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11:23절을 보겠습니다. (신 255쪽)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 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너도 찍히는 바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도 아까워하지를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방인입니까? 지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너무 감성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그런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감성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생에 이르는 지식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을 가지고 지식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으면 굳이 우리는 목사들의 설교를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성경을 보면 되고 사람의 이성적 지식을 따라 알아 가면 됩니다.
실제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목사들에게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임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결국에는 사람의 이성적 지식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도리어 더 성화주의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공부를 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목사들에게서 아니 기존 교회에서 회의감을 느낀 사람들이 아주 소수의 인원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그들 역시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지식이 아닙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고 아는 지식으로 구원을 받을 것 같으면 성경을 이렇게 오묘하게 기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누구나 지적인 능력이 있으면 성경을 보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사실 교회라는 것도 그렇고 성령 자체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 역시 감성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얻는 지식입니다
그 지식은 세상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신학을 공부를 하고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능통하다고 해서 그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모든 것이 다 이 세상 초등학문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꽤나 고상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식입니다
그리고 지혜입니다 이 세상의 지식과 지혜가 아닙니다. 누가 이 세상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악이라고 하고 있고 누가 그것을 넘어졌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하면 저 사람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더니 완전치 미쳤다고 하면서 자기 사상에 빠져 이상한 주장을 한다면서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에서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얻은 성도는 그것이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그것이 넘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으면서 성경을 본다고 한 그들 역시 아니 신학박사라고 하는 그들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는 줄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없으면 자기가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 이방인들에게 이 로마서를 통해서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성경을 주의 깊게 보지를 않고 거의 사람의 이성을 따라 문자적으로 보고 넘어지고 있습니다.
찍힙니다.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그리고 구원을 받는 사람이 지극히 적다는 것을 의미적으로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가 찍혀 버리움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그들의 눈이 흐려져 깨달을 수 없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까?
성경이 예표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모두가 구원을 받았다면 이 시대 기독교인들 역시 모두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한 사람도 없었다면 이 시대 역시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말씀을 보면서도 이스라엘은 그렇게 되었어도 자기들은 막연하게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시대는 너무 감성에 빠져 있습니다. 세상의 문명이 발전을 하다보니까 사람들은 문화가 발달을 하고 있고 그것이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미디어가 다 감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뉴스까지도 팩트가 아니라 감성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팩트라고 알고 있는 그것이 감성이라는 것을 모르게 되면 진리로 인도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그런 문화가 이 시대 기독교 안에 얼마나 많이 들어와 있습니까? 그런 문화들이 구원을 받는 지식에 자라 가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찬양입니다.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부르고 있는 찬송가가 팩트입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팩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진실이 아니라 허무한 것이고 거짓인데도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는 이렇게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구원에 이르는 지식에 자라가지를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행위입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그것이 팩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거짓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귀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넘어지게 만들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하나님으로부터 엄위를 받고 있습니다.
다 거짓입니다
진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진실이 아니라 성경을 보고 그 의미를 알 때 그것이 진실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문화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그 안에서 복음을 보고 믿는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거짓에 다 속아 넘어지고 있습니다. 자기를 구원할 수 없는 그것에 속아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았던 탓으로 잘려나갔던 가지들이 믿게 되면, 그 가지들도 접붙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접붙이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왜 믿지 않았는가는 이제까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이 믿지 않았다고 하니까 그냥 믿지 않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왜 믿지 않았는가 하면 넘어졌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성경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이 시대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믿음에 있어서 전제 조건인 넘어지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입니다
어떻게 해도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고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그것은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를 믿음으로 해서 내 안에 의로운 영이 거하시는 역사입니다
잠언11:5절을 보겠습니다. (구 922쪽)
“완전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그 길이 곧게 되려니와 악한 자는 그 악을 인하여 넘어지리라”
믿음입니다.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을 행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사람입니다 믿는데 거하고 믿지 않는데 거하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누가 믿지 않는 자입니까?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엄위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지 않아서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엄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믿는 것과 믿지 않은 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믿음에 거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실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엄위입니다.
그것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넘어지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또 다른 말로 믿지 않은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않으면 접붙임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믿지 않는 자입니까?
넘어진 자들이 믿지 않는 자입니다 그들이 누군가 하면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믿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믿지 않는데 거함으로 해서 율법을 지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했다는 것을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데 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악을 행하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 줄을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넘어져 있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고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접붙여 주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아니 우리 인생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악을 모르기 때문에 악을 행하면서도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악을 알아야 믿는데 거하는 것이 무엇이고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이 악을 모르고 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악을 행하는 것이 넘어지는 것이고 넘어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엄위가 있고 하나님의 엄위가 있으면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게 되니까 생명을 얻지 못해서 살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예표로 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도 악을 행하는 자는 넘어진 자입니다 넘어진 자는 믿지 않는 자입니다 믿지 않은 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고 있습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이 시대 역시 악을 행하고 있다면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넘어져서 악을 행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었지만 다시 믿으면 그들을 접붙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런데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아직 믿는데 거하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또 좋은 열매를 맺는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당한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악을 행하는 사람은 이런 영의 일을 모르고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평생을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악을 행하면서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으면 무엇이 주어지고 있습니까?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이 율법과도 연결이 되어 있어서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율법을 지키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입니다
그리고 사망이 있습니다. 이 둘이 함께 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좋은데 그것이 아니라 사망이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면 좋은데 율법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이 세상 사람에게 하고 있습니까? 물론 그들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더라도 하나님의 엄위를 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죄인으로서 짐승과 같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저희입니다
분명히 누구라는 것을 지칭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누가 넘어졌는가를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의 가지 얼마나 꺾였는가를 말씀을 했습니다. 저희가 누구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것조차도 모르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씀을 하면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악을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악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으로 저주를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행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믿습니까?
그들을 접붙이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을 믿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다고 할 때는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왜 안 되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일을 믿지 않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3:17절을 보겠습니다. (신 313쪽)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접붙임입니다.
뿌리로부터 진액을 함께 받은 자입니다 그러니까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접붙임이 됩니다. 그렇게 접붙임이 되면 뿌리로부터 진액을 함께 받은 자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모두가 진토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죽어야 하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참 감람나무를 심으셨습니다. 그 참 감람나무의 뿌리가 누구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접붙임이 되어서 뿌리로부터 진액을 함께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의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영의 뿌리가 되게 이 세상에 오셔서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영으로 부활을 하신 예수님께 우리가 접붙임이 되어서 성경에서 이 영의 일을 깨닫고 믿음으로 해서 우리에게도 그의 영이 거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가 참 감람나무를 볼 수 있습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일들은 오직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데 거하고 있으면 이 모든 것이 믿어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데 거하지 않으면 교회 안에서 율법만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를 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이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무를 접붙이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일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을 나무의 접붙임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모든 것을 다 육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마치 접붙임이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은 영의 일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있습니다. 어떻게 거하시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셔야 합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셔야 접붙임이 되어 있는 성도입니다 그렇게 되리면 우리에게서 악은 모양이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그가 악을 행하고 있는가 악은 모양이라도 버렸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자도 믿음으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분은 하나님 한분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접붙임이 되어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의롭다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초대교회입니다
그때는 이스라엘이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된지 2000년이 지났습니다. 역시 이방인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이 오셨을 때나 주님이 오시고 난 후로 지금 이 시대나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영의 일에 대한 믿음입니다.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면서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접붙임을 당한 자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을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을 예표로 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고 이스라엘의 일로만 치부를 하면서 자기들은 아주 잘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18절을 보겠습니다. (신 264쪽)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65쪽)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접붙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이 그의 안에 거하시게 하는 역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믿음에 거하는 성도가 접붙임이 되는데 그 접붙임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의 일이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고린도전서에서는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데 그것이 우리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멸망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미련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십자가의 도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십자가의 도를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입니다
그 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물론 주님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이 십자가에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안 믿습니다. 율법을 왜 지키는가 하면 십자가의 도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우리 성도는 믿습니다.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어지는가 안 믿어지는가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이 십자가의 도가 믿어지는 성도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영이 자기 안에 거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사람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이 있는 성도는 이것이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같이 넘어지는 자들은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십자가에서 폐하셨다는 성경 말씀을 보고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접붙이심입니다.
믿음에 거해야 하나님께서 접붙이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도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도를 믿어야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우리가 하늘에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당할 수 있는데 믿지를 않아서 멸망을 당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믿지를 못하는가 하면 사람의 지혜로 성경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지혜입니다
그가 아무리 신학박사면 뭐 합니까?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야 합니다. 그 능력이 어떻게 역사를 하는가 하면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 성도는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알아 믿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아 믿을 수 있는 것이 우리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믿음을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성경은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의 도가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믿어지지가 않으니까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이 폐하여졌다는 것이 믿어지면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지 않아서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 십자가의 도가 믿어지는 역사가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의 지혜로는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왜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가 하면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아니 이것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동시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않음으로 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접붙임이 되어서 하늘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난 역사입니다
성경은 마치 차례가 있는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탄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에는 차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또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데 들어도 안 믿어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 뿐 아니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믿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사도 바울은 동일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는 듣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는 듣고도 믿지를 못하고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고 말았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접붙이심으로 말미암아 그가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이시는데 그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믿어지는 역사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런데 접붙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않는 것으로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저희가 넘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 수 있고 그것은 악을 행하지 않는 것으로 알 수 있고 그것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저희를 통해서 우리 이방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분명히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스라엘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않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을 하기 위해서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않으면 접붙임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참 어렵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렇게 기록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사실 복음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84쪽)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접붙임입니다.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날 수 있습니까? 아니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거의 육의 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접붙임도 거의 모두가 마치 우리가 세상에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접붙임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 감람나무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감람나무는 영으로 부활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가 되고 있고 영의 일을 믿어 우리가 접붙임이 되어서 뿌리로부터 진액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역사입니다 우리가 이 영의 일을 깨닫기 전에는 그저 육으로 살았지만 이 영의 일을 깨닫게 되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기하게 우리를 구원하시는 가를 조금 알 수 있습니다.
그 신기한 능력입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것을 로마서11장에서 접붙임이라고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접붙임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미리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합니다.
거룩한 것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을 접붙이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참 감람나무에 접붙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거룩한 것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신기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생명입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얼마나 신비합니까?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떡 덩이입니다 그 떡 덩이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신비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거룩하신 이의 영을 통해서 생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지금의 기독교는 사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어떻습니까?
가루가 거룩한 것은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떡 덩이가 거룩한 것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 떡 덩이가 어떻게 거룩한가 하면 하나님의 신비한 접붙이심으로 거룩하다는 말씀입니다 그 접붙이심이 우리의 육의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가지가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먼저 결론을 말씀했습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떡덩이가 거룩하고 가지가 거룩한데 그것이 어떻게 거룩한가를 접붙임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나무입니다
가지가 좋아야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영의 일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뿌리의 진액을 받아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뿌리의 진액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야 거룩한 가지가 되어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얼마나 신비합니까? 이 영의 일을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이 하나님께 있어서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그 영의 일이 믿어지고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는 썩습니다. 썩어 없어지는 육체는 버리고 우리에게 신비한 영을 주어서 거룩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느 종교입니까?
이 세상의 어느 종교도 이 영의 일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접붙임을 받는 가지가 어떤 가지인가 하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거지 나사로와 같은 가지입니다 그 가지를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거지입니다
그 거지에게 신비하게도 거룩한 열매를 맺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이 세상의 어느 신도 그리고 어느 종교도 이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하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거룩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육체가 아니라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신비합니까?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아는 성도만이 이 일이 신비합니다. 내가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는 것을 알고 내가 벌레라는 것을 아는 성도만이 이 신비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깨달아집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은 절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나는 썩습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그리고 그림자 같은 인생입니다 그것이 깨달아지는 성도만이 이 신비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거룩하신 이의 영이 거할 수 있어 그 영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을 해서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안 믿습니다.
아니 이 영의 일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영의 일을 들어야 믿을 수 있는데 기독교는 이 영의 일을 전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이 거룩한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뿌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심으로 말미암아 가지인 우리도 거룩합니다. 그 가지는 우리 신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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