 언제 복음을 들었냐고 대답할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입니다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성경에 있는데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