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10-1,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윤주만목사 2025. 4. 2. 08:46

로마서11:11절을 보겠습니다. (254)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저희 밥상입니다

이스라엘의 밥상은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윗이 쓴 시편을 인용을 해서 이방의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보는 눈이 흐려져서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까? 아니 율법을 지키는 그들이 무엇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까?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십자가에서 폐하셨다고 아주 당당히 말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하는 그들이 행위로는 이중적인 삶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밥상입니다

역시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먹던 밥상과 지금 이 시대 먹고 있는 밥상이 조금도 차이가 없는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먹던 밥상과 자기들이 먹고 있는 밥상은 차이가 있다고 하면서 이스라엘은 비록 그렇게 먹었을지라도 자기들은 생명의 양식을 먹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자기들이 먹는 밥상이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그들의 눈이 흐려져서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에서 다윗이 예언을 한 그 말씀이 이 시대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도 이 일은 이스라엘에게만 있는 일로 치부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이스라엘이 악을 행했습니까? 그러면 이 시대 역시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은혜를 모르고 행위를 했습니까? 그러면 이 시대 역시 은혜를 모르고 행위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겼습니까? 역시 이 시대도 바알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기독교인들의 눈이 흐려져서 안 보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완악해졌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 역시 완악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구약의 이스라엘이 행했던 것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비록 이스라엘은 그렇게 했을지라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입니다

다 율법을 지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사도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또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생명입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구원을 받는 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에 있어서 전제 조건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러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은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단순히 내가 하나님의 성도로서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한 것이라면 사도 바울은 절대로 로마서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일입니다.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고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사람의 이성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백번 옳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이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행위의 표현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같은 밥상을 먹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다른 밥상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율법을 지키는 같은 밥상을 먹고 있고 그것이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일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거절하는 일이 되고 있습니다. 율법의 단 한 행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것을 구약에서는 무교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바울은 누룩이 섞이지 않은 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누룩이 율법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정도의 비유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뭐합니까? 그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성도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해도 그것은 순전히 사람의 말이지 성경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의 만찬입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무교병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이것은 생명을 위하는 내 살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 잔은 생명을 위한 언약의 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주의 만찬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진찬을 만들어서 호화로이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은 내게 대해서 기록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성경을 보고 주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시편에서 말씀한 것과 같이 저희 밥상이 되어서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 역시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시지 않아서 완고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걸려 넘어져서 완전히 쓰러져 망하게끔 되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의 허물 때문에 구원이 이방 사람에게 이르렀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질투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밥상입니다

그 밥상을 먹은 이스라엘은 완고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율법의 행위를 하고 말았습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율법의 행위가 사람의 이성에는 옳기 때문에 사람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율법주의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예표 하는 나라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셨지만 역시 그들은 율법주의를 버리지를 못 했습니다. 그런 예표를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보고 이 시대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은 이스라엘과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찾는 자가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스라엘은 공의가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교회사를 보더라도 예레미야 시대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율법주의가 주류가 되어 있는 교회사에 성도의 모습이 기록이 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시대와 같이 그런 사람이 보이지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방의 교회입니까?

이미 기독교가 되는 순간에 그들의 밥상은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만드는 순간에 그들의 눈은 이스라엘의 유대교인들과 마찬가지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잠언28:18절을 보겠습니다. (943)

성실히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나 사곡히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신명기32:5절을 보겠습니다. (313)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로다

이스라엘이 넘어졌습니다.

잠언에서 성실히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나 사곡히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곡히 행하는 뜻은 교활하여 악을 행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에 순종을 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사람을 사곡히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이제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모세는 느보산에 올라가서 가나안을 바라보고 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말씀을 듣고도 은혜를 구하기보다는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세대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20세 미만의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세대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하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모세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넘어졌습니다.

어떻게 넘어졌습니까? 복음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해서 넘어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넘어졌으면 이 시대 역시 넘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넘어집니까?

악을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 악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의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사도 바울이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악입니다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천국을 소망하고 구원을 받기를 사모한다 해도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넘어집니다.

그에게서 악이 한 모양이라도 나오면 그는 이미 넘어진 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에서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악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다시 이 악에 대해서 말씀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선이 없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가지고 하는 모든 행위가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합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흠이 있는 사곡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이 한 모양이라고 있으면 그는 이미 넘어진 자요 흠이 있는 사곡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악이 한 모양이라도 보이면 그는 넘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행위는 한 모양이라도 버리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에 든든히 서 있기 때문에 절대로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보면 거의 다 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6:13절을 보겠습니다. (285)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저희가 넘어졌습니다.

모세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악을 행함으로 넘어졌다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넘어졌습니까? 깨어 믿음에 굳게 서 있지 못하기 때문에 넘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을 모르는 사람은 반드시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넘어집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율법을 안 지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 율법을 안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율법주의가 되었고 이방의 교회도 이제까지의 모든 교회를 보더라도 율법주의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넘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넘어졌다고 하니까 무슨 죄를 짓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굳게 서서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의 일을 믿는다는 것이 쉽지가 않아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넘어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사실 넘어지고 말 것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넘어지는데 믿음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넘어집니까? 그리고 복음을 들어야 하는데 이 시대는 아예 복음을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어서 듣고 믿는 성도가 있어야 넘어지는 사람이 나올 수 있는데 교회 자체가 넘어져 있는 교회입니다.

믿음을 모릅니다.

이 시대는 믿음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도 초대교회는 사도들이 있어서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교회에 넘어지는 사람이 있는 것이지 이 시대는 모두가 넘어졌습니다. 그것을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에게 이 백성이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는다는 의미도 모르고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아는 것을 기반으로 해서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면서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들에게 지적인 능력이 있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고 세상 사람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니까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누가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라는 말씀입니까? 모세가 지금 이방인들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인도하셔서 이제 그 조상들에게 언약을 하신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그 백성이 악을 행하여 넘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믿음에 굳게 서 있습니다.

사실 이 믿음에 굳게 선다는 것은 믿음이 있는 성도만이 깨달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고 있는 그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도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 합니다. 그들이 행하고 있는 악으로 인하여 이미 넘어져 있는데 어떻게 깨달을 수 있습니까?

성도만이 굳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는 성도만이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넘어졌다는 말씀은 악을 행하고 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을 모르는데 어떻게 자기가 넘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서도 이스라엘이 왜 넘어졌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입니까?

그리고 목사들입니까? 그들이 박사학위를 받았습니까? 사도 바울이 저희가 넘어지지 까지 실족하였다고 하는 이 말씀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넘어진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르는데 누가 믿음에 굳게 설 수 있습니까?

악을 모릅니다.

그들은 넘어져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넘어진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넘어졌다고 하는데 이 악을 모르는데 어떻게 이 로마서를 깨달을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한 것이 무슨 말씀인지도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오직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가 하면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알아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넘어집니다.

그것을 모세가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면서 넘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는 이 시대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왜 넘어졌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이스라엘이 어떻게 악을 행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저희가 넘어졌습니다.

어디서 넘어졌습니까?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야 하는데 믿음이 없다 보니까 율법을 지키는 악을 행함으로 해서 넘어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시편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저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넘어졌습니까?

저희 밥상 때문에 넘어졌습니다. 그 올무가 무엇인가 덫이 무엇인가 거치는 것이 무엇인가 보응이 무엇인가를 지난 시간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들을 하나도 모르다보니까 로마서를 보면서도 이스라엘이 왜 넘어졌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다보니까 자기들 역시도 넘어져 있으면서도 도무지 모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5절을 보겠습니다. (304)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성경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를 놓고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면 하나가 되면 하나는 절대로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자기들의 실제 모습을 보면 율법의 행위도 하고 있고 듣고 믿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자기들은 듣고 믿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의 행위를 하는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넘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듣고 믿었습니까?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교제를 하고 있는 성도님들은 절대로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었는데 어떻게 율법의 행위를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악한 행위고 진노를 받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데 어떻게 율법의 행위를 할 수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를 해도 절대로 안 지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찬양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린다 해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이미 넘어져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믿음이 없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까?

그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듣고 믿었습니까? 그래서 복음에 순종을 하고 있습니까? 그는 절대로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이제까지 그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이 시대는 넘어진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굳게 서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세상의 이성을 따라 도덕적인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사람이 넘어졌습니까?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넘어졌습니까? 십일조를 내는 사람이 넘어졌습니까? 십일조를 내지 않는 사람이 넘어졌습니까? 식사를 할 때 기도를 하는 사람이 넘어졌습니까? 식사를 할 때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 넘어졌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어느 것이 넘어진 것인 줄을 모르고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넘어졌습니다.

그것을 주님이 오셨을 때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넘어졌고 그 넘어짐으로 해서 그들이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서도 넘어지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도덕적으로 넘어진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듣고 믿습니다. 이 둘은 서로 비교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둘을 함께 할 수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국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보면 비교법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넘어진 것은 율법의 행위가 되고 굳게 서 있는 것은 믿음이 됩니다.

고린도전서10:12절을 보겠습니다. (274)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린도전서10:1-5절을 보겠습니다. (274)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성경을 정말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구름과 바다에서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었습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습니다.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령한 식물을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령한 음료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악을 즐겨했음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았지 그냥 엿 장수와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따라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간음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런 악을 행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만 그렇게 했습니까? 이들을 경계로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게 하고 있지만 이방인들 역시 그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까?

이 시대는 모두가 넘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상 숭배가 무엇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있습니까? 우상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때 이 시대 기독교는 모두가 우상숭배자라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말을 합니까?

자기들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분명히 받았습니다. 그리고 신령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신령한 음료를 마셨습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들이 우상 숭배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신령한 식물을 먹고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면 뭐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뭐 합니까? 그렇게 했어도 우상 숭배를 하면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이스라엘을 경계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서 있다고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서 있습니까? 누가 서 있습니까? 제가 볼 때는 서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넘어져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모두가 우상을 숭배하는 자요, 간음하는 자요,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요, 원망을 하는 자입니다.

경계입니다

이스라엘이 경계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경계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도 없는 그들이 서 있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아주 자신만만하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모두 다 넘어져서 악을 행하고 있는데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들이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에만 나가면 목사들이 오직 예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제 처음 교회에 나간 사람에게 목사들의 설교를 듣고 나와서 목사가 무슨 말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이 목사는 예수 믿으라는 말 밖에는 안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교회 안에 들어가면 꼭 그렇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간음을 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1-5절의 말씀만 알고 자기들이 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어떻습니까?

다 넘어져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례를 받았습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것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상 숭배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간음을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면 그가 아무리 그런 모든 것을 다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한다 해도 그는 넘어진 자라는 말씀입니다.

넘어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에 의해서 넘어졌습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넘어졌습니다. 이 시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믿음을 몰라서 믿음에 굳게 서 있지를 못 해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들이 넘어진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자신 있게 대답을 합니까? 자기는 천국에 간다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넘어져 있는 그들이 이 시대 역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누가 서 있습니까?

저는 아직까지 못 보았습니다. 저 역시도 얼만 전까지만 해도 식사 기도를 했던 사람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시지 않았다면 저 역시도 식사 기도를 하면서 외식에 빠져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겨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게 역사를 하셨습니다.next 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