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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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윤주만목사 2015. 7. 7. 21:42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잠언30:21-23절을 보면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종이 임금 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진리입니다

성경은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진리를 아는 성도는 사실 모든 성경을 바르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진리를 아는 사람이 지극히 적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 모두가 자기가 진리를 아는 지혜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순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의 상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역시 진리도 오직 진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 세상의 상식과도 같이 진리도 역시 진리를 일관성 있게 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상식과는 조금 다르더라도 진리만의 일반적인 사실을 말씀을 하고 있고 조금도 변하지 않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가 뜹니다.

그리고 하루가 시작되고 밤이 됩니다. 이것은 자연의 순리입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도 반드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몹시도 헷갈리고 있습니다. 진리를 전한다고 하는 그들이 이때는 이렇게 말을 하고 저때는 또 다르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자기들의 편리에 따라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마치 해가 뜨고 지는 것과 같습니다. 아주 일정하게 진리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진리를 너무도 어렵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해가 뜨면 저녁이 오는 것과 같이 진리는 바로 알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성경을 볼 때 정말로 일관성 있게 진리만 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 의해서 그 진리가 변하고 있고 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이 진리인 줄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진리냐 아니냐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이 때에 따라 변하고 있는 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전하는 말을 들어 보면 압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 합니다. 그리고 어느 때는 또 행위를 말하면서 마치 구원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처럼 주장을 합니다. 또 어느 특정한 은사나 체험을 해야 하는 것 같이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오직 예수가 아닙니다.

진리라는 것은 무엇이냐면 오직 예수만을 전할 때 그가 바르게 진리를 알고 있는 성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때는 이 말을 하고 있고 저때는 저 말을 하면서 도무지 어느 말이 맞는지를 모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변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묘하게 그것을 진리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라는 말씀을 바로 아셔야 합니다. 오직 예수라는 말씀은 예수 이외에 다른 것을 전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서 왜 그렇게도 해야 하는 일이 많은지를 모르겠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되는데 이 시대는 어떻게 믿음만 있으면 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런 말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얼마나 방해를 하고 있는 말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입니다

이 성경은 오직 진리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진리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율법을 전하고 있고 행위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했기 때문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을 해석을 하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야 합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오직 예수를 믿으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그들의 말은 오직 예수가 아닙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많은지 정말 교인들을 일주일 내내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많다는 것은 이미 진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스스로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호세아6:3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성경을 왜 봅니까?

내가 성경을 보고 이 세상을 살면서 아니 교회 안에서 정말 선하고 의롭게 살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는 교회 안에 있는 불교신자입니다 몸은 교회에 있고 자기 입술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실제 그들의 행위는 불교신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을 받았다고요?

이제 구원을 받았으니까 성도로서 이 세상에서 더욱 선하고 의롭게 살아가야 한다고 합니까? 그런 말 자체가 불교의 사상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은 성도로 살기 위해서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바로 율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바리새인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구원을 못 받습니까? 그 자체가 오직 예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왜 그렇게 율법을 보고 있고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무거운 짐에서 우리를 자유 하게 해 주시고 있지만 사람들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았다면 절대로 바리새인들과 같은 율법주의자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려고 지독한 율법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자기들이 어떻게 율법을 지켜야 하는 가를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을 안다고 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모양을 보고 하나님을 안다고 스스로 자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호세아 선지자가 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힘써 알려고 하지를 않고 그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모양을 보면서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았습니까?

그들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예표입니다 구약에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한 것은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몰랐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몰라서 율법을 지켰습니다.

지금 이 시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은 완전한 율법주의는 아닐지라도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은 이스라엘 못지않게 지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율법을 지킵니까?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있다면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을 것입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에게 호세아 선지자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인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지만 역시 이스라엘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를 압니까?

그렇다면 가장 기초적인 것이 바로 율법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되고 있는 사람은 교회 안에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고 또 안 믿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를 안다면 절대로 율법을 안 지킬 수 있는데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야 하는지 아니면 안 지켜야 하는지를 모르고 또 어느 율법은 지켜야 하고 어느 율법은 폐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다고 말씀을 합니다.

일정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전하고 있지만 전혀 일정하지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일정한지 아니면 다르게 전하고 있는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설교를 듣다가 저건 아닌데 하는 감동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감동을 주고 있지만 그 설교를 계속해서 듣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교회에 가도 마찬가지고 저 교회에 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감동을 해 주고 양심에 가책을 받게 해 주시고 있지만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니까 그냥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갈 곳이 없습니다.

어느 것을 가더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진리를 전하면 새벽빛같이 일정해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일정한 말씀을 듣고 있다면 그것은 진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자기가 모르면 그런 것을 찾아야 합니다. 영혼 구원을 받는 성도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그 먼 거리를 왔습니다. 지금 같으면 비행기로 몇 시간이면 되겠지만 그 당시에는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길입니다 그리고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 내시는 오직 하나님께 예배를 하기 위해서 그 길을 왔습니다. 정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한번 아니다 라고 내 마음에 성령이 감동을 주면 그곳은 빠져 나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찾아야 합니다.

또한 정말 간절하게 구해야 합니다. 급하게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진리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서 그런 성도들에게 새벽빛같이 일정하게 진리로 인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보면 진리에 대해서 너무 무감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전쟁입니다

예수님께서 침노하는 자만이 천국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합니다. 침노를 하라고 하니까 교회 안에서 어떤 신앙생활의 행위를 아주 열심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고 정말 비 진리를 전하고 있는 사단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쟁을 하듯이 투사와 같이 성경을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성경에 대해서 투사가 없습니다. 그저 자기들 편리에 의해서 성경을 아주 쉽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에서 투사의 흔적이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천국을 침노하기 위해서 싸운 흔적이 전혀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서도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구원을 받을 것 같이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떡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이고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떡 줄 하나님께서는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습니다. 그런 김칫국을 마시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견딜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새번역입니다.

세상을 뒤흔들 만한 일이 셋,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일이 넷이 있으니

 

세상을 뒤흔들 만한 일

그리고 세상이 감당치 못할 일이 있습니다. 이제 그 일이 무엇인가를 잠언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일들이 교회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일도 역시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잠언의 이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그런 일들을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이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세상과 교회를 비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정통의 교회 안에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 영혼의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이것을 목사의 손에 맡기는 사람은 반드시 나중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날이 올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자기 영혼의 생명을 남의 손에 맡기고 그가 하라는 대로 하면 마치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설령 이 시대 사도바울이 말씀을 전한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성경과 맞는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왜 세상을 진동 시킵니까?

그리고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성경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며 너무 목사들에게 의존을 하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누구도 감히 목사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7:11절을 보면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사도 바울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를 않았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신사적이어서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누군가 목사의 말을 듣고 그것이 성경과 맞는가 날마다 상고를 한다면 그는 분명히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감히 그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사의 말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있고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누군가 교회 안에서 그렇게 해서 목사에게 질문을 한다면 아마도 믿음이 없다고 오히려 질책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왜 견딜 수 없습니까?

바로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많아서 견딜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베뢰아 사람들과 같이 사도바울이 말씀을 전할지라도 그 말씀이 성경과 맞는가를 살펴보아도 구원을 받을까 말까한데 목사인 사람의 말을 너무도 신뢰를 하다 보니까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일 견딜 수 없는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하나님의 선민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은 다 악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자기들이 정말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자부를 했습니다. 그런 일이 얼마나 견딜 수 없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가 역시 그렇게 자기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을 하면서 성도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까?

성도도 아닌 자들이 성도인 척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견딜 수 없는 일입니까? 남의 집에 들어가 무조건 자기가 아들이라고 하면서 아버지라고 부르면 그것을 어떻게 견딥니까? 이건희 회장이 돈이 많으니까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자기가 아들이 되겠다고 하면 이건희 회장이 견딜 수 있습니까?

 

그런 일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견딜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성도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이 되어서 교회를 섬기고 있는 그들이 자기들이 구원을 받은 성도라고 하면 그것을 아는 이는 얼마나 견딜 수 없겠습니까? 지금 교회가 그렇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진동을 할 일입니다

지금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가라지들이 마치 성도나 되는 것 같이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가라지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오히려 성도들을 핍박을 하면서 성도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진동할 일이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나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누구인 줄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도인척 하고 있습니다. 세상 말에도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하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나도 모르고 적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꽤나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진동 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를 알면 절대로 이런 일들을 안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성도인가 가라지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악한 자들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던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자기들이 악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처지에 있는 한국교회를 볼 때 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곧 종이 임금 된 것과 미련한 자가 배부른 것과

 

교회 안에는 종이 있습니다.

누구를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갈라디아서를 보면 시내산에서 낳은 자를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내산은 율법을 상징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종이라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종입니다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으면 무조건 종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신앙생활을 하면서 율법을 한 모양이라도 나타내고 있다면 그는 무조건 종이라고 갈라디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이 왕이 된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에서 너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 왕이 되어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종은 절대로 왕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성도들을 왕 노릇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이 왕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왕이 된 것같이 행동을 하고 있고 주장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종은 영원히 종입니다

한번 종이 된 사람은 영원히 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자만이 그 종에서 벗어날 수 있지 그럴지 않으면 죽을 때 까지 종으로 살면서도 자기가 왕인 줄을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견딜 수 없는 일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가 아무리 그것을 믿음으로 한다 해도 그는 종입니다. 성경이 그를 종이라고 말씀을 하면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율법들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 율법을 지키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오히려 믿음이라고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 주일, 그리고 각종 예배,

제가 일일이 다 열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시대 교인들이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런 말씀을 하면 도무지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종이 왕이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왕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세상을 진동시킬 일을 하면서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종이 왕이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왕이 되어서 오히려 권세를 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을 잠언에서 절묘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3:17절을 보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왕처럼 살고 있습니다.

실제는 구원을 받지도 못할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자기가 이미 구원을 받은 것 같이 왕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 역시 자기가 누구인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의 종입니다

그들은 실제 율법을 너무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는 왕과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들이 얼마나 가난한 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종은 가난합니다. 율법의 종이 되어 있는 사람은 남들의 눈에는 왕과 같이 보일지라도 그들은 그 율법의 의가 사라지는 순간에는 종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으로 견디지 못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누군가를 모르면 그렇게 세상으로 견디지 못하게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 율법이 너무도 좋게 보이기 때문에 세상을 진동케 하면서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가 배가 부릅니다.

무엇으로 배가 부르다는 말씀입니까?

 

요한복음6:48절을 보면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의 떡을 먹고 배가 부르려면 반드시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배가 불러야 하는데 미련한 자가 예수 그리스도도 알지 못하면서 배가 부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목사인 저보다도 성경을 더 잘 외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외우고 기억하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머리가 나쁩니다. 솔직히 제가 기록을 한 설교도 그리스도편지에 올리고 나면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다시 보아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성경을 문자적으로 많이 아는 것으로 배가 불러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것으로 배가 불러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배가 불러야 하는데 율법을 잘 지킨 것으로 부자가 되어서 배가 불러 있었던 것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먹지도 않은 그들이 배가 불러 있습니다. 그래서 영생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아니 구원에 대해서 제가 계속해서 말씀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제가 이단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오히려 이단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배가 불러서 더 이상 구원에 대해서는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는 것을 보고 견딜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 그들이 자기들의 율법의 행위를 보고 배가 부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6:25절을 보면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바리새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율법의 의를 보고 배가 불러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고 마치 진리를 다 깨달은 것처럼 배가 불러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먹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전혀 먹지도 않고 있고 율법에 대해서만 먹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몇 가지 율법을 보면서 마치 천국에 가는 성도가 된 것처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미련해서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먹지도 않고 있는 그들이 배가 부르다고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율법으로 배가 터지게 불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직 예수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면서도 지혜가 없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먹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잠언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미련한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줄줄 외울 정도로 알고 있고 율법은 잘 지키고 있지만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주려 있는가를 모르고 배가 불러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꺼림을 받는 계집이 시집간 것과 계집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다 신부입니다

그렇게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를 잘 알고 있듯이 모든 사람은 자기를 처녀로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꺼림을 받는 계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1:2절을 보면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성도는 정결한 처녀입니다

이 정결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정결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으로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께 시집을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고는 우리가 정결해 질 수 없는데도 자기의 율법의 의로 시집을 가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율법

반드시 꺼림을 받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꺼림을 받는 것으로 가지고 있는 처녀가 시집을 가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진동을 할 일이고 따한 견딜 수 없게 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아주 잘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결한 처녀가 아닙니다.

그런데 시집을 가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정결하게 되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율법에 빠져 있는 사람은 자기의 의를 보면서 스스로 정결하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려고 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집종이 주모를 이은 것입니다

누가 계집종입니까? 바로 하갈이 계집종입니다. 그리고 주모는 누구입니까? 우리의 어머니 사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계집종이 주모가 되겠다고 합니다. 이 비유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집종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자유 하는 여자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종의 교회가 하늘의 주모가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빼앗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면 교회가 어떻게 변해 있다는 것을 아는 성도는 이 말씀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정말로 견딜 수 없게 교회가 그렇게 변해 있으면서도 오히려 주모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런 일들이 교회 안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을 진동하게 만들고 있고 또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일들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늘 깨어 지혜를 구하지 않으면 정말 자기가 누구인가를 모르게 되고 그렇게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만 그러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견딜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종이 왕이 되고 있고 미련한 자가 너무 배가 불러서 생명의 떡을 더 이상 먹기를 거절하고 있고 꺼림을 받는 계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시집을 가겠다고 하고 있고 또 종을 낳고 있는 교회가 성도를 낳고 있는 교회를 대신해서 자기가 주모라고 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의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 늘 깨어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서 믿어서 영생을 얻어 주님께서 오실 때 영접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Jesus Christ, Letters 아카데미 강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