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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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윤주만목사 2015. 7. 10. 19:35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3:19-22절을 보면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시대가 타락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타락을 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성경에서 검은 쥐를 보고 흰 쥐라고 하니까 모든 사람들이 검은 쥐를 휜 쥐로 믿고 있는 그런 시대입니다. 거대한 다수가 검은 쥐를 흰 쥐라고 하니까 거기에 저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아니 저항도 못하고 있습니다.

검은 쥐를 보고 검은 쥐라고 하면 이 시대는 오히려 이단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검은 쥐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적어서 다수가 그렇다고 하는 것에 따라가고 있습니다. 사실 검은 쥐를 볼 수 있는 눈이 이 시대는 없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분명히 흰 쥐로 보이기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100년이 넘었습니다.

벌써 4세대가 세뇌가 되어 있습니다. 한국에는 진리를 가진 선교사들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의를 들어내기 위한 다른 복음을 가진 자들이 들어오다 보니까 사실 시작부터 잘못이 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교회 안에 있는 경건주의나 율법주의자들의 중산층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정욕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정욕이 사람의 이성에는 너무도 잘 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우리나라 교회가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처음부터 진리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절대 틀린 말이 아닙니다. 미국의 청교도들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한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고 그들을 마치 은인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과연 그렇겠습니까?

물론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는 감사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는 중산층이 두터워지기 시작을 했고 그들이 교회 안에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목표가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가장 가난한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을 함으로 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한 것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에 너무도 열심을 내서 중산층들이 모두가 그 일에 협력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그런 사람들의 관심을 어디로 돌리고 있습니까? 제일 만만한 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이 선교를 한다고 하면 어느 누구도 반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부탁을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주님의 일을 반대를 하는 것과 같이 생각이 되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선교 해야 합니다.

제가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나 진리가 없는 자들이 선교를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한 마디로 재앙과도 같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가 있는 성도가 다른 나라에 가서 바른 복음을 전하는 일이야 말로 주님께서 너무도 기뻐하실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상계동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건물도 짓지 않고 선교사를 많이 파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열광을 하고 있고 또 단기 선교를 다녀오면서 자기들이 가난한 나라에 가서 그들을 돕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 교회가 성장을 한 배경이 바로 선교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무엇으로 선교를 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의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율법으로 지키고 있는 것을 통해서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선교라는 그것만으로 자기들이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선교를 하면 뭐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를 한 그것으로 선교를 한다는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선교가 아니라 마치 중세 시대에 십자군 전쟁을 하고 있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기들의 욕망을 밖으로 분출하기 위해서 선교라는 미명 아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를 하면서 그 일에 아주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저는 선교가 아니라고 봅니다.

방법만 다르지 그것은 한 마디로 십자군 전쟁입니다. 시대가 변하여서 전쟁을 할 수 없어서 그렇지 이 시대 돈이라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전쟁을 해서 그들을 굴복시키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돈이라는 힘을 가지고 예수를 믿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과연 선교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더구나 그 돈이 어떻게 나왔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폐하신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그 돈이 나오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해도 그 돈을 만들고 있습니다. 또 자기들이 만든 율법의 헌금 선교헌금을 통해서 그 돈을 만들어서 가난한 나라에 가서 돈을 뿌리면서 선교를 한다고 하고 있고 그 돈에 굴복이 되어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숫자를 보고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가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그것을 하는 사람도 사망이고 그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는 사람도 역시 사망입니다. 십자군 전쟁을 하면서 너 죽을래 예수를 믿을래 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그런 율법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정욕을 발산하고 싶은 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그런 정욕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대단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선교를 반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문제는 복음이 없는 사람들이 정욕에 사로잡혀서 하고 있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들은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고 할지 몰라도 그것은 분명히 율법을 가지고 선교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기독교 국가입니까?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숫자가 비약적으로 늘고 세계 역사상 이렇게 복음이 빨리 전파된 나라가 없다 해도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는 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경건주의와 율법주의가 전해졌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진리를 전한다고 했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정욕을 해소하려고 우리나라에 율법주의를 전했습니다.

 

축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저주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을 했다고 말 합니다 표면적으로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우리나라에 전파가 된 복음은 다른 복음이기 때문에 저주를 전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회가 얼마나 기복주의에 빠져 있는 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신명기30:15절을 보면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예수를 전하고 있습니까?

거기에는 반드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생명의 복과 사망의 화가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 라는 말씀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한다고 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사망의 화가 전해졌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생명의 복이 전해졌습니까?

아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 시대 교회는 분명히 사망과 화를 전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미국의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법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술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아주 기가 막힌 법을 세워놓았습니다.

 

사망과 화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없는 술을 먹지 말라는 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뿐 아니라 교회 안에는 수도 없이 많은 법을 만들어 놓고 교인들을 그 법에 매이게 했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모양을 갖추고 들어온 사단의 미혹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백년이 지나는 동안 법은 더욱 견고하게 서 있고 사람들은 꼼짝을 못하고 그 법에 포승줄로 감겨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이 다른 복음이라면 그 선교는 그 나라에 사망과 화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냥 사망과 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면 괜찮습니다. 어차피 죽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망을 가져다주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화입니다

그냥 사망을 당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모르고 지금 이 시대 우리나라 교회도 그들을 따라서 아주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냥 세상 죄인으로 죽어야 하는 그들에게 화를 가져다주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는 축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화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화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화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화를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화를 당하는 자가 누구인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진리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화를 당합니다.

 

천국입니다

성도는 어떻게 하든지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와서 화를 당한다고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화를 당한다고 생각하면 그것보다 불행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들이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생각도 안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입니다. 왜 슬피 울며 이를 갑니까? 속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아서 천국에 간다는 말에 속아서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것이 다 율법의 행위고 악이라는 것을 알고 구원을 못 받게 되니까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입니다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이 시대 교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믿음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 말에 다 속아서 율법을 지키다가 결국에는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누가 바꿀 수 있습니까?

교회는 이제 어느 누구도 개혁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누가 개혁을 할 수 있습니까? 아마도 누군가 개혁을 하려고 하다가는 엄청난 저항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교회를 개혁하려고 하지 마시고 나를 먼저 살리기 바랍니다. 내가 생명이 있으면 나를 통해서 천하 보다 더 귀한 한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진리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내 가족은 그래도 구원의 길로 인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내 이웃의 어느 누구라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작은 일로 보지마시기 바랍니다. 십만 명이 들어가 있는 교회가 음녀가 되어서 하나도 구원을 못 받는데 내가 진리를 알아 내 가족을 구원한다는 그것은 보이는 십만 명의 교회보다 더 귀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제 자기 생명은 자기 스스로 구해야 합니다. 그것을 이 세상의 교회나 목사에게 의지 하지 마시고 내 스스로 지혜와 명철을 구해서 생명을 지켜야 합니다. 물론 내가 성경도 많이 보지 않고 또 아는 지식이 없다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혜와 명철을 구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전하는 자를 만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갈라디아서3:15절을 보면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사람의 예입니다

누군가 사람과 언약을 했을 때 그것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지 못 합니다. 그것은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그것을 폐하거나 더하게 되면 언약을 파기하는 것이 됩니다. 물론 세상에는 언약을 파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이라면 언약을 더하거나 폐하지 못한다는 것을 사람의 예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씀합니까?

갈라디아서3장은 믿음과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언약을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율법은 행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언약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 이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사람의 예대로 말씀하면서 그것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 우리 성도들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거기에 어떤 것을 더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으면 우리 역시 그렇다는 것이고 거기에 더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자꾸 더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더하고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는데 이 시대는 율법의 행위를 자꾸 더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안 됩니다.

더하는 순간 그는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에다가 무엇을 더하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을 위한 정당한 일 같이 보인다 할지라도 더하는 순간에 사망이 따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교회를 운영을 하려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체가 이미 타락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교회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 보이는 교회가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못 믿습니까? 아니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까?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는 그것으로 인하여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는데도 사람들은 그 일에 너무도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그 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16절을 보면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이 약속들이 무엇입니까?

내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고 하시고 또 네 자손으로 세상 사람들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약속들은 그 자손에게 말씀을 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르쳐 그 자손이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자손이 곧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방에 복을 주시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자손이라고 하셨는데 여럿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고 말씀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방에 복을 주시겠다고 한 그 자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주님이 오시고 난 후에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은 성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언약을 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언약을 폐하거나 더하지 않고 지금 우리가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시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과 같은 동일한 언약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하신 언약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로 복을 받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복을 받습니다.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천국의 복을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이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자손으로 이방에 복을 전하기 위해서 인데 그 자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자손으로 복을 받은 것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으로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믿음을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의 행위를 가지고 믿음이라는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 같이 우리도 역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율법의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17절을 보면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믿으니까 의롭다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언약을 하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으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국의 복을 얻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이 지금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이 언제 생겼습니까?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후 사백삼십 년이 지난 후에 율법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율법이 후에 생겼지만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입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맺으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뒤에 생긴 율법이 이를 무효로 하여 그 약속을 폐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사백삼십 년이 지난 후에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이 율법이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을 무효로 하여 약속을 폐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율법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사백삼십 년이 지난 후에 율법이 생겼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은 육체가 없다고 성경이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도 역시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는데 율법이 생기고 보니까 그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지만 이 율법이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을 무효로 하거나 그 약속을 폐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럼 우리 역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지만 율법이 의롭다 함을 얻을 것을 무효하게 하지 못한 것과 같이 우리 역시 율법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을 무효하게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도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말로는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도로서 이 세상을 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것은 말장난에 불과 합니다. 율법이라는 자체가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라고 사도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도의 삶이라고 아주 그럴듯하게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율법이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을 무효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명확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율법에 빠져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고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18절을 보겠습니다.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하늘의 복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고도 이 세상에서 성도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아주 그럴듯한 핑계를 대면서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율법의 저주 아래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은혜입니다 만약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역시 우리와 같이 죄인이지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은 은혜입니다 그것을 아브라함에게도 주셔서 의롭다 하시고 또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은혜로 주셔서 의롭다 하시고 있습니다.

 

믿음을 모릅니다.

이 믿음을 주신 것은 은혜입니다 정말 이 믿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성도만이 은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이미 약속을 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을 수 있습니까?

절대 믿지를 못 합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이 말씀이 이해가 됩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고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믿음은 이 세상의 종교적 믿음이지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믿음과는 전혀 다릅니다.

 

갈라디아서3:19-20절을 보면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면 율법은 무엇 때문에 있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약속된 그 후손이 오실 때까지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려고 덧붙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율법은 천사들을 통하여 중재자의 손을 거쳐 제정된 것입니다.”

 

율법을 왜 주셨습니까?

그것은 약속이 된 후손이 오실 때까지 죄가 무엇인가를 알게 하시려고 덧붙여 주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죄가 무엇인가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셨습니다.

이제 오셨으면 그 기능을 다한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죄가 무엇인가를 알게 하시려고 하셨다면 이제 우리 가운데 주님이 오셨으면 율법은 더 이상의 기능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다가 하늘에 올라 가셨지만 오히려 점점 더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약속 하신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가셨습니다. 이제 우리 개인의 심령에도 주님의 영이 오셨습니다. 그러면 율법은 더 이상 기능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주님의 영이 아직 그 마음에 없다는 것을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교회가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오셨습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율법은 그 기능을 다 했습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이 지금 갈라디아에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정말 내가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 율법으로 자기들이 당할 화를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 율법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거의 모든 행위가 율법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만이 율법이 아닙니다. 정죄를 하고 있고 삼가 지키고 있다면 그것은 무조건 율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과 약속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율법과 약속이 반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은 율법이고 약속은 약속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중보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중보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해 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3:21절을 보면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율법은 율법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를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율법에 약속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그럼 율법과 약속이 반대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약속이 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그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말씀합니다.

만약 중보자가 주신 율법이 우리를 살리게 하셨다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이 생명을 줄 수 있었다면 반드시 생명은 율법을 통해서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율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으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은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지키고 안 지키고 하는 것이라면 제가 이렇게 까지 율법에 대해서 단호하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순간 생명과 연결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성도로서 지켰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그렇게 주장을 해도 그것은 여러분의 생각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율법으로 생명을 얻을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자체가 생명을 얻기 위해서 지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우리는 그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까?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첫 번째 표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율법을 주셨는데 주님이 오셨다면 당연히 이 율법이 내게서 없어져야 합니다.

 

갈라디아서3:22절을 보면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을 보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죄 아래 갇혔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죄 아래 갇힌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 아래 갇혀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스스로 화를 자초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주셨습니까?

주님이 오시기까지 왜 율법을 주셨습니까? 이 세상 사람을 모두 죄 아래 가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약속을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약속을 주시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이 무엇입니까?

내가 생명이요 부활이니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을 믿지를 않고 교회는 점점 더 율법주의 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천국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믿는 자들에게 주시고자 우리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율법 버리시기 바랍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성도는 절대로 이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니까 마치 성도로서의 삶까지도 포기를 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율법이 아니고도 얼마든지 성도로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근거로 해서 우리에게 천국을 주시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부탁드립니다. Jesus Christ, Letters 아카데미 강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