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1서2:25)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5:32)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11-2,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윤주만목사 2025. 4. 5. 16:14

로마서11:14절을 보겠습니다. (255)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아무쪼록, 내 동족에게 질투심을 일으켜서, 그 가운데서 몇 사람만이라도 구원하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얼마나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일로 수고를 했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해서 그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지금과 같은 건물의 교회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있어서 주의 만찬을 나누는 그런 교회를 세웠습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이방의 사도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듣고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방의 사도로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도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로 소문이 났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사실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백성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천국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유대인들 뿐 이었습니다.

지금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지금도 유대인의 생각은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백성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난 후에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당시 유대인들에게 너무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이 오셨습니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생각으로 이 성경을 보면 안 됩니다. 초대교회만 해도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전에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셔서 가나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거의 2000년이라는 기간 동안에 오직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고 이방인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받아들이지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사실 그것까지는 그래도 이스라엘에게 이해가 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찾고 믿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없었던 일이 사도 바울을 이방의 사도로 세우시고 난 후에 이런 일이 있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13:45절을 보겠습니다. (311)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사도 바울은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의해서 지배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간 후에 모든 사람이 다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또 거대한 로마가 당시 유럽을 지배를 하다보니까 사람들이 한 나라와 같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이미 이방에 흩어져 살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입니다

성경에서 보는 것과 같이 그들은 회당을 지었습니다. 어느 곳에 정착을 하더라도 자기들끼리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 그리고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서 회당을 세웠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할 때 이 회당을 많이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충격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방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그래도 좀 덜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이방에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들 중에서도 듣고 믿는 사람이 있었고 또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에 깊이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더구나 이방인들이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제자들과 함께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다가 유대에서 온 다른 제자들이 오니까 그 자리를 뜨는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면책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제자들조차도 이제까지 유대인으로 살던 그 외식을 버리지를 못하고 있는 때입니다.

이방인입니까?

그들과 식사를 하는 것도 꺼렸습니다. 아니 부정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거룩한 백성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방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니까 유대인들이 시기가 가득하여 사도 바울의 말한 것을 비방을 하고 있습니다.

충격입니다

2000년 동안 오직 유대인들만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인정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그와 같습니다.

미국에 유럽인들이 들어가서 정착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넓은 땅을 농사를 지으려고 하니까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사 왔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링컨 대통령이 이 노예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서 남북전쟁을 해서 승리를 함으로 해서 노예 제도가 법으로 금지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미국에는 유색인종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있습니다. 물론 법적으로는 모두가 들어갈 수 있지만 들어가 있을 수 없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기들만이 특별합니다. 노예제도가 폐지가 된 후에 그것이 정착이 되기까지는 수백 년이 걸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백인이 식사를 합니다.

노예제도가 폐지가 되고도 흑인이 거기서 같이 식사를 하지 못 했습니다. 당시 백인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흑인은 그저 자기들을 위해서 일을 하는 노예로 자기들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열등 민족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사상이 미국 안에서 자리하고 있습니다.

2000년입니다

오직 유대인만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해서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더구나 자기들은 알지도 못하는 영혼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복음이 전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도 바울이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넘어져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시기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전부 넘어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이방에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이스라엘이 시기가 나게 된다고 말씀을 하면서 자기가 이 영광스러운 직분을 행함으로 해서 아무쪼록 이스라엘을 시키게 해서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였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사도 바울은 늘 이 구원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구원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구원을 받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 절대로 아닙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성경에서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이 되려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이스라엘이 아무쪼록 시키게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였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이 시대 이방인들은 도리어 넘어져 있는 이스라엘이 되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과 화합을 한다고 하면서 그들이 지키고 있는 수장절을 같이 지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이스라엘의 수장절을 지켰다고 하면서 이스라엘이 자기들을 기뻐했다고 하면서 광고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 사도 바울이 통탄할 일입니다

물론 세상적인 이야기지만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전해서 이방인들이 듣고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아서 이스라엘을 시키게 하여 아무쪼록 그중에서 몇이라도 구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는데 도리어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이 지키는 절기를 지키겠다고 그 나라에 가서 지키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교회에 그래도 이름이 있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해서 이방에 빛이 비춰지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지만 이방인들은 넘어져 있는 이스라엘을 따라 그들이 하고 있는 행위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를 이방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은 율법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방에 복음을 전할 때 어느 사도가 율법을 반포를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 전했습니다. 그런데 후에 율법주의가 교회에 들어와서 미혹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주의가 되었습니다.

이미 교회는 100년 전후로 해서 율법주의가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율법주의가 지난 2000년 가까이 교회 안에 뿌리 깊게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유대인 못지않게 이방인들도 율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참지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11:15절을 보겠습니다. (255)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현대인의 성경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버림받은 결과로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받아 주실 때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셨습니다. 이미 신명기에서부터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 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시고 이제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있는 그들에게 너희를 버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부러워합니다.

특히 성경을 모르는 기독교인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 부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은 이미 신명기에서 그들을 하나님께서 버리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이제 11장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겠지만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 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여 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예표와 경계로 해서 우리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이 있지만 도리어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이 되고자 그들이 지키는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 이방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예표를 만들었고 그들이 넘어진 것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고 그들의 실패가 우리가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밝히 보여주고 있는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왜 버림을 받았는가를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육적인 자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셨다기보다는 자기들 스스로가 버림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습니다.

저희를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을 버리셨습니까? 그들은 계속해서 율법주의를 따라 갔기 때문에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믿음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복음에 순종치 않아서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율법주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버리십니다. 이스라엘을 예표로 해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버리심으로 해서 세상의 화목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버리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심으로 해서 세상의 화목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너무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왜 버리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죄를 더 많이 지어서가 아닙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보다 하나님을 잘못 믿어서도 아닙니다. 그들이 이 시대 기독교인들보다 우상을 더 많이 섬겨서도 아닙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는 지금 이 시대 기독교인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 백성이었습니다.

저희를 버리셨습니다.

문자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을 버리셨는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문자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막연하게 그들이 하나님을 잘 못 믿어서 하나님께서 저희를 버리셨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그들을 왜 버리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면 이스라엘과 같이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서도 이스라엘이 왜 버림을 받았는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저희를 버리셨다고 하니까 버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습니다. 왜 버렸는가를 알아야 우리가 버림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111-2절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백성은 버리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은 버림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남은 백성은 거지 나사로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고린도후서13:5절을 보겠습니다. (300)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습니다.

그것을 이미 조금은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이 바알을 섬기고 율법의 행위를 함으로 해서 버림을 받았다고 로마서11장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엘리야 시대를 인용을 하면서 저희가 바알을 섬기고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알입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자기 육체의 부요함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바라고 있다면 그는 이미 바알에게 무릎을 꿇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썩어질 사람의 육체가 부해지기를 바라는 모든 기도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는 일입니다.

행위입니다

왜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부자가 되기 위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 행위를 함으로 해서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행위로 칭찬을 받고 그것으로 의로워지려고 하고 있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행위를 하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스라엘보다 더 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같은 행위를 하면서도 이스라엘이 한 것은 율법이고 자기들이 하는 행위는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성경에도 없는 말에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미혹을 당해서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버림을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나와서 버림을 받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버림을 받는 사람이 불쌍합니다. 누가 버림을 받은 자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버리운 자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버리운 자입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교인들이 다 자기들이 믿음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믿음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간혹 가다가 자기 행위가 좋지 못한 사람이 자기가 믿음이 아직 없다고 말하는 것은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행위입니다.

믿음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려면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복음이 무엇인지 다른 복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어야 자기가 믿음에 서 있는가를 확증할 수 있는데 복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성경에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시는 구속의 일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입니다.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이나 말씀을 자기 육체로 행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자기 자신이 믿음에 서 있는가를 확증할 수 있고 그렇게 믿음이 있는 성도는 하나님이 버리시지 않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버리운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믿음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듣습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을 같이 듣습니다. 사실 같이 듣는다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복음을 들으면 다른 복음을 듣지를 않고 다른 복음을 들으면 복음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으면 그는 다른 복음을 듣고 있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복음을 들을 수 없고 그는 믿음이 없어서 버리운 자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버림을 받았습니까?

그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시대는 믿음이 있습니까?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해도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문자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성경의 문자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어도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수많은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러면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속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속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믿음에 있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믿음이 있는 자는 거의 없고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지키는 사람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야애가5:22절을 보겠습니다. (1150)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특심하시니이다

마태복음25:30절을 보겠습니다. (44)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디도서3:9절을 보겠습니다. (350)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이스라엘을 버리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버리심으로 세상의 화목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이스라엘이 왜 버림을 받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자기들은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잘 못 믿어 자기들보다 죄를 더 많이 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입니다

애가의 마지막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특심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아주 버리셨다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애통해 하고 있습니다. 이 예레미야서를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을 버리셨는가를 깨닫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바벨론에 멸망을 당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외쳤지만 이스라엘은 듣지를 않았습니다.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찾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잘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경계로 해서 이스라엘과 같이 버림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이 시대는 이스라엘이 왜 버림을 받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하나님을 잘 못 믿어서 그리고 그들이 죄를 많이 지어서 버림을 받은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율법의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 행위를 했기 때문에 그들이 버림을 받았습니다.

바벨론입니다

율법을 상징하는 나라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럼 율법의 종이 되어서 살아보라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이 요한계시록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바벨론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바벨론은 지금 이 시대도 있고 율법의 포로가 되어 있는 모든 사람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버리셨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오셔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누가 버림을 받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어 쫓습니다.

버림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무익한 종이 누구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자를 무익한 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안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비유로까지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눈이 흐려져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보이지가 않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죄를 져서 버림을 받습니까?

십일조를 안 내서 버림을 받습니까? 주일을 지키지 않아서 버림을 받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그런 행위들을 함으로 해서 버림을 받는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왜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았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막연하게 성경의 문자만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았습니까?

그것을 문자로 알면 뭐 합니까? 그들이 왜 버림을 받았는가를 알아야 우리가 버림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성경을 참으로 편하게 봅니다. 문자에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아서 세상에 화목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니까 그냥 버림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아주 버리셨습니다.

왜 그들을 버리셨는가 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를 않고 율법의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그 율법의 행위가 도리어 버림을 받는 일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지어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막연하게 보지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에 대해서 바로 알지 못하면 그것이 도리어 재앙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교회 안에서 그 무익한 율법을 지키는 무익한 종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율법을 단 한 가지만 지켜도 역시 무익한 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종이 율법을 많이 지켜서 무익하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이 이 종을 무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종이 누군가 하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사람들이 볼 때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성도와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그는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 버림을 받습니다.

에베소서2:14-15절을 보겠습니다. (311)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우리 이방인입니다. 이 둘이 서로 담으로 쳐 있었습니다. 그 담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입니다. 이 율법 때문에 이스라엘과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 때문에 우리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고소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고소를 했는가 하면 저가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한다고 해서 고소를 했습니다. 율법으로는 우리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복음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율법이 있었습니다. 그 율법이 담이 되어서 유대인은 이방인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러니까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은 율법이 담으로 막아 서 있었습니다.

함께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 율법으로 인하여 유대인은 점점 더 율법주의로 갔고 이방인은 하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는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에베소서에서는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화목하게 하려고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원수된 것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를 버린다는 말씀은 물론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와 같이 율법이 가로 막고 담으로 쳐 있는데 그것을 주님이 오셔서 헐어 버리셨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은 막힌 담입니다. 그 담을 이스라엘을 버리심으로 헐어 버리셨습니다. 그것을 다시 말씀을 하면서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율법이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버리셨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해서 우리 이방인과 막혀 있는 담을 헐어 버리셨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폐하심으로 세상과 화목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폐하여졌습니다.

이방인이 율법이 폐하여 지지 않았다고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이 율법을 폐하셔야지 만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그 헐은 담을 다시 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럴 자격도 없는 이방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율법이 살아 있니 폐했니, 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주님이 이 세상이 오셔서 막힌 담을 헐어 버리시고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십자가에서 폐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자기 분수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왈가불가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보고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의 사도로 우리 이방인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방인들이 주제를 모르고 율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2:16절을 보겠습니다. (312)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성경의 중요성입니다

왜 제가 그렇게 한글개역성경을 보라고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다른 성경으로는 해석이 안 됩니다. 거의 모든 성경이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글개역성경만 그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맞습니까?

그 받아들이는 것이 맞습니까? 저도 원문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문장 연결 상 그 받아들이는 것이 맞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그러니까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서로 율법이 막힌 담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오셔서 헐어 버리셨습니다. 그것을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맞습니까?

그 받아들이는 것이 맞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막힌 담을 헐어 버리시고 또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성경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왜 전하지 않았는가 하면 율법으로 담이 되어서 막혀 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희를 버리셨습니다.

어떻게 버리셨습니까?

막힌 담을 헐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폐하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가 가운데서 다시 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율법에 대해서 말할 자격도 없는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키면서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있습니다. 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