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로마서 강해 -

로마서 강해 8강 소경이 되지마세요

윤주만목사 2017. 9. 12. 07:56


로마서 1:22절을 보겠습니다. (240)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주님께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가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 소경인가 하면 성경을 보는데 복음이 안 보이고 율법의 행위가 보이는 사람이 소경입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목사들이 소경이 되어서 종교에 빠져 있으면서도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종교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소경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짜 소경은 차라리 낫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있다고 하면서 세상의 지식으로 가득 차 있는 소경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 지적인 능력이 도리어 소경을 만들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아니 세상 지혜를 가지고 마치 하나님의 지혜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어떠한 일을 했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는데도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소경입니까?

이 시대 역시 똑같이 소경이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들은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어두움의 빛이라는 것을 똑같이 모르고 있습니다.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누가 미련한가를 모르고 자기가 어떻게 미련에 빠져 있는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세상 지혜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어두워져 있으면서도 그저 사람의 지혜로 성경을 보는 그것으로 마치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씀인가 하면 이스라엘의 율법주의자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율법의 의가 빛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빛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빛이라고 하지 않고 어두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막는 것이 율법이고 그 율법이 어두움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불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불의가 무엇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세상 사람에게 이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라고 보냈습니다. 그들 가운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로마서를 통해서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 어두움입니다.

복음 빛입니다 세상의 이성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분명히 율법을 지키는 것이 빛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불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있으면서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지혜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어두워져 있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불의라는 것도 모르고 그것이 어두움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아무리 어두움에 있어도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성도는 성경에서 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서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이 복음을 못 보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마음이 어두워져서 안 보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지혜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지혜 있다고 하다가 결국에는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설령 지혜가 있다 해도 성도는 늘 이 지혜를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혜 있다고 합니다.

아마 이 시대도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자기는 지혜가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할 것입니다 이것은 정통의 교회 뿐 아니라 이단에 다니고 있는 사람도 자기들만이 지혜가 있어서 성경을 바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에게서 불의가 없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불의가 진리를 막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세상 사람과 다르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하나 그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보면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3:7절을 보겠습니다. (913)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잠언을 보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좋은 말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은 육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잠언의 말씀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다가 결국에는 악에 빠져 사망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누가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스스로 지혜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에게 지혜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 늘 깨어 지혜를 구하고 있겠지만 이미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지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이 세상 지혜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가 없습니다.

스스로 지혜가 있다하고 있지만 실상은 지혜가 없습니다.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는가 하면 그들이 행하고 있는 불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불의로 진리를 막고 여호와를 경외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악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고 행위를 하는 모든 것이 다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악이 무엇인지 그리고 불의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진리를 막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를 보면 불의를 행하고 있습니다. 그 불의가 얼마나 큰 악이 되고 있는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도리어 그 악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래서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악을 떠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악에서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도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성도라 해도 악에서 스스로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다만 악에서 건져달라고 기도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의지로는 아니 성경에서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설령 안다고 해도 우리가 악을 떠날 수 없기 때문에 다만 악에서 건져달라고 기도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 합니다

그저 주문을 외우듯이 하고 있습니다.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니까 굳이 이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기들이 악을 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알고 악에서 건져 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상은 사람이 사는 모든 것이 죄고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자기들이 지혜가 있어서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해서 악을 행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악입니다

내 모든 행위가 다 악입니다 먼저 율법의 모든 행위는 다 악입니다 이것이 악이라는 것을 알면 이 악에서는 떠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율법의 행위가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율법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잠언은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악에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율법 악입니다

이것에서는 반드시 떠나야 합니다, 이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다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우준하여 불의를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악에서 떠나지 못하고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합니다.

 

율법의 행위는 다 악입니다

주님께서는 다만 악에서 건져달라고 기도를 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왜 건져달라고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악을 완전히 떠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행위는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7장에서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 우리가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모든 행위도 실상은 다 악이기 때문에 아니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악이기 때문에 건져 주셔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악을 전혀 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서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하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악에서 떠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우준한지를 모르고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저주를 하고 있지만 스스로 저주를 받는 일을 자청하고 있습니다.

 

잠언 26:12절을 보겠습니다. (940)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입니다

누가 이렇게 하고 있는가 하면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도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고 있습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보다는 미련한 자에게 바랄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에게 무슨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아예 바랄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악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예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아닙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니까 교회에 가끔 지혜가 있는 것 같이 하고 있는 어느 한 사람을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에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한 사람입니까?

그 사람을 위해서 성경을 기록했습니까?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할 때는 어느 한 사람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절대 다수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는 거의 모든 사람이 어느 한 사람에게 하고 있는 말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정말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성도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복음에 대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잠언의 말씀을 가지고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라고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불의를 행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복음을 말씀을 하면 딴에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알고 있다고 하면서 이 말씀을 인용해서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사람이 누군가를 모르고 율법을 지키는 자기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도리어 진리를 막고 있습니다.

 

바랄 것이 없습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면서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그러니까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는 사람에게는 바랄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통이나 이단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 스스로 지혜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21절을 보겠습니다. (973)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화가 있습니다.

누가 화를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를 보내셔서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주님께서 철저한 율법주의자들인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도 전혀 두려워하지를 않고 그저 종교에 빠져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여 화가 있을찐저

주님께서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그 말씀을 분명히 보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에게 화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이 지켰던 것은 율법이고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것은 믿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켰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제사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것으로 제사법까지 지키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율법을 폐했다고 하면서 거의 모든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화가 분명히 있습니다. 갈라디아에서는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모든 율법도 율법이고 거기서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만 율법주의자가 아니라 한 가지를 지켜도 율법주의자입니다.

 

누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깁니까?

지금도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고 있습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지혜가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4:22절을 보겠습니다. (1056)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우준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 백성이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알지 못 합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패망을 해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는가 하면 그들이 우리보다 죄를 더 많이 지어서가 아니고 우준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알지 못 합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그것을 아는 것으로 지혜 있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를 행하면서 진리를 막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모르다 보니까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릅니다.

복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알면 믿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모르면 율법의 행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도 스스로를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에게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우준한 백성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준합니다.

어리석고 둔하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고 있지만 어리석고 둔해서 불의를 행하면서 진리를 막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면서 진리를 막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지만 선을 행하는 데는 무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에는 무지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행위를 하는데 있어서는 지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흠 없는 율법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는가를 이 시대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악을 행하는데 지각이 있어 율법의 의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러면 율법을 상징하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살아보라고 한 것입니다

 

죄를 지어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까?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는 살아가고 있는 교인들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스라엘은 율법으로는 흠이 없게 살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율법을 상징하는 바벨론에 포로가 되게 하셨는데도 왜 포로가 되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행하는 데는 지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는 무지합니다. 이스라엘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표가 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이스라엘이 그렇게 했으면 이 시대 역시 절대 다수가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준합니다.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하나 우준합니다. 누가 그런가 하면 교회 안에서 불의를 행하면서 진리를 막고 있는 사람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누군가 하면 선을 행하는 데는 무지하면서 악을 행하는 데는 직각이 있어 열심을 내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이 불의입니다 그리고 악입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더라도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성경에 있는 모든 율법을 지켰고 이 시대는 그 중에서 골라서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지킨 것도 율법이고 이 시대가 지키고 있는 것도 율법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3절을 보겠습니다. (240)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사람이나 새나 네 발 짐승이나 기어다니는 동물의 형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나 우준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누군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나쁜 의미로 말씀을 하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 다수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칭찬을 하는 말씀은 어느 개인을 말씀하는 것이고 나쁜 의미는 절대 다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성경을 거꾸로 보고 있습니다. 좋은 것은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나쁜 것은 어느 개인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눈이 소경이 되어서 어떻게 성경을 보아야 하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썩어지지 않을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이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은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러니까 로마서에서 말씀하는 복음이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믿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이 복음이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불의를 행하는 자들로 인하여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으로 바꾸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불의를 행하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우준한 자로 인하여 하나님의 의가 가려지고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데서 부터 출발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 안의 일입니다

그것도 어느 한 사람에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 시대 절대 다수의 교회가 아니 거의 모든 교회가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들은 절대로 이러한 일을 하지 않고 세상 사람이나 또 이단에 속해 있는 사람이 그런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인가 하면 그렇게 나름대로는 자기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리지 형상으로 바꾸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으로 바꾸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 하면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골로새서 1:27절을 보겠습니다. (325)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이 비밀의 영광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모든 구속의 일은 비밀의 영광입니다 사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영광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모든 구속의 일이 영광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는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먼저 썩어지지 않는 형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믿는 성도들에게도 역시 동일한 부활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있는 것은, 이 시대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되어 진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성경을 보아야 하는가 하면 성경에서 이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믿어서 우리에게도 썩지 않는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오직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부활하신 것만이 썩어지지 않는 영광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영광을 돌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엇으로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 하면 썩어지지 않은 것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으로 영광을 돌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영광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

 

믿음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가서 믿는다고 하면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성경에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도 그랬고 이 시대 역시 믿음을 알기 보다는 불의를 행하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썩지 않는 영광입니다

로마서1장은 복음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복음이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골로새서에서는 이 비밀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비밀이라는 말씀입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리지 형상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리지 형상으로 사람의 의로 바꾸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우상이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6:19-20절을 보겠습니다. (8)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의입니다

성경은 두 가지 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 두 가지 의에 대한 싸움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좀과 동록이 해한다는 것은 썩어 없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두 가지 의가 있는데 하나는 썩어 없어지고 하나는 썩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두 가지를 가지고 계속해서 비교를 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두 가지를 여러 가지로 비유로 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비유의 말씀이 다를 뿐이지 결국에는 다 같은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늘에 있는 보물입니다

그리고 땅에 있는 보물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둘 수 있습니까? 이런 말씀을 보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둘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고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지혜가 없어서 마치 자기가 보물을 쌓아 둘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땅에 보물입니다

그것은 내 의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보물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두 가지의 의를 가지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마태복음의 말씀에서 이 비유를 마치실 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물이 의입니다

그러니까 땅에 있는 보물은 내 의고 하늘에 있는 보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땅에 보물을 쌓아두면서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불의로 땅에 보물을 쌓아 두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보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도 바울은 불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의 보물이라고 비유로 말씀을 하셨고 사도 바울은 그것을 불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보물을 그의 의라고 말씀을 하셨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의에 대한 문제는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의에 대한 문제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고 땅에 보물을 쌓아 두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불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가 하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구속의 일이고 그것이 그의 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땅의 보물은 좀과 동록이 해합니다. 반드시 썩어 없어진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이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들이 행한 행위를 가지고 천국에 가서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칭찬을 받는다고 하니까 이제 그것이 우상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보물입니다 주님이 지금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주님께서 천국에 들어가신 것이 우리에게 의가 된다는 것을 성령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이 의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 영광이 있어야 하고 이 영광을 믿어야,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데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의입니다 주님이 지금은 하늘에 계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하면 이 의가 있어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로는 반드시 저주를 받아야 하지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의를 우리 인생들에게 주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을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계속해서 18절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로 어떻게 진리를 막고 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어떻게 얻습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을 이루셨습니다. 누가 이루셨는가 하면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그것을 이루시고 그 복음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 수 있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복음을 믿지 않고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의로 하나님의 의를 가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받아야 하는 의, 하나님의 의가 성령을 통해서 깨닫게 하고 있는데 그것을 사람의 의로 바꾸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입니다

짐승입니다 그리고 버러지입니다 그것의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한글개역성경이 제일 잘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아닌 짐승과 버리지 형상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다 사람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 30:2절을 보겠습니다. (944)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짐승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짐승을 말씀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를 짐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지혜가 없는 사람을 잠언에서는 짐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의 짐승은 지혜가 없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 비유를 바로 알지 못하면 이상하게 해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있고 짐승을 말씀하니까 실제 짐승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를 말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해도 그렇게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없습니다.

총명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제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이런 사람인가 하면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는 사람이 이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 안에서 복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행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욥기 25:6절을 보겠습니다. (785)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

 

벌레입니다

사도 바울은 버러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작은 곤충 종류로서 꿈틀거리는 것을 버러지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이라고 하니까 마치 사람의 형상과 동물의 형상과 벌레의 형상을 만들어서 우상을 섬기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 사람입니다

모두다 사람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세 가지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강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니 사람이 어떠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우상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지만 그 우상이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그것을 짐승과 버러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입니다

이 우상에 대해서는 정말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세라와 여러 가지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의 형상으로 바꾸어서 그것으로 우상을 섬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사람을 사도 바울이 짐승이라고, 버러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짐승도 사람이고, 버러지도 사람입니다 왜 사람을 말씀하고 또 짐승과 버러지를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사람의 의라는 것이 짐승의 의와 같고, 버리지의 의와 같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지 사람의 형상과, 짐승의 형상과, 그리고 버러지의 형상으로 우상을 섬긴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 누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아무도 그런 형상을 만들어서 우상을 섬기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을 형상화하는 것도 이단이라고 하는데 하물며 짐승과 버러지 형상을 만들고 있다면 누가 그 교회에 다니겠습니까? 성경을 그렇게 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일이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 형상이 아닙니다.

이단이라는 교회에 가면 사람의 형상을 사진이나 여러 가지로 만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도 물론 형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것은 그런 보이는 형상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의와 사람의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모르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의입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것을 썩어지는 사람의 형상으로 바꾸고 있는데 그 사람이 짐승이고 버러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형상이 우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는 사람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우상이 되어 있고 그렇게 우상이 되어 있는 사람을 짐승과 버러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0:4절을 보겠습니다. (112)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십계명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너무 잘 알고 있는 두 번째 계명입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 거의 모든 목사들이나 교인들이 이 계명을 다 문자적으로 보고 자기들이 지키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우상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이 문자 그대로 어떤 형상이든지 우상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이 계명을 지키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아마도 십계명 중에 1계명과, 2계명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지켰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렇게 장담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이 십계명을 받고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했습니까? 바알을 섬겼고 아세라는 섬겼습니다. 그런 성경 말씀을 보면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교인들은 이 문자를 보면서 우리는 이스라엘과 같지 않아서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상을 섬기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보면서 한심한 듯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입니다

율법은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이 시대는 그림자를 그림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실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은 그림자라고 했으면 율법을 볼 때는 반드시 그림자로 보아야 합니다.


우상을 안 섬기고 있습니까?

보이는 우상부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여자 교인들이 목걸이를 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교회에도 다 십자가 형상을 만들어서 걸어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천주교에서 마리아 상을 만든 것은 우상이라고 하는 그들이 십자가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형상이 아닙니까?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했다고 해서 그 형상은 아무 형상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정말 정신 차리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분명히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형상입니까? 아니면 영입니까? 귀신입니까? 아무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십자가라 해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주님만 죽으신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보편적인 사형제도였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감각이 없습니다.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십계명에 제 2계명으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자기들 마음대로 십자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은 형상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형상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영입니까? 좀 상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두가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포승으로 묶여 있다 보니까 그것을 인지할 수 있는 감각도 없어졌습니다. 형상을 만들어 놓고도 그것이 형상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십자가 형상을 만들어 놓으니까 여자들이 장신구로 형상을 만들어서 하고 다니면서 마치 자기 믿음이 좋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입니다

형상을 만들어서 다니는 것은 다 우상입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이미 그 십자가도 우상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형상을 보고도 형상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육적으로 형상을 만드는 것은 사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적으로도 그런 형상을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마치 무엇과 같습니까?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이 있습니다. 이미 십계명은 그리스도편지에 설교로 다 올려 드려서 말씀을 보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도 무엇을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입니까? 육의 생명이 아니라 영의 생명을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셨는가 하면 우리 살인자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육체의 살인한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큰 죄는 영혼을 살인하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살인을 해도 된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육체를 살인한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을 살인하고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모든 율법은 이와 같이 그림자입니다 실제 문자 그대로의 율법도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하겠지만 그러나 실상은 그림자 뒤에 있는 율법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 살인한 자입니다

육체를 살인했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육체를 살인한 자면 차라리 낫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 모두는 영혼을 살인한 자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육체를 살인한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영혼을 살인을 하고 회개하지 못하고 자기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상숭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의 형상 괜찮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자적으로도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치 육체를 살인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우리는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우리가 사망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우상을 숭배하고 형상을 만드는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과 금수와 버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불의로 바꾸었고 그 불의가 우상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우상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보이는 우상을 보고 그것을 우상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를 보고 진짜로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보이는 우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썩어질 사람의 영광으로 바꾸어 그것을 행위로 나타내는 것이 우상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우상에 대해서 모르면 그 사람은 교회 안에서 평생 우상을 섬기다가 아니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과 금수와 버리지 형상으로 바꾸고 살다가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우상입니까?

출애굽기에는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구약에서는 우상이 되었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그러니까 복음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가 썩어질 사람의 의로 바꾸는 것을 우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형상입니다

그것이 구약에서는 바알과 아세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는 사도 바울은 불의가 우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의와 좀과 동록이 해하는 사람의 의가 있는데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는 사람의 의가 우상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입니다

그 행위가 우상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설교를 보신 분들은 이 말씀을 알아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교회 안에서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우상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사야 66:3절을 보겠습니다. (1048)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우상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우상 숭배자들이 얼마나 많이 나올 것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시고 사도 바울을 통해서 우상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자기들이 우상을 섬기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찬송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행위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얼마나 잘 지켰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을 보고 우상을 찬송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시대 교인들보다 하나님을 잘못 섬겨서 하나님께서 지금 이사야를 통해서 이 말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보면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비교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분향하는 것이 우상을 찬송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분향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들이 분향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우상을 찬송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일을 하고도 마음에 기뻐했습니다.

만약에 이들에게 지혜가 있어서 자기들이 드리고 있는 제사가 우상을 찬송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누가 마음에 기뻐하겠습니까? 아마도 통곡할 것이 분명합니다. 모르기 때문에 우상을 찬송하면서도 마음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역시 우상의 형상으로 바꾸고도 모르기 때문에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은 마음에 기뻐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 말씀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이런 똑같은 일이 있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이스라엘만의 일로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율법대로 한 모든 행위가 지금 우상을 찬송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드려지고 있는 예배가 우상을 찬송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혜를 얻지 못하면 교회 안에서 우상만 섬기다가 죽는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도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아니 더하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5절을 보겠습니다. (327)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땅에 있는 지체입니다

우리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지체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불의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불의를 하고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지체가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에 빠져 있는데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상이 무엇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지체가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우상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땅에 있는 지체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육체입니다 그것이 우상숭배가 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체가 탐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탐심이라고 하니까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탐심을 부릴 것이 무엇입니까? 로마서에서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이 우상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교회 안에서 행하는 행위가 우상 숭배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사람의 행위가 우상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행위에 탐심을 부르고 있다면 그것이 우상숭배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이 우상 숭배에 대해서 바로 깨닫지를 못하면 교회 안에서 평생을 우상 숭배만 하다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 지체로 탐심을 부르면서 우상숭배를 하고 있습니다.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탐심이라고 하니까 나쁜 것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의를 행하고자 하는 것도 탐심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탐심이 심했는가를 성경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행위로 회를 칠할 정도로 탐심을 내고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3:23절을 보겠습니다. (40)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입니다

왜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십일조를 드렸습니까?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한 탐심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나타내는 것에 대한 탐심이 너무 강해서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는 일에 아주 열심을 냈습니다

 

이 시대 누가 우상이 되었습니까?

록펠러의 십일조가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거의 모든 교인들이 아마도 록펠러의 십일조에 대해서 들었을 것입니다 록펠러라는 우상을 만들어 놓고 모두가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탐심을 억누르지 못해서 십일조를 하는데 있어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꼭 록펠러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의로워지기 위해서 아니 교회 안에서 의롭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하고 있습니다.

 

외식입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모양을 말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겉으로 나타나는 형상에 탐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믿는 것이 아니라 썩어질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는 다 썩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렸습니까?

그것이 썩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썩지 않는다는 것은 하늘에 가지고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영의 일을 모르면 이렇게 썩어지는 것을 가지고 하늘에 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이 우상이 되어서 그 형상을 나타내기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왜 십일조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까?

 

첫째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탐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썩어 없어지는 것임을 모르기 때문에 썩지 아니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썩는 것에 탐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 탐심이 우상숭배가 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수많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그가 하는 행위가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않아서 우상숭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율법을 아주 잘 지킨 것이 있으면 그것을 교회는 예화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탐심을 이기지 못해서 그것이 우상이 되어서 자기도 그와 같이 되려고 합니다.

 

구약의 우상입니다

그것이 이 시대는 사람에게 그대로 왔습니다. 지금 십일조를 예를 들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십일조 뿐 아니라 많은 율법들이 불의가 되어서 형상으로 나타나면서 우상이 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도리어 우상 숭배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의고 불의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형상이 우상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우상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교회 안에서 더 많은 우상을 형상으로 만들어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어떤 의로운 행위가 나타나면 그것을 따라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탐을 냅니까?

그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탐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이 하고 있는 행위가 우상이 되어서 탐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체를 죽이면 탐을 내고 말 것도 없고 우상을 숭배하는 일도 없는데 이 시대는 지체를 죽이지 않아서 불의를 행하고 있고 그것이 형상의 우상이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내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못 박지 않은 사람은 자기 지체가 살아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탐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는 것이 나쁩니까?

좋기 때문에 탐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나쁩니까? 좋기 때문에 탐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새벽 예배를 드리는 것이 나쁩니까? 좋기 때문에 유독 우리나라 교회는 그것에 탐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탐심이라고 하니까 교회 밖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새벽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의 교회가, 미국의 교회가 새벽 예배를 드렸습니까?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전파가 되고 나서 누군가 새벽 예배를 드리니까 너무 좋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체를 죽이지 않고 계속해서 새벽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탐심이 우상이 되어서 지금 이 시대 모든 교회가 새벽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것 뿐 입니까?

교회 안에 찬양이 유행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청년들은 심지어는 찬양을 부르는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 꿈이 되어 있습니다. 찬양을 부르는 사람들이 우상이 되어서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합니다. 교회마다 지금은 찬양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목사들이 성경은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찬양을 먼저 배우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노래를 잘하는 것이 우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다 불의고 사람의 의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 모두가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것이 우상이 되는 줄도 모르고 그저 따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5:2절을 보겠습니다. (375)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썩어질 사람의 형상의 우상으로 바뀌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이 영광을 믿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썩어질 사람의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복음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자기의 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자기의 의가 우상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군가 어느 율법을 지킵니다. 꼭 율법이 아니더라도 이 시대 찬양을 아주 잘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우상이 되어서 자기도 그것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불의가 우상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썩지 않습니다.

그런데 썩어질 사람의 형상으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믿지를 않고 교회 안에서 누군가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고 그것이 너무 좋으니까 나도 하고 싶어서 탐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 탐심이 우상숭배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썩어질 사람의 형상의 우상입니다 그것을 야고보는 너희 재물이 썩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와 사람의 의를 함께 가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함께 가질 수 없는가 하면 그것은 땅에 있는 보물로 좀과 동록으로 썩어 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나도 저렇게 믿고 싶습니까? 저렇게 믿고 싶은 형상이 우상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고린도전서8장에서는 우상의 제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들이 율법을 지키라고 가르치고 있고 누군가 잘하는 행위를 예화로 해서 가르치고 있는 말들이 다 우상의 제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에 대해서는 이미 아카데미강의를 했기 때문에 그것을 보시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렇게 우상의 제물을 먹이고 있습니다. 미리 말씀을 드린 록펠러의 십일조도 역시 우상의 제물입니다 그렇게 우상의 제물을 먹고 탐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형상이라고 하니까 부처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전적인 뜻이 물건의 생긴 모양이나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고 있는 모든 율법의 행위도 역시 형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누군가 잘하는 형상을 보고 그것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우상숭배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수많은 우상이 있는데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너희의 재물이 썩었습니다.

사람의 형상이 썩어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다 썩어 없어집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한 모든 행위는 다 썩어 없어집니다. 썩는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상이 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 우상을 더욱 더 숭배하고 있습니다.

 

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의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 의를 사람의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바꾼다는 말씀은 복음을 믿지를 않고 불의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불의는 반드시 썩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천국에 가져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모르고 천국에 가져간다고 하니까 그 썩어질 것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썩어 없어진다고 하면 그것이 우상이 되고 말 것도 없는데 천국에 가져가려고 하니까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지를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 우상의 제물입니까?

율법의 행위가 우상의 제물이 되고 있습니다. 우상으로 바꾸었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의를 믿지를 않고 율법의 행위를 함으로 해서 썩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썩어지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우상으로 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상으로 바꾸는 자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6:9-10절을 보겠습니다. (2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상 숭배를 하는 일에 얼마나 사람들이 쉽게 미혹을 받는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상 숭배를 얼마나 쉽게 하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상숭배 안하고 있습니까?

거짓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우상을 숭배하는 자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 너무 좋으니까 그것을 하는 사람을 보니까 나도 하고 싶어서 탐이 나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수많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비단 율법만 아니라 율법 외에 것도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우상이 되어 있는데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누군가 자기 이성에 좋은 행위를 하면 그것을 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 합니다

 

우상숭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부처나 단군 상 같은 우상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누가 그런 우상을 숭배를 합니까? 그런 것이 우상이 아니라 썩어질 사람이 하고 있는 모든 형상이 우상이 되어서 교회 안에서 숭배를 하고 있고 우상의 재물을 먹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 합니다.

누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불의에 미혹을 당해서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들이 받지 못 합니다 이것이 어느 한 사람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우상 숭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성도는 성경을 통해서 이 복음을 알고 믿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복음을 보는 눈이 없으면 우상을 숭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복음을 믿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