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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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치 아니하나이다

윤주만목사 2015. 7. 7. 20:28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치 아니하나이다.

신명기25:5-10절을 보면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취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거든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치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이를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 취하기를 즐겨 아니하노라 하거든 그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할 것이며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기운 자의 집이라 칭할 것이니라

 

아들

성경은 아들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이 시대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딸로 태어난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성경은 참으로 불공평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민수기를 보면 아들만 계수를 했지 딸은 계수를 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서 왜 하나님께서는 아들에게만 모든 것을 주시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경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절대로 차별을 하지 않습니다. 여자라고 해서 폄하를 하거나 여자라고 해서 남자 보다 못하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꼭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는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똑같습니다.

남자냐 여자냐 구별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도 심지어는 여자에게는 목사 안수도 주지 않는 교단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사실은 성경을 너무도 오해를 해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오해가 성경을 보는 눈을 가리게 되어서 성경 전체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율법은 그림자라는 것을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그림자를 그림자로 그대로 보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림자를 보고 있다 해도 그것을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림자로 보이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반드시 확인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림자로 비춰지는 사물이 무엇인가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성경을 보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율법은 그림자라는 말씀을 분명히 성경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그냥 그림자로 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는 반드시 뒤로 가서 그 실체를 보아야 합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어떤 창 뒤에서 비추고 있는 사물이 무엇인가를 확인을 해야 합니다.

 

안 봅니다.

그리고 그림자를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림자 뒤에 있는 사물을 보려고 할 것입니다 만약에 전쟁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데 이상한 그림자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경계병은 반드시 그림자의 실체가 보일 때 까지 그것을 주시하고 있고 반드시 직접 가서 확인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반드시 지게 되어 있습니다.

경계를 하고 있는 병사가 그림자를 보고도 그것이 귀찮다고 해서 그것을 확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생명과 그 부대의 생명이 걸린 문제가 된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영혼의 일도 성경에서 그림자라고 말씀을 했으면 자기가 생명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그림자를 걷어 내고 보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 생명입니다.

정말로 자기 생명이 걸린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생명이 걸린 문제라면 아마도 손이 떨릴 것입니다 그 그림자를 보기 위해서 긴장을 하고 머리가 설 정도로 집중을 하면서 그것을 알기 위해서 온 신경을 집중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영혼의 일이다 보니까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그냥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하고 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보는 마음부터가 다릅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너무 쉽게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을 가지고 보려하고 있습니다. 어떤 말씀을 하나 해석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제 영혼을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나로 인하여 이 말씀을 보고 있는 사람이 죽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내 손에 총이 쥐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쏘느냐에 따라 결국 그 영혼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시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내 손에 총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사용을 하겠습니까? 군대 생활을 해 본 사람은 자기 손에 총이 있을 때 더구나 실탄이 장전이 되어 있을 때 그 총을 어떻게 간수를 해야 하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호세아6:3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아시기 바랍니다.

그냥 알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모른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호세아가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본다고 해서 모두가 다 알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정말로 힘써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너무 쉽게 하나님을 알려고 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성경공부 교제를 본다든지 아니면 강해를 본다든지 설교를 들어보면 고민한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힘쓴 흔적이 전혀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림자 뒤에 있는 것을 안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자를 걷어 내려면 아니 그림자 뒤에 있는 것을 알려면 그 경계병이 얼마나 긴장을 해야 하고 조심을 해야 하는 줄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설교들을 보면 그런 것이 전혀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설교 한 편만 들어 보아도 그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얼마나 힘쓰고 있는 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그런 것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힘쓴 흔적이 전혀 보이지가 않고 그저 사람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밖에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성경 쉽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성경이 비유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비유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전혀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구약의 율법을 보면서 그것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아주 편하게 문자로 보다 보니까 성경이 너무도 그들에게는 쉽게 느껴지고 있고 일반 교인들도 성경을 아주 우습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소경이 되었습니까?

그들이 우리보다 성경을 보는 눈이 어두워서 소경이 되었습니까? 그들이 우리보다 지혜롭지 못해서 소경이 되었습니까? 그들의 마음이 우리와 달라서 소경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라니다. 이스라엘을 우리 보다 더 똑똑하다는 것을 이 시대 노벨상을 받는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경입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기 때문에 소경이 되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려고 했지만 문자에 갇혀서 율법의 그림자에 눈에 소경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그들과 같이 그렇게 문자에 갇혀 소경으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외치고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외치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성경을 몰라서 호세아가 외쳤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들이 힘써 알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예표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몰라서 호세아 선지자를 보내셨다면 지금도 역시 하나님을 몰라서 우리가 이 성경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사람들은 이스라엘은 미련해서 몰랐을지라도 자기들은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이 그렇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은 너무도 잘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마치 호세아 시대에 호세아가 말씀을 전하니까 네가 무엇인데 말씀을 전하느냐고 하면서 책망을 한 것같이 이 시대도 똑같이 그렇습니다. 그 시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한심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선지자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서 떠들고 있을지라도 아무도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 시재도 진리가 전해지고 있지만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생명에 대해서 너무도 안일하게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교회 안에서 있으면 무조건 영혼이 구원을 받은 것같이 주장을 하고 있고 거기에 모든 사람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솔직히 이 시대는 이스라엘보다 더 모르고 있다 해도 별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의 이성적인 머리로 성경을 보고 있기 때문이며 율법이라는 그림자를 그대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자 뒤에 있는 실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를 보면서 성경을 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소경입니다

그림자를 많이 안다고 해서 자기가 안다고 하는 것은 소경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림자를 모두 다 알고 있으면 뭐합니까? 그것은 말 그대로 그림자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그는 절대로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아무리 자기 형이 죽었다고 해서 아니 자기 동생이 죽었다고 해서 형수와 제수를 취해서 아들을 낳게 해 주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율법을 좋아하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율법은 폐하여 졌습니다.

만약에 안폐하여 졌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율법이 폐하여 지지 않았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잠자리를 같이 해서 그녀에게 무조건 아들을 낳아 주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해도 지금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안 됩니다

 

이런 율법은 안 봅니다.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그 당시 근동지방의 풍습이라 해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받아들이기가 힘이 듭니다. 형제가 동거를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아들이 없이 죽으면 나머지 형제 중에 그 형제의 의무를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의무입니다.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라고 율법에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드시 이 일을 행해야 한다고 의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 입장에서도 아주 고역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지 말고 형제에게서 반드시 아들을 낳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시대 여자들에게 이 의무를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나라 법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보통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 의무에 대해서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이런 말씀이 나오면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아니 생각도 하기 싫은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은 과거의 이스라엘의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말씀이 이스라엘만의 문제입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이 말씀을 율법에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역시 똑같이 적용이 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마도 이렇게 말씀을 하면 저보고 이상한 목사라 말할 것입니다.

이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아니 이 목사가 정신이 이상하지 않고 이 율법의 의무가 이 시대도 똑같이 적용이 된다고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문자 그대로 여러분에게 지키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림자입니다

그 그림자를 걷어 내야 여러분에게 이 율법의 실체가 보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율법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보면서 그런 것을 깨닫지 못하면 여러분은 이스라엘과 같이 소경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른 것이 소경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 소경입니다. 아마도 이 시대에 이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율법을 모르고 또 율법이 그림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율법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있고 또 누구도 말씀으로 전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왜 정하셨습니까?

제가 이 질문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담도 지키지 못한 율법을 왜 이스라엘에게 주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체질을 빤히 아시고 계시는데도 율법을 주신 것은 한 마디로 우리 인생들을 괴롭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왜 주셨는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는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고 그들과 언약을 하시고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경 말씀을 보고 사람들은 이 시대도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전체적인 말씀을 이해를 못하고 그저 이스라엘과 언약을 했으니까 그리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율법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5:18절을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인생들은 율법을 다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오해를 해서 율법을 이루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로마서를 보고도 죄를 깨닫기 위해서 율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율법을 지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왜 주셨습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누가 지키기 위해서 입니까? 그것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을 완전케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율법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율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율법은 예수님께서 지키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은 예수님께서 지키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에서 죄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다 지키셔서 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다 지켰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율법 중에 단 한 가지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겠다고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이 지키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실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다 지키셨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율법을 자기가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신명기의 율법도 누가 지키기 위해서 반포를 하셨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실제 이 율법대로 행했다는 것을 제가 부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은 예수님께서 지키시는 율법입니다

이스라엘도 그렇고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로 이 율법을 누가 지키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율법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고 이런 율법은 지금 상식으로는 너무도 이상한 법이기 때문에 아예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여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죽었습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율법은 그림자라는 것을 늘 생각을 하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그렇고 이 시대도 그렇고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보면 도무지 해석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여자가 누구입니까?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여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안에 있지만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을 여자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교회 안에 있지만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여자라고 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이 여자입니다

먼저 있던 남편이 죽어 버렸습니다. 우리에게 있던 먼저 있던 남편이 누구입니까? 로마서에서 율법의 남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을 십자가에서 폐하심으로 이제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율법의 남편이 죽었다는 것을 지금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한 여자가 있는데 그 여자가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때 다른 남자에게로 시집을 가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다른 남자는 이 세상에 있는 종교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이스라엘의 백성이 되었으면 절대로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죽었어도 시집을 가서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문제는 구원의 문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순간에 그 여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율법의 남편이 죽었을 때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순간에 그 남자에 의해서 다시 죽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남자의 형제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남편이 죽으니까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남편이 이스라엘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율법의 남편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자기 남편 율법의 남편이 죽었다는 것을 인정을 하지 않고 율법의 남편과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율법의 남편이 죽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율법의 남편이 죽어야 그 형제와 혼인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전 남편이 죽으면 새 남편에게 시집을 가도 아무 죄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나니까 그 형제가 들어와 취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형제가 누군가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을 이스라엘의 율법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의 남편이 죽었으니까 그 형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형제의 본분을 행하게 위해서 우리에게 찾아 오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형제의 의무를 행하셨습니다.

 

그 의무가 무엇입니까?

남편이 죽은 형제의 아내를 취해서 아들을 낳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취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되게 해 주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시집을 안 가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남편의 형제의 의무를 행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새 생명이 탄생이 되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그 여인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라고 말씀을 합니다.

참으로 율법은 너무도 어렵습니다. 참으로 이런 말씀들을 보면서 우리가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안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성도들에게는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로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8:4절을 보면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원의 방법입니다

첫 남편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첫 번째 방법이 율법을 요구를 다 이루는 것입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게 해 주셨습니다.

 

첫 남편에게서 아들을 낳으려면 율법을 다 지켜야 합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의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 여인에게 아들을 낳게 해서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셔서 율법의 첫 남편에서서 낳은 아들과 같이 해 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끊어지게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스라엘은 육적인 이스라엘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이스라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아들을 낳지 못하고 있는 여인에게 새 생명을 주셔서 이스라엘로 끊어지게 하시지 않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참으로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고 있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을 하시는 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남편의 형제로 오셔서 아들이 없는 구원의 생명이 없는 우리에게 남편의 형제의 의무를 다 해서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시게 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놀랍게도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오순절이 이르매 성령이 오셔서 구원을 받는 영적인 이스라엘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취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거든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치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우리의 권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런데 남편의 의무를 행하지 않을 때는 형제의 아내는 성읍의 장로들에게 나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행치 않는다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형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남편의 형제의 의무를 행치 아니하면 그것을 장로들에게 고하라고 말씀을 합니다. 참으로 감사한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권리가 있다는 것을 율법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성령으로 잉태되는 것을 하지 않으시면 장로들에게 고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의 일입니다

실제 육적인 이스라엘 중에는 이런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룻기에서 보면 형제의 남편 된 의무를 행하지 않아서 그 이름조차 기록이 안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반드시 남편의 형제의 의무를 행해서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시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순절 성령 강림입니다. 이 시대도 남편이 죽은 여인에게 찾아 오셔서 남편의 형제의 의무를 행하시고 있습니다.

 

사람은 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행하셨습니다. 그것을 행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단번 속죄 제물이 되셔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남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 남편으로 말미암아 또 다른 보혜사가 우리 안에 임재를 해서 구원을 받는 하늘의 이스라엘 백성이 되게 해 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이를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 취하기를 즐겨 아니하노라 하거든 그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할 것이며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남편의 형제의 의무를 다 행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지금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구원을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인 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어서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라고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신을 벗긴다는 말씀은 평안의 복음이 사라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 자체가 평안의 복음이시기 때문에 절대로 신을 벗기우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남편의 형제의 의무를 행하기 위해서 얼굴에 침을 뱉는 수모를 다 당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안의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십자가에서 모든 수치를 당하시면서 까지 남편의 형제의 의무를 행하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가를 율법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안의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우리 안에 있음으로 해서 그 복음을 믿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셨고 그렇게 하시기 위해서는 정말 얼굴에 침을 뱉는 그런 수무를 당하시면서 형제의 의무를 다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기운 자의 집이라 칭할 것이니라

 

이스라엘 중에 신 벗기운 자입니다

평안의 복음을 우리에게 주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에서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형제의 의무를 다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평안의 복음을 듣고 이스라엘 중에 그 이름을 끊기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싫어했습니다.

남편의 형제의 의무를 행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것을 창세기에서 유다의 형제들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아무도 이 세상에 누구도 형제의 의무를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예표로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인생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오난을 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만이 형제의 의무를 행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어서 신 벗기운 자가 될 수밖에 없지만 오직 주님께서는 평안의 복음을 주셔서 우리가 그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을 주님이 오셔서 행하신다는 것을 율법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편이 죽었습니다.

율법의 남편이 죽어 버렸습니다.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도저히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남편의 형제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형제의 의무를 행하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아들을 낳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성령이 임재를 하시게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다.

정말 우리가 율법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바로 알아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욱 은혜가 되어 넘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문자적으로 보고 있다 보니까 이런 율법은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모든 구속의 역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성령이 오실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그가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를 하심으로 우리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영혼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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