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3:1절을 보겠습니다. (신 304쪽)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것은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조금 더 의롭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런 것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2장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생명과 연결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왜 이 말씀이 나왔습니까?
갈라디아서를 시작하면서 다른 복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유대에 있는 사람들이 왔는데 그들이 할례를 행하게 하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할례를 행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육체에 할례를 행하면 어떻고 안 하면 어떻습니까? 그것을 하라고 하는 유대에서 온 거짓 형제들도 문제지만 사도 바울도 그깟 할례를 가지고 이렇게 까지 강하게 말씀을 할 필요성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시대 십일조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똑같다고 보면 맞습니다. 십일조를 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말 합니다
십일조를 해서 전도를 합니다,
십일조를 많이 해서 선교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해서 이웃에 어려운 사람들을 교회가 돕고 있습니다. 내가 그 십일조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에 하고 있고 그것으로 교회가 든든히 서 가고 있는데 뭐가 나쁘냐고 말 합니다,
좋습니다.
그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롭다 하는 문제와 결부가 되면 심각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율법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고 또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율법을 지키는 교인들을 보면 정말 하나님을 향해서 진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의롭다는 문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 뜻과는 아니 내 생각과는 다르게 율법을 지키는 순간에 의롭다는 문제가 함께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2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는 문제만 아니라면 저 역시도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어야 합니다.
반드시 성도는 의롭다 함을 얻어야 그것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면 사망에 이른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래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아무리 그렇게 내 안에서 확신이 있다 해도 율법을 지키면 그것으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해서 결국에는 죄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의인이 가는 곳이지 죄인은 갈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죽었는가 하면 하나님에 향해서 살려고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면서는 하나님을 향해서 살 수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죽었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산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고 산다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입니다.
나는 율법을 지키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성케 하셨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께서 내 안에 사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완성하신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거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영이 내 안에 가하시는데 그 영이 의롭다는 말씀입니다,
내 육체가 아닙니다.
구원파 같은 곳에서는 자기가 의롭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은 나입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나를 보고 의롭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입니다 그것은 내 육신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어 그 영을 보고 의롭다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도 누군가 질문을 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니까 이제 죄인이라고 해서는 안 되고 의인이라고 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의인은 우리 육신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의인입니다, 의롭다 함을 내 육체가 받은 것이 아니라 내 육체는 죄인이라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그리스도 영이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2장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내 육신이 의롭다 함을 받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내 육신은 죽을 때까지 죄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은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그런 성도가 다시 율법을 지켜야 하는 문제입니다, 영은 의롭다 함을 얻었을지라도 이제 이 세상에서 성도로서 의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바로 성화주의입니다, 물론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사는 것이 분명히 옳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아무리 그래도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없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있는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른 복음이 율법 613가지 전체를 지키자는 것이 아니라 할례라는 단 한 가지의 율법에 미혹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율법에 대해서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너무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할례를 안 지킨다 해서 사도 사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리석도다라고 한 그 말씀이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는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율법을 많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할례 안 지킵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주일을 지키면서 드리는 예배에는 수많은 율법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한 가지 율법 할례에 미혹이 되어 있는데도 사도 바울이 어리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마도 100가지는 넘는 것 같습니다.
정통이라고 하는 기독교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입니다, 물론 이단들은 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100개를 지키느냐 613개를 지키느냐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단 한 가지 할례를 가지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의 사람들에게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어리석습니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가 단 한 가지 할례라는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 어리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는데 유대에서 온 거짓 형제들에게 아주 쉽게 미혹이 되어서 육체에 할례를 받는 것을 보고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5:17-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15쪽)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어리석다
생각이나 행동이 슬기롭지 못하고 둔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빤히 알고도 하는 사람을 보고 세상에서 어리석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저 사람이 속이는 자인데 그 사람에게 속는 것을 보고 세상에서는 어리석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가 속은 것을 보고 스스로 어리석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속으면 어떻게 되는 줄을 알고도 속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에서는 교회 안에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행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옥입니다.
주님께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소금 치듯 하는 곳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또 부자가 음부의 고통 중에서 나사로의 손끝에 물 한 방울을 적셔 주어서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하는 곳입니다, 또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요한계시록에서는 불과 유황 못에 던지어서 세세토록 고난을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습니까?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들 중에서 믿음이 없는 자들이 그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당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있으면서도 그곳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어리석습니다. 누가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서 부자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부자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갔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으면서도 부자와 같이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가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자가 누군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도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자손이고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갔습니다. 자기는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아브라함이 간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주님이 오시고 보니까 음부의 고통 중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어리석은 자입니다.
분명히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어디로 갈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는 분명히 아브라함의 자손이라서 천국에 갈 줄 알았는데 음부의 고통 중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렇게 어리석은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분명히 천국에 갑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자기는 이성적으로는 생각할 때 분명히 천국에 간다고 평생을 신앙생활을 아주 잘 했는데 실제로는 그것이 사단의 꾐에 넘어가서 마귀의 자식이 되어 있는데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어리석다는 말씀입니다. 어리석어서 자기가 천국에 들어갈지 아니면 음부의 고통에 빠질지를 모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마태복음25장의 3가지의 비유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 비유에서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다 자기 딴에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기다립니까?
자기가 구원을 받을 줄 알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교인들이 다 자기는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게 구원을 받았다고 기다리고 있는 그 사람들 중에 예수를 믿는 그 사람들 중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단이 아닙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을 전한 곳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곳에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시대 교회는 이 비유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교회들입니다, 먼저 복음이 전해져야 하는데 지금은 복음이 전해지는 곳이 없기 때문에 이 비유를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보시기 바랍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기가 무슨 장사를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것을 도로 드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 다른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에서는 다섯 처녀도 없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염소들이 뭐라고 합니까? 자기들이 언제 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행위로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살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리석어서 결국에는 주님께서 저주를 내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면 뭐 합니까? 교회 안에서 평생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뭐 합니까?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천국에 간다는 말에 속아서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생각이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압니다.
천국과 지옥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어서 마귀의 자식들이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속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에게 그리고 광명의 천사들에게 속으면서 행위에 열심을 내다가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주의 뜻입니다.
아버지께서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니까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주의 뜻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이 주의 뜻입니다. 먼저 아카데미 강의에 올려 드린 믿음의 정의를 보시고 난 후에 이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뜻은 요한복음에서 아들을 믿는 자를 구원해 주시는 것이 주의 뜻입니다. 이 말씀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믿음을 모르다 보니까 자기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행위를 보면서 주의 뜻을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면 많은 사람이 무슨 봉창을 두드리는 말을 하느냐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여 주여 하면서 신앙생활을 아주 잘하고 있는데 무슨 말을 하느냐고 반문을 할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분명히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라는 교회를 지나 가나안에 몇 명이 들어갔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모든 사건은 그것으로 종결이 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그대로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노아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고통 하는 의인 롯 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보고 히브리서에서 저희가 믿음이 없어서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성막을 짓고 율법을 받아서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믿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에는 믿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뜻을 이해하지 못 했습니다.
그들만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을 책망하셨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셨을 때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하면서 지독한 율법주의에 빠져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고 그것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주의 뜻이 무엇입니까?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어리석은 이 시대는 진짜 먹는 술을 취하지 않으려고 술을 마시지 않고 있고 그런 자기들을 보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사야56:11-12절을 보겠습니다, (구 1037쪽)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개들이 누군가 하면 몰지각한 목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을 향해서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자기 이만 도모하며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 오리라 하고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고 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이렇게 합니까?
교회 안에서 이렇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내가 포도주를 가져 오겠다고 하면서 독주를 잔뜩 먹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의 뜻을 모르다 보니까 어리석게도 자기들이 성경을 보고 포도주를 가져 와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잔뜩 먹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자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개들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도 개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부자와 같은 자들을 주님께서 개들로 비유를 했습니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가져오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자져온 율법이 독주가 되고 있는데도 그것을 잔뜩 먹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켜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목자들입니다.
이 시대도 역시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율법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해서 그것으로 독주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그 독주를 잔뜩 마시자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주의 뜻을 모르고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술에 취한 것과 같이 율법을 지키는 일에 완전히 빠져 들어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개들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개들은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짜 술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취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술을 먹는 사람들이 취하게 먹듯이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 역시도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온전히 지키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술 취해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목자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어리석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도 독주를 잔뜩 마셔서 취하도록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포도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독주가 됩니다, 술에 취하는 순간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정말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목자들은 경쟁적으로 술을 가져오고 있고 설교를 할 때마다 이 술을 먹으라고 하고 있고 독주를 만들어서 잔뜩 먹고 취하자고 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일이라고 하면서 독주에 취해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독주를 잔뜩 먹자
그것을 오늘만 먹는 것이 아니라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독주의 잔이 크게 넘치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얼마나 독주에 취해 있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술에 취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둘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요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술도 취하고 성령도 충만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술 취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술을 먹지 않습니다. 이 둘을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어리석은 자들은 이 둘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하면서 어리석게도 술도 취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안 됩니다, 술 취해 있는 사람은 성령이 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정말 그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서 율법을 잘 지켰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술에 취하면 마귀의 자식들이 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둘을 함께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음행이기 때문에 마귀의 자식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사도 바울이 그렇게 복음에 대해서만 전했는데도 유대에 있던 거짓 형제들이 들어오니까 너무도 쉽게 다른 복음에 빠졌습니다. 율법을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어리석게도 주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술에 취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많은 율법이 아니라 단 한 가지의 율법 할례를 받은 그것으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습니다,
알고도 당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거짓에게 속는 것은 모르고 속는 다기 보다는 알고도 속게 됩니다. 왜 속게 되는가 하면 술 취하는 그것이 너무도 좋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그것을 누가 나쁘다고 하겠습니까?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는 사람이 오히려 나쁘게 판단이 되는 것이 사람의 이성이라는 것을 저 역시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입니다.
이 시대 목사들입니다, 그들이 자기들이 가져온 술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독주가 되어 사망에 이르고 있는데도 주고 있습니다, 오늘만 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 잔뜩 마시게 하고 내일은 넘치게 마시게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 있었던 이 사건이 지금 이 시대 그대로 나타나고 있어 모두가 술에 취해 있으면서도 어리석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6:8-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41쪽)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족한 줄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족한 줄로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양식을 먹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고 있어서 먹는 것과 입는 것에 족한 줄로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족한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족합니다,
아니 넉넉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교회에서는 생명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만 먹었고 그럼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에 옷을 입었습니다. 정말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또 그를 믿음으로 해서 족한 줄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너무 정욕에 빠져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고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문자를 몰라서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문자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데 그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가 되고 있습니다. 차라리 몰라서 어리석은 자가 된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어리석은 자는 누군가 하면 세상의 지적인 능력으로는 성경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는 교회 안에서 부하려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부하려 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의 행위로 부해지려 하고 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해로운 정욕에 떨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해로운 정욕에 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시험을 당합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했던 것과 같이 이 세상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 주면서 시험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너무도 좋기 때문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거기에 다 넘어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마귀가 보여주는 이 세상 천하만국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 다 넘어가고 있습니다.
다 넘어갑니다.
거기에 안 넘어갈 사람이 없습니다. 율법을 잘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사람의 이성에는 얼마나 좋게 보입니까? 내 스스로도 대단하게 생각이 되지만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가 그렇게 율법의 의를 주면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 좋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시험에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올무입니다.
사단이 무엇으로 올무를 놓는다고 생각합니까? 죄로 놓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 초보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죄를 지면 사단이 끼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사단에게 미혹이 되었다는 것을 이 세상 사람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것으로 지혜 있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율법입니다,
그 올무를 놓으면 다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중에서 그 올무에 걸리지 않은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사단이 올무를 치기도 전에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스스로 율법을 지키고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쳐 놓은 그물에 스스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에서 새가 빨리 그물에 들어가듯이 미련한 자가 그렇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해로운 정욕입니다,
율법은 독주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면 진노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정욕이 자기를 해롭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은 해악입니다.
필요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의 의미를 아는데 있어서는 필요하지만 그것을 지킴으로 해서 악이 나오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 가지 해로운 정욕에 빠져 결국에는 침륜에 빠지게 만드는 그것을 사람들은 열심을 다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왜 지킵니까?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어리석어서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은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진노를 받게 되는데 그것이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면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는데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해로운 정욕에 빠져 결국에는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침륜과 멸망에 빠지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돈이 아닙니다, 그 돈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물질입니다, 그것을 사랑하고 말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부하려 해서 얻어지는 재물이 돈이라는 말씀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이 부해진 것이 재물이고 돈인데 그것이 율법의 의입니다,
무엇으로 부해지고 있습니까?
율법의 의가 쌓이면 재물이 됩니다, 그것이 돈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이 이 돈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빛이 어두움을 비추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저희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빛을 사랑합니까?
그러면 반드시 어두움을 버려야 합니다. 이 어두움이 돈입니다 이 돈을 가지고 부하려고 하면서 빛을 사랑한다는 말은 성립이 될 수 없습니다. 아니 빛도 사랑하고 율법도 지키고 하는 말 자체가 성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안 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 그리스도도 믿고 율법도 잘 지키고 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있을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바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돈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빛을 더 사랑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율법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도 잘 믿고 율법도 잘 지키고 하는 것을 가지고 근심을 하다가 자기를 찔렀다는 말씀입니다,
스스로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빠진 사람들이 그렇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해로운 정욕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 율법을 지키면서 스스로 자기를 찌르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이렇게 여러 자기 해로운 정욕에 빠져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초대 교회에 벌써 어리석은 자들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말을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안 지키는 교회가 있습니까?
거짓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한국 교회는 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도 마찬가지고 이단이라고 하는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이지 모두가 다 여러 가지 해로운 정욕에 빠져 돈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그 돈을 사랑하면서 부해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찌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고통을 모르고 있습니다, 스스로 칼로 찌르고 있으면서도 자기 영혼이 죽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시험과 올무를 쳐 놓기만 하면 사람들은 스스로 찌르고 있습니다, 사실 사단이 죽인다고 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스스로 죽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이성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너무 좋고 부하려고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좋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고 있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어서 영의 말씀을 자기들의 이성으로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하고 있고 그런 그들이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서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1:40절을 보겠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있던 바리새인이 예수님께서 잡수시기 전에 손을 씻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을 아시고 바리새인에게 하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고 먹었는데 주님이 오셔서 손을 씻지 않고 잡수시니까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까?
그러나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율법대로 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입으로 먹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먹는 것은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자기들의 법대로 하지 않는 예수님을 이상하게 보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렇게 행위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말은 바리새인이 예수님께서 손을 씻지 않는 것을 보고 왜 손을 씻지 않는가 하면서 정죄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손을 씻고 먹는다고 그 먹는 것이 깨끗합니까?
안 씻고 먹으면 더럽습니까?
물론 약간 더 더러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영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지 육을 따라 살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리새인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식사를 하는데 아마 제가 식사 기도를 하지 않고 음식을 먹으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생각합니까?
목사라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무엇이지도 모른다고 자기 마음에서 정죄를 할 것이 분명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하고 먹고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당연한 모습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제가 그들 가운데 가서 식사를 함께 하면서 기도를 하지 않고 먹는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상한 것입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니면 이단이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어리석은 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주님께서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손을 씻고 먹었다면 이 시대는 식사 기도를 하고 먹고 있습니다.
외식입니다,
이스라엘이 손을 씻는 것도 외식이고 이 시대 식사하기 전에 기도를 하는 것도 외식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그것을 외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이상하게 생각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 인줄 알고 왔는데 이제 보니까 하나님을 믿는 방법도 모르는 사람과 같아 보이니까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외식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 외식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하는 것은 외식입니다 마치 그것은 이스라엘이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인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남의 집에 가면 기도부터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간식을 먹기 전에도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차를 마시기 전에도 기도합니다.
이런 것이 다 외식이라는 것을 모르고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까 그것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의 생각을 아시고 그를 책망하시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을 만드시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잔과 대접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손을 씻는 것은 외식이고 내가 기도를 하는 것은 믿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요즘 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 시대 자기들이 하는 것은 다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는 것이 믿음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외식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무엇인지외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렇게 자기가 하는 행위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다가 결국에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해서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는 한 행위가 나를 어리석은 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성도는 영의 사람입니다, 육의 사람이 아닌데도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이 육의 일인지 영의 일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를 가지고 자기가 하는 일을 영의 일로 생각하고 있고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다 영의 일입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말씀은 거의 육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성경을 보면서 도리어 더 어리석음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한 것은 불륜이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신앙생활은 로맨스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불륜도 죄고 로맨스도 죄입니다. 이스라엘이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씻는 것도 외식이고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이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하는 것도 외식입니다, 아마 제가 이 기도를 외식이라고 하면 저를 이단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식사를 하기 전에 주님께 감사 기도를 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따질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하는 것 전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바리새인에게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않으셨냐고 하시면서 어리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잠언9:6절을 보겠습니다. (구 920쪽)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이제까지 어리석음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잠언에서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 외식하는 일 그것을 통해서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버려야 합니다.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에게서 어리석음의 모양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절대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어리석음을 버리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리석은 행위를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성도는 반드시 어리석음을 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어리석습니까?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어리석은 일을 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있고 그것을 보면서 서로 자랑하고 있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자기 생명이 어떻게 되는 줄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리석습니다. 또 외식의 모양이 있는 사람 역시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성화의 모양도 있고 또 은사도 있고 교회가 종교화 되면서 교회법이라는 것도 있어서 너무 많은 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안 버리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하고 또 매주에 빠지지 않고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드리면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고 기도를 하고 있다 해도 그런 외식의 모양을 버리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종교적인 행위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내가 성경을 보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그것을 알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행위는 다 어리석음에서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 믿음으로 드립니까?
제발 웃기는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부하려 하는 자의 재물이고 그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주일이라는 날에 예배를 드리러 가고 있습니까? 정말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죄송하지만 그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형식에 맞추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외식입니다.
지금의 예배 외식입니다. 찬송 외식입니다, 기도 외식입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외식입니다. 그것을 버리지 않고 내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사람을 어리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사람들에게 왜 어리석다고 말씀을 합니까? 유대에서 온 거짓 형제가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려면 아니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려면 할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할례에 대한 말씀을 보니까 너무도 타당한 것입니다 그 말씀을 보고 할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어리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 할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백가지도 넘습니다,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여러분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 차라리 예수를 안 믿는 것이 더 유익할 것입니다, 예수를 안 믿으면 소멸이 되고 말지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버림을 받으면 반드시 형벌이 있습니다, 왜 형벌이 있는가 하면 그의 어리석음으로 소자를 지옥으로 빠뜨렸기 때문에 형벌을 받습니다,
악한 자입니다,
죄를 진 자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방해하는 자는 악한 자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리석음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행악한 자입니다 세상 사람이 악한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악한 자들입니다, 세상 사람은 죄인이지 악한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생명입니다.
어리석음을 버리지 않으면 반드시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리고 외식을 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렇게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아니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어리석음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사야32:5절을 보겠습니다. (구 1004쪽)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칭하지 아니하겠고 궤휼한 자를 다시 정대하다 말하지 아니하리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을 이사야32장1절부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시면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의 귀가 기울어질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믿지를 않는 자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보는 자가 눈이 감기지 않고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고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게 되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분명하게 말을 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천국에 대해서 잘 모르던 사람이 이제 복음을 듣고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가 있습니다.
이 시대는 보면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자가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 어리석은 자들을 다시 존귀하다 칭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구원을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부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우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까지 말씀을 하겠습니까? 정말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자기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는데 너무도 허망하게도 유대에서 온 거짓 형제에게 속아 쉽게 넘어가는 것을 보고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을 가진 거짓 형제가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가지온 것이 무엇인가 하면 할례입니다 성경을 보고 할례의 타당성을 이야기를 하면 사람의 이성으로는 분명히 할레를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또 할례라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너희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려면 할례를 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는다고 해서 무엇을 빼앗는 것도 아니고 할례를 한다고 해서 재물을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유월절을 먹으려면 할례를 받으라고 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어리석음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어리석음을 버리고 반드시 생명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어리석음이 여러분에게서 하나라도 나타나고 있다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사야는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칭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었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을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할례 그 한 가지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 율법주의자들이 처음부터 613가지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아니 종으로 삼는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단 한 가지의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으로 끝이 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할례를 받으면 이제 되었다고 할 것 같습니까? 그럴 것 같으면 이 시대 이렇게 많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할례 그 한 가지를 시작으로 해서 이제 서서히 종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지고 가심으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너희가 알지 않느냐 그런데 왜 어리석음에 빠지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내가 이제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가르쳐 주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어리석음에 빠지느냐는 말씀입니다,
어리석음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고 또 외식을 하고 하는 것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직 못 봤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밝히 보았다면 절대로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잠언7:21절을 보겠습니다. (구 918쪽)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라디아에 유대에서 온 거짓 형제들이 꾀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꾀고 있는가 하면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고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가 고운 베옷을 입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실의 상징은 율법의 의입니다,
2장에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할 때도 너희는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옷을 입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베실이 사람의 율법의 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면서 부자가 고운 베옷을 입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입니다,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호리는 말로 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꾀는 것입니까? 율법주의자들이 꾀고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가 얼마나 쉽게 율법주의로 빠져 들어가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입니다
그것도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입니다 아직 사도 바울이 살아 있는 그때에 벌써 율법주의자들의 꾐에 넘어 갔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주의자가 복음을 깨닫는 일은 정말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아마도 십만 명에 한명이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기적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있는 교회가 율법주의가 되는 일은 아주 쉽습니다.
왜 쉽습니까?
그 율법이 사람의 이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성에 고운 말이고 호리는 말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너무 쉽게 율법주의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율법주의인 사람이 복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능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운 말입니다,
호리는 말입니다, 율법은 실제 곱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자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말이 얼마나 듣기에 좋습니까? 그것은 누가 생각하도 고운 말입니다, 살인을 하라 간음을 하라 도적질하라는 말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고운 말인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행위로 하는 순간 어리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2절을 보겠습니다. (신 304쪽)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을 지켜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고린도전서12장에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반대로 하면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믿었을 때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믿는 그 순간에 성령이 너희에게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성령이 오시는 일, 그리고 믿음, 중생, 성화 등 구원은 단회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아는 것은 단회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단번에 주어지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 안에서 믿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묻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듣고 믿음으로냐 행위로서냐고 묻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되는 모든 말씀을 가르쳤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율법을 보고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지금 다시 묻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어떻게 받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이 너희에게 어떻게 오셨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믿는다고 할 수 없는데 너희가 내가 전한 복음을 듣고 믿은 것이 언제냐고 묻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너희가 믿는다고 했느냐 아니면 성령이 오셔서 믿는다고 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정말 이 시대 교인들이 바로 깨달아야 하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거짓 형제가 와서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다른 복음이 할례라는 율법을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냐 묻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다른 복음이 들어오기 전까지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을 했습니다, 그렇게 구원의 확신을 받은 것은 너희 안에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믿을 수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언제 믿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이 언제 믿었습니까?
성령이 오셔야지만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성령이 오셔서 믿은 것이 너희가 율법의 행위를 지켰을 때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너희가 듣고 믿을 때 성령이 오셔서 너희 믿음을 확증하고 영생을 얻은 것이 아니냐고 묻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거짓 형제가 들어와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묻고 있습니다.
그냥 묻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에 있는 거짓 형제가 들어오기 전에 너희는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이 오셔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성령을 받아 영생을 얻었는데 왜 율법을 지키고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이미 듣고 믿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있는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구원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언제냐고 묻고 있습니다, 너희가 율법을 지켜서냐고 아니면 복음의 말씀을 듣고서 믿었을 때냐고 묻고 있습니다. 당연히 사도 바울이 전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율법을 지키지 않았어도 성령을 받아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밝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이렇게 믿을 때 그들에게 성령이 오셔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때에 너희가 율법을 지켰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았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밝히 알고 믿음으로 해서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묻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킵니다,
성령이 오셔서 율법을 지킵니까? 그것이 아니라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가 전한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시면 율법을 지킵니까? 하는 말과 같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성령이 오셔서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율법도 잘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도 잘 믿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의 말씀에 배치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성령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니 성령을 받았을 때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었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유대에서 온 거짓 형제가 다른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다른 복음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듣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율법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는데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성도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거짓 형제에게 넘어가고 있는 갈라디아에 있는 형제들에게 너희가 언제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유대에 있는 거짓 형제가 들어와서 할례라는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에 넘어가 할레를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정말 바로 깨닫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성령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교회에 성도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너희가 언제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디도서3:5절을 보겠습니다. (신 349쪽)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구원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은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냥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니 교회 안에서 성도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의롭게 사는 것이 율법이라면 얼마든지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디도서에서도 구원은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원과 연결이 되어 있는 율법을 모르고 그저 사람의 이성으로 그것이 좋으니까 지키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도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왜 나쁘겠습니까? 저 역시도 그것이 옳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율법은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도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면 진노를 받기 때문에 율법은 다른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 안 됩니다.
그것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진노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조금 더 의롭게 사느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영생과 연결이 있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모든 성경에서 계속해서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소경이 되어서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찌르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구원 어떻게 받습니까?
듣고 믿어서 받습니다, 그것을 디도서에서는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불쌍히 여겨 주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완성케 하시고 율법의 의로는 가난한 우리 인생들을 주님께서 지킨 그 율법으로 부요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의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새로운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썩어져 없어지는 육체가 아니라 성령으로 태어나는 내 안에 있는 새로운 영으로 구원을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일입니다, 육체의 썩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이 되는 역사이며 그것을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하는 말씀이 바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 새롭게 탄생이 되는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고 사람들은 영의 일을 육체의 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율법을 지켜서는 내 안에 새로운 영이 탄생이 될 수 없는데도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가 성령을 받을 때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라고 묻는 말씀은 바로 새로운 영의 탄생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 새롭게 탄생이 되는 영의 일입니다, 이 신비로운 영의 일을 믿음이 없기 때문에 모르고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성으로 이해가 되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묻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이 시대는 율법주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만 율법주의입니까?
아닙니다, 이 시대 모든 교회가 다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아직 믿지 않고 있고 믿지 않는다는 것은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한 가지라도 하면서 자기가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듣고 믿음으로냐 율법의 행위로냐 강하게 묻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까지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종교에 빠져 그 거대한 종교가 시키는 대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는 그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해서 진노를 받게 되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율법의 어두움의 빛을 보고 사망의 길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0:44-45절을 보겠습니다. (신 205쪽)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백부장 고넬료 사건입니다
로마의 군대 장군인 백부장이 어떻게 성령을 받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백부장은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인이라는 말씀은 진짜 율법의 의로 의인이 아니라 일반 세상 사람들이 판단하기를 의인이라는 말입니다, 백부장 고넬료는 이방인입니다.
율법을 안 지켰습니다,
그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으로는 그는 의인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의인이라고 말씀할 때는 성령을 받은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할례도 안 받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청해서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할례도 받지 않은 고넬료의 가정에서 베드로가 복음을 말씀하고 있자 그것을 듣고 고넬료와 함께 듣던 모든 사람이 믿었습니다. 그렇게 믿을 때 성령이 내려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전혀 지키지 않은 이방인에게 성령이 부어주심을 보고 놀랐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넬료입니다.
그는 세상 이성적으로는 의롭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구원을 받은 것은 베드로가 와서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임하심으로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묻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하고 갈라디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구원
율법의 행위가 아닙니다, 내 안에 새로운 영이 탄생이 되는 신비로운 일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을 듣고 믿어질 때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한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진노를 이루게 하는 그 율법을 영의 일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지금도 교회 안에서 열심을 내서 지키고 있습니다.
어리석음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성령이 내 안에 임하십니다, 그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내 안에 썩지 않는 생명이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영의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믿을 때 하나님의 역사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신비로운 일입니다, 육의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믿어야 합니다. 반드시 율법의 행위를 버리고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들에게 성령이 오셔서 내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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