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5:1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계집 종의 자녀가 누군지 그리고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가 누군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계집 종의 자녀는 종이라고 하면서 반드시 내어 쫓김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비유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뜻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저 성경에서 알고 있는 문자를 가지고 자기가 생각하는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해서 막연하게 약속의 자녀라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사단은 바로 그런 이성적은 사고로 미혹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입니까?
2000년 전 과는 너무도 다른 시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제로에 가깝다고 보면 맞습니다. 누구나 성경을 볼 수 있고 누구나 지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이 기록될 당시만 해도 종과 노예들이 많아서 실제 그들은 글을 몰라서 그저 듣기만 했던 사람들이 다수였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성경을 누구나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거의 다 대학을 나왔다고 보면 맞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사람도 누구나 성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 안에서 자의적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성경을 보는 것과 이 시대 신학을 공부했다고 하는 목사들이 보는 성경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적은 능력은 많이 향상이 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이 기록이 될 때 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종교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은 그때보다 더 맹목적으로 종교에 끌려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적인 능력이 더 향상이 되었으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맹목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의 변화도 한목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정신이 없이 빠르게 문명이 발전하는 시대에서는 자기 육체가 살아남는 것이 너무도 치열한 경쟁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전과 같이 한가하게 고민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점점 더 감성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 감성적인 것이 이 시대는 기독교를 체험의 종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실제 자기가 체험을 한 것을 표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지금은 한가하게 영의 일에 마음을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더 안타깝기만 합니다, 사실 영의 일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일입니다. 이 두꺼운 성경을 그렇게 심오하게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단은 이 세상을 점점 빠르게 해서 사람들의 정신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교인들도 성경을 몇 번만 보면 쉽게 어느 말씀이 있는 줄을 알고 있고 자기에게 필요한 말씀을 쉽게 저장을 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에게 필요한 그 문자의 말씀이 사람에게 아주 편리한 신앙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
앞뒤 생각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고 교회에 나와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있는 자기들이 누가 보아도 이삭과 같이 약속을 받은 자녀로 보입니다.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약속이 생명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왜 이식과 같이 약속의 자녀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빠르게 지나가는 세상에서 이것을 곰곰이 따질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형제가 되고 약속의 자녀가 되고 약속의 자녀가 되면 그 약속으로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이 시대 신앙인들의 모습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듣기에 좋은 말만 성경에서 골라서 하면 됩니다, 머리 아프고 복잡한 것은 이 세상에서 이미 충분히 받았기 때문에 이제 교회에서는 아주 단순하게 이야기를 해 주면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성경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성경을 보는 교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아도 어려운 말씀들이 많아서 머리가 아픕니다. 그저 내가 알고 있는 말씀만 보면 되고 또 어려운 것은 목사가 다 알아서 해석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목사가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고 하면 자기가 정말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가 된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 잘라 버립니다.
사도 바울이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기 까지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아주 치열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다 생략하고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하는 말씀만 강조를 하면 교인들은 자기들이 약속의 자녀가 된 것으로 알고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이 말씀을 하기까지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1장부터 4장까지 계속해서 여러 가지 말씀들을 했습니다, 다른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것 뿐 입니까?
3장에서는 시작부터 해서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그들이 어리석은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업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려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장에서는 종과 아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초등학문이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되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이 어디서 나고 아들이 어디서 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제가 간단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한 이 모든 것을 알고 오직 믿음으로 약속을 받은 자들에게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율법을 지키는 종은 유업을 아들과 함께 받지 못하고 내어 쫓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약속의 자녀입니까?
그것이 믿어지고 있습니까? 아니 내가 약속의 자녀라는 것을 알려면 최소한 앞에서 말씀을 한 이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그리고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유업을 이를 자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인들을 보면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형제들아 너희는 약속의 자녀라는 그 말씀만 알려고 합니다, 앞에서 말씀을 한 그 모든 것은 머리 아프고 복잡하기 때문에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성경에서 약속의 자녀라고 했으니까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되지 생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합니다,
어리석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지혜롭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얼마나 지혜로운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아주 간단하게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가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는 것을 자기 육체로 체험을 하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지식으로는 분명히 약속의 자녀로 알고 있는데 종교에 의해서 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기는 약속의 자녀라고 알고 있고 또 그 약속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자기 육체는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사단은 우리를 삼킨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어떻게 자유하게 하셨는가를 이제까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에서 자유하게 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종교의 자유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에서 자유를 하게 해 주셨는가를 모르고 자유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8:36절을 보겠습니다. (신 159쪽)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복음과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은 4장까지 복음과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보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성경은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느 한 구절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지금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교회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로 인하여 할례를 받는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무엇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말씀입니까? 이 자유라는 단어가 5장에서 뚝딱 나왔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4장까지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했고 4장에서는 율법을 지키는 자가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에게 우리에게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는 말씀입니까?
성경을 뚝 잘라서 보지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는 말씀은 지금 있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이 율법의 종이 되어서 종노릇하고 있는데 너희도 그것에 미혹이 되고 있다고 하면서 그 율법에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냥 아무 것이나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종에서 자유를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알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그냥 세상에서 종교의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계집 종의 아들을 비유로 말씀을 하면서 예루살렘이 지금 율법에 의해서 종노릇하고 있는데 거기서 너희는 자유케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자유케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유케 합니까? 요한복음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고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진리를 알게 되면 자유케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은 다 율법의 종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있는 예루살렘이 종노릇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진리를 알지 못해서 율법주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무엇의 종입니까?
분명히 율법의 종이라는 것을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율법의 종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자유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맞지 않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면서 자유하다는 말은 성경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에서는 율법을 지키면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는 그들이 자유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에서 자유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자유라는 말씀이 있으니까 자유하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율법에서의 자유입니다.
자유,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사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갈라디아에서 말씀하고 있는 자유는 무엇입니까? 지금 율법의 종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구속을 받거나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을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러면 자유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사도 바울이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비유로 해서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이라고 하니까 막연하게 자유를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갈입니다.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이라고 합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 시내산이 지금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그들이 율법의 종이 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의 종이 되어 있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면서 너희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어디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는가 하면 율법에서 자유하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으면 더 이상 율법의 종이 되지 않고 자유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유를 주셨습니다.
주님 자체가 우리에게 자유라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복음이 전해졌을 때는 자유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가 들어오고 나서 다시 종으로 삼고자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아닙니다. 어떤 행동의 자유가 아닙니다. 율법에 종노릇하고 있는 예루살렘을 말씀하면서 율법에서 자유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2: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73쪽)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어느 정도 자유합니까?
이 시대는 자유의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지나오면서 313년 이후로 교회는 계집 종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해져 오는 사상들이 다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랜 기간을 종교가 되어서 오다 보니까 사람들이 이제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자유의 율법대로
야고보서1장25절에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바로 해석하는 사람이 이제까지 거의 없다 보니까 사람들이 야고보서를 보고 오히려 더욱 더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입니다.
이 말씀은 이미 야고보서강해를 할 때 자세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기서 다시 말씀을 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것은 야고보서 강해를 보시기 바랍니다, 간단히 설명을 하면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그 부요함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으로는 가난한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온전한 율법을 지킨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부요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이루시고 그 의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로마서에서 말씀하는 율법 외에 또 다른 한 의입니다,
이 율법이 바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지키는 율법이 아니라 주님이 지켜서 완전케 하신 그 율법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이 율법의 의를 믿음으로 내 것으로 가져 온 사람입니다, 성경이 그것을 율법 외에 나타난 다른 한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 사람들이 율법주의에 빠지는가 하면 바로 이 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실행하는 자는 절대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이미 율법을 온전히 이루었는데 왜 또 다시 율법을 지킵니까?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주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고 우리를 부요하게 해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시대는 그 기본이 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내가 율법을 온전히 지켰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지켰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내가 지킨 것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켰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도는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생각부터 버리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주님이 오셔서 완전케 하시는 것이지 우리 인생들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모르다 보니까 사람들이 다시 율법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듣고 믿는 성도는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자유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어느 정도 해야 합니까? 그것을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율법주의자가 우리를 보았을 때 그렇습니다. 율법을 폐하였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악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안 지킵니다. 그러면 율법주의자들은 우리 성도들을 보고 저렇게 율법도 안 지키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반드시 지옥에 갈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그 정도로 자유해야 합니다,
자유라는 말의 의미도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냥 자유 자유라고 하지 마시고 자유를 하려면 율법주의자 눈에 심판을 받을 사람과 같이 말도 하고 그렇게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들이 하고 있는 율법적인 것 그리고 외식적인 것을 하나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주의자는 분명히 저렇게 믿다가 지옥에 간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정도까지 자유해야 합니다,
그렇게 자유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종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속된 말로 우리 성도를 보고 율법주의자들이 너희가 천국에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할 정도로 자유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하는 사람만이 자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심판 받을 자처럼 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악이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우리가 지옥으로 갈 사람으로 보일 것이 분명합니다. 율법을 폐하였다는 것도 그런데 율법을 지키는 것을 악을 행한다고 하면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을 받을 만한 일이고 행동입니다. 이 율법을 누가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친히 써서 주신 것인데 악이라고 하니 말이 됩니까?
성도의 자유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이 정도로 자유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도는 성경을 알고 성경에서 말씀한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는 이 말씀이 이해가 되겠습니까?
절대 모릅니다.
아마도 야고보서의 이 말씀을 해석하라고 하면 거의 거꾸로 해석하거나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성도가 어떻게 자유해야 하는 가를 야고보서를 통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정도로 자유하지 않으면서 자유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레위기25:54절을 보겠습니다. (구 188쪽)
“그가 이같이 속하지 못하면 희년에 이르러 그와 그 자녀가 자유하리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인생은 모두가 율법에 의해서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것을 율법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희년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미 구약에서부터 희년을 말씀하고 있지만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해입니다.
이 말씀도 이미 아카데미 강의에서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다시 설명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종으로 팔렸거나 아니면 자기 집이나 토지를 전당 잡혔을 때 희년이 오면 다시 본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7년이 안식년인데 일곱 번을 곱해서 49년이 되는 다음 해가 은혜의 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해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이 은혜의 해가 왔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이제 천국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이제 이 복음이 우리에게 전파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남의 종살이를 하고 나서 50년이 되는 해에 자유를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제 율법에서 자유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희년이 임했다는 말씀입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율법의 종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다 무엇입니까?
바로 율법의 종에서 자유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시 종의 멍에를 메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방의 교회도 역시 은혜의 해가 아직 그들에게 임하지 않아서 율법의 종으로 살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었습니까?
그리고 믿고 있습니까? 그러면 반드시 은혜의 해가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가면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 주시겠다고 하고 그가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은혜의 해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 안에서 성령의 역사로 계시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은혜의 해가 임한 성도는 이제 율법의 종에서 벗어나 자유하는 자의 자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 자유하는 자의 자녀는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위에 있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아직까지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키는가 하면 그 사람 안에 아직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그렇게 강조를 해도 사람들의 눈이 소경이 되어 있습니다.
자유의 뜻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에서 자유해야 하는 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저 자유라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유하는 자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자유하는 자의 자녀와 같이 살아야 자유하는 자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굳세게 서 있는 사람이 없고 다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과 같이 이스라엘이 있던 예루살렘과 같이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믿음이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1:28-30절을 보겠습니다. (신 18쪽)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너무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문자적으로는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너무 모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쉬지를 못하고 있고 도리어 더 큰 멍에를 메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거운 짐이 무엇입니까?
요한일서에서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의 계명은 가볍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무겁습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무겁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지어야 할 무거운 짐을 대신 지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율법이 너무도 무겁습니다. 그리고 그 무거운 것을 질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감격을 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들이 무거운 짐을 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율법 무겁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 짐을 벗겨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듣고 믿어야 하는 그 복음을 믿지 않고 도리어 다른 복음에 속히 빠져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쉼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쉼을 얻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 줄을 모르고 그저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아는 것으로 자기가 쉼을 얻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쉼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계명이 무거운 것입니까? 사람의 계명이 무겁습니다. 율법을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우리가 지킬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먼저 아시고 있습니다. 지키지도 못하는 그 계명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하셨다면 우리는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계명이 있습니다.
사람이 지키는 율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받으라는 계명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일을 다 하시고 우리는 믿음으로서 그것을 이루 수 있게 하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것이 그의 계명입니다. 얼마나 가볍고 우리가 지키기 쉬운 계명입니까?
그런데 무거운 계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무거운 것을 지고 있으면서도 쉼을 얻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율법을 잘 지키게 도와줍니다. 죄만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도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우리가 성경에서 보아서 잘 알겠지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는 거꾸로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잘 믿으면 율법을 잘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왜 성경에도 없는 말을 마치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율법은 사단이 지키게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을 알면 쉽게 알 수 있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율법을 잘 지킵니까?
그러면 이스라엘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도대체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분명히 율법을 잘 지키는 이스라엘에게 주님께서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죄만 짓게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사십일을 금식하실 때 마귀가 나타나서 시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절을 하면 이 세상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 주면서 이것을 다 네게 주겠다고 말 했습니다. 이 세상 천하만국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의 영광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면서 사단이 주는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교회에 그런 자들을 세워 놓고서 다 율법의 종이 되게 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쉽고 가벼운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모든 일을 다 하시고 우리에게 믿기만 하라는 계명입니다. 이렇게 가벼운 것을 외면하고 있고 다시 종의 멍에를 메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아니 다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들어온 복음이 처음부터 다른 복음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졌습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다른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할례 한 가지가 들어온 것을 보고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전해졌을 때는 이미 수많은 율법들과 함께 들어온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은 모두가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의 해를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멍에 대신에 쉽고 가벼운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믿음을 모르고 있고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같이 종노릇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처음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른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다른 복음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정말 이 은혜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온 것과 같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임해서 지금 우리가 성령의 감동으로 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고 있습니다.
보시기 바랍니다.
초대 교회를 지나고 나서 문서로 전해져 오는 글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복음이 있는 글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저는 아직까지 못 봤습니다. 물론 그 중간에도 주님께서는 은혜를 받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듣고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셨다는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자유할 수 있습니까?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만이 자유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성도의 숫자가 지극히 적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한 것과 같이 이제도 그러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입니다. 율법에서 완전하게 자유하고 있고 오직 믿음에 굳게 서 있는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16:13절을 보겠습니다. (신 285쪽)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믿음에 굳게 서 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믿음에 굳게 서는데 방해를 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종의 멍에를 메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 가끔 이단이라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이단이라고 합니까? 그리스도편지에서 예수를 믿지 말라고 해서 이단이라고 합니까? 그리스도편지를 보시면 잘 알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씀만 전하고 있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본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왜 이단이라고 합니까?
율법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으라고 전하는 그리스도편지를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믿음을 굳세게 서서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이성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너무도 좋습니다. 늘 우리는 정욕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자기들이 정한 율법을 지키는 일보다는 이제까지 2000년 가까이 교회가 지켜오던 율법을 안 지키고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더 힘이 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쉽게 율법주의가 됩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도 율법이 들어오니까 속히 다른 복음에 빠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율법이 들어온 교회에서 오직 믿음으로 서 있는 다는 것은 정말 굳세지 않는 사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굳세게 서 있게 성령이 감동을 해 주고 있기 때문에 이 시대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습니다.
굳세게 서 있으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는 순간 넘어집니다, 지금 이 시대 사단이 무엇으로 넘어뜨리고 있는가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죄로만 넘어뜨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사람도 아는 초등학문입니다 이제 그 초등학문에서 벗어나 양자의 영을 받은 성도는 오직 믿음으로 굳세게 서서 율법이 아무리 미혹을 해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남자답게입니다
왜 사도 바울이 남자답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여자는 굳세게 서지 못 합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생리적인 남자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성도를 남자라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답게라고 하니까 마치 남자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성도같이 서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천국을 유업으로 받은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분명히 율법이 바릅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는 것이 더 이성적으로 맞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것을 모두가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성도는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키지 않습니다. 정말 남자답게 굳세게 서서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후서3: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35쪽)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종말로 형제들아
사도 바울은 악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악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악을 모르다 보니까 그 악을 행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인생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됩니까?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이 그렇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말씀을 보고도 아니 자기들이 악을 행하면서도 감각이 없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래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마치 문둥병이 걸려 있는 것처럼 성령이 감동을 해도 감각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자유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의 종이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율법의 행위 저주 아래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주의 말씀이 달음질 하여 영광스럽게 되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주의 말씀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4장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성경의 문자는 그저 이 세상 초등학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성경에서 주의 말씀이 달음질하여 주의 영광에 참예하는 자가 되고 있습니다.
믿음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행위를 보고 내가 믿음에 굳게 서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과는 전혀 다릅니다. 믿음은 성경에서 주의 말씀을 아는 것에 달음질 하여 주의 영광에 이르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에게 믿음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그저 종교의 행위에 빠져 율법을 지키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남자답게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굳게 서려면 반드시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주의 말씀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러움에 참예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저 자기가 이 세상의 지적인 능력으로 성경을 보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마치 주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짐을 받아야 합니다.
악에서 내 스스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은 악을 깨닫지도 못하고 악에서 나올 능력도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주님의 기도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말씀을 하셨는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는 악에서 나와야 합니다.
내가 악한 일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로 믿음이 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고 그 악을 행하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말씀한 율법의 행위가 다 악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악에서 내 이성으로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있으면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악에서 어느 누구도 빠져 나오지를 못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의 이성으로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악의 모양이 믿음이 있는 성도의 행위 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와 같이 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악을 많이 행하면 행할수록 사람들은 저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어느 정도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악을 가장 많이 행한 그 사람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같이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이성입니다.
아니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생각을 사단이 그렇게 붙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셔서 악에서 건짐을 받아야 하고 또한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믿음에 굳게 서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악한 자입니다
세상에서 율법을 가장 잘 지키고 또 누구나 인정을 하는 욥이 바로 악한 자입니다.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욥기 1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욥은 이 세상 이성으로 보이는 욥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입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인 욥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회개하게 하시고 구원을 하시는 가를 가르쳐 준 것이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욥기의 말씀입니다. 욥은 율법적으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역설적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욥은 가장 악한 악인이었습니다.
그가 악인이라는 것을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도는 욥이 이 세상 가장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한 모든 행위가 악한 일인데 그것을 오히려 나타내고 있고 심지어는 그 악을 가지고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주는 미쁘십니다.
우리 성도를 이런 악한 자에게서 지켜 주십니다. 하지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유대로부터 온 거짓 형제가 들어와 할례를 받으라고 하니까 속히 다른 복음으로 떠나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은 반드시 지켜 주십니다. 그러나 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교훈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주는 미쁘셔서 너희를 악한 자에게서 건져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악한 자는 늘 교회에 있습니다. 그는 사람의 이성에 옳은 것을 가지고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옳은 것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입니다. 누가 율법을 지키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악에서 건져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악한 사람에게서 건져 주셔야 합니다. 내 스스로도 성경을 보면서 악에 빠질 수 있고 또 악한 자의 말에 미혹이 되어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할례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믿음이 모든 사람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선지자가 있었을 때 그 당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이 몇이나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에 굳세게 서서 종의 멍에를 매지 않고 자유하게 살아가고 있는 성도는 지극히 적습니다, 어느 정도 적은가 하면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는 것과 같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는 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끊임이 없이 교회 안에 율법과 외식적인 행위를 가지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미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시대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없다는 것을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다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굳세게 서 있는 교회는 없습니다. 아주 없다는 것이 아니라 제가 보고 있는 교회에서는 아직 못 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악한 자들에게서 건져 주시고 또 악에서 건져 주셔서 지금 주의 만찬을 먹고 있으면서 믿음에 굳게 서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히브리서4: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56쪽)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는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성경에서 아무리 오직 예수라는 말씀을 해도 사람들은 그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모르고 있습니까?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이 말씀을 감동 받아서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다 압니다.
그러나 정작 루터 본인도 이 말씀을 몰랐습니다. 만약에 그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알았다면 그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율법을 어느 정도는 버릴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가 율법이 악한 것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지금의 루터 교회 역시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정말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에서 문자를 많이 아는 것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으로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을 알면 뭐 합니까? 그렇게 힘주어서 이야기를 하는 그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이 대제사장이라는 것도 거의 문자적으로만 알고 있지 대제사장이 무엇을 하는 줄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다 라고 보면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그저 아! 주님이 우리의 대제사장이구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맹목적으로 믿는다고 합니다.
대제사장입니다.
그는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하는 제사를 단번에 드리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일 년 일 차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땅에 있는 성막의 지성소에 들어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세상 모든 죄를 사하기 위해서 단번에 드리셨다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속죄를 받았습니다.
일 년 일 차례 대제사장의 제사로 깨끗한 백성으로 산다는 것을 구약의 율법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늘에 올라 가셔서 단번 속죄를 이루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깨끗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의 믿는 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영혼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주님이 대제사장이라는 것은 문자적으로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는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가 육적으로 지은 죄를 매일 회개를 한다고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어느 집회에서는 그것을 고백해서 회개를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안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육적인 죄를 자기 입술로 고백하는 회개를 하는 그 한 가지만 보아도 믿는 도리를 굳게 잡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냉정하게 말씀을 드려서 믿음이 있는 성도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굳세게 서시기 바랍니다,
정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을 바로 깨닫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악에 빠지지 않고 또 악한 사람에게서 건짐을 받으려면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이 아닌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다른 복음과 복음을 섞어서 듣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복음으로 간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믿음에 굳세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갈라디아서5:2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 바울이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복음을 듣고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그래도 처음에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참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른 복음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주로 복음이 들어왔지만 그것은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마 저를 욕할 사람도 있을 줄 압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이데오르기 사상에 빠져 있어서 극단적인 친미주의자가 많아 있습니다. 제가 반미를 외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미국에 대한 고마움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고마움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고마움입니다.
그것으로 끝이 나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를 보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의 고마움과 영적인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전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을 통해서 들어온 것은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그것이 이 시대 우리나라 교회의 모토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어떻게 합니까?
신학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신학 박사라는 학위를 받고 목사 안수를 받고 들어옵니다. 또 그런 사람들을 교회에서 환영을 하고 있고 인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왜 다른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다른 것은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추수감사절 한 가지만 해도 이미 다른 복음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헛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 단 한 가지도 다른 복음인데 성경에도 없는 추수감사절은 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는 말씀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도 감각이 없어 그것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뻐합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추수감사절이라는 절기를 통해서 감격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무 유익이 없는 절기를 지키면서도 그들은 감격해 하고 있고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감각이 없는 병이 들어 있어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할례입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미국에서 선교사들이 올 때 수많은 율법이 함께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어서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였던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다른 복음을 가지고 왔고 그것이 이 시대 우리나라의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율법주의가 되어 있습니까?
하지만 자기들이 율법주의라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는 것은 율법이 아니고 자기들보다 더 많이 지킨다 해서 그들을 율법주의라고 하면서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교회가 바로 안식일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안식일을 지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율법주의라고 하면서 이단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안식일 교회나 주일을 지키는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나 똑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율법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입니다.
유익이 없습니다.
단 한 가지 할례를 받는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도 바울이 그것을 보면서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유익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할례를 받은 그 사람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왜 믿습니까?
영생을 받기 위해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평생을 교회에서 살면서 십일조를 내고 주일을 지키고 정말 누가 보아도 그리스도인과 같이 신앙생활을 했는데 아무 유익이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할례 단 한 가지도 아무 유익이 없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는데 이 시대는 얼마나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너무 담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성도의 삶이라고 하고 있고 또 마땅히 성도가 이 세상에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그것이 믿음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아무 유익을 줄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들어올 때부터 다른 복음이 들어와서 이 율법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주입니다.
그리고 지옥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유익이 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한 그 지옥의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다른 복음이 들어와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 있게 우리 교회는 율법을 안 지키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있습니까?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직까지 그런 교회를 보지 못했습니다. 율법을 말로만 폐했다고 하지 실제로는 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탄절을 지키고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다면 다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빌립보서3:4-9절을 보겠습니다. (신 321쪽)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사도 바울을 이야기 합니다,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자기 육체를 신뢰한다고 말을 한다면 나는 더욱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복음에 대해서 우리에게 바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고 도리어 다른 복음을 만들고 있습니다.
육체를 신뢰할 만합니다.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 살았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으로는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만 그랬습니까?
사실 당시 유대인들은 거의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려고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로 온 부자 청년도 주님이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니까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던 그것이 자기에게는 유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서는 그것이 해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면 육체의 사람에게는 유익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 육체를 위해서는 분명히 유익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서는 그것이 해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도 바울이 얼마나 육체적으로는 유익했습니까? 그가 얼마나 육체적으로 유익했는가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공회원이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아주 잘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분명히 유익합니다. 유익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율법을 지키는 것이 육체적으로 해가 된다면 사람들은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지금도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성인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다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이 시대 목사들은 그런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불행한 일이기도 하지만 실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육체적으로 분명히 유익을 얻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게 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목사가 있습니다.
예전에 청계천 철거민들을 위해서 싸워주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약한 자들의 편에서 정말 투사와 같은 모습으로 싸워서 많은 사람들이 저 목사는 정말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헌신한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되었습니다. 그 육체적인 유익이 지금은 부자의 교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육체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존경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것이 유익이 되어서 지금은 대형교회를 아주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의롭고 선하게 사는 것은 분명히 자기 육체에는 유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해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바리새인이었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던 그 육체의 유익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서 해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해로운 것을 이 시대는 너무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어떤 해가 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합니다. 왜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하는가 하면 자기의 흠 없는 율법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 도리어 해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살면서 지켰던 모든 율법의 의가 해가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의 의 버리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는데 그것을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말씀합니다, 왜 배설물과 같이 버렸는가 하면 육체에는 유익을 주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 해가 되기 때문에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하면서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의 의가 유익이 되지 못하게 하고 있고 해가 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에서도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다시는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왜 지키지 말라고 하는가 하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를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유익이 없는데 무엇 하러 믿습니까? 율법을 지키고 싶으면 차라리 세상에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도리어 조금이나마 유익이 되어 최소한 음부의 고통 중에는 들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율법과 복음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라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다 종교에 속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유대교에 속은 것 같이 이방의 교회가 기독교에 속고 있고 이것을 요한계시록에서 두 짐승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7:22-23절을 보겠습니다. (구 918쪽)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
할례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할례를 의무적으로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할례는 율법입니다, 모든 율법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 할례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 유익이 없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무 유익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유익이 있으면 구원을 받고 유익이 없으면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죄인이 음부의 고통 중에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는 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 유익이 없게 되면 특별한 형벌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일은 악한 일입니다. 세상의 이성적 상식으로도 죄인이 받을 벌과 악인이 받을 벌이 다르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그저 종교에 의해서 끌려가고 있습니다.
음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교회는 두 남편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음녀라고 성경에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년이 그리고 들어갔습니다. 이 소년은 그래도 세상에서 지적인 능력이 있고 인정을 받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그가 세상에서 아무리 큰 인물이라 해도 역시 소년입니다.
알지 못 합니다
그가 어디로 가는 줄을 전혀 모르고 그저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이 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가는데 이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러 가는 길을 가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 까지 이르게 되고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는 음녀가 되어 있습니다.
계집 종의 교회는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거대한 종교에 들어오는 순간 그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 해도 역시 이 소년과 같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율법을 지키는 교회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종교입니다,
음녀가 되어 있는 종교는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마귀의 자식들이 되어서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 흠 없는 율법의 의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땅에 오셨지만 아무 유익이 되지 못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에 교회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역시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벌써 율법주의가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하게 돼서 이 소년과 같이 그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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