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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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 교회에 보내는 편지

윤주만목사 2015. 5. 7. 22:49

사데 교회에 보내는 편지

요한계시록 3:1-6절을 보면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세데 교회에 주님은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진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완전수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숫자 중에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숫자가 많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일곱이라는 숫자가 상징적 의미냐 아니면 정말 숫자 일곱이냐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석을 한다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상징적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상징적 의미로 보고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숫자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일곱 영이 해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5:6절을 보면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이 일곱 영이 무엇이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곱 영은 보좌와 네 생물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고 말씀을 하면서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는데 그 일곱 눈이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을 바라보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이 세상 모든 것을 감찰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일곱 영이 이 세상 모든 사람 하나하나를 살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곱 영이 있어 우리 인생들을 감찰하고 있습니다. 나를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온 땅을 살피고 있는 일곱 영이 있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가 없습니다.

 

시편 69:5

하나님이여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내 죄가 주의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지금도 우리를 감찰하고 있습니다. 시편 17편에 하나님께서 눈동자 같이 나를 지키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쉬는 시간이 있고 잠자는 시간이 있지만 하나님의 일곱 영은 눈동자 같이 우리의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있습니다.

눈동자 같이 라는 말씀은 눈을 감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눈을 감으면 눈동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눈동자 같이 우리의 모든 것을 감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일곱 영에 의해서 그대로 촬영이 되고 있어서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설 때 의인으로 서나 죄인으로 서나 모든 것이 그대로 보여 지게 됩니다.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cctv가 있습니다. 나는 모르고 행동을 하고 있을지라도 cctv가 나를 보고 있다면 내가 한 모든 행동이 그대로 녹화가 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일곱 영은 우리 평생을 다 그대로 녹화를 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서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이지 못 합니다

내가 예수를 시인하고 있나 아니면 거절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하나님의 일곱 영이 지금도 다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을 운행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일곱 영을 보내서 다 저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주님께서는 일곱 영을 보내 사데 교회의 모든 행위를 감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데 교회는 자기들의 행위를 보고 산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데 교회는 한 마디로 말씀을 드리면 행위를 의지하는 교회입니다

로마서 10:5절을 보면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당시나 초대 교회의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율법을 다 지킴으로 해서 유대인인 자기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자의 이름을 가졌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살아 있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죽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사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는 것인데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보고 산 자의 이름을 가졌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자기들이 지키는 율법을 보고 자기가 산 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산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율법을 다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조금 말씀을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조금 더 쉽게 번역이 되어 있는 표준 새 번역을 보겠습니다.

깨어나라. 그리고 아직 남아 있지만 막 죽어 가는 자들을 굳건하게 하여라. 나는 네 행위가 나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율법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다 죽어 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데 교회 사람들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보고 자기를 산자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는 모두 죽어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자기들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 생각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데 교회의 행위를 하나님 앞에서 완전다고 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데 교회는 자기들의 행위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깨어나라 그 행위로 살려고 하다가는 다 죽는다. 그 죽어 가는 사람들을 믿음으로 굳건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어느 누구도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데 교회는 자기들이 지키는 행위의 온전함으로 자기들의 구원을 이루려 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사데 교회와 같이 행위를 중요시 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행하고 있는 그 행위들을 보며 마치 구원을 받은 사람처럼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사데 교회는 그런 교회인데 주님께서 보시기에 하나님 앞에 완전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행위를 가지고 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 행위가 완전해야 합니다. 남 보다 조금 더 나아서는 안 됩니다 아니 성자처럼 보인다 해도 안 됩니다 반드시 완전한 행위가 있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데 교회는 행위를 좇아가다가 다 죽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행하는 조금 나은 행위를 보고 마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행위는 조금 나은 것이 아니라 완전한 것이라는 것을 지금 주님께서 사데 교회를 향해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완전한 행위를 이룰 수 없다면 살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 사데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죽어가고 있는 자들을 믿음으로 굳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죽습니다.

요한복음 3:18절을 보면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사데 교회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그 행위가 산 자 같이 보여도 그는 실상은 죽은 자입니다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는 교회 안에서 이렇게 행위를 통해서 산 자의 이름을 받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물론 선하고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고자 하는 이유는 내가 가진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기 위해서이지 선하고 의롭게 사는 것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교회는 행위를 완전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많은 교회가 성도들에게 행위를 아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살릴 수 있는 굳은 믿음은 없으면서도 교회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그 행위를 보면서 산 자라고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통해 내 믿음을 나타내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행위가 사람들의 눈에는 너무 좋게 보여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처럼 보여도 그 행위를 따라가다 보면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그 행위로 인하여 완전함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고 맙니다. 행위와 믿음은 함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성도가 아무렇게나 막 살아도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강조하고 행위를 따라가다 보면 믿음이 가려진다는 뜻입니다

 

행위와 믿음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내 행위가 나타나면 믿음은 가려지고 믿음이 나타나면 내가 아무리 선하게 살았고 의롭게 살았어도 그 행위가 가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행위가 나타나면 자꾸 그 행위를 보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자기 스스로 산 자로 착각을 하게 되고 그러나 그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죽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사데 교회는 행위를 좇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행위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면서 그 행위로 인하여 죽게 된 것을 돌이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돌이키는 방법을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무엇을 받아야 합니까?

갈라디아서 3:2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사데 교회는 갈라디아 교회와 마찬가지로 행위를 따라가는 교회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내 안에 임재하지 않은 사람은 믿을 수가 없으며 믿음이 없는 사람은 결국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믿는 다는 것은 사람의 이성이 아니라 성령께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믿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은 것은 듣고 믿어서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성령을 받는 방법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를 구원하시는 성령은 반드시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성령께서 나에게 임하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령을 마치 어떤 영성 집회를 통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성령세례를 집회 때 마다 받는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무식한 말입니다 구원을 받는 성령 세례는 단 회적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게 그래도 영향력이 있는 교회 목사가 집회를 하면서 오늘도 성령 세례를 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이 또 받을 수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체가 자기가 참석하고 있는 그 집회를 통해 받을 수 있다는 행위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은 내가 어떤 것을 한다 해도 받을 수 없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들에게 감동을 주심으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는 것이 율법의 행위 로냐 듣고 믿음이냐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데 교회는 행위로 받으려 했습니다.

마치 자기 행위가 좋으면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내게 임하셔서 나를 인치시고 천국에 갈 때 까지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은 내가 무엇을 행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15절을 보면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어떻게 들었습니까?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복음의 말씀을 어떻게 들었느냐면 하나님께서 복음이 있는 자를 나에게 보내 주셨기 때문에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들었습니까? 바로 좋은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을 들어야 합니다.

좋은 소식이라는 것은 나에게 기쁨을 주는 소식이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 것도 안 해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좋은 소식입니다 이 시대는 좋은 소식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도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자기가 공부를 해서 자기가 어떤 행위를 함으로서 자유의지로 찾아와서 그것을 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이 시대는 너무나도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 앞에서 인격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인격이 좋아서 아니면 지적인 수준이 높아서 좋은 소식을 들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지금 좋은 소식을 전해 듣고 있습니다. 사데 교회는 이 좋은 소식도 자기들의 자유의지를 통해서 자기들의 지적인 수준으로 듣고 깨달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율법주의에 미혹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셔서 내가 반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지 않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나에게 이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복음이 있는 사람을 보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고 또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내가 좋은 소식을 들었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오십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모두 이단입니다 성도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오실 때 행위에 빠져 있는 사데 교회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도적 같이 임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도적 같이 오신다는 말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주님께서 언젠가는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에 나와 있는 사람들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행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도적 같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왜 도적 같이 오시냐면 자기들은 행위를 보고 천국에 갈 수 있는 산자라고 믿고 있었는데 오시고 보니까 죽은 자였습니다.

 

내가 바른 믿음을 가지고 주님 오시는 날 구원을 받으면 그것은 도적 같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주님께서 오셔서 나를 영접해 주시는데 무슨 도적이 오는 것과 같겠습니까? 그러나 행위를 따라가는 자들에게는 자기는 그 행위를 보고 구원을 받을 줄 알고 있었는데 주님이 오시고 보니까 죽은 자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도적 같이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다수에게는 주님은 도적 같이 오십니다. 도적은 나쁜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기쁘고 즐거운 일이 되어야 하는데 그들에게는 마치 도적이 오는 것 같이 재앙으로 다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서 행위를 의지하면서 자기가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주님은 반드시 도적같이 오십니다.

 

도적이 오면 재앙입니다

도적은 언제 옵니까? 내가 도적이 올 줄 알고 있을 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안심하고 있을 때 도적은 들어와 내게 있는 가장 귀한 것들을 훔쳐 가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사망을 당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에 의지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결국 주님께서는 도적 같이 오셔서 그들은 갑자기 재앙을 당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4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주님은 도적 같이 임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성도들에게는 그 날이 도적 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를 따라가는 자들에게는 도적 같이 임하시고 믿음이 있는 성도들에게는 도적 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어두움에 있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요한복음에 빛이 왔으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참 빛으로 오셨지만 율법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지 않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행위를 보는 사람은 그들과 같이 주님은 도적 같이 오지만 복음을 듣고 성령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도적 같이 임하시지 않는 다는 말씀입니다 주님 오시는 날에 한 사람은 재앙이 되고 한 사람은 기쁨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우리 율법의 의에 옷은 더럽습니다.

이사야서에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의에 옷은 더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입혀 주시는 구원의 옷은 깨끗합니다. 내 의에 옷을 입을 것이냐 아니면 주님께서 입혀 주시는 의에 옷을 입을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요한계시록 7:14절을 보면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우리의 옷은 더럽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그 옷을 씻은 성도는 깨끗한 하얀 옷을 입고 있습니다. 사데 교회에 이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몇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만이 합당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으로 합당하다는 말씀을 들으려면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 가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깨끗한 옷을 입으려 행위를 깨끗하게 하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옷은 안 됩니다 사람의 의는 더럽기 때문에 절대로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보는 눈에 따라서는 조금 더 깨끗하게 보일 수 있어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재앙을 당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어리석음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씻은 그 옷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성도가 깨끗한 행위를 하는 것과 구원을 받기 위해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은 분명히 구분이 되어야 합니다. 자꾸 행위를 따라가다 보면 자기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 가를 잊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그리스도의 피로 씻은 하얀 옷을 입을 것이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옷을 입은 성도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절대로 흐리지 않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씻은 옷이 아니고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행위를 따라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무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은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성도들을 주님께서 하나님 앞에서와 천사들 앞에서 시인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인한다는 말씀은 법정 용어입니다 주님께서 이 사람은 깨끗하다고 증언을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면 죽은 자 같이 됩니다.

정말 심판대에서 죽은 자 같아서 입을 막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데 주님께서 나를 보고 의인이라고 시인을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가를 경험해 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정말 숨을 쉴 수조차 없는 그런 상황에서 주님께서 나를 시인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타국에 가서 살고 있는데 죄인으로 몰려 꼼짝없이 죽게 되었는데 누가 와서 나를 시인해 줘 보세요. 지금은 제가 드리는 말씀이 실감이 잘 나지 않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 서서 예수님이 나를 시인해 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그때에는 알게 될 것입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이 일곱 교회는 초대 교회부터 지금까지 우리 곁에 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지금도 성령께서는 나를 믿음으로 서게 하시기 위해서 책망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 책망의 소리를 듣고 회개 하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책망하시는 소리에 귀 기울이시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