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16-1,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윤주만목사 2025. 4. 26. 08:01

로마서11:25절을 보겠습니다. (25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우리는 원 돌 감람나무입니다

반드시 이것에서 찍힘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누군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본성도 모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 본성을 말씀하고 있지만 죄만 짓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죄도 짓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강한 본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소욕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거의 모든 교회는 율법을 지키는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음녀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음녀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교회는 음녀입니다 땅에 있는 교회는 다 음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교회에 있는 순간에 우리는 그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게 되어 있고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왜 음욕을 품게 되는가 하면 그것이 사람의 이성에 너무 옳고 또 그 모습이 너무도 좋기 때문에 음욕을 품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그것을 예레미야에서 광야에 익숙한 들암나귀가 그 성욕이 동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성욕의 때에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비유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예레미야의 말씀과 같이 모든 교회가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 안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본성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하나님께서 찍어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찍힘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찍어 버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찍어 버리셨습니다.

어떻게 찍었습니까?

우리를 접붙이셔서 찍었습니다.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 주심으로 해서 우리 육체의 본성을 대적하고 거스리게 해 주셨습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이 본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육체의 소욕을 대적해 주어야지만 우리 본성에서 찍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기독교는 이제까지 본성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지만 실제 그들을 보면 본성대로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가지는 아직까지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문자를 보고 성령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받았으면 반드시 본성을 거스리고 대적을 해 주어야 합니다. 내 안에 성령이 오셨는데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볼 때 말이 안 되는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입니다

거의 문자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접붙임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본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접붙임이라는 단어만 보고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접붙임이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교회 밖과 교회 안을 비교로 해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접붙임이 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본성을 찍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율법을 안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율법을 안 지킬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을 통해서 충분히 예표로 보여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모두가 율법주의에 빠져 율법을 지킨 것을 충분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방의 교회가 다릅니까?

이제까지의 교회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유명하다고 하는 종교 개혁자들은 물론이고 신학자들 역시도 다 본성을 따라 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지를 못 했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접붙여 주시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입니다

우리는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 있어야 합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교회 안에서는 접붙이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어야 접붙임을 당할 수 있는데 이 시대 기독교는 그것이 아예 원천봉쇄가 되었습니다.

구원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의 구원을 여라가지로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누군지도 모르는 그들이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접붙임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복음을 깨닫고 그 안에서 교제를 하고 있지만 정말 이 일이 기적과도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본성을 완전히 찍어 버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에게는 은혜가 되고 있습니다.

율법 지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모양이 하나라도 나타나고 있다면 그는 아직 원 돌 감람나무에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접붙임을 당했는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율법의 행위입니다 우리 성도는 확실하게 접붙임이 되어 있다는 것을 행함이 있는 믿음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신비한 비밀을 알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비밀은 이러합니다. 이방 사람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일부가 완고해진 대로 있으리라는 것과,”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 원 돌 감람나무에서 우리를 찍어서 본성을 거스리는 좋은 열매를 맺는 감람나무에 접붙이셨습니다. 이 일은 비밀입니다 이 시대 역시 이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접붙임을 당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우리에게 하늘의 생명이 임하는 놀라운 비밀입니다. 이제까지 기독교 교리에서 이 비밀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이 영의 일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의 일을 비밀로 감추어 두셨기 때문에 지혜가 있다고 하는 그 유명한 신학자들도 이 비밀에 대해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비한 비밀입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영의 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신비한 일입니까? 이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본성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비밀을 알게 하시고 본성을 거스리는 좋은 열매를 맺는 감람나무에 우리를 접붙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영이 거하시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 육체의 소욕을 대적하고 거스림으로 해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난 영이 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의 본성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비밀이 보여 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자기 백성들에게 이 비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신비합니까?

우리에게 거룩한 것을 주시기 위해서 아니 천국에서 살 수 있는 거룩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우리 육체의 본성을 거스리게 해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게 하고 있고 그 영이 거룩하다는 말씀입니다

뿌리가 거룩합니다.

그 가지도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십니다. 그 거룩하신 뿌리의 진액을 받는 우리 가지가 거룩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거룩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본성을 거스리는 것으로 접붙이시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잠언26:12절을 보겠습니다. (940)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영의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들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이 영의 일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믿음으로만 우리에게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설명을 하는 저 역시도 어렵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는 성도들은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영의 일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안 됩니다 성령이 오신다고 해서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꽤나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고 미련한 자가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는 자를 보겠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개가 누구입니까? 율법주의자를 개라고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습니다.

미련한 자가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과 같이 이 시대 역시 미련함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 미련함을 거듭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본성을 따르는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혜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전혀 풀지를 못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 마치 자기들이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무리 신학을 공부를 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도 이 영의 비밀을 모르면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하면서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는 자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는 자보다 도리어 더 바랄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복음이 오기 전까지는 누구나 다 율법의 행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미련한 자가 되어서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자에게는 그래도 바랄 것이 있지만 교회 안에서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면서 그러니까 접붙임을 모르면서 지혜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지금 로마서에서 말씀하는 접붙임은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성경을 거의 문자적으로 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르고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예전에는 모르고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의 일을 모르면서 접붙임의 비밀을 모르면서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하는 사람은 모르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보다 더 바랄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정말 이제까지 기독교사를 통해서 보면 그렇습니다. 그들 나름대로는 신학을 공부를 하고 로마서 강해를 했습니다. 아마 그래도 유명하다고 하는 거의 모든 목사들은 로마서 강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주석을 쓰기도 했고 그것을 지금 이 시대 사람들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바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원 돌 감람나무에서 우리를 찍어서 좋은 열매를 맺는 감람나무에 접붙이신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면 세상에서 살아다 이제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까?

말로는 했을지 몰라도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니 도리어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고 하면서 본성대로 살라고 가르쳤던 사람들입니다 영의 비밀을 모르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비밀을 모릅니다.

기독교 조직신학이라고 하는 책에서 이 영의 비밀을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신학교에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책에서 영의 일을 언급조차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 아니 접붙임을 안다고 하면서 교회에 나와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미련한 자에게 바랄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밀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떻게 접붙임을 당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그저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자기들이 마치 접붙임을 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성을 따라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하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입니다

어느 비밀입니까? 접붙임의 비밀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는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접붙임의 영의 일에 대한 비밀을 이 시대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영의 생명이 어떻게 탄생이 되는 줄도 모르고 영이 거하시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8:10절을 보겠습니다. (103)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비밀입니다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누구입니까?

교회 밖에 있는 세상 사람이 다른 사람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다른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씨는 복음입니다. 천국 복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을 듣지 않으면 이 비유에도 해당이 안 되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듣는 사람들에게 비유가 해당이 되지 이 시대는 사실 이 비유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 좋은 열매를 결실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밀입니다

천국의 비밀입니다 솔직히 다른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비밀을 들을 기회조차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밀을 들어도 그것을 알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비밀을 듣지도 못하고 있다면 그는 아예 기회조차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은 비밀입니다

영의 일은 다 비밀입니다 그것은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비밀이라는 의미를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천국 복음을 듣고 있는 사람이 만 명이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만 명이 다 알고 있다면 비밀이 아닙니다. 만 명 중에서 한 명이나 두 명 정도가 알고 있어야 비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이 천만 명입니까? 그런 숫자는 늘 말씀을 드리지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천국은 비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이 시대 영의 비밀을 모르고 접붙임을 모르고 본성을 따라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비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접붙임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 절대로 본성을 따라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비밀의 의미를 아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최근에 목사들이 전화가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저에게 왜 기독교 전체가 잘못 된 것으로 이야기를 하느냐고 말 합니다 물론 제가 성경을 바로 푸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겠지만 그것은 좀 과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과합니까?

그렇다면 이 비밀이라는 단어를 성경에 기록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과한 것이 아니라 비밀을 알면 됩니다. 아니 최소한 국어사전에서 비밀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그나마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비밀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고는 그 나라를 알 수 없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 백성이 아니면 다 남입니다 비밀이라는 것은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을 비밀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이 비밀이 알려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비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입니까? 111-2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누군가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거지입니다

율법의 의가 전혀 없는 거지 나사로와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자기 백성을 버리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버리시지 않는가 하면 천국의 비밀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25절에서 사도 바울이 형제들아 너희가 이 비밀을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가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겠지만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악한 일이라는 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어떻게 깨달아질 수 있습니까? 그가 아무리 지혜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 돌 감람나무에서 찍어 버리고 본성을 거스리는 좋은 열매를 맺는 감람나무에 접붙이시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누가봅니까?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비밀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형제들아 너희가 이 비밀을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입니까? 우리 이방인의 사도입니다 그가 우리 이방인들에게 이 비밀을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이 비밀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가 기록한 이 영의 비밀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51-52절을 보겠습니다. (284)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비밀입니다

영의 일이 비밀입니다 이 영의 일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성경은 비밀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천국에 간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만 영의 생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부활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이 시대 기독교는 신체의 부활을 기본 교리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신체가 주님이 오실 때 부활을 해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밀이 아닙니다.

천주교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안식일 교회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이단이라고 하는 거의 모든 교회도 역시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 신체가 부활을 해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부활은 더 이상 비밀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안식일 교회를 이단이라고 합니다. 또 구원파를 이단이라고 합니다. 천주교는 아예 다른 종교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결 같이 주장하는 것이 신체의 부활입니다 사도 바울이 원 돌 감람나무에서 찍어 우리를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신체의 부활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열매를 맺는 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되어서 좋은 열배를 맺는 것이 비밀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 좋은 열매를 모두가 신체의 부활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에서도 그것이 비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알고 있는데 무슨 비밀입니까?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주님이 오시는 나팔 소리에 깨어 부활을 하는 것이 비밀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단이나 정통이나 다 똑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밀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이 비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신체의 부활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접붙임을 모르니까 신체의 부활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접붙임이 무엇입니까?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하니 접붙임을 한 너희도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체입니다

그것이 거룩합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지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체를 말씀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신체는 분명히 썩어 없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체는 거룩할 수도 없고 거룩해 질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 어디에서 그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비밀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거듭남에 대해서 두 번 낳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난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있는 성도입니다 원 돌 감람나무에서 찍어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신 것은 성령으로 난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삽니다.

우리 신체가 썩습니까? 썩지 않습니까? 분명히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게 부활을 합니까? 아니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또 신약에 와서는 다른 말씀을 하시는 분입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듭남입니다.

우리의 신체가 아닙니다. 베드로전서에서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되었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썩지 아니할 씨가 무엇입니까? 로마서에서는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고 말씀을 하면서 우리를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좋은 열매입니다

우리 신체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 신체는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깨끗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우리 신체가 깨끗해지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죄를 지고 가심으로 해서 우리 안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영이 거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부활입니까?

그것은 더 이상 비밀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비밀이라고 하는 사람이 더 이상한 사람입니다 비밀은 영의 부활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참 감람나무로 접붙이셔서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해 지는 것은 우리의 신체가 아니라 영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 신체가 거룩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 신체는 접붙이는 순간에 죽어서는 안 됩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죽지 않는 생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한번 죽는 것은 정해졌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밀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나팔 소리와 함께 부활을 합니다. 그러나 그 부활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하신 주님께서 부활을 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거룩한 것이 부활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하지 않은 육체는 썩어 없어지고 접붙임이 되어서 거룩한 것이 된 영이 부활을 합니다.

이것이 비밀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무엇이 거룩한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우리 신체는 절대로 부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기독교는 정통이고 이단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거룩하지 않은 신체의 부활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3:16절을 보겠습니다. (339)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비밀입니다

성경에서 비밀이라고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아주 극소수만이 이 일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으면 그것은 더 이상 비밀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자기들이 비밀을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원 돌 감람나무에서 찍어 좋은 열매를 맺는 감람나무에 접붙이셨습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접붙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를 어느 곳에 접붙이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입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물론 우리 인생과 같은 육신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40일 동안 보이시고 500여 문도가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정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활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실제 제자들이 주님의 손을 만져 보고 또 옆구리를 만져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은 육체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영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사도 요한도 주님이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난 후에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올라가시고 난 후에 사도 요한이 밧모라 하는 섬에서 환상으로 본 주님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에 직접 보았습니다. 그리고 밧모라 하는 섬에서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왜 전혀 다른 형상을 보면서 주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이 문제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육체로 부활하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육체로 부활하셨다는 말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입니다

주님은 영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것을 디모데전서와 베드로전서에서 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고 사도 베드로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사도 요한 역시도 요한계시록에서 인자 같으신 이를 보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육체로 부활하셨다면 사도 요한은 인자 같으신 이라고 하지 않고 인자라고 했어야 맞습니다.

육체입니다

비록 주님이 이 세상에 육체로 오셨지만 육체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다는 말씀은 영으로 거룩하심을 입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육체가 거룩하십니까?

만약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육체가 거룩하다면 그 육체는 십자가에서도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어의 거룩이라는 의미는 깨끗하다, 신성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육체는 거룩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밀입니다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뿌리는 주님입니다 그 주님은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주님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은 주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영광 가운데 올리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올라가실 때 500여 문도가 본 주님과 그리고 사도 요한이 본 주님은 전혀 다른 형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비록 다르게 보이셨지만 그 형상은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신 부활의 형상이라서 세상에서 보이실 때와 사도요한이 본 것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좋은 열매 맺는 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되었으면 우리 역시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합니다. 뿌리가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으면 가지도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우리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영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육체의 생명과 영의 생명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의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육체의 생명과 영의 생명이 연결이 되는 것과 같이 아주 어정쩡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접붙임입니다.

그것은 영의 비밀입니다 이방인의 사도인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접붙임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시니까 우리도 거룩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셨습니다. 이렇게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신 뿌리가 거룩합니다. 그 뿌리가 거룩한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접붙임이 되어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룩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기독교는 이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체의 구원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조직신학이라고 하는 책에서부터 신체의 구원을 애매모호하게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영의 비밀을 모르면 구원론 자체가 흔들리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비밀을 모르니까 기독교는 점점 더 율법주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