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로마서 강해 -

로마서 강해 6강 할수 있는 대로

윤주만목사 2017. 9. 11. 17:57

로마서1:16절을 보겠습니다. (239)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할 수 있는 대로

우리 성도는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이 시대는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도 없고 초대 교회와 같이 복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초대 교회는 그래도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난 후에 베드로의 설교가 있은 후에 삼천 명이 회개를 했고 또 이방에서 복음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습니다.

지금 기독교는 유대교보다 더 지독한 종교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너무 편협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유대교인들보다 더 편협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진리에서 벗어나 있는가를 스스로가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특히 이방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복음이 쉽게 전파가 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종교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입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온 생명이 있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실 때 영광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런 성도지만 이 세상에서는 복음을 전하려면 고난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고난이 올지라도 복음을 전하는 일은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성경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나 빌립 집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우리에게 주어진 대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그 부탁을 외면하는 것은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꼭 내가 복음을 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복음으로 교제를 하고 있는 예배에 참석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작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예배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새 생명이 탄생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무교회주의를 주장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거리가 멀고 또 사정이 있어서 예배에 참석을 못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주의 만찬을 나누고 있는 예배에 참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 역시 스스로 속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중요합니다.

물론 이 시대 교회는 이미 음녀가 되어 있어서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는 피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만찬을 나누고 있는 교회가 있는데도 그곳을 여러 가지 삶의 이유를 대면서 나오지 않고 있다면 솔직히 그가 아무리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모든 비밀을 지식으로 알고 있다고 해도 속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서 전합니까?

물론 우리가 개인적으로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전하고도 있습니다. 그곳을 알려 주는 것도 한 가지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시려고 그 더운 대낮에 우물가로 갔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들음입니다.

사도 바울도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너희에게 가서 무슨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려고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되지만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렇게 서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설교를 보고 듣는 사람과 예배에 참석해서 듣는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을 꾀려고 합니까?

그래서 제가 하는 아카데미에 많은 사람이 참석하기를 바라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지금 강의를 하고 있는 장소는 거의 차 있습니다. 몇 명만 더 와도 자리가 부족할 정도입니다 작은 사무실이기 때문에 사실 사람이 많이 와도 걱정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떠나 그리스도편지에서 말씀을 보고 듣는 사람들의 영혼을 생각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많은 것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사람이 많아서 복음을 듣는 사람이 많다면 그 자체로 기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보고 들으면서도 그 영혼이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 심히 염려가 되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들이 천국에 간다고 하기 때문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주 적은 사람만이 이 복음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적은 사람이 받았으면 그 적은 사람은 모두가 이 복음을 위해서 수고를 해야 합니다.

 

백 명이 됩니까?

아니면 천 명이 됩니까? 정말 그 정도의 숫자만 되어도 저는 이렇게 말씀을 안 드립니다, 우리는 빨리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너무도 적은 사람이 이 복음을 듣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전하려고 하면 하루라도 빨리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자가 되어서 각자의 삶에서 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주님께서 하신 부탁을 듣지 않아도 여러분이 구원을 받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복음을 가진 자가 너무도 적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을 하는데 힘써 행해야 한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그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들에게, 그리고 이방인들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부끄러워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교회에 나오면 모든 일이 서먹서먹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들이 다 부끄럽게 여기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뜻으로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입니까?

주님으로부터 직접 너는 이방의 사도라고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될 때까지 성경을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가지고 부끄러워한다고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복음입니다

지금 이 시대 복음을 전하려면 성도라고 해도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면 우리가 전하고 있는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썩지 않는 하늘의 생명을 주는데 왜 부끄러워해야 합니까?

 

담대합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더 당당해야 합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당당하게 그것을 전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전하고 있는 복음은 참이기 때문에 인간적으로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전하고 있고 우리가 전하는 이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35:4절을 보겠습니다. (826)

내 생명을 찾는 자로 부끄러워 수치를 당케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로 물러가 낭패케 하소서

 

왜 부끄러워하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전하고 있는 복음은 생명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지 못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알고 믿었기 때문에 복음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믿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가 하면 이 생명에 대해서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아도 알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확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는 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말씀드립니다.

이 시대는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아니 기독교라는 종교에 포승으로 묶여서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믿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을 전했습니까?

로마서1장에서 계속해서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복음에 대해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교리에 묶여서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도리어 저주를 받게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편지를 보고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아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생명에 대해서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생명에 대해서 얼마나 확신을 하고 있는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복음을 알아야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복음에 대해서 너무도 무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까?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성령으로 난 영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이 영이 생명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고 이 영이 의롭다 함을 받은 깨끗한 생명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모르면서 어떻게 구원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반드시 내 안에 영의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말로만 복음이라고 하고 자기 안에 어떤 생명이 거듭나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이 영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기독교는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도리어 부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씨 썩어져 없어질 그것이 다시 깨어난다는 성경과 전혀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교회 안에 있는 소자들은 성경을 모르니까 그저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부끄러움을 당할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다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은 생명이 내 안에 있어야 하는데 율법의 의를 가지고 있는 자기 육체로 천국을 가려고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는 일로 부끄러워했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한 말씀은 생명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생명이 없으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6:15절을 보겠습니다. (4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옷입니다

우리가 입는 옷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을 보고 진짜 옷을 입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되어 있는 교회는 이런 말씀을 세상 초등학문으로 만들어서 가운을 입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나타내는 옷을 입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가운을 입습니다.

목사만 입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성가대도 가운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위들이 다 성경을 초등학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에 누가 가운을 입고 누가 성가대의 옷을 입었습니까? 이단일수록 이 옷을 입는 것으로 자기들을 나타내려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옷으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이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벌거벗었다는 말씀은 생명이 없다는 말씀이며 생명이 없으니까 벌거벗은 것과 같이 자기의 부끄러움이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가 아닙니다.

아니 우리 육체는 부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로 어떻게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든다고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신앙생활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내 옷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내 생명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복음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이 생명에 대해서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 생명을 내가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믿음이라는 것을 주어서 굳세게 하고 있지만 믿음에 대해서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영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없는 자는 마치 벌거벗은 것과 같이 부끄러움을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하면 이 복음을 믿는 우리를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믿는 모든 자를 구원해 주시기 때문에 구원의 옷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옷을 입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가 구원의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가 썩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 복음을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다 믿는다고 말은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를 보면 전혀 믿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의에 빠져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시는 의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의 옷은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어야 합니다.

아니 의로운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내 육체는 아무리 율법을 잘 지킨다 해도 그것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느 날 갑자기 오신 것이 아니라 성경에 선지자들로 미리 약속을 해 주셔서 2000년 전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율법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생명이 없다면 마치 옷을 벗은 것과 같이 부끄러움을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부끄러움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내가 무슨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복음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안 지킵니까?

그래서 율법주의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이단이라고 공격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럴지라도 우리 성도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하면 우리에게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보이다가 썩어 없어지는 생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되는 영의 생명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싸움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천만 명이 칭찬을 해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비록 거지와 같이 살아가면서 개들이 그 헌데를 핥을지라도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면 그가 지혜로운 성도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바로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저 주시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의롭게 살아서 주는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 은혜로 거저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보면서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율법의 행위가 저주를 받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세상의 지혜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보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내 안에 있는가 하면 복음을 듣고 믿을 때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역사를 함으로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영이 있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믿는 자를 구원해 주십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믿는 자에게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율법의 의를 버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이 고백에는 내가 율법을 지키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는 고백이 함께 따라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복음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다 보니까 기독교라는 종교에 빠져 모두가 율법을 지키면서 저주를 받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로마서10:4절을 보겠습니다. (253)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때는 반드시 율법의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이고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이 이렇게 명확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너무 율법주의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려고 했다면 기독교는 자기들이 원하는 율법을 그들 못지않게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의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성경을 보고 있는데 그 말씀이 율법을 지키라고 되어 있다면 성경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아니 그 이면에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을 찾아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못 찾는다면 그는 복음을 모르는 미련한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가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율법이 기록이 되어 있다 해도 성도는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는가 하면 복음과 율법은 서로 충돌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로마서에서도 그것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입니다

그것은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율법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복음을 믿는 자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면 마치 방종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도 바울이 강하게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했다고 해서 방종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문자적인 율법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게 살아야 합니다.

 

율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초대 교회에 성도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지만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면서도 율법을 지키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아니 율법이 마침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찬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성도로서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도 알 수 있는 그것을 수십 년을 신앙생활 했다고 하는 그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고 싶습니까?

복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이 복음만으로도 우리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지키고자 하는 율법이 도리어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복음을 믿어야 하고 이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24절을 보겠습니다. (26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로마서의 말씀과 거의 같습니다.

로마서에서는 복음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고린도전서에서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능력이 무엇입니까?

어떤 일을 해 낼 수 있는 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때 능력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때도 누구는 그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누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는데 사단과의 싸움에서 질 수 있다면 아니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런 일이 있다면 능력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을 하셨습니다. 만약에 그런 능력이 없다면 미리 약속할 수 없습니다. 만의 하나라도 실패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미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약속할 수 없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능력이 있습니다. 사단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은 싸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한 없이 강한 사단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사단도 만드신 창조주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왜 성경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가 하면 그분만이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분이 창조주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창조주라는 것을 모르면 능력을 믿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능력은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할 수 있는 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니까 다른 것에 있어서 능력을 이야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구원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 우리 육체의 일에 있어서 나타나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시대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마치 도깨비 방망이를 하나 얻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능력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힘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물론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있어 구원에 있어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탄생이 되고 그 영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구원을 받는 그 능력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능력을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정욕이고 탐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무엇이든지 다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가지신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구원을 해 주시는 능력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지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주시는 능력입니다

성경은 이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에 있어서 능력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구하는 자는 탐욕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것으로 망한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무엇이 정욕이고 무엇이 탐심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지구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주님께서 사단을 이 세상 임금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지구의 임금은 사단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을 창설하시고 아담에게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지만 아담이 죄를 짐으로 해서 이 지구의 모든 것을 다 빼앗겨서 사단이 임금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왕과 왕의 전쟁에서 아담은 사단에게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천국의 주인입니다

주님은 천국의 주인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맞지만 이미 이 지구는 사단이 주인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이 세상 천하만국의 영광을 다 보여 주면서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누구 것입니까?

사단이 자기 것도 아닌 것을 주겠다고 했습니까? 사단은 이 지구의 주인으로서 주님이 시험을 받으실 때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 주면서 내게 경배를 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자기 것도 아닌 것을 주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이 지구는 사단의 것이기 때문에 주겠다고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구입니다

그 안에 교회도 있고 사람도 있습니다. 그 영광을 누가 줍니까? 사단이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사단이 준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천국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썩지 않는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두 가지만 하나님의 것이고 나머지는 다 사단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이 지구까지도 불못에 던지 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모든 것을 다 불못에 던지겠다고 요한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능력입니다

이 세상은 사단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있는 일을 가지고 주님께서 능력이 있으셔서 도와주심으로 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능력이라는 것은 자기가 가진 것을 줄 수 있을 때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능력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왜 초대 교회에 수많은 순교자들이 나왔습니까?

그리고 초대 교회가 비참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또 이 지구의 주인이라면 초대 교회에 성도들은 한 마디로 저주를 받은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주인이 사단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설령 바란다 해도 주실 수 없습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은 사단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지구의 것은 하나님의 능력 밖에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면서 무엇이든지 다 구하면 주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지구 안에서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사단의 능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천국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해 주시는 생명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능력이 있다는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에 있어서 능력이라는 말씀을 마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갈라디아서3:5절을 보겠습니다. (304)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너희 가운데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

그것이 무엇입니까? 구원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행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를 묻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율법과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을 비교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교를 할 때는 이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강해를 할 때 말씀했습니다.

이 시대는 율법과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복음을 듣고 믿으면서 율법을 행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그래도 기독교에서 영향을 준다고 하는 모든 신학자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해서 갈라디아서 말씀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두 가지를 비교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은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는 너희 가운데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를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구원을 받는 것이 어느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한 가지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입니까?

여러분이 그 말을 하고 있다면 율법의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런 말씀을 보면서도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아도 이 말씀은 국어의 문법만 알아도 이해할 수 있는데 기독교라는 종교의 교리에 묶여서 무조건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성경에서 누가 제사법과 시민법과 도덕법으로 나누었습니까? 사단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미혹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전혀 없는 말씀으로 미혹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약간 틀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 율법입니다

제사법도 율법입니다 시민법도 율법입니다 도덕법도 율법입니다 이중에 율법이 아닌 것이 있으면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도덕법이 율법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도덕법을 율법이라고 하는데 이 시대는 도덕법은 율법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능력을 행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구원을 해 주시는가 하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서 구원을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명확하게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어도 진리에 대해서 소경이 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그것이 안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입니다

반드시 우리에게 성령이 오셔야지만 합니다. 진리의 영이 와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해야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그가 아무리 신학 박사라 해도 성경이 안 보이고 이스라엘과 같이 초등학문에 빠져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어떻게 역사를 하는가 하면 성경에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한 것을 알고 믿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복음이 역사를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종교의 포승에 매여 있는 사람은 거기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17절을 보겠습니다. (239)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 속에 나타납니다. 이 일은 오로지 믿음에 근거하여 일어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왜 복음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까?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복음에는 의가 나타나야 합니다. 의가 나타나지를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가 나타나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의가 있습니다.

내 의가 있고 하나님의 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의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고 이 의가 어떻게 되는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종교가 시키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도 믿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모르면서 사람의 지혜를 따라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복음이라고 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가도 모르면서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의가 나타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는데도 이 의를 전혀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두 가지 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내 의입니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의입니다 내가 율법을 지키고 교회 안에서 어떠한 행위를 하고 하는 모든 것이 다 내 의입니다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어서 했다 해도 아니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했다 해도 그것은 다 내 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하나님을 위해서 한 모든 행위를 마치 하나님의 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어를 모릅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릅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리고 내가 한 일은 내 의입니다 사람이 한 일은 다 사람의 의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하나님의 의가 됩니다. 성경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국어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합니까?

국어도 모르는 사람이 신학박사라고 하면서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그가 아무리 신학에 대해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도 국어도 모르고 성경을 본다면 그는 초등학생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초등학생도 아는 것을 이 시대는 애써 억지로 자기들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의라고 하면 그것은 무조건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한 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했어도 내가 했으면 그것은 내 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만한 일을 했어도 그것은 내 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을 성경으로 안 봅니까?

성경에서는 분명히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다 사람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이제 우리가 성경에서 복음을 알 때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의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다 사람의 의입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했다고 해서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으로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모든 행위가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셔서 한 행위고 그것이 하나님의 의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감동을 주었습니까?

솔직히 성령은 그런 감동을 주지 않습니다. 사람이 육체로 하는 것을 감동해 주지 않습니다. 성령을 모르다보니까 아무 것이나 성령의 감동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감동을 주는 것은 복음을 듣고 믿어서 구원에 이르게 감동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자기들이 감동 받았다고 하는 모든 것의 실상은 자기 마음에서 스스로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성령에 대해서 다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어디 그런 것을 감동해 주고 있습니까? 예배를 드리는 것, 기도를 하는 것, 찬양을 부르는 것, 전도를 하는 것 등 사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것은 성령의 감동이 아니라 자기들이 종교에 의해서 세뇌가 되어 있는 것을 스스로 감동을 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약속하신 복음을 알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도리어 자기들의 의를 나타내면서 이스라엘과 같이 악한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명기24:10-13절을 보겠습니다. (299)

무릇 네 이웃에게 꾸어 줄 때에 네가 그 집에 들어가서 전집물을 취하지 말고 너는 밖에 섰고 네게 꾸는 자가 전집물을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그가 가난한 자여든 너는 그의 전집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 질 때에 그 전집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의로움이 되리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복음도 모르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도 않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다 보니까 아니 초등학문에 빠져 있다 보니까 성경에서 복음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없고 그러다보니까 하나님의 의가 전혀 나타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거기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야 믿을 수 있는데 나타나지를 않으니까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첫 번째는 복음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이 쓴 주석이라는 책들을 보고 강해를 보면 전혀 복음이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책들을 보면서 신학을 공부하는 목사들에게서 무슨 복음이 나타나겠습니까? 복음을 들어도 쉽게 다른 복음에 빠지는 것이 사람인데 하물며 복음을 전혀 듣지도 않은 사람들이 신학에서 공부를 하고 가르친다면 어떻겠습니까?

 

신명기의 율법입니다

누구나 다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이 시대 대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말씀을 쉽게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율법들을 보고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실제 이웃에게 꾸어 줄 때 가난한 자에게 꾸어 줄 때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여호와 앞에 네 의로움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니까 의롭다 함을 듣기 위해서 실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입니다

성경에서 복음이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이 안 보이고 이 일을 자기가 살면서 하려하고 있습니다. 자기보다 가난한 자가 와서 꾸어 달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많은 돈을 꾸어 달라고 하면 꾸어 주지 못할지라도 자기가 감당할 정도의 돈이라면 꾸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율법을 생각하면서 전집물을 취하지 않습니다.

 

이 일을 실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누구의 의입니다 내가 가난한 자에게 꾸어 주고 전집물을 취하지 않았다면 누구의 의입니까? 자기의 의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잘 믿고 싶어서 성경에 있는 그대로 했을지라도 이 의는 자기의 의입니다 분명히 성경에서도 네 의로움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의로움입니다.

그런데 이 의로움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의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자기가 육체로 해서 자기의 의로움이 되고 있는데도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말씀을 또 생각합니다.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을 하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자기 혼자 알고서 이 일을 했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 거의 모든 교인들이 이런 일을 한번쯤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자기에게 와서 꾸어 달라고는 하지 않았어도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기부를 하기도 하고 또 실제 아무 조건이 없이 도와줍니다.

 

그리고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기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복음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고 있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면 성령이 오셔서 감동을 해 주셔서 내가 이 일을 했다고 하면서 복음을 아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마음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고 복음을 모르고 하나님의 의를 모르다 보니까 교회 안에서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보내 주신 성령이 감동을 해 주셔서 자기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의입니까?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성령은 그런 것을 감동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종교에서 배운 것을 자기 마음에서 스스로 감동받아서 하고 있는 것이지 성령은 절대로 그러한 것을 감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돕습니까?

그것이 진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성경은 육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육의 일을 무엇인지 영의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성경의 문자를 알고 그것을 자기가 육체로 행하면서 마치 영의 일을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나타났습니까?

복음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했습니까?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난한 자를 도와주고 그 전집물을 취하지 않은 것이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니 그의 아들에 관하여 아무 것도 나타나지가 않았습니다.

 

억지 부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의 아들이 성령을 보내 주셔서 자기가 그 일을 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정말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실 수 없으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은 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복음입니까?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보았습니까? 그러면 반드시 거기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이 시대 목사들이 성경을 보면서 복음을 못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복음을 보고 있습니까?

이 시대 목사들 중에 복음을 보고 있는 목사가 어디 있습니까? 저를 비난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고 있는 목사들 중에서는 아직까지 복음을 보고 있는 목사는 없었습니다. 아니 복음을 보고 있는 목사가 대형 교회에 한 사람만 있어도 아니 500명의 교인들이 있는 교회에 한 사람만 있어도 벌써 난리가 났을 것이 분명합니다.

 

고린도후서8:9절을 보겠습니다. (29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가난한 자입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에서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는 부자가 있고 가난한 자가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부자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한 사람입니다 한 부자라고 하니까 어느 한 사람을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켜서 부자가 되어 있는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한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누가 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내가 이 율법을 지킨다고 성경을 보고 있다면 거기에서 절대로 복음이 나타나지도 않고 하나님의 의도 나타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율법을 주님이 지키신다고 하면 복음도 나타나고 하나님의 의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누가 지키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지킵니까?

절대로 복음이 안 보입니다 하나님의 의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지키신다고 하면 이 율법이 복음이 되고 또 거기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이 율법을 보고 복음을 보는 목사도 없고 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하는 목사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부요하신 자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 모두는 가난한 자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모두가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가 무엇으로 부자가 되었는지도 모르고 그저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가 가난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알아야 가난한 자가 됩니다,

십계명을 알아야 내가 얼마나 가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십계명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십계명을 보고 자기들이 지키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 앞에 나온 부자 청년과 같이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다 지키지는 못했어도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교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비교를 하면서 자기는 다른 신을 섬기지도 않았고, 우상도 숭배하지 않았고, 또 살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십계명을 보았으면 죄를 깨닫고 자기가 얼마나 가난한 자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그 십계명을 지키면서 도리어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마태복음의 말씀이 생각이 나니까 무조건 자기가 가난하다고 하면서 천국을 달라고 떼를 쓰듯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먼저 얼마나 가난한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말로는 자기들이 가난하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점점 더 부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은 부자에게 가서 꾸어 달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자가 꿉니까?

물론 더 부자에게 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입니다 십계명의 율법을 하나도 지키지 못해서 아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하나도 지키지 못해서 가난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냥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가난한 자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가난한 자입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제일 부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를 가난하다고 해서 가난한 자가 됩니까? 그것이 아니라 정말로 가난한 자라야 가난한 자가 됩니다. 이건희 회장이 가난한 자라고 하면 아마도 모든 사람이 그를 비난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위들을 하고 있으면서 자기가 이 세상 사람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세상 사람보다 더 죄인의 괴수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을 보고 그렇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누가 인정합니까?

고백을 하면 실제 그런 사람이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으로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말로는 가난하다고 하면서 기도를 하면서 심지어는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가난한 자가 아니라 가식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는 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자가 있습니까?

오직 주님 한 분만이 부자이십니다. 그분만이 율법을 다 지키신 부자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가난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인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로 얼마나 부자가 되고 있는 줄을 전혀 깨닫지를 못해서 행위로는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들을 가난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어떻게 말씀을 하셨습니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는 그 부자 청년에게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모릅니다.

자기가 부자인지 가난한 자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체로는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에 가난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저 가난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건희 회장이 자기가 가난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주님은 이 세상에 부자로 오셨습니다. 우리 가난한 인생들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부자이신 주님이 가난하게 되신 것은 우리를 부요하게 해 주시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를 부요하게 해 주시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꾸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가 없습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구속의 일을 마치시고 우리가 꾸어 달라고 하니까 주님께서 꾸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너무 가난해서 주님은 우리의 전집물을 취하지 않고 꾸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로 미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을 하신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 성경을 보면서 어떻게 하는가 하면 세상 지혜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아니 갈라디아서의 말씀과 같이 초등학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말로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다 육의 일로 만들어서 초등학생이 알고 있는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지혜가 있다고 하고 있고 마치 성경에서 복음을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복음도 모르고 있고 복음을 모르다 보니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도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목사들의 실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십계명을 보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닫고 죄를 더하게 해서 가난해 지라고 하고 있지만 도리어 더욱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얼마나 부자가 되어 있는 줄을 모르고 이스라엘의 부자 청년과 같이 십계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전집물입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가난한 자의 옷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옷을 입고 자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은 우리 인생들이 지킬 수 없는 율법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아주 적은 것으로 가난한 자를 돕는 행위를 보고 마치 이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사야61:10절을 보겠습니다. (1043)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그가 옷을 입고 잡니다.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부요하신 자로서 우리 가난한 자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옷이 무슨 옷입니까? 구원의 옷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가 입는 옷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탄생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옷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죽는 것을 성경은 잠을 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오셔서 우리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꾸어 주셨습니다. 무엇을 꾸어 주셨는가 하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의로움을 꾸어 주셨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옷을 입었습니다.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 가난한 성도는 그것을 입고 자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자고 있는가 하면 주님이 다시 오셔서 깨워 주실 때까지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생명이 잠자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입니다

 

실제 잔다는 것이 아닙니다.

비유입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 옷을 입고 자는 것이 너의 의로움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의로움입니까? 이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을 조금 도운 것이 너의 의로움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가난한 자를 위해서 꾸어 주심으로 우리가 구원의 옷을 입고 자는 것이 너의 의로움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입니까?

복음입니까? 이 시대 거의 모든 목사들이 아니 이제까지의 거의 모든 목사들이 이것을 율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이 아니라 복음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세상 지혜에 빠져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율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율법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이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복음이 보였습니다. 이 복음을 보니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의로움이 나타났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을 하면서 이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네 의로움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의로움입니까?

네 의로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믿게 하는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제가 한 가지의 율법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성경이 이렇게 복음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복음을 보아야 거기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성경을 거의 문자적으로 보면서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반드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고 자기의 의를 나타내고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악한 행위겠습니까? 이 시대는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가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분명히 의롭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보고 거기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있는 성도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악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감동을 해 주고 있고 그런 성도는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거의 모두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고 이스라엘과 같이 어두움에 거하며 악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고 자기들의 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야 하는데 그것을 가려버리고 자기들의 의를 나타나게 하는 그 행위가 얼마나 악한 일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왜 악한 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것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악하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성경이 다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신약 성경만 복음이 아니라 구약 성경도 복음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 어느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구약입니다

아직까지 신약 성경은 없습니다. 이제 막 신약 성경이 기록되기 시작했고 당시에는 성경이 다 합쳐져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약 성경도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 구약성경을 보면서 복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초등학문으로 만들어서 율법의 종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안 믿을 수 있습니까? 율법으로 보면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보니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보느냐 안 보느냐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아니 기독교라는 종교는 복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율법만 아닙니다.

그리고 모든 구약의 말씀입니다 다 이렇게 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복음이 보여야 거기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그렇게 의가 보이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복음의 말씀을 보면 믿음이 자꾸 반복이 되니까 하나님의 의를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으라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또 다른 말씀을 보았는데 복음이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면 또 믿게 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입니다.

복음을 보면 믿게 됩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많이 보면 볼수록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보면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고 복음을 보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니까 계속해서 믿게 되니까 그것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한 가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열 가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수천가지를 보았습니다. 누가 더 믿을 수 있습니까? 모든 성경이 이렇게 복음으로 보이면 믿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며 그것을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박국2:4절을 보겠습니다. (1303)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을 보아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씀을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기 때문에 믿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 전체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오직 믿음이라고 하면 어떻게 믿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따집니다. 그러면서 오직 믿음이라는 이 말씀 때문에 교인들이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억지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맞습니까?

어차피 인생은 죄를 안 짓고 선을 행하는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습니까? 죄를 안 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까? 죄를 질수밖에 없다는 것이 맞습니까? 이 시대는 자기들이 하는 말이 스스로가 모순이 되고 있지만 억지를 부리면서 오직 믿음 때문에 사람들이 죄를 짓고 기독교인이 욕을 먹는다고 말을 합니다.

 

같습니다.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도 죄인입니다 그리고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는 사람도 죄인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모르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하지 않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죄를 짓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모순 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의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주의에 빠져 마귀의 자식이 되어 사망의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경이 내게 대해서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보는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하박국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사도 바울도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