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5:10절을 보겠습니다. (신 245쪽)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구원을 얻는다고 하니까 이 세상의 사상이 그대로 교회 안에 들어와서 자기가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썩는 것을 나라고 할 것인가 썩지 아니할 것을 나라고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육체는 썩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썩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썩는 육체가 나라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어차피 썩어 없어지는 것을 나라고 한다면 그는 썩는 그것을 바라고 사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이 썩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썩는 육체를 구원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육체와 정과 욕심을 잘라 버리지 못 합니다 그 죽은 자의 시체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썩은 것이 나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아니 영의 생명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을 살리십니다.
육체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영을 살리셔서 구원을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자기가 무엇을 해서 그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하늘의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고 그것은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육체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영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육체로 자기 종교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영의 일은 전혀 모르고 육체의 일만 하고 있습니다. 살리는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는 자기 육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것은 생명입니다 그냥 생명이 아니라 내가 영원히 살아야 하는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조금만 주의 깊게 보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되는데도 모두가 종교에 빠져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아담이 죄를 짓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담과 함께 살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그 아담이 이미 죄를 짐으로 해서 더 이상은 하나님과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영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아담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하셨습니다. 물론 흙으로 지으심을 받은 아담의 형상을 그대로 입고 오셨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아담의 형상을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부활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부활을 하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로 살리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리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에게도 똑같이 보내 주심으로 해서 그 영이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도 육체는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죽고 어떻게 사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분명히 기록이 되어 있어도 주님께서 다시 사신 것과 자기들이 구원을 받는 것은 다른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부활을 할 것인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열매가 누구입니까?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영의 생명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 영이 지금은 잠자는 것과 같이 있다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입니다
그 영이 잠자는 자들 가운데서 깨어나 하늘의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몸입니다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이런 몸이 아니라 신령한 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신령한 몸이 어떤 몸인지를 모릅니다.
아니 설명이 안 됩니다
내세의 일은 인생들의 언어로는 표현이 안 되기 때문에 하늘의 신령한 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 언어로 표현이 되어서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 성경은 이렇게 기록이 되지 않고 그 영에 대해서 정확하게 표현을 해서 말씀을 하고 그것을 믿을 수 있게 하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영입니다
그리고 내세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도 설명을 하지 못하는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주님은 분명히 말씀을 하실 수 있지만 아마도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믿음을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역사입니다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이것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셔 야지만 우리가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가면 진리의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십니다.
그때 내가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을 성령으로 난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을 구원해 주십니다. 이 영에 대해서는 더 이상을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영이라고 말씀을 하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이 영을 이해하려고 해서는 절대로 이해가 되지 않고 도리어 진리에서 벗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근거가 되어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근거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도 그와 같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오직 예수인가 하면 다른 방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떻게 해도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말로만 오직 예수가 아닙니다. 그로 말미암아 라는 말씀을 바로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는 근거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그 아들을 죽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씀합니까?
지금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 원수를 위하여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수입니다
누가 원수를 살리기 위해서 그의 아들을 죽이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원수가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레위기19:18절을 보겠습니다. (구 176쪽)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성경이 얼마나 심오합니까?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성경을 보고 안다고 하지만 실상은 겨우 구원을 받을 정도만 깨닫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성령이 오신 성도가 그렇지 지금 기독교인들은 겨우 문자를 아는 정도를 가지고 자기들이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성경을 보고 영의 생명에 대해서 그마나 조금이라도 알 수 있고 진리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청동거울을 보는 것과 같이 희미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가 성경을 보고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 그와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원수입니다
왜 원수가 되었습니까? 율법의 행위 아래 있다가 진노를 받게 되어서 원수가 되었습니다. 조금 더 명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사단이 우리 인생들의 마음을 미혹해서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지 못하고 있는 그 상태가 원수라는 말씀입니다
죄를 지어서 원수입니까?
그것은 정말 초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 초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으면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소경으로 살아다 구덩이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두 가지의 의에 대한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의 의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왜 우리가 원수가 되었는가 하면 율법의 의를 가짐으로 해서 마귀의 자녀가 되어서 원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마귀는 하나님의 의를 믿지 못하도록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아니 우리 뿐 아니라 이스라엘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육체를 입고 태어나는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원수가 되는가 하면 우리 인생들은 본능적으로 율법을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아니 법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법에 의해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대적하기 때문에 원수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는지를 모르고 그저 죄를 지어서 원수가 되었다는 초보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누가 지킵니까? 이 율법에 대해서는 그리스도편지에서 아무리 강조를 해도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 보아야 결국에는 율법주의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에게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습니다.
어떻게 원수가 되었습니까? 마귀의 자녀가 되어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원수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원수 되었을 때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레위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라
이 말씀을 보고 참으로 많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를 조금 해롭게 한 사람을 원수로 생각하고 있고 그런 사람에게 대적을 하지 않고 싸우지 않은 것이 원수를 갚지 않는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성경을 보는 지식이라는 것이 바로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보고 사도 바울이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레위기에 있는 그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누가 원수였습니까? 율법주의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했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율법주의자가 원수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 그대로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원수를 갚았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 세상은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어느 누구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은 모두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과는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원수를 갚지 않고 도리어 그 원수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누가 지켜야 하는 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원수를 갚지 않고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셨는가 하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심으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성경을 그냥 기록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약의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는 사람은 성경을 수백 번을 읽고 다 외운다 해도 성경에서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거의 모든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자기들이 원수를 갚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고 이웃을 자기들의 몸과 같이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원수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원수를 갚지 않으셨습니다.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이 세상에 오셔서 원수를 갚지 않고 도리어 주님의 몸과 같이 사랑을 해 주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우리 원수가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원수를 모릅니다.
누가 누구의 원수였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에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러나 그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원수를 갚았다면 아담이 범죄 했을 때 이 세상은 그대로 종말을 맞이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는 자기들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도리어 하나님과 더 원수가 되고 있습니다.
시편17:9절을 보겠습니다. (구 813쪽)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누구를 예표하는 왕입니까? 마태복음의 시작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늘 다윗과 같은 왕을 기다렸습니다. 자기들을 구원할 메시야가 다윗과 같은 왕이 와서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아니 그들은 지금도 다윗과 같은 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대적을 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을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될 것을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수입니다
누가 원수인가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이 원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원수가 아닙니다. 우리 역시 복음을 몰랐을 때는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또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그 말씀이 깨달아 지기 까지는 우리 역시 이스라엘과 다름이 없이 원수였다는 말씀입니다
원수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 보낸 사람들에게 붙잡히시고 있습니다. 그때 제자가 검을 빼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라 버렸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이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 아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가 강합니까?
열두 영이 더 되는 천사가 오면 로마라는 강대국도 그대로 멸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압제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에워싼 극한 원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열두 영이 더 되는 천사를 부르시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면 레위에게 있는 율법을 지키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원수를 갚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주님이 원수를 갚았다면 이 세상은 벌써 종말이 왔습니다. 아니 이 시대 우리는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수가 되었을 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성경을 모르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말이 도리어 사람을 침륜에 빠지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무엇으로 감사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그저 맹목적으로 성경에서 감사하라고 하니까 감사하는 것은 주님을 모독하는 일이 된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원수를 갚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영으로서 살리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 영이 있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5:17-18절을 보겠습니다. (신 291쪽)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화목하게 되었습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탄생이 됨으로 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원수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원수를 갚지 않고 네 몸과 같이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죽은 예수를 영으로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그와 함께 살리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와 함께 살리시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 안에 영의 생명이 탄생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화목하게 되었는가 하면 새로운 피조물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탄생이 된 피조물이 어디로부터 났는가 하면 하나님께 로서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가 육체로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성도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육체입니다
그리고 영이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화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육체로 화목하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의 육체로 화목하게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체가 살아나셨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새로운 피조물이며 그 생명이 있음으로 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입니다
우리 육체는 하나님께로 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생명의 탄생과 죽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나 우리 육체는 하나님께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으로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로 하나님과 화목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생명이 없다면 절대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이 생명이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생명이 있으려면 사도 바울이 우리가 육체대로 알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죽지 않으면 이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에 대해서 죽어야 하는가 하면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화목된 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영의 생명이 탄생이 되어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으셔야지 우리가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입니다
이 구원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정말 다시 말씀을 드려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진노를 받지 않게 하시고 구원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구원하시는가 하면 그리스도의 살으심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근거가 되어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근거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으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으로 살리심을 입지 않았다면 우리 안에 영의 생명이 탄생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구원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살으심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근거가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의 구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3:4절을 보겠습니다. (신 300쪽)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구원입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교회 안에서 어떠한 일을 했다 해도 이 구원이 없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구원에 대해서 너무 소홀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 몇 번 드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그의 살으심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않았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살으셨는가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육체가 산 것이 아니라 영으로 살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활을 하시고 육체의 모습으로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령한 몸이기 때문에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에 대해서 그리고 영의 일에 대해서 내세에 대해서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그것을 설명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지식으로 그것을 설명하려고 하다가 사람들이 교리를 만들어 놓고 있고 그것이 그들의 올무가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 아니 자기의 신령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는 것이 육체가 아니라 영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육체로 이해를 하려고 하다가 모두가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와 함께 살 수 있습니까? 주님은 2000년 전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어떻게 죽고 그와 함께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영의 일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육으로는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안 되는 일입니다
육의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지식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것으로 성경을 보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는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성경 그 자체로 보아야 하는데 그렇게 보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이 반복해서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그것입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5:11절을 보겠습니다. (신 245쪽)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현대인의 성경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기쁨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만약에 죽은 것으로 끝이 나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냥 죽어서 피를 흘리셨다면 우리의 구원은 없습니다. 반드시 그가 다시 살아나셔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살으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살아나심으로 해서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영으로 살리심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으로 살리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면서 그 영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것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저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말씀을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는 줄도 모르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억지입니다
구원에 확신도 없으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 안에 생명이 어떻게 탄생이 되는 줄도 모르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하나님과 우리는 화목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사람의 행위로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 생명이 있어야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화목을 얻었습니다. 주님이 아니고는 얻을 수 없는 화목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율법의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육의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다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육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화목을 얻게 하신 것은 영의 일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화목을 얻는 줄도 모르면서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드리고 있는 예배로 그리고 행위로 즐거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 안에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3:21절을 보겠습니다. (신 146쪽)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에 참 빛이 왔습니다. 어두움에 있던 사람들에게 참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어두움에 있던 사람들에게 주님은 참 빛으로 비춰주셨습니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는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입니다.
그것은 율법의 행위입니다 어두움에 있는 사람은 자기들이 얼마나 어두운 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왜 모르는가 하면 빛을 못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문자의 말씀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참 빛이 무엇인지 어두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빛으로 오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행위입니까?
빛으로 오는 행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 행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라는 단어만 보면 사람들은 자기들이 몸으로 무엇을 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빛으로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행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서 빛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에 있을 때는 이 빛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빛으로 인도함을 받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다.
그것을 지키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온전케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할 때는 잠시 즐거워하는 것 같다가도 율법의 행위를 지키지 못할 때는 전혀 즐겁지가 않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을 다 지키면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지 못할 때는 전혀 즐겁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빛으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지키신 그 율법이 내 것이 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안 믿어집니다.
주님이 율법을 지키신 것이 내가 지킨 것이 된다는 것이 안 믿어지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빛으로 인도함을 받은 성도는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가 믿어지고 있습니다. 그 의가 믿어지니까 율법을 안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그것으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빛으로 인도함을 받은 성도는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다가 이제 자유하게 살아감으로 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 빛으로 오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빛으로 오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수 있지만 그것을 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행위를 가지고 즐거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아 빛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모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우리에게 참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지만 어두움에 있는 사람은 이 빛을 보기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공존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이치로도 그렇습니다.
빛이 비추면 어두움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 빛이 사라지면 어두움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둡기도 하고 빛이 있기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어두움도 있고 빛도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단은 사람들이 어두움에 있는지 빛에 있는지를 깨닫지를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은 어두움입니다.
왜 어두움인가 하면 그것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어두움입니다. 사람들이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도로서 조금 더 의롭게 사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고 믿음에 따르는 행위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어두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또 그 주일이라는 날에 종교적인 의식에 맞추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뭐가 나쁩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옳습니다. 저 역시도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는 그것을 어두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에 있으면서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는데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어두움에 있으면서 즐거워한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모순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참 빛으로 인도함을 받으면 의롭다 하심을 받은 내 영이 있기 때문에 즐거워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빛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누가 인도를 해 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빛으로 인도를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빛을 보고 따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를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행한 일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빛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빛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눈으로 보이는 빛입니다 그 빛은 어두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빛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만 볼 수 있는 빛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도 그것이 빛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빛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어두움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만 그 빛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두움에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이 빛을 보고 참 빛이라고 하고 있고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그 어두움의 빛을 보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하박국3:18절을 보겠습니다. (구 1305쪽)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습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또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원을 얻는 것과 그리고 얻지 못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그리고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다면 또 부활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 모든 구속의 일들을 이루셨기 때문에 구원을 얻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근거입니다
주님이 없으면 구원은 없습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사망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 생명을 탄생시켜 주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립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행위들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 것이 여러분의 즐거움이 되고 있다면 반드시 그 행위로 말미암아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스스로 속고 있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행위로 화목하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드려지는 예배로 화목하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화목 제사를 드린다 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있습니까? 그런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한 예표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말씀 그대로 영의 시대입니다
성령의 시대입니다
성령이 역사를 함으로 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하는 때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제사를 드리는 때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그런 시대고 그 아는 것으로 믿음이 역사를 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화목하게 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화목제물로 드려지고 나서 주님이 부활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님과 같은 영이 임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성령의 감동을 받기 보다는 행위에 점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여러분 안에 이 생명이 없다면 절대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라는 말씀을 보고 무조건 하나님께 로서 났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무엇을 말씀을 했습니까?
오직 믿음입니다.
그리고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는 역사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탄생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두 가지를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으면 그 중에 어느 한 가지는 되고 어느 한 가지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글을 모르는 무지한 목사들로 인하여 사단에게 미혹을 당해서 이 두 가지가 함께 되는 절묘한 타협을 찾아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기뻐합니까? 구원을 해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단은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정통이라는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만든 정통입니까?
세상의 다수가 만든 정통입니다 그 정통을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너희가 정통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초대교회가 100년을 넘기면서 급속하게 타락의 길로 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불과 300년 만에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유대교가 정통입니까?
기독교가 정통입니까? 정말 성경을 똑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내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는 이미 종교가 되어 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종교에 교리를 만들어 놓았고 그 교리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포승으로 묶어 놓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교리가 성경적인가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냥 구원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몇 명이 가나안에 들어갔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시대에 그들이 하나님을 믿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그들은 계속해서 종교가 되기를 갈망했고 주님이 오셨을 때는 유대교라는 종교가 복음을 대적했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방인입니다
우리가 유대인들보다 지혜가 있어서 성경을 더 많이 알고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어떻게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구원이 내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받는 구원이고 그 영이 썩지 않고 사라지지 않은 진짜 나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난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내가 진짜 나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내가 있는 것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일입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어 있는 성도만이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지금 기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행위를 보고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해 주셔서 즐거워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이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성경에서 이 구원에 대해서 평생 동안 지혜를 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구원파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구원파가 구원을 받는 사람들입니까? 그들 역시 율법주의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평생을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전해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구원을 받을 사람이 적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그 비유에 해당이 되는 사람들이 누군가 하면 최소한 복음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진리를 전해도 그 안에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율법의 행위를 하는 교회 안에서는 이 비유가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화목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5:12절을 보겠습니다. (신 245쪽)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구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문자에 적혀 있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그 말씀을 아는 것으로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의 문자를 알고 그것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초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초보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때가 오래 되었으면 단단한 식물을 먹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 사람들도 알 수 있는 초보에 머물러 있습니다. 가끔 가다가 기독교 방송을 보면 그들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들인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구약의 말씀들이 이 시대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입니다
그 문자에 미사여구를 써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그들은 오직 예수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불교에 있는 스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사람의 말을 가르치면서 오직 예수라는 그 말 한 마디에 모두가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를 못하면 그는 결국 이스라엘의 거짓 선지자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을 창설하시고 그곳에서 아담을 지으셨습니다. 아담은 우리 인류의 조상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사람들이 있기 시작을 했습니다. 6000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 이 시대 과학이 발달을 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류의 시작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어떠한 말을 한다 해도 우리는 창조를 믿고 있습니다. 아니 과학이 아무리 발달을 한다 해도 뒤집을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수천 년이 지난 그리고 수억 년이 지난 것을 밝혀낸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어떠한 사랑을 주셨는가를 사도 바울이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습니다. 죄가 들어왔다는 것은 사망이 찾아 왔다는 말씀입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어서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지 않았다면 그때 아담은 죽었어야 합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찾아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의 삯입니다
로마서6장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으면 그는 그 자리에서 사망을 당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이시지 않았습니다. 율법으로는 하면 반드시 아담은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를 진 아담을 죽이시지 않았습니다.
왜 안 죽이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세 전부터 예정을 하셨기 때문에 당장 죽이시지 않고 오래 참으셨습니다. 만약에 그 죄로 인하여 아담이 그 자리에서 사망을 당했다면 이 세상은 그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체질을 알고 계십니다.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죄가 어디로부터 들어왔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아담 스스로 죄를 지었다기보다는 아담은 사단에 비해서 약한 존재입니다 사단은 천사와 같은 존재이고 아담은 진토입니다 처음부터 아담은 사단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율법을 만드셨습니다.
그릇 살인한 자를 도피성으로 피하게 율법을 정하셨습니다. 아담이 스스로 죄를 지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도피성을 만들지도 않았고 아담을 그 자리에서 죽이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담은 사단에 미혹이 되어서 그릇 범죄를 했기 때문에 그 죄로 인하여 사망이 찾아 왔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체질을 아십니다.
우리가 사단보다 약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셨지만 그 아담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 죄인을 구원해 주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온 천하에 나타내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아담을 구원해 주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기 까지는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 못 했습니다 우리가 구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사랑으로 알기 보다는 두려워하는 대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이 두려워하는 그것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죽었습니다.
당장 죽이시지 않았습니다. 당장 죽이실 수 있었지만 그렇다면 우리 인생들은 그것으로 끝이 나게 됩니다. 아담이 범죄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피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구원을 해 주셨지만 죄를 진 그의 육체는 결국 사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망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 있으니까 죽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진 사람은 죽은 것으로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당장 죽지 않았습니까?
그 역시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실 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언제 죽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아담은 아주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죽은 사람도 있고 태어난 시기에 따라 죽은 때가 각각 다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3000년 전에 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1000년 전에 있었던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불과 10여 년 전까지 살았던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살아 있는 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언제 오실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뒤에도 사람은 계속해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언제 죽었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죽은 때가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죄를 진 사람은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려 죽어야 합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인을 대신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나무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때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게 하기 위해서 그때 죽게 하셨습니다. 아담이 언제 죽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수천 년 전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언제 죽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그 말씀은 사도 바울에게만 해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들 모두에게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5:14절을 보겠습니다. (신 291쪽)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사망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장례식을 치르는 것을 보면 그 사람들이 과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육체적으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슬픈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제가 그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냉정하게 말씀을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우리 성도의 육체가 언제 죽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 성도들이 왜 순교를 할 수 있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습니까? 죽었습니까?
우리는 죽었습니다.
언제 죽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우리도 죽었습니다. 그럼 아담은 언제 죽었습니까? 아담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육체의 죽음은 서로 다른 시각에 죽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으니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언제 죽었습니까?
우리는 그가 육체적으로 죽은 날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죽을 때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성입니다
성경은 대표성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성이 없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 했습니다 만약에 그리스도께서 한 사람이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 되지 않으면 아담은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대표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이해를 못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성경말씀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죄가 들어와서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율법으로 하면 죄를 지었을 때 그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으로 모든 사람이 죽게 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대표성입니다
이 세상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분명히 사망이 찾아오고 그들은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을 죽이심으로 모든 사람이 죽게 하셨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릇 살인한 자입니다
반드시 대제사장이 판결을 해야 합니다. 그를 그냥 죽여서는 안 됩니다 대제사장이 판결을 해서 죽이게도 하고 또 도피성에서 살게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제사장이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피성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도피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도피성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서 대제사장이 죽었습니다.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해서 우리가 죽은 것이 되어서 이제 그 도피성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망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담이 죄를 지어서 한 사람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죄로 인하여 사망이 왔습니다. 세상에 죄가 들어옴으로 해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고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사랑하셨습니다.
법대로입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도피성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이르면 구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도피성을 만들게 하시고 그리로 일단 피하게 하셨습니다. 구약의 율법들을 그냥 반포하셨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율법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있습니다.
도피성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었으면 보수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우리 인생들이 그렇게 보수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단 피할 수 있는 도피성을 만들어 놓게 하셨습니다. 그 도피성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이 도피성이 없으면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도피성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가 죽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죄를 지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죽기 까지 거기에 있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언제 사망을 당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함께 사망을 당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가 죽음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습니까? 죽어 있습니까? 육체로는 살아 있을지 몰라도 성경적으로는 우리는 죽은 자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를 진 우리 인생을 위해서 주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대표로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고 죽으셨습니다.
대제사장이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 죄를 진 인생들을 보수자가 죽이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기 때문에 율법대로 보수자가 죽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죄를 지었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는가 하면 사망을 당해야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전도서7:20절을 보겠습니다. (구 955쪽)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는가 하면 사망을 당해야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죄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모르다 보니까 자기가 어떠한 죄를 지었는지를 모르고 그 죄의 삯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율법대로 하면 반드시 모두가 사망을 당해야 합니다.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기 때문에 우리 인생들은 모두가 사망이 바로 찾아와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나타내시고자 율법에 이 모든 것을 감추어 두셨습니다. 율법으로 하면 죽어야 하지만 또 살릴 수 있는 것을 감추어 주셨습니다.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실 때는 죄가 없는 상태로 지으셨지만 죄가 들어오고 난 이후에 아담의 자손은 죄악의 종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 사람으로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자손이 세상에 많아졌는데 그 한 사람으로 죄가 들어와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성경의 정의입니다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이 세상에 아주 없다고 하니까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저 이 세상에 도덕법 중에서 어느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이 아주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법에 따르는 판결을 보고 세상의 법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를 모든 사람이 지었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죽을죄를 짓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사망을 당해야 하는 죄를 지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모릅니까?
그러면 율법을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보고도 내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진 것을 모른다면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아담과 같이 정녕 죽어야 하는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도 자기가 어떠한 죄를 지었는가를 모르고 도리어 이스라엘과 같이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사망을 당해야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정의고 율법을 깨달으면 내가 어떤 죄를 지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보는 그 사람들이 자기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아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죄를 지면 반드시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율법에 또 도피성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그 도피성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육체가 살아 있습니다. 한 사람 아담으로 죄가 들어오고 사망이 왔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바로 죽는 것을 율법으로 막아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이 아주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이 아주 없다는 말씀을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망을 당하지 않을 의인이 아주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반드시 사망을 당해야 하는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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