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4:14절을 보겠습니다. (신 244쪽)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은 많은 예표들을 통해서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믿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종교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믿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믿음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믿음이 무엇인가를 로마서를 통해서 잘 가르쳐 주고 있지만 왜 믿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입니다.
왜 믿어야 하는가 하면 다른 방법으로는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데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이 의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그 의를 얻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의에 대해서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내 육체로 얻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탄생이 되고 그 영이 의로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그것을 보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는 하고 있지만 무엇이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고 또 의롭다 하심을 얻으면 어떻게 되는 줄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그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사도들에 의해서 기록이 되고 난 이후에는 더 이상의 성경이 없습니다. 물론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을 정경화 시키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사이에 많은 글들이 나왔고 또 초대교회가 지나가면서 기독교라는 종교가 서서히 싹트기 시작하면서 진리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사기를 보시기 바랍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세대가 죽고 나니까 이스라엘은 바로 타락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세우셔서 그들도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사가 죽고 나면 이스라엘은 또 다시 타락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들이 죽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도는 순교를 당해서 죽었고 마지막까지 살아 있었던 사도 요한도 밧모라 하는 섬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죽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죽은 후에 디모데라든지 디도라든지 장로들이 있어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지만 이미 복음은 서서히 타락을 하고 종교가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이 그대로 전해졌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313년 기독교라는 종교가 인정을 받기 전에 이미 교회는 종교의 길로 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사를 보아도 그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행위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그런 말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인육을 먹는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 소문이 왜 돌기 시작했는가 하면 벌써 그때부터 성찬식을 했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언제의 일인가 하면 이방에 복음이 전해지고 나서 100년이 채 안 되는 시점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행위에 빠져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아직 성경이 정경화 되지 않았던 때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때부터 교회는 타락의 길로 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전했지만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100년이 채 가지를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후사입니다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후사가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에 속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급속하게 타락의 길로 가고 말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진리입니다
비진리가 들어오면 진리는 그대로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이 있어서 굳세게 하고 있다면 다를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 없으면 무너진다는 것을 이미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아직 사도 바울이 살아 있는 때입니다 갈라디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이제 그 안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는 사람이 있어서 장로를 세우고 또 다른 지역으로 전도를 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때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와서 할례라는 율법을 받으라고 하니까 그대로 넘어가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 믿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들어오니까 그것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가 속히 떠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쉽게 율법주의가 되는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율법을 지키는 일이 성도가 조금 더 의롭게 사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것 역시 의롭다 하심과 연결이 되고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를 얻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성경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이미 저주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저주를 받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장사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율법의 저주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죽었습니다.
율법의 저주를 받아 죽었습니다. 그런 성도가 다시 또 율법을 지키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지킬 수 없습니다. 이미 저주를 받아 죽었기 때문에 지킬 수 없습니다. 이제 살려고 하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가 임해서 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육체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이고 내 안에서 역사하는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만일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만이 상속자가 될 수 있다면 믿음은 무의미하게 되고 그 약속은 무효가 됩니다.”
비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율법의 행위와 믿음을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교를 모릅니까? 견주어 공통점이나 차이점, 우열을 살피는 것을 비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느 것이 옳은가를 그리고 차이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비교라는 말입니다
비교법입니다
꼭 성경에 비교법이라고 해야 비교법이 아닙니다. 국어를 알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두 가지나 그 이상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비교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비교를 하면 어느 하나가 되면 어느 하나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 아시기 바랍니다. 정말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국어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믿음이 좋은 사람이 율법을 잘 지킨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성경 자체를 모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그러면 그 사람은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은 율법을 안 지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와 믿음을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으면 하나가 있으면 하나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만일입니다
절대 그런 일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절대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 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없지만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우리가 믿는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면 믿음은 헛것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단 하나의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만일을 가정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 율법을 지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초대교회서부터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3: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05쪽)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이 말씀은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면 이라는 가정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만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에서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로마서에서도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율법을 지키는 자가 후사가 될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정말 잘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자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경을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까? 다 일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 율법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데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스라엘은 온 율법을 지키려고 했으니까 그들은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지혜가 있어서 성경을 보고 지켜야 하는 율법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생각합니다.
안식일 교회나 여호와 증인이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 아래 있어서 저주를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모릅니까?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이 말씀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후사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식일 교회만 율법을 지킵니까?
여호와 증인만 지킵니까? 이 시대는 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파가 영지주의입니까? 너무 어리석습니다. 구원파 역시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없습니다.
누가 안 지킵니까?
사도 바울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면 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들과 믿음을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들이라는 말씀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613가지 율법이 있습니다.
그것을 다 지키는 자도 율법에 속한 자입니다 그 중에 어느 한 가지를 지켜도 율법에 속한 자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식물에 속하다는 말은 어떤 뜻입니까? 이 세상에 수많은 식물이 있습니다. 그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식물이 되면 그 안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물은 식물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렇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들이라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사자나 토끼 같은 짐승은 식물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식물은 무엇인가 하면 생물 중에서 동물과 구별이 되는 한 일군을 식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식물에 속하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사자도 있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식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식물과 동물은 합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식물도 되고 동물도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식물은 분명히 식물이고 동물은 동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식물에 속한다는 것이 바로 이렇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에 속한 자입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됩니까? 사자가 식물이 될 수 없듯이 그 사람에는 믿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는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속하는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식물도 되고 동물도 되는 아주 이상한 일을 교회 안에서 하고 있습니다.
있을 수 없습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식물도 되고 동물도 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상식으로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율법도 지키고 믿음도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이 두 가지를 비교를 하면서 우리에게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그 뜻도 모르고 보고 있습니다. 국어를 모르다 보니까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들에게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에 속하면 절대로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2:14절을 보겠습니다. (신 265쪽)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2장5절에서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2장은 성령이 오셔서 어떻게 믿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누가 육에 속한 사람입니까? 지금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지만 이미 교회 안에는 이렇게 육에 속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육에 속해 있다고 하니까 마치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을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희 믿음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믿음이 없는 사람은 다 육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과 믿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율법을 누가 지키고 있습니까? 우리 육체가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로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육에 속한 사람이 누군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육에 속해 있으면서도 아니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성령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동물에 속해 있습니까?
식물에 속해 있습니까? 이 두 가지를 함께 속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비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육체로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의 성령은 절대로 여러분에게 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깨닫지도 못 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절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믿음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육에 속해 있는가 영에 믿음에 속해 있는가를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이 오셔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야 그것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율법의 행위에 속해 있습니까? 오직 믿음의 의를 가지고 있습니까? 율법도 지키고 믿음으로도 의롭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있는 성도는 이것을 영으로 분별이 되니까 내가 믿음에 속해 있는가 율법의 행위에 속해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이 믿음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절대적인 다수가 육에 속해 있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어디에 있습니까?
나를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묻고 있지 않습니까? 육에 속한 사람인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믿고 있는 사람인가를 두 가지를 가지고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가 어디에 속해 있는 줄을 모르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참으로 신기한 재주를 가진 사람입니다
아니 사단에게 속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도 잘 믿고 율법을 잘 지켜서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이 생각에 모두가 넘어가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사단은 이렇게 성경을 약간만 비틀어서 감동을 해 주고 있고 사람의 이성에 그것이 너무 좋게 생각이 되니까 자기가 어디에 속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미혹을 당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을 왜 보고 있습니까? 내 생각과 맞춰보려고 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지적인 이성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초등학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린 아이가 젖을 먹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성경을 보니까 이렇게 명확하게 말씀을 해도 자기가 어디에 속해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볼 때는 여러분의 이성적 지식은 다 버리시고 성경 그대로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저 역시도 이제까지 수많은 설교를 작성하고 있지만 늘 새로운 말씀을 볼 때는 그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쓴 것조차도 방해가 되기 때문에 성경을 성경으로 보려고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절대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거기에 내 생각을 집어넣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못한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성령의 일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복음을 듣고 믿어서냐고 갈라디아에서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령의 일은 성령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믿음이 의로 여기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육에 속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면서 믿음으로 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서로 비교를 해서 안 된다고 하는데 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율법의 행위는 행위로 하는 것이지 믿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게 육에 속한 사람은 그에게 있어 믿음은 헛것이 됩니다.
믿음이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정말 명확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의 생각이 율법에 사로 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이 세상을 모두가 법아래 있게 만들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법아래 살게 만들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에게 믿음이 있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8:47절을 보겠습니다. (신 160쪽)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대적을 하고 있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을 비취는 참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빛에 거하면 어두움에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니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하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까?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도 그렇고 세상 사람들이 볼 때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보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도 분명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들은 빛을 못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두움에 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빛과 어두움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반박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에 빛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이스라엘에게는 어두움에 있다고 하니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자기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데 어두움에 있다고 하니까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여러분이 빛에 속해 있습니까? 어두움에 속해 있습니까? 빛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참 빛이심을 믿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일을 이루셨다는 것을 믿는 일입니다
어두움은 무엇입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의 행위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빛에 있고 어두움에 있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빛에 있든지 아니면 어두움에 있든지 둘 중에 하나에 거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빛에 있어서 구원을 받든지 어두움에 있어서 구원을 받는지 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다 하는 것을 성경에서 간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그는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을 믿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하신 일이 참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일이 어두움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둘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것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어두움에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너의 아비 마귀에게 속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빛을 믿는다고 하면서 어두움의 일을 하고 있다면 그는 마귀에게 속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입니다
그는 어두움에 있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자입니다 그는 참 빛을 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은 후사가 되고 한 사람은 버림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 다 후사가 된다고 말씀을 하지 않고 한 사람만 후사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생명에 대해서 속는 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디에 속해 있는 사람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율법의 행위에 속해 있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많습니까?
이스라엘이 전부 율법의 종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난 후에 2000년이 되기 전에 이스라엘은 모두가 율법주의가 되었습니다. 이방에 복음이 전파되고 거의 2000년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와 지금이 어떨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사실 이 시대는 바리새인 못지않게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릅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자기들이 지키는 주일이라는 날이 율법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자기들이 내고 있는 십일조가 율법이라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제가 율법이라고 하면 저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과 대화를 해 보면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다 믿음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믿음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니 감사해서 하는 그 행위가 뭐가 나쁘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율법의 행위에 속해 있는가 하나님께 속해 있는가를 구별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성경말씀도 무시하면서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 합니까? 그것이 저주를 받는 일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안 됩니다
바리새인은 후사가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만 후사가 아니라 이 시대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은 후사가 아닙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이라는 말씀을 보고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기들이 지키는 것은 믿음이고 자기들보다 더 많이 지키면 율법에 속한 자들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단 한 가지 지키고 있는 아니 믿음이라고 하면서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이 믿음을 헛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야고보서2:20절을 보겠습니다. (신 373쪽)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야고보서입니다
이미 우리가 강해를 들어서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야고보서를 바로 해석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니 거의 모든 성경을 자기들의 이성으로 억지로 풀다가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이 행함이 있는 믿음도 억지로 풀다가 모두가 율법에 속한 자가 되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은 헛것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모든 사람이 믿음을 헛것으로 만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행함이 있는 믿음 때문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에는 율법의 제3용도까지 나오게 되었고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십계명을 지킴으로 해서 자기들의 믿음이 헛것이 되고 있지만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사를 보아도 야고보서에서 모두가 걸려 넘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버리지 않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율법을 버리는 행함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버리는 행함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만일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면 여러분이 믿는다고 하는 그 믿음은 헛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정말 이런 말씀들을 바로 깨닫지를 못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헛것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헛것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의롭다 함을 받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부탁드립니다.
믿음을 헛것이 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헛것이 되면 여러분은 절대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정말 끔찍한 일인데도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믿음을 헛것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이 그렇다는 것을 모르고 믿음을 헛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살인입니다
누가 살인을 하는 자입니까? 믿음을 헛되게 만들어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살인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다 살인자입니다 왜 살인자 인가 하면 그 율법으로 믿음이 헛것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 영혼의 생명에 대해서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 리는 없지만 어느 누구라도 율법의 행위를 해서 그가 천국에 간다면 우리가 믿는 믿음은 헛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버리는 행함을 보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얼마나 탄식을 하는 말씀입니까?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탄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결말이 어떠할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입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없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가 후사가 될 수 없습니다.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는 자는 후가가 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믿음을 헛것으로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헛것이 됩니까?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헛것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 생각이 없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의 이성에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기 때문에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는 줄을 모르고 성경도 무시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에 속한 자는 절대로 후사가 될 수 없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후사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의 정의입니다 성경에서 그렇다고 하면 더 이상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 성도로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느냐고 그것을 묻지 말고 내 영혼이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주님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4:15절을 보겠습니다. (신 244쪽)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법이 없으면 법을 어기는 일도 없게 됩니다. 법이 있으면 법을 어기게 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마련입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합니다.
이렇게 까지 말씀을 하는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 사람은 보통 마음이 담대한 것이 아닙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에 기초가 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로마서의 이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지키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 기초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모르는 목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웬만한 교인들도 다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로마서입니다
성경의 교리서라고 그들이 말을 합니다. 이런 교리서는 성경을 아무리 안 보는 사람일지라도 다 보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로마서는 누구나 한번쯤을 읽었다고 해야 맞습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도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하는 가를 알기 위해서 로마서는 읽고 있습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이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율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믿음에 따르는 행위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신학교에서 목사들이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아니 사람들의 생각을 이미 사단이 잡고 있어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책입니다
성경이 아닌 신앙 서적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유명한 목사들이 기록한 책들이 있습니다. 그런 책들을 성경보다 더 위에 두고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고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고민을 해야 하는데 신앙서적이 우선이 되고 있습니다.
율법 진노를 이룹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진노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막연하게 성경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룬다고 하니까 그래 율법으로는 어느 누구라도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노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율법을 지키느냐 그럼 반드시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아무리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어도 사람들의 마음은 너무 담대하기만 하고 율법을 지키지 일에 이제까지 교회사를 보아도 모두가 열심을 내고 있었습니다.
진노입니다
세상 사람이 진노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로마에 있는 초대교회에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율법을 지키느냐 그럼 반드시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조금 더 의롭게 사는 문제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 역시도 율법을 지키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의를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진노를 받습니까?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진노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진노를 받지 않으려면 반드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면 차라리 율법을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율법을 지키면 진노를 받습니다.
성경에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율법에 대한 기초가 되는 말씀 중에 하나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율법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까지 모든 교회가 지켜왔기 때문에 이제는 율법을 안 지킨다 하면 이단이 되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골로새서3:5-6절을 보겠습니다. (신 327쪽)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도 안 보는 그들에게 왜 이 말씀을 합니까? 땅에 있는 지체라고 하니까 마치 세상을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모두가 땅에 있는 지체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이 지체를 죽이지 않고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을 내면서 우상 숭배를 하고 있습니다.
음란이 무엇입니까?
두 남편을 섬기는 사람을 음란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두 남편을 함께 섬기는 여자를 음란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 지체를 죽이지 않고 율법의 남편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이 무엇입니까?
다 율법을 지칭하고 있는 비유적이 말씀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이미 설교로 올려 드렸기 때문에 여기서는 자세하게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탐심입니다 그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탐심입니다
누가 탐심을 냈습니까? 이스라엘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려고 탐심을 냈습니다. 그들이 율법에 얼마나 탐심을 냈는가를 성경을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탐심이라고 하니까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나쁜 의미의 단어는 다 교회 안에서 사람의 이성으로는 좋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입니다
그것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탐심을 부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열심을 냈습니까? 그리고 자기들이 한 것을 기도를 하면서 나는 이레에 이틀을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랑입니까?
그것이 진노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도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일주일에 몇 번을 예배를 드리고 소득의 십일조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탐심을 부렸고 이 시대 교인들도 역시 그들과 같이 탐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 탐심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잘 하는 일로 생각합니다.
제가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면 도리어 화를 냅니다.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아야 하는데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그 탐심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지만 도리어 그것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우상숭배가 무엇입니까?
로마서를 강해하면서 이 우상 숭배는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우상 숭배가 무엇이라는 것을 이제 모르는 성도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그것이 우상 숭배가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만 사람들은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입니다
그 지체가 율법을 지키면 모두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자기가 잘하지 못하는 율법을 잘 지키게 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우상이 되게 해 달라고 하면서 심지어는 밤을 새워가면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상을 모릅니다.
이 시대는 우상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보고 있고 마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섬겼던 진짜 보이는 우상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누군가 율법을 잘 지키거나 행위를 잘하게 되면 그것이 우상이 되어서 모든 사람이 자기도 그와 같이 되기를 바라고 있고 그것이 우상입니다
율법입니다
땅에 있는 지체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고 누군가 새로운 일을 하면 자기도 그 행위를 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을 모르고 어리석음에 빠져 들어가 있습니다.
성경은 의에 싸움입니다.
아니 우리는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율법으로 의를 얻을 수 없다면 더 이상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8:3절을 보겠습니다. (신 417쪽)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입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진노의 포도주는 무엇입니까? 율법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거의 모든 것이 율법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쁜 의미로 기록되어 있는 말씀은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음행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은 음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왜 음행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이제까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안 되니까 이제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룹니다.
왜 진노를 이루고 있는가 하면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두 가지 방법입니다 하나는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고 복음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그것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말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아주 타당성이 있습니다. 예수도 잘 믿고 이제 구원을 받았으면 이 세상에서 성도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성적입니까? 그러나 성경은 율법을 지키면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행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는 두 가지를 다 하고 있다면 그것을 음행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육체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으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의를 주시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 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또 다른 의를 좇아가고 있습니다.
음행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무슨 음행이 그렇게 많이 있겠습니까? 그것이 육체의 음행이라면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끔 가다가 교회 안에서 그런 일들이 있지만 아주 극소수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쁜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이 그런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다수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국이 무너졌습니다.
이 세상에 보이는 교회가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짐승이 되어 있는 교회는 진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음행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을 통해서 모두가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지만 사람들의 눈이 소경이 되어서 보이지가 않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복음과 율법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고 율법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육체로 행하고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주님이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말씀하고 있고 율법은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행하는 행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둘이 적대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음행을 합니다.
적개관계에 있는 것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과 율법은 적대관계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경은 우리 인생이 율법을 지키면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서는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율법을 지킵니다.
성경에서 아무리 이런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어도 사람들은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단은 그렇게 교회 안에 우상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 우상이 광명의 천사와도 같고 또 사람의 이성에는 너무도 좋게 생각이 되니까 사람들은 우상을 보면서도 그것을 우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도 하나님을 그렇게 믿고 싶어 합니다.
진노입니다
교회 안에 절대 다수가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많은 예표들을 통해서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수가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다수의 종교인이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하니까 소자와 같은 교인들은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잠언11:4절을 보겠습니다. (구 922쪽)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의리는 죽음을 면케 하느니라”
진노의 날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마지막 떼에 종말이 임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고 또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이 세상에 진노가 임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진노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노하시는 날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종말이 오는 날입니다 그 날에 재물은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반드시 진노가 임합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종말이 온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믿음이 있는 성도가 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리고 교회가 완전한 율법주의가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종말의 때는 아닙니다.
그러나 옵니다.
주님께서도 내가 다시 오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 날이 진노의 날입니다 그 날에 재물은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재물을 성경에서 율법의 의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그것이 여러분에게 재물이 되고 있습니다. 그 재물이 있으면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재물이 많으냐 적으냐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라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주님의 날에 진노를 당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사람들은 율법을 너무도 당연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무익합니다.
그리고 헛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구원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왜 재물인가를 주님 앞에 찾아온 청년에게 주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과의 대화를 마치시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익합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면 진노를 받게 됩니다. 그것이 내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조금이라도 유익이 된다면 좋겠지만 성경은 무익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노를 이루게 한다고 사도 바울이 이렇게까지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이런 말씀을 보면 마음에서 조금이라도 고민을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그것도 교리서라고 알고 있는 로마서에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겁이 없습니다. 아니 도리어 율법을 잘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상이 되고 싶어서 우상이 하고 있는 것을 자기도 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기도입니까?
실상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셔야 합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에게 죽여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한다면 어려분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성경에서 진노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율법을 잘 지키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희극입니다
웃을 수 없는 희극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재물을 더 얻게 해 달라고 율법을 더 잘 지키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참담합니다.
교회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게 재물을 더 많이 모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웃을 수 없는 코미디를 하면서도 자기들이 믿음이 있다고 그것을 간증까지 하면서 자랑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3:6절을 보겠습니다. (신 288쪽)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성도입니다
새 언약의 일군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영의 일을 하고 있지 의문의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의문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이 의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봅니다. 그 문자는 의문입니다 그 문자를 보고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의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의문은 죽이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성도는 의문으로 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하지 않습니다.
율법은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는 의문으로 하지 않습니다. 의문으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율법을 아예 지키지를 않으면 율법의 범함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의문으로 하는 것과 영으로 하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이 문자를 보고도 의문이 무엇이고 영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더 이상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의문은 율법입니다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입니다 성도는 이 의문으로 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오직 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의문으로 하는 것과 영으로 하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의문으로 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자기 육체로 하는 것이고 영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성령의 감동으로 믿는 것입니다
왜 의문으로 하지 않습니까?
율법이 없어서 더 이상 범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단 한 가지의 율법이라도 있다면 반드시 범하게 되어 있고 그러면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해서 진노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의문으로 하지 말아야 범함도 없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범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했습니다. 아니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이 육체는 범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죽었습니다. 저주를 받아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또 의문으로 해서 저주를 받을 이유가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겠다는 것은 또 다시 저주를 받겠다는 뜻입니다
성령입니다
왜 성경은 성령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의문으로 하지 않고 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지 않으면 반드시 우리는 의문으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의문으로 하지 않고 영으로 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고 있지만 이 시대는 성령에 대해서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인도함을 받은 성도는 자유함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내고 하는 것을 보면서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그렇게 어느 율법을 지키게 함으로 해서 율법에 대해서 모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로마서4:16절을 보겠습니다. (신 244쪽)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은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 약속이 아브라함의 모든 후손들, 곧 율법을 지키는 사람뿐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들의 조상입니다.”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믿음으로 되는가 하면 율법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범함이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되게 한다고 말씀을 하면서 그것이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오직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앞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율법을 버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하고 있고 그렇게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후사가 되는 약속은 믿음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 약속이 믿음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자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종교적인 믿음이 아니라 성경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믿습니까?
내가 의로워지기 위해서 믿습니까? 그 사람은 차라리 불교에 가는 것이 더 낫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은 육체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 종교와 국가와 사회는 너희가 의로워지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성경은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 목적입니다
물론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 영생을 어떻게 얻는가 하면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된다고 말씀을 하면서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들을 굳게 하려고 약속을 주시고 있습니다. 어떻게 굳게 하시는가 하면 믿음으로 굳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비밀을 아는 성도는 이 믿음이 얼마나 굳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16:13절을 보겠습니다. (신 285쪽)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믿음으로 됩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밖에는 안 됩니다 왜 믿음으로 되는가 하면 그것은 은혜에 속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모르면 절대로 은혜에 속할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은혜라고 한다는 것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은혜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행위로 굳게 설 수 있습니까? 우리도 행위를 하면서 수십 년간을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행위를 하면서도 우리는 굳게 서지를 못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복음이 계시가 되고 믿음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사실 이 믿음이 아니고는 우리는 굳게 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가 안 됩니다 또 내세의 일입니다 그것을 사람의 언어로 표현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후사가 된다고 굳게 설 수 있습니까? 믿음을 알면 믿음보다 더 우리를 굳게 세울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이 믿음을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굳세게 서서 천국을 바라보면서 살아갈 수 있게 그리고 영의 부활을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해 주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우리가 믿는 이 복음을 누가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이 믿음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늘 뭔지 모르게 풀리지 않는 숙제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믿음이 오고 나니까 이제는 더 이상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굳세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능력이라는 것은 참으로 오묘해서 사람의 이성으로는 믿을 수 없는 그것을 믿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합니까?
우리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도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신 성도는 이것이 성경과 맞는가를 분별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람의 지식으로 전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믿음에 굳게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고 있는 이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이 시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믿음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는 교회에서는 믿음이 있는 사람을 볼 수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그 능력으로 우리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의 생명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부활을 하는 가를 알고 있습니다. 비록 희미하게 보이지만 천국이 어떻다는 것을 감동으로 받고 있습니다. 이 모든 영의 일이 믿어지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 은혜입니다 이 믿음이 있어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고 성도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입니다
육으로 조상이라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조상이 된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복음을 깨닫고 그 복음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조상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데 있어서 조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는 믿음으로 아브라함과 동일한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우리 역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갈라디아서3:9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아브라함입니다
하늘의 복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하늘의 복을 어떻게 받는가 하면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의문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정말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어서 사람들이 믿는 것 같다가도 또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고 율법을 지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문자라는 것은 텍스트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텍스트를 그대로 보기보다는 앞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에 속한 자 뿐아니라
마치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사도 바울은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에 속한 자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이제까지 사도 바울은 율법에 속한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했고 또 주님께서도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에게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여러 가지 성경을 봅니다.
5-6가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솔직히 제대로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을 찾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유추를 해야 합니다. 앞에서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무엇을 말씀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에 속한 자가 율법을 지키는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면 이제까지 사도 바울은 전혀 다른 말을 했다는 것 밖에는 안 됩니다
12절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말씀의 연장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가 않다면 우리는 성경에서 정의를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문자적으로 그렇게 보인다 해서 그대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하나 때문에 앞에 있는 말씀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우를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에 속한 자입니다
그들은 할례자를 말씀을 하는 것이지 율법을 지키는 자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번역이 할례라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된다면 우리는 율법의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연결이 되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했던 말씀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말씀은 있을 수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할례자에게도 조상입니다 그리고 우리 이방인들은 아브라함과 함께 믿음에 속한 자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이기도 하고 또 우리 이방인들 중에 믿음에 속한 자들의 조상이기도 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조상은 육의 조상이 아니라 영의 일에 있어서 조상이라고 말씀을 미리 드렸습니다.
모든 사람의 조상입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할례를 받았어도 믿음의 자취를 좇는 사람의 조상이기도 하고 우리 이방인들과 같이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인침을 받아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의 조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갈데아우르에서 부르셨습니다. 왜 그를 부르셨는가 하면 모든 믿는 사람의 조상이 되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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