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3: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05쪽)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아브라함과 우리가 함께 복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천국에 들어가 있습니까? 아마도 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성경에서 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죽으면 천국에 갑니까?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잠자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잠자고 있다는 말씀도 우리가 알아들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서 잠잔다고 하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성도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믿음이 없이 율법을 지키면서 산 사람들입니다. 이 둘은 분명히 다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은 사람들은 영이 없습니다. 분명히 성경에서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거듭남이라는 것은 두 번 낳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로 한번 낳고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영으로 다시 한 번 낳습니다.
사실 우리는 내세를 알 수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라기보다는 비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의 일은 우리가 성경에서 기록이 되어 있는 아주 조금을 알고 있습니다. 그 이상을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길로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입니다.
천국도 사실은 우리가 상상도 못 합니다, 단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지 그것을 어느 누구도 이렇다고 정의를 해서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언어로는 표현이 안 되기 때문에 믿음으로 믿어지는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것은 또 다른 나이며 그 영이 진짜 나라는 말씀입니다 육체를 입고 있는 나는 전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사라지는 안개와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습니다, 모든 인생은 그것을 나라고 하고 있고 성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있을 그리스도의 영을 나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말씀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나입니다.
이 영의 일이 믿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믿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영이 잠자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이 다시 오셔서 주님께서 부르실 때 공중에서 영접을 받아 부활의 형상을 입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어떻게 잠잡니까?
사람이 자는 것 같이 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입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 영이 잠자는 것과 같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영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깨어서 부활을 합니다, 그때 이 세상에서 믿었던 모든 믿음의 아들들이 다 깨어납니다. 저도 어떻게 깨어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부활의 형상으로 나타나는지는 모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 역시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본 것이기 때문에 언어적인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생명은 완전하다는 것이고 그 생명은 천사를 다스릴 수 있는 그런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천국은 사람이 언어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이 언제 있습니까?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먼저 천국에 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도 믿음이 있는 성도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정말 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에 가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와 같이 천국에서 아브라함과 함께 영원한 복을 누리고 싶어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정말 이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를 이용하려고 하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입니다.
그들은 정말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교회 안에서 열심을 내면서 잘 믿으려 하고 있습니다. 잘 믿어서 천국에 가려고 하는 그들이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도리어 버림을 받은 이스라엘과 같이 더욱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심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제가 폄하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진심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도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영의 일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다 비유와 은유 그리고 그림자로 되어 있는데도 사람들은 세상의 이성으로 보고 있고 그것이 스스로를 샤머니즘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만들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천국의 복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아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로운 생명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탄생이 된 내가 없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세상 사람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그들이 가장 불쌍합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3장에서 계속해서 이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이 아니고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사람의 죽음 그리고 영의 탄생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사실 세상의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아직 천국에 못 갔습니다.
우리 앞에 있던 믿음의 선진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사람이 죽으면 시간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천국에 간다고 하는 것도 꼭 틀리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그 잠자는 것이 마치 하루 밤을 자고 깨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잠잔다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잠잔다고 말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교회에 나왔다는 것은 청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분명히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하나님께서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왕에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서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저주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저주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저주를 받는 일을 하면서도 자기가 저주를 받는다고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예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고 또 이 시대 누가 저주를 받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만 믿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저주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근거하여 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기록된 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계속하여 행하지 않는 사람은 다 저주 아래에 있다" 하였습니다.”
누가 저주를 받습니까?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저주를 받습니까? 물론 그들도 생명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누가 보고 있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누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그들이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들이 시간과 형식에 맞추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분명히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율법을 안 지킵니다,
누가 지키는가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지 세상 사람들은 지키라고 해도 안 지킵니다,
로마서4:15절을 보겠습니다. (신 244쪽)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분명히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하지만 성경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율법을 담대하게 지키면서도 자기는 저주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한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나 갈라디아에서 분명히 율법을 지키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저주를 받는가는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함을 받았다 해도 율법을 지키면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유대에서 온 거짓 형제가 많은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 한 가지 할례라는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단 한 가지 할례라는 율법으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613가지가 아닙니다.
단 하나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저주를 받게 만들고 있습니다. 왜 저주를 받게 하는가 하면 그 한 가지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에덴에서 아담을 통해서 우리에게 예표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율법이 어떠한 기능이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이 없습니다,
거꾸로 말씀을 드리면 율법이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범함이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율법이 없어야 율법을 범하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지 율법이 있으면 반드시 그 율법을 범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그것을 보여준 것이 바로 에덴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율법 613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환상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율법을 보고 자기 마음에서 그 율법을 입법을 해서 이렇게 지키면 되겠다고 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 시대 십일조와 주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십일조입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율법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십일조라는 단어만 알고 있을 뿐이지 십일조에 대한 율법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단어에 집착을 해서 자기들이 만든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십일조라는 율법을 어기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 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환상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으로는 분명히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면 그 사람이 지키는 율법으로 인하여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어야 범함이 없어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데 율법이 있으면 범함이 있기 때문에 의롭다 함을 받지 못 합니다.
의인은 없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을 사람의 이성으로 보지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의인이 없다고 하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율법이 있는 곳에는 범함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반드시 율법이 있는 곳에는 범함이 있습니다, 나는 지키고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못 지킨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자기는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맞습니까? 내 이성이 맞습니까? 성경 말씀이 맞습니까? 성경에서 율법이 있는 곳에 범함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면 내가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을 범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성경을 성경으로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7:19절을 보겠습니다, (신 156쪽)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율법을 지키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맞는 말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이 십일조를 내고 있다고 하고 있고 또 주일을 지키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지금 주님께서는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지키는 자기들을 보면서 성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릅니다.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과 주님과 둘 중에 하나는 지금 말을 잘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흠 없는 율법을 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찾아온 부자 청년도 주님께서 율법을 말씀을 하시니까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자 청년이 거짓말을 했습니까?
그는 실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다 지키면서 살아왔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아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진심으로 율법을 다 지키면서 살아왔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 부자 청년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 지켰습니다,
그것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이성입니다, 사람이 알고 있는 율법입니다 실제 마태복음에서 주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은 성경대로 살기를 원했고 자기 행위도 그렇게 했습니다, 물론 이 부자 청년에게는 주님께서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고 직접적으로는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 청년은 율법을 지키지 못 했습니다.
이 부자 청년은 다 지켰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이성과 성령의 감동의 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사람의 이성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것 같지만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율법 중에서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내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더라도 주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보고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킨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시면 나 역시도 율법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내가 왜 율법을 지키지 못했는가를 성경을 보면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주님은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들이 십일조를 내고 있고 주일을 지키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둘 중에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 시대 모든 교회가 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키지 못 합니다.
그런데 지키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주님의 말씀도 거절하는데 그가 어떻게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기 때문에 오셨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어서 모두가 진노를 받아 사망에 이르러야 하는데 주님이 오셔서 율법을 요구를 이루시고 우리가 지키지 못한 율법을 대신 지켜서 우리에게 그 부요함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믿는 것이 성도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묻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를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성경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까지도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자기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진노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지키는 그 율법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행위로 구원을 받겠다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문제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을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믿음이라고 하기 때문에 십일조도 믿음이 되었고 주일도 믿음이 되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은 믿음이 있는 것이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들이 율법을 지킨다고 했는데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면서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아무리 그것을 믿음이라고 해도 성경에 율법으로 기록이 되었으면 그것은 율법이 되는 것이고 그것을 지키는 자는 반드시 범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살인 안 했습니까?
정말 잘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이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인한 자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 도피성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도피성을 만들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모두가 살인한 자가 되어서 그리로 도피하라는 것이고 또 이 시대 역시 우리가 살인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로 도피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살인을 한 자이기 때문에 주님께로 피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고도 자기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그리고 모든 율법을 범한 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아직 성령이 임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에서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7:49절을 보겠습니다, (신 157쪽)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주님을 잡아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잡아 오지를 못하니까 바리새인 안에서 서로 언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 중에서도 예수를 믿는 자들이 있느냐고 하면서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알지 못 합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무리가 있다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이성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와 사상이 다 이렇습니다. 자기들이 말하는 도덕을 이루어야 천국이든지 극락이든지 갈 수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정한 것이 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는 기준도 없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분명히 율법 613가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기준도 없습니다, 교회 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이 다릅니다, 물론 같은 율법도 있지만 다른 율법도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는 완전히 엿장수 마음대로 율법을 지킨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 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정한 그 법을 지키면서 천국이든지 극락이든지 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자기들과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천국이든지 극락이든지 가지 못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율법을 알기 때문에 천국이든지 극락이든지 가지만 율법을 모르는 저 사람들은 저주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실제적으로 저주를 하지 않지만 자기들이 가고 저 사람들이 못 가면 저주가 아닙니까? 지금 바리새인들이 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기들은 천국에 가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저 사람들은 저주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생각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나 다른 종교에 있는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들이 알고 있는 율법을 지키지 않은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합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저주를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법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법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법의 생각입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이방의 교회도 역시 그렇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종교와 사상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서는 바리새인의 생각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율법을 모릅니까?
이스라엘이 율법을 알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율법 613가지를 지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까? 로마서에서 율법에 가입한 것은 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은 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압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가 저주를 받을 자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지키지 않은 자들이 저주를 받을 자들이 아니라 율법을 알고 나니까 내가 저주를 받을 자입니다. 내가 저주를 받을 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성경에서 율법을 보았지만 율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성경에 율법을 기록하셨습니까?
그것은 율법에 가입을 해서 율법으로 나를 보니까 죄를 더하게 하기 위해서 반포하셨습니다. 그렇게 죄가 더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바라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에 가입을 해서 보니까 내가 십계명의 어느 한 가지도 지키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십계명입니다.
이것을 알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이 십계명을 알았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 이 십계명을 다 설교로 올려 드렸습니다, 그 중에 내가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했을 때 어느 것을 지켰습니까? 우리는 하나도 지킨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못 지켰습니까?
율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키지 못 합니다, 설령 율법을 안다고 해도 사람의 능력으로는 지킬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지키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정작 자기들이 율법을 모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율법을 모르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모르면 저주를 받습니다.
아니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를 받습니다.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졌고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에 가입을 해서 보니까 죄가 더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성도는 절대로 이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죄가 더하면 결국에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누가 율법을 지키려고 하겠습니까?
이스라엘은 스스로 저주를 자청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알고 있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을 모르는 자기들에게 스스로 저주를 하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이고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스스로 저주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히브리서7:18-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59쪽)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율법
전엣 계명입니다, 그것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익합니다. 율법은 무익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율법이 무익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문자적으로 지켰던 전엣 계명은 무익하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이 지켰던 전엣 계명 그리니까 문자적으로 알고 있는 율법은 무익합니다, 어느 정도 무익한가 하면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백해무익하기 때문에 이 율법을 지키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담배를 피웁니다,
제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담배를 사람의 건강으로 보았을 때 백해무익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라도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건강에 폐만 끼치고 있습니다, 그런 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그것이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알고도 피웁니다,
왜 피웁니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중독입니다. 담배를 피우면 스트레스가 조금이라고 풀리는 것 같고 또 긴장을 주었던 일에서 잠시 여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알고도 피우고 있습니다,
중독입니다,
그렇게 피우는 것을 니코틴 중독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율법도 중독을 시키고 있습니다. 한번 중독이 되면 사람의 이성을 마비 시켜 버리고 있습니다, 담배는 그래도 누구나 나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행위는 사람의 이성에 너무 좋기 때문에 담배보다 더 심한 중독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마약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자기 영혼을 파멸로 끌고 가는 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백해무익한 정도가 아니라 인생을 파멸로 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마약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되는 것과 같이 율법에 중독이 되어 있는 사람은 자기 영혼을 파멸하게 만들고 있는데도 그 중독이 너무 심하고 또 그것이 마약같이 나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성에 너무 좋기 때문에 마약보다 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 백해무익입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율법 자체를 성경에서 알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히 율법에 가입을 해서 그 율법을 바로 알아서 내가 율법의 어느 한 가지도 지키지 못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욱 더 사모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단 한가지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사도 바울이 이 갈라디아에 서신을 보낸 것이 할례라는 율법 한 가지로 미혹이 되어 있는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리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율법을 지켜서 어리석다는 것이 아니라 할례라는 단 한 가지의 율법에 미혹을 당해서 율법에 속해 있는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주 받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나에게서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의 모양이 있다면 반드시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강하게 말씀을 드려도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저 지식으로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마시고 반드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온전하게 하지 못 합니다.
천국은 누가 가는다 하면 온전한 사람만이 갈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온전케 되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그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온전케 되지 못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온전한 물에 온전치 못한 독을 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율법 행위에 속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유기체라는 것을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율법을 어느 한 가지도 지킬 수 없지만 또 율법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율법을 한 가지를 살리는 순간 모든 율법이 다 살아난다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십일조라는 율법을 하나 지키면 성경의 모든 율법 613가지가 함께 살아나 그것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명기27:26절을 보겠습니다. (구 303쪽)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갈라디아서3장10절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대답을 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키라는 말에 아멘으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맹목적으로 아멘이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신명기27장15절 부터입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율법을 말하니까 백성들이 다 아멘으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저주를 자청하는 아멘으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27:21절을 보겠습니다. (구 303쪽)
“무릇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그 중에 하나입니다.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율법을 보면서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자기는 저주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시대도 이 율법을 설교시간에 이야기를 하면 아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큰 소리도 당당하게 아멘이라고 대답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신명기27장에서 말씀하는 다른 율법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율법만은 너무도 자신 있게 대답을 할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더구나 혼인을 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자신 있게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이것은 사람의 이성으로도 누구나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은 짐승과 규합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역시 짐승과 규합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어떻게 짐승과 규합을 했는지 조차 모르고 이 율법을 보고 자신 있게 지킬 수 있다고 하면서 저주를 말씀하는데도 아멘으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13장에 두 마리 짐승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이스라엘이라는 유대교의 짐승이고 다른 하나는 이방의 교회가 짐승이 된 것을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짐승에 대해서는 아카데미 강의를 보시면 됩니다, 그 강의를 보면 이 시대 이 짐승과 규합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거의 다 입니다.
짐승과 규합을 하고 있으면서도 성경을 보는 지혜가 없어서 짐승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종교화가 되어 있는 교회가 짐승입니다. 두 짐승이라고 하니까 이상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짐승에 대해서도 바로 해석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없으니까 이 시대 짐승과 규합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짐승이 되어 유대교가 되었습니다.
아방의 교회도 짐승이 되어 천주교.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짐승과 규합을 하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볼 때는 자기가 분명히 율법을 지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신명기27장에서 저주를 받으라는 율법의 어느 한 가지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갈라디아서를 강해를 하면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인생은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아니 표면적인 율법은 몇 가지 지킬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율법은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면적인 율법을 지킨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님께서도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저주만 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겠다고 말을 하고 있고 실제 이 시대는 수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율법대로 저주를 받은 것을 모르고 자기들이 이스라엘보다 더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저주가 없다면 우리는 지켜도 됩니다, 문제는 율법을 지키는 순간 의롭다 함과 저주가 함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둘 중에 하나입니다
율법을 지키면 저주를 받든지 아니면 의롭다 함을 받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단위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더 많이 지키고 누가 덜 지키고 하는 계량의 단위가 아닙니다. 율법은 지키면 의롭다 함을 받고 못 지키면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율법으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킵니까?
보통 담대한 것이 아닙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저주를 받는데 세상에서 편안하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지 무엇 하러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냥 저주가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큰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믿지 않은 죄에 대한 보응으로 사망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 진노를 누가 받는가 하면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받는 저주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저주를 받아 그렇게 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의 모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말씀입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신명기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책입니다.
그 안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온갖 일입니다, 그러니까 율법 613가지를 항상 행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어느 한 가지를 따로 떼어 놓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도 율법입니다, 그러나 율법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도 역시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항상 다 행할 수 있습니까?
단 한 가지도 못 지킨다는 것을 아담을 통해서 보여 주셨는데도 사람들은 자기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사단이 얼마나 강한 자인가를 모르고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주를 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아멘으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3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을 너무 모릅니다,
그리고 그저 성경에 율법이 기록이 되어 있고 더구나 구약에서 지키라는 말씀들이 있다 보니까 맹목적으로 지키려고 합니다, 신명기에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라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어느 사람이 할레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가 할레를 받은 것으로 그 할례에 대한 율법을 지킨 것이 아니라 그는 율법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저주를 받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할례라는 율법은 자기 몸에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할례를 한 것은 아닙니다,
할례는 분명히 마음에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설령 그가 몸에 할례를 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할레라는 율법은 지켰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할례를 받은 그 사람은 그 할례를 받은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율법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 613가지를 항상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율법의 어느 한 가지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할례는 자기 몸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몸에 할레를 했다 해도 그것으로 율법을 지켰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전체를 항상 다 지켜야 그가 율법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도덕법을 살리면 안 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신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뿐 아니라 이제까지 교회사를 보면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이 없어지고 또 자기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다 보니까 제사법과 시민법은 폐하여 졌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제 성도로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도덕법은 살아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입니다.
도덕법이 살아 있다는 것을 누가 반대할 수 있습니까? 저 역시도 도덕적으로 의롭게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악한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도덕법이 폐하여 졌다고 하면 마치 십계명에 있는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살인해도 되고 도적질 하지 말라는 율법을 도적질해도 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십계명 페하여 졌습니다,
그렇다고 누가 살인을 하라고 합니까? 누가 도적질 하라고 합니까? 이미 그런 법은 우리가 세상에서 지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십계명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우상을 만들지 않고 있고 살인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이성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문제는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제가 살인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살리면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그에게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 할례를 하라고 해서 그것을 자기들의 몸에 하는 것을 보고 그 할례를 했으면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입니다,
그것 몸에 받으면 어떻고 안 받으면 어떻습니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례를 받은들 안 받은들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내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안타깝게도 성경을 성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가 십일조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그 교회를 통해서 전도를 하기 위해서 영혼의 일을 하기 위해서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상계동의 어느 교회는 자기들이 한 십일조로 세계에 선교사를 많이 파송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얼마나 좋습니까? 이것을 나쁘다고 하면 도리어 욕을 먹는 것이 사람의 이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십일조 하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는 가를 알면 과연 그가 십일조를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내가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어서 내 소득의 십일조로 가난한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헌금을 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나쁘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돕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은혜를 받았으면 복음을 전하는 곳을 도와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되게 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율법입니다,
십일조는 분명히 성경에 율법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십일조가 율법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로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거나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율법 613가지에 십일조에 대한 율법이 최소한 10개 이상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마음으로 십일조를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 마음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진심이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것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리석어서 그것을 모른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싶고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할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너희가 할례를 받았으면 이제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십일조입니다 그리고 주일이 대표적인 율법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가 다 거기서 파생이 된다고 보면 맞습니다.
십일조를 합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율법 613가지를 전체를 다 행할 의무가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그 의무를 하지 않으면 신명기에 말씀과 같이 저주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십일조를 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좋은 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전체를 다 행해야 합니다,
유월절을 먹어야 하고 맥추절을 지켜야 하고 수장절을 지켜야 하고 또 성전을 지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면서 성전을 짓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이미 십일조를 내는 자체로 법을 어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레위인을 반드시 데리고 와야 합니다, 이방인에게는 레위인이 없으니까 이스라엘에게서 레위 지파 자손 중에서 데려와서 제사장을 삼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그리고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이미 주일이라는 것 자체가 율법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주일을 지키면서 안식일을 범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다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드리고 있는 예배의 형식이 어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저주입니다,
사도 바울은 할례 단 한 가지를 가지고 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강경하게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 마음대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법을 법대로 지키지 않으면 그것도 법을 어긴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이 지키고 있는 십일조를 법대로 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 십일조를 법대로 하고 있는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감성이 아닙니다,
좋은 것이 좋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이성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맞추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이스라엘과 같이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모르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는다고 자기들이 말을 했는데 그 말 그대로 율법을 몰라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기초입니다,
성경에서 기초가 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너지면 여러분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분명히 이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례라는 단 한 가지 율법을 자기 몸에 한 그 사람은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냈습니다,
정말 감사해서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래도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잘 지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십일조를 드렸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 너는 성전도 지어야 하고 또 그 성전에서 양을 잡아서 제사도 드려야 하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전체 율법을 다 행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 모르면 죽습니다.
그냥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면 그나마 괜찮습니다. 그러나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율법을 범해서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 얼마나 좋습니까?
그리고 십일조를 하는 것 누가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고 싶은 그 율법만 지키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내가 율법을 한 가지 지켰으면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하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1:8절을 보겠습니다. (구 320쪽)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기록한 대로
이 여호수아의 말씀은 실제 율법을 기록한 대로 지키라는 말씀이 아니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겠습니다. 갈라디아에서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이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이상한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가지고 자기들 편리대로 억지로 해석하면서 주일을 구약에서부터 정했다고 하는데 그런 성경 말씀은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 율법을 범하는 자가 되고 그것으로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일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서 없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성경에 주일이라는 단어가 딱 한번 나옵니다, 그것도 일주일 할 때 주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일반 교인들은 성경에 주일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저 따라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항상 다 지키다 하나를 범해도 저주를 받는데 율법 책에 없는 것을 지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가 한 날에 예배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지금은 다수의 사람들이 일요일에 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에 예배를 하는 것은 바르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날에 한다고 해서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를 가 보시기 바랍니다, 다 주일 예배에 대해서 몇 시에 드리는 가를 써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어떤 예배들이 있는가를 자세하게 써 놓았습니다.
지키려면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지키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렇게 지킨다 해도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지키는 것이 더 성경적입니다. 율법 책에도 없는 것을 자기들의 편리에 따라 만들어서 삼가 지키고 있다면 반드시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줄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항상 지킬 수 있습니까?
자신이 있는 사람만 율법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항상 다 지키지 못하면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반드시 저주 아래 있게 됩니다. 할례를 받았습니까? 그러면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입니다, 그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저주 아래 있게 됩니다,
주일을 지킵니까?
아니 주일이라는 말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주일을 지키라고 했습니까? 율법 책에도 없는 것을 왜 하고 있습니까? 그저 종교의 포승에 묶여서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잠언의 말씀과 같이 소가 푸주로 끌려가는 것 같이 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수가 간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키려면 안식일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을 지킬 때도 모든 규례를 다 지켜야 합니다, 불을 피워서도 안 되고 멀리 이동을 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입니다. 가스 불을 피거나 전기를 켜서도 안 되고 보일러를 돌려서도 안 됩니다,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율법을 절대로 폐하지 못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지키지도 않으면서 율법을 지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율법이 믿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야고보서2: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72쪽)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왜 저주를 받습니까?
율법 아래 속한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저주를 받는가를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쓴 서신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까지 자기 조상들이 대대로 지켜왔던 율법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야고보가 온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에 거치면 모두를 범한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율법 전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전체입니다.
어느 한 가지를 때어 놓고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율법 전체가 생명이기 때문에 율법은 따로 떼어 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율법의 기능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서 율법을 지키라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입니다
어느 율법 한 가지를 지켰습니까? 그러면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를 범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율법 전체를 말씀을 하고 있지 율법을 따로 떼어 놓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은 전체입니다.
제사법, 시민법, 도덕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학자들이 구분해 놓은 것이지 성경은 우리에게 율법은 전체라는 것을 늘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율법을 전체로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분명히 율법은 생명을 주기도 합니다, 생명을 주는데 있어서는 분명히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항상 다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막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알려고 하면 성막 전체를 다 알아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만 안다고 해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이 시대는 성막에서 물두멍은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등대와 분향단을 모르고 있고 언약궤와 속죄소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주님께서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성막의 기구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모르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고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막은 어느 한 부분을 따로 떼어서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율법도 어느 한 가지를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율법도 역시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야고보나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어느 것을 따로 떼어서 말씀하지 않고 율법 전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자기들 마음대로입니다, 교회마다도 다 다릅니다. 정통이나 이단이나 할 것 없이 다 율법을 자기들 마음대로 떼어서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키는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지키는가 하면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 전체를 생각하면 절대 안 지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율법 613가지를 생각하면 지키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자기들 마음대로 떼어서 생각하니까 자기들이 마음대로 입법을 하기도 하고 또 마음대로 폐하면서 이것은 지켜야 하고 이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 하나에 거치면 왜 모두를 범한 자입니까?
사람들로는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구는 도적질을 했고 누구는 거짓말을 했고 누구는 살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율법은 뭐라고 합니까? 살인을 한 자도 율법을 범했고 거짓말 한자도 율법을 범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2: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72쪽)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왜 율법 아래 있으면 저주를 받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야고보가 그 말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보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613가지 다른 율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어느 것은 지키고 어느 것은 지키지 못 합니다 이 세상의 이성으로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도적질을 했습니다.
그는 물론 법을 어긴 자입니다. 그러나 그가 살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이라면 도적질 한 자는 도적질 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살인을 한 자는 살인을 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성경에도 살인을 했을 때와 도적질을 했을 때는 다르게 벌을 받습니다. 다르게 받더라도 야고보나 사도 바울은 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범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범한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이 세상의 법은 그 법에 따라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온 율법을 다 지켰다 해도 그 하나에 거치면 율법을 범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살인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율법의 어느 한 가지를 지키지 못 했습니까? 그러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됩니다, 율법을 범한 자는 어떻게 되는가 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온 율법을 다 지키다가 하나에 거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어서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각각의 율법에 따른 벌의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주입니다.
그 결론은 저주라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많은 율법을 못 지켰을 때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온 율법을 다 지키다 하나에 거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왜 저주를 받는가 하면 그는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살인을 한 자도 저주를 받고 도적질을 한 자도 저주를 받고 거짓말을 한 자도 저주를 받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자도 저주를 받을 수 있습니까? 이 세상 어느 종교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야기 합니까?
계량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지킨 사람은 자기들이 말하는 천국이든 극락이든 가고 잘 못 지킨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이성으로 이야기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도는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 가를 알아야 하고 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른 종교입니다.
율법을 잘 지킨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못 지킨 사람이 있습니다, 서로 상대적으로 비교를 해서 그래도 이 사람은 많은 사람들보다 잘 지켰다고 하면서 천국에 간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비해서 잘 못 지킨 사람은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닙니다.
갈라디아에서 계속해서 그것을 말씀하고 있고 야고보도 역시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 613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를 범했으면 그것은 율법을 범한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율법을 범한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율법과 세상에서 말하는 율법과의 차이입니다.
율법
한 가지를 지켰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율법 책에 있는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율법 한 가지를 범 했습니까? 그는 율법을 범한 자가 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율법의 기초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는 것으로 그냥 넘어갈 수 있다면 좋은데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담대하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살인하지 않았습니까?
정말 잘 하셨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십일조를 드리고 있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참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 나쁘다고 하겠습니까? 저 역시도 사람의 이성으로는 그것이 하나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저는 사람의 이성이 아닌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는 가를 알고 싶은 사람입니다, 온갖 율법을 항상 다 지키다가 하나에 거치면 모두를 범한 자입니다 율법을 범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에서 율법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아니 정말 하나님의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애를 쓰면서 지키고자 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뭐 합니까?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도로서 살고자 지키는 그 율법을 지키면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율법을 지키고 싶습니까?
저는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포기 하겠습니다. 만약에 제가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성경에서 보았다면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포기 합니다. 어차피 율법을 범한 자가 되어서 저주 아래 있는데 믿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정말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25:41절을 보겠습니다. (신 45쪽)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양이 있고 염소가 있습니다. 이 염소들을 향해서 주님께서 저주를 받을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왼편에 있는 염소가 누구입니까? 율법 아래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양은 믿음이 있는 성도입니다.
그리고 염소는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했지만 율법을 지킨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누군가 하면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내고 주일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해서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저주를 누가 받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염소도 우리가 언제 주의 주리실 때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않았느냐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다 했다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과 같이 내가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어려서부터 다 지켰지만 그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어서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살았지만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율법에 가입을 하고도 자기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몰랐다는 말씀입니다.
왜 저주를 받습니까?
살인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상을 만든 자이기 때문이고 우상의 제물을 먹은 자이기 때문이고 모든 율법을 하나도 못 지킨 사람이기 때문에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 아래 있다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항상 다 지키지 못해서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오른편 주님의 의입니다,
그리고 왼편은 사람의 의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에서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이 어디에 있는 줄을 모르고 그저 종교라는 거대한 짐승에게 사로 잡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다가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짐승이 되었고 이방의 교회도 짐승이 되었습니다,
누가 지옥에 들어갑니까?
영영한 불에 누가 들어갑니까? 주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저주 아래 있었던 사람들이 영영한 불에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자기들과 같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주님을 믿는 사람 중에 영영한 불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교회 안에 염소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 스스로 저주를 자청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저주 받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합니까?
그것은 나에게 독약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더라도 분명히 성경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율법 할례를 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에게 너희가 할례를 받았느냐고 말씀을 하면서 이제 너희는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가 있고 그것을 못 지키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 저주를 받는 일입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율법을 하나 지키면 모두를 지킬 의무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율법의 어느 하나를 범했으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는 가를 바로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신명기27:21절을 보겠습니다. (구 303쪽)
“무릇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그 중에 하나입니다.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율법을 보면서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자기는 저주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시대도 이 율법을 설교시간에 이야기를 하면 아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큰 소리도 당당하게 아멘이라고 대답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신명기 27장에서 말씀하는 다른 율법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율법만은 너무도 자신 있게 대답을 할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더구나 혼인을 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자신 있게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이것은 사람의 이성으로도 누구나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은 짐승과 규합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역시 짐승과 규합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어떻게 짐승과 규합을 했는지 조차 모르고 이 율법을 보고 자신 있게 지킬 수 있다고 하면서 저주를 말씀하는데도 아멘으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두 마리 짐승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이스라엘이라는 유대교의 짐승이고 다른 하나는 이방의 교회가 짐승이 된 것을 사도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짐승에 대해서는 아카데미 강의를 보시면 됩니다, 그 강의를 보면 이 시대 이 짐승과 규합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거의 다 입니다.
짐승과 규합을 하고 있으면서도 성경을 보는 지혜가 없어서 짐승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종교화가 되어 있는 교회가 짐승입니다. 두 짐승이라고 하니까 이상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짐승에 대해서도 바로 해석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없으니까 이 시대 짐승과 규합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짐승이 되어 유대교가 되었습니다.
이방의 교회도 짐승이 되어 천주교.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짐승과 규합을 하면서도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볼 때는 자기가 분명히 율법을 지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신명기 27장에서 저주를 받으라는 율법의 어느 한 가지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갈라디아서를 강해를 하면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인생은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아니 표면적인 율법은 몇 가지 지킬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율법은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면적인 율법을 지킨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님께서도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저주만 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겠다고 말을 하고 있고 실제 이 시대는 수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율법대로 저주를 받은 것을 모르고 자기들이 이스라엘보다 더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저주가 없다면 우리는 지켜도 됩니다, 문제는 율법을 지키는 순간 의롭다 함과 저주가 함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둘 중에 하나입니다
율법을 지키면 저주를 받든지 아니면 의롭다 함을 받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단위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더 많이 지키고 누가 덜 지키고 하는 계량의 단위가 아닙니다. 율법은 지키면 의롭다 함을 받고 못 지키면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율법으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킵니까?
보통 담대한 것이 아닙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저주를 받는데 세상에서 편안하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지 무엇 하러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냥 저주가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큰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믿지 않은 죄에 대한 보응으로 사망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이 되어 있는 그 진노를 누가 받는가 하면 바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받는 저주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저주를 받아 그렇게 된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율법의 모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말씀입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신명기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책입니다.
그 안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온갖 일입니다, 그러니까 율법 613가지를 항상 행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라는 것은 어느 한 가지를 따로 떼어 놓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도 율법입니다, 그러나 율법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도 역시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항상 다 행할 수 있습니까?
단 한 가지도 못 지킨다는 것을 아담을 통해서 보여 주셨는데도 사람들은 자기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사단이 얼마나 강한 자인가를 모르고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주를 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아멘으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3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을 너무 모릅니다,
그리고 그저 성경에 율법이 기록이 되어 있고 더구나 구약에서 지키라는 말씀들이 있다 보니까 맹목적으로 지키려고 합니다, 신명기에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라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어느 사람이 할레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가 할레를 받은 것으로 그 할례에 대한 율법을 지킨 것이 아니라 그는 율법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저주를 받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할례라는 율법은 자기 몸에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할례를 한 것은 아닙니다,
할례는 분명히 마음에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설령 그가 몸에 할례를 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할레라는 율법은 지켰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할례를 받은 그 사람은 그 할례를 받은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율법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 613가지를 항상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율법의 어느 한 가지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할례는 자기 몸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몸에 할레를 했다 해도 그것으로 율법을 지켰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전체를 항상 다 지켜야 그가 율법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도덕법을 살리면 안 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신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뿐 아니라 이제까지 교회사를 보면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이 없어지고 또 자기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다 보니까 제사법과 시민법은 폐하여 졌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제 성도로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도덕법은 살아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입니다.
도덕법이 살아 있다는 것을 누가 반대할 수 있습니까? 저 역시도 도덕적으로 의롭게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악한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도덕법이 폐하여 졌다고 하면 마치 십계명에 있는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살인해도 되고 도적질 하지 말라는 율법을 도적질해도 된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십계명 페하여 졌습니다,
그렇다고 누가 살인을 하라고 합니까? 누가 도적질 하라고 합니까? 이미 그런 법은 우리가 세상에서 지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십계명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우상을 만들지 않고 있고 살인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이성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문제는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제가 살인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살리면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그에게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 할례를 하라고 해서 그것을 자기들의 몸에 하는 것을 보고 그 할례를 했으면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입니다,
그것 몸에 받으면 어떻고 안 받으면 어떻습니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례를 받은들 안 받은들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내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안타깝게도 성경을 성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가 십일조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그 교회를 통해서 전도를 하기 위해서 영혼의 일을 하기 위해서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상계동의 어느 교회는 자기들이 한 십일조로 세계에 선교사를 많이 파송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얼마나 좋습니까? 이것을 나쁘다고 하면 도리어 욕을 먹는 것이 사람의 이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십일조 하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는 가를 알면 과연 그가 십일조를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내가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어서 내 소득의 십일조로 가난한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헌금을 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나쁘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돕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은혜를 받았으면 복음을 전하는 곳을 도와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되게 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율법입니다,
십일조는 분명히 성경에 율법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십일조가 율법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정말로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거나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율법 613가지에 십일조에 대한 율법이 최소한 10개 이상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마음으로 십일조를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 마음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진심이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것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리석어서 그것을 모른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든든히 세우고 싶고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할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너희가 할례를 받았으면 이제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십일조입니다 그리고 주일이 대표적인 율법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가 다 거기서 파생이 된다고 보면 맞습니다.
십일조를 합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율법 613가지를 전체를 다 행할 의무가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그 의무를 하지 않으면 신명기에 말씀과 같이 저주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십일조를 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좋은 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전체를 다 행해야 합니다,
유월절을 먹어야 하고 맥추절을 지켜야 하고 수장절을 지켜야 하고 또 성전을 지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면서 성전을 짓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이미 십일조를 내는 자체로 법을 어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레위인을 반드시 데리고 와야 합니다, 이방인에게는 레위인이 없으니까 이스라엘에게서 레위 지파 자손 중에서 데려와서 제사장을 삼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그리고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이미 주일이라는 것 자체가 율법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주일을 지키면서 안식일을 범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다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드리고 있는 예배의 형식이 어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저주입니다,
사도 바울은 할례 단 한 가지를 가지고 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강경하게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 마음대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법을 법대로 지키지 않으면 그것도 법을 어긴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이 지키고 있는 십일조를 법대로 하고 있습니까? 이 시대 십일조를 법대로 하고 있는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감성이 아닙니다,
좋은 것이 좋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이성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맞추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이스라엘과 같이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모르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는다고 자기들이 말을 했는데 그 말 그대로 율법을 몰라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기초입니다,
성경에서 기초가 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너지면 여러분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분명히 이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례라는 단 한 가지 율법을 자기 몸에 한 그 사람은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가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냈습니다,
정말 감사해서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래도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잘 지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십일조를 드렸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 너는 성전도 지어야 하고 또 그 성전에서 양을 잡아서 제사도 드려야 하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전체 율법을 다 행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 모르면 죽습니다.
그냥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면 그나마 괜찮습니다. 그러나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율법을 범해서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 얼마나 좋습니까?
그리고 십일조를 하는 것 누가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고 싶은 그 율법만 지키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내가 율법을 한 가지 지켰으면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하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1:8절을 보겠습니다. (구 320쪽)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기록한 대로
이 여호수아의 말씀은 실제 율법을 기록한 대로 지키라는 말씀이 아니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겠습니다. 갈라디아에서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이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이상한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가지고 자기들 편리대로 억지로 해석하면서 주일을 구약에서부터 정했다고 하는데 그런 성경 말씀은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 율법을 범하는 자가 되고 그것으로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일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에서 없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성경에 주일이라는 단어가 딱 한번 나옵니다, 그것도 일주일 할 때 주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일반 교인들은 성경에 주일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저 따라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항상 다 지키다 하나를 범해도 저주를 받는데 율법 책에 없는 것을 지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가 한 날에 예배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지금은 다수의 사람들이 일요일에 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에 예배를 하는 것은 바르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날에 한다고 해서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교회를 가 보시기 바랍니다, 다 주일 예배에 대해서 몇 시에 드리는 가를 써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어떤 예배들이 있는가를 자세하게 써 놓았습니다.
지키려면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지키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렇게 지킨다 해도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지키는 것이 더 성경적입니다. 율법 책에도 없는 것을 자기들의 편리에 따라 만들어서 삼가 지키고 있다면 반드시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줄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항상 지킬 수 있습니까?
자신이 있는 사람만 율법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항상 다 지키지 못하면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반드시 저주 아래 있게 됩니다. 할례를 받았습니까? 그러면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입니다, 그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저주 아래 있게 됩니다,
주일을 지킵니까?
아니 주일이라는 말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주일을 지키라고 했습니까? 율법 책에도 없는 것을 왜 하고 있습니까? 그저 종교의 포승에 묶여서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잠언의 말씀과 같이 소가 푸주로 끌려가는 것 같이 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수가 간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키려면 안식일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을 지킬 때도 모든 규례를 다 지켜야 합니다, 불을 피워서도 안 되고 멀리 이동을 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입니다. 가스 불을 피거나 전기를 켜서도 안 되고 보일러를 돌려서도 안 됩니다,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율법을 절대로 폐하지 못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지키지도 않으면서 율법을 지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율법이 믿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야고보서 2: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72쪽)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왜 저주를 받습니까?
율법 아래 속한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저주를 받는가를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쓴 서신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까지 자기 조상들이 대대로 지켜왔던 율법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야고보가 온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에 거치면 모두를 범한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율법 전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전체입니다.
어느 한 가지를 때어 놓고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율법 전체가 생명이기 때문에 율법은 따로 떼어 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율법의 기능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서 율법을 지키라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입니다
어느 율법 한 가지를 지켰습니까? 그러면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를 범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율법 전체를 말씀을 하고 있지 율법을 따로 떼어 놓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은 전체입니다.
제사법, 시민법, 도덕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학자들이 구분해 놓은 것이지 성경은 우리에게 율법은 전체라는 것을 늘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율법을 전체로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분명히 율법은 생명을 주기도 합니다, 생명을 주는데 있어서는 분명히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항상 다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막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알려고 하면 성막 전체를 다 알아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만 안다고 해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이 시대는 성막에서 물두멍은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등대와 분향단을 모르고 있고 언약궤와 속죄소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주님께서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성막의 기구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모르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고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막은 어느 한 부분을 따로 떼어서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율법도 어느 한 가지를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율법도 역시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야고보나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어느 것을 따로 떼어서 말씀하지 않고 율법 전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자기들 마음대로입니다, 교회마다도 다 다릅니다. 정통이나 이단이나 할 것 없이 다 율법을 자기들 마음대로 떼어서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키는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지키는가 하면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 전체를 생각하면 절대 안 지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율법 613가지를 생각하면 지키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자기들 마음대로 떼어서 생각하니까 자기들이 마음대로 입법을 하기도 하고 또 마음대로 폐하면서 이것은 지켜야 하고 이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 하나에 거치면 왜 모두를 범한 자입니까?
사람들로는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구는 도적질을 했고 누구는 거짓말을 했고 누구는 살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율법은 뭐라고 합니까? 살인을 한 자도 율법을 범했고 거짓말 한자도 율법을 범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2: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72쪽)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왜 율법 아래 있으면 저주를 받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야고보가 그 말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보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613가지 다른 율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어느 것은 지키고 어느 것은 지키지 못 합니다 이 세상의 이성으로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도적질을 했습니다.
그는 물론 법을 어긴 자입니다. 그러나 그가 살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이라면 도적질 한 자는 도적질 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살인을 한 자는 살인을 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성경에도 살인을 했을 때와 도적질을 했을 때는 다르게 벌을 받습니다. 다르게 받더라도 야고보나 사도 바울은 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범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범한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이 세상의 법은 그 법에 따라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온 율법을 다 지켰다 해도 그 하나에 거치면 율법을 범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살인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율법의 어느 한 가지를 지키지 못 했습니까? 그러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됩니다, 율법을 범한 자는 어떻게 되는가 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온 율법을 다 지키다가 하나에 거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어서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각각의 율법에 따른 벌의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주입니다.
그 결론은 저주라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많은 율법을 못 지켰을 때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온 율법을 다 지키다 하나에 거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왜 저주를 받는가 하면 그는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살인을 한 자도 저주를 받고 도적질을 한 자도 저주를 받고 거짓말을 한 자도 저주를 받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자도 저주를 받을 수 있습니까? 이 세상 어느 종교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야기 합니까?
계량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이 지킨 사람은 자기들이 말하는 천국이든 극락이든 가고 잘 못 지킨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이성으로 이야기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성도는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 가를 알아야 하고 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른 종교입니다.
율법을 잘 지킨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못 지킨 사람이 있습니다, 서로 상대적으로 비교를 해서 그래도 이 사람은 많은 사람들보다 잘 지켰다고 하면서 천국에 간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비해서 잘 못 지킨 사람은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닙니다.
갈라디아에서 계속해서 그것을 말씀하고 있고 야고보도 역시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 613가지 중에 어느 한 가지를 범했으면 그것은 율법을 범한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율법을 범한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율법과 세상에서 말하는 율법과의 차이입니다.
율법
한 가지를 지켰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율법 책에 있는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율법 한 가지를 범 했습니까? 그는 율법을 범한 자가 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율법의 기초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는 것으로 그냥 넘어갈 수 있다면 좋은데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담대하게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살인하지 않았습니까?
정말 잘 하셨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십일조를 드리고 있습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참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 나쁘다고 하겠습니까? 저 역시도 사람의 이성으로는 그것이 하나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저는 사람의 이성이 아닌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는 가를 알고 싶은 사람입니다, 온갖 율법을 항상 다 지키다가 하나에 거치면 모두를 범한 자입니다 율법을 범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에서 율법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아니 정말 하나님의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애를 쓰면서 지키고자 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뭐 합니까?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도로서 살고자 지키는 그 율법을 지키면 율법 전체를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그런데 성경을 보니까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율법을 지키고 싶습니까?
저는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포기 하겠습니다. 만약에 제가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성경에서 보았다면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포기 합니다. 어차피 율법을 범한 자가 되어서 저주 아래 있는데 믿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정말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5:41절을 보겠습니다. (신 45쪽)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양이 있고 염소가 있습니다. 이 염소들을 향해서 주님께서 저주를 받을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왼편에 있는 염소가 누구입니까? 율법 아래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양은 믿음이 있는 성도입니다.
그리고 염소는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했지만 율법을 지킨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누군가 하면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내고 주일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해서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저주를 누가 받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염소도 우리가 언제 주의 주리실 때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않았느냐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다 했다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과 같이 내가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어려서부터 다 지켰지만 그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어서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살았지만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율법에 가입을 하고도 자기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몰랐다는 말씀입니다.
왜 저주를 받습니까?
살인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상을 만든 자이기 때문이고 우상의 제물을 먹은 자이기 때문이고 모든 율법을 하나도 못 지킨 사람이기 때문에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 아래 있다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항상 다 지키지 못해서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오른편 주님의 의입니다,
그리고 왼편은 사람의 의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에서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이 어디에 있는 줄을 모르고 그저 종교라는 거대한 짐승에게 사로 잡혀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다가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짐승이 되었고 이방의 교회도 짐승이 되었습니다,
누가 지옥에 들어갑니까?
영영한 불에 누가 들어갑니까? 주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저주 아래 있었던 사람들이 영영한 불에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자기들과 같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주님을 믿는 사람 중에 영영한 불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교회 안에 염소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 스스로 저주를 자청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저주 받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합니까?
그것은 나에게 독약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더라도 분명히 성경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율법 할례를 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에게 너희가 할례를 받았느냐고 말씀을 하면서 이제 너희는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가 있고 그것을 못 지키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 저주를 받는 일입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율법을 하나 지키면 모두를 지킬 의무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율법의 어느 하나를 범했으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는 가를 바로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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