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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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윤주만목사 2015. 7. 10. 20:49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신명기25:13-16절을 보면

너는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네 집에 같지 않은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장구하리라 무릇 이같이 하는 자, 무릇 부정당히 행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

 

가증하다

괘씸하고 얄밉다는 말입니다. 진리를 모르게 되면 교회에 나와 있지만 그는 가능한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가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이 진실 되다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참으로 신실 되다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 거짓으로 믿을 수 있겠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서 거짓으로 믿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을 그것을 내 진심입니다.

 

사람의 진심입니다.

그것으로 말한다면 이 세상 모든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 역시 다 진신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진심이라는 것이 아무리 자기 양심에 비추어서 거짓이 없다 해도 그것으로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진실 되면 뭐하겠습니까? 그것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과 반하는 일이 된다면 내 진심이라는 것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부모는 아들이 공부를 잘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부모가 고생하는 것을 생각해서 공부를 하는 것은 뒷전으로 미루고 일을 해서 돈을 벌어서 자기 스스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할 때 참으로 대견하기만 아들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갖추고 있고 그 아들이 공부를 하는데 있어 부족함이 없이 받쳐줄 힘이 있는 부모라면 그 아들의 일은 결코 정당한 일이 되지 못 합니다.

 

부정당한 일입니다.

그런 일을 하고서 자기가 잘 했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잘 알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관계를 잘 모르고 있고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잘 모르고 있고 자기가 누군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죄인입니다

우리 인생은 어쩔 수 없는 죄입니다. 이 죄는 내가 안 질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제가 죄를 마음 놓고 지라고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사단에게 있어 사자와 양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안할 수 있다고 해서 죄를 안 질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인정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착각을 합니다.

자기가 몇 가지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죄를 별로 안 짓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키고 있는 그 몇 가지 율법도 내 의지로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율법을 누가 지키게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성령이 오시면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성령이 오셔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성령이 오셔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마귀의 자식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단은 우리가 죄를 짓게도 하지만 율법을 지키게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마도 이 시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이 율법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가증한 자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이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는데 그것을 마치 내가 의지가 있어서 지키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것을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늘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이 몇 가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자기 죄를 가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위들이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이 된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죄인입니다

그런데 의인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가증한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죄가 없는 사람이 의인인 체 한다면 그것은 전혀 가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다른 것으로 그것을 가려서 자기가 죄가 없는 것으로 보이고 있다면 그것은 가증한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잠언21:27절을 보면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

 

악인의 재물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가증한 것이 바로 이 악인의 제물입니다. 이 악인의 제물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사람들의 눈에는 아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잘 믿는 사람으로 보여 지고 있고 본인들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예수를 잘 믿는 것 같습니까?

당연히 이 악인의 제물로 인하여 사람들은 다 미혹이 되고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교회 안에서 제사로 드리는 행위들로 인하여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는 사람으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 제물들을 보면서 참 믿음이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제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니 안 믿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에 믿음의 비밀이 없기 때문에 그 제물로서 자기가 믿음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어 합니다. 실제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악인의 제물로 자기 믿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제물을 보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믿음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악인입니다

누가 의인이고 누가 악인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 죄인입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악인이 있습니다. 또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의 의로 의롭다 함을 얻은 의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악인은 교회 안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믿음은 없고 제사만 드리고 있습니다.

 

이 제사의 제물이 가증하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제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제물이 무엇입니까? 제물은 제사를 드릴 때 쓰는 것입니다 무엇이냐면 우리가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다 제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다 제사입니다. 그 제사를 하는데 있어서 사용되는 모든 행위가 또한 제물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악인입니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은 다 악하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악인이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악인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제물인데 그것이 본래 가증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찬양을 합니다. 기도를 합니다. 헌금을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전도와 선교 봉사와 헌신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악인의 제사와 제물이 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악인이 제물로 드리는 그러한 행위들이 하나님께 가증한 것인 줄을 모르고 이 시대는 그런 것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가증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하는 행위와 진실이 다른 것을 보고 가증하다고 하는데 이 시대는 그것을 모르고 교회 안에서 그 가증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자기들 스스로의 마음으로 너무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악인이 하는 모든 제사가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자기가 의인인지 악인지지도 분별이 안 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성경에 나오고 있는 모든 악인은 자기가 악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갔습니다. 성경에 악인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은 의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저 지식적으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그 말씀을 알고서 의인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의인이면 의인의 행위를 해야 하는데 그들이 악인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의인은 의인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자기가 악인의 제물을 드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가 의인이라고 하는 것과 실제 행위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볼 때는 너무도 잘 하는 일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수도 없이 악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래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으면 이제 악인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면서 악인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면 그는 정말로 가증한 사람입니다. 이 시대 그런 가증한 자들이 교회 안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자기가 가증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다릅니다.

말로는 의인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 그들의 행위들을 보면 다 악인의 제물을 드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예배가, 찬양이, 기도가, 헌금이, 그리고 전도와 선교와 봉사가 다 그렇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지도 못했으면서도 가증하게도 자기가 의인이 되었다고 하면서 악인의 제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반드시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면 그 영혼이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생명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악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다면 다 악인입니다 그런 악인이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제물입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께서 가증하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너무도 좋게 보이기 때문에 그 가증한 일에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생명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지도 못했으면서도 자기가 마치 생명을 얻은 것 같이 행동을 하고 있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면 그는 가증한 자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악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행위가 나쁘겠습니까? 좋겠습니까?

 

너무 좋습니다.

그 제물이 나쁘다면 절대로 안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으로는 너무도 좋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다 이것에 미혹이 되어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하나님께 가증한 제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너무 좋게 보이는 그것으로 인하여 가증한 제물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늘 명심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지혜가 있다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너무도 많이 어리석은 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없어서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가증한 일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 일에 아주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선한 일이라 의로운 일이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증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절대로 안 합니다

그것이 악한 일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없어 어리석은 자들은 악한 일을 하기에 너무도 빠르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너무도 선하고 의로운 그 일들이 악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결국 하나님 앞에 가증한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혜 있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지혜를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선과 의를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다 보니까 그것이 얼마나 악한 일이 되고 있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바리새인들의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보고 예수님께서 악하다고 말씀을 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흠 없는 율법의 의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한번이라고 칭찬을 하셨습니까?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는 부자 청년에서 네 제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라 오라고 하시니까 이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갔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로 예수를 아무리 그가 믿는다고 하지만 이렇게 악을 행하고 있는 자는 반드시 근심하며 간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너는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율법입니다

그림자로 보아야 합니다. 항상 우리는 율법을 볼 때 그림자로 보아야 합니다. 실제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와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이 율법은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 해당이 됩니다. 아니 예전에 농경 사회에서는 무엇을 교환할 때 저울에 달아서 했습니다.

 

그것을 말씀합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장사를 할 때나 어떤 물건을 달아서 교환을 할 때 같지 않은 저울추를 가지고 있는 것을 율법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을 문자 그래도 보고 있다면 지금 이 시대 저울을 사용하는 사람은 극히 제한 적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가 구원에 영향을 줍니까?

지금 이 말씀은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가지고 있는 일은 구원에 관한 일이지 우리 일상에 대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울에 무엇을 다는 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시편62:9절을 보면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

 

저울

하나님께서는 천한 것과 높은 것을 저울에 달라 보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천한 것과 높은 것을 달아 보니까 입김보다 경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한 것과 높은 것을 달아 보니까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가 하면 입김보다 경하다고 말씀합니다.

 

차이가 없습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모든 일에 봉사와 헌신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 보니까 그것을 하나도 하지 않은 사람과 차이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달아 보신 저울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같이 않은 저울추를 주머니에 가지고 있습니다.

 

똑같습니다.

우리 인생 모두는 다 똑같습니다. 지금 교회에서 성인이라고 하는 그들과 이 세상에서 죄가 많다하는 천하게 여기는 사람과 달아 보니까 입김보다 경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머니에 다른 추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로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저울로 달아 보려고도 하지 마시고 또 달아 보았다가는 그 사람은 주머니에 다른 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 그런 가증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추를 가지고 저울에 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저울에 달라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욥기14:17절을 보면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허물이 모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것을 주머니에 봉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사람들은 같지 않은 저울추를 가지고 달아 보고 있습니다. 허물을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천한 자와 높은 자와 모든 사람의 것을 짊어 지셨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주머니에 저울추를 서로 다른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를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의를 저울에 달아서 허물을 가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허물은 모두가 저울에 달면 같습니다. 그런데 그 허물을 가리려고 율법을 지킨 것으로 저울추를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허물은 허물입니다

내 허물이 있는데 그것을 내가 아무리 율법을 잘 지켰다 해서 그 허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율법을 지키는 것은 지키는 것이고 허물은 허물입니다 내가 지킨 율법으로 인하여 그 허물이 없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어떻게 없어집니까?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없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방법으로는 내가 한번 진 허물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허물을 없애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찔리신 것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저울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다른 저울추를 주머니에 가져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찔림을 우리 인생 모두의 허물을 위해서 찔리셨습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의 눈에는 자꾸 허물이 보이고 그것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허물은 같습니다.

저울에 달아보면 입김보다 경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는 서로 다른 저울추가 보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 율법에서 온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주머니에 저울추를 작은 것과 큰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다 율법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증합니다.

서로 다른 저울추를 가지고 있으면 가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달아 보시니까 입김보다 경해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의 허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없애 주셨는데도 사람들은 공평한 저울추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불공평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허물을 모릅니다.

그것이 얼마나 가증한 일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에게 허물이 있는 것을 모르고 서로 다른 추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달아 보면서 그 허물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서로 다른 저울추를 가지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고 법으로 정해 놓으셨지만 사람들은 큰 것과 작은 것을 가지고 달아보고 있습니다.

 

다른 추 안 됩니다.

큰 것과 작은 것을 가지고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사람의 허물을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서로 다른 허물이 바로 우리가 주머니에 가지고 있는 작은 추와 큰 추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추를 주머니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저울에 달고 있습니다.

 

사람이 달면 안 됩니다.

작은 것과 큰 것을 가지고 있으면 자꾸 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저울추를 가지고 있으면 굳이 달아보지 않아도 됩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는 말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으면 우리가 보는 저울추는 늘 같을 수밖에 없고 굳이 달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네 집에 같지 않은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네 집에 같지 않은 되를 두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큰 것은 무엇이고 작은 것은 무엇입니까? 큰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고 작은 것은 사람의 의입니다. 집에 이렇게 같지 않은 되를 두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집에 같지 않은 되를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머니는 허물을 봉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집은 우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주머니와 집에 서로 다른 저울추와 다른 되를 가지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장구하리라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와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도 가지지 말고 큰 것도 가지지 말고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심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이라는 숫자는 사람의 숫자입니다 완전하다는 것을 뜻하는 수입니다. 꽉 차 있는 저울추와 되를 가지고 있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모자라지 않고 틀림없는 저울추만 가져야 하고 모자라지 않고 틀림없는 되만 가져야 한다. 그래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실 땅에서 너희가 오래 살 것이다.”

 

모자라지도 않고 틀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주머니에 저울추가 있고 집에 되가 있는데 그것이 모자라지 않고 틀림이 없는 저울추와 되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울에 달고 있습니다.

그리고 되를 달고 있습니다. 그때에 모자라지 않고 틀림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달고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기고 저울에 달고 되에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공정한 저울추와 공정한 되를 가지고 달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 무슨 뜻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레미야5:28절을 보면

살지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히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송사를 공평히 판결치 아니하니

 

 

고아의 송사입니다

그리고 빈민의 송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고는 이 두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가지고 저울에 달고 되를 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율법으로 정해 놓으셨습니다.

 

이것은 법입니다.

고아의 송사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빈민의 송사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을 율법으로 송사를 하면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율법은 절대로 공정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고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그것을 달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저울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크고 작은 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오히려 공정히 행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고아나 송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고는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허물을 십자가에서 없애 주셨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송사를 하면 고아도 빈민도 공정한 송사를 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정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가셨고 또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공정한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율법의 눈을 가지고 서로 다른 저울추와 다른 되를 가지고 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법으로 정해 놓으셨는데도 사람들은 이 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법입니다.

우리가 공정한 저울추와 공정한 되에 달게 하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와 그의 의로 말미암아 우리를 달게 하시고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율법으로 정해 놓으시고 너희가 들어가는 땅에서 이 법을 지키면 장구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은 이 세상 사람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려고 하는 사람은 이 세상 사람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니 세상 사람들보다 더 악한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보이는 저울추와 보이는 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허물을 사해 주신 것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공정한 저울추입니다

그리고 공정한 되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어떤 것을 달거나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공정한 저울추와 공정한 되를 가지고 있으면 모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정해 놓으시고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네가 들어갈 땅에서 네 날이 장구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공정한 저울추를 가지고 있고 공정한 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사해 주셨다는 것을 믿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주셨다는 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공정한 저울추와 공정한 되를 가지고 있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 날에 장구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를 받아들이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내 것으로 가지고 오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에 들어가서 모든 축복을 누리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릇 이같이 하는 자, 무릇 부정당히 행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

 

무엇이 바릅니까?

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율법이 바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고아와 가난한 자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방법이 부정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의 하나님입니까?

고아의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이미 정해 놓으시고 그것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아와 가난한 자를 위해 오실 것을 율법으로 정해 놓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십자가를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의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정한 저울추고 공정한 되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고 있고 가난한 자를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행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부정당하게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증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죄 사함을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 일이 가증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구원을 받을 수 잇게 해 주셨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안 믿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행위로 가증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고 교회 안에서 의를 쌓으려고 하는 행위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증한 일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가증하다고 법으로 정해 놓으셨는데도 이 시대는 공정하지 않은 저울추와 공정하지 않은 되를 가지고 사람들을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1:27절을 보면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런 행위를 하고 있는 자들을 가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증한 자는 결코 그리고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로는 가증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고 자기 의를 쌓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일이며 공정한 저울추와 공정한 되를 갖지 않고 있는 가증한 일이라는 것을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율법으로 정해 놓으셨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우리는 고아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주셨습니다. 공정한 저울추와 공정한 되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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