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20:9.)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08-2,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윤주만목사 2025. 3. 26. 08:04

에베소서5:5절을 보겠습니다. (315)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생명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기업이기도 합니다. 반드시 영원한 생명을 얻은 성도만이 하늘의 기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광야입니다. 그리고 세상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교회를 구원의 방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안심을 합니다.

자기들이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마치 구하는 것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안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있지만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영생을 얻기를 구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얻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얻지를 못 합니까?

모두가 바알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일부의 사람이 바알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바알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어떻게 바알을 섬기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제까지 로마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많은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 합니다.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제가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반대를 할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이단이라고 공격할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는 이스라엘 못지않게 율법주의가 되어 있지만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율법주의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천국을 구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구하는 것을 얻지도 못했으면서도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얻지 못 합니다

누가 얻지를 못하고 있습니까?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행, 더러운 것, 탐하는 것, 모두가 율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상 숭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자하는 마음이 어디서 왔는가 하면 우상숭배에서 왔다는 말씀입니다. 우상에 대해서 이미 충분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율법의 행위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상이 되고 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우상입니다

그 우상이 누구입니까? 바로 바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성경에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아니 그리스도편지의 말씀을 보고도 우상이 무엇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구하는 것을 얻지 못 했습니다

그들이 왜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는가 하면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의 바알입니다. 그것이 우상 숭배가 되었고 그것이 신약에 와서는 율법의 행위를 우상을 숭배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를 위해서 더러운 정욕을 행하고 있고 그것이 우상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입니까?

요한계시록에서 두 짐승 중에 한 짐승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우상 숭배자가 되었습니다. 율법이 우상이 되어서 모두가 지키고 있으면서도 성경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그 위대한 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우상을 모르고 있습니다.

보이는 우상입니까?

그것을 가지고 우상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 교회 안에서 그런 우상을 숭배하고 있습니까? 에베소서의 말씀은 이 시대 이방의 교회가 모두 우상을 숭배할 것을 미리 아시고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상 숭배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구하는 것을 얻지 못 합니다

이스라엘을 예표로 해서 그들이 왜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자기들이 구하는 것을 얻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킨 이스라엘은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성도입니다

오직 생명만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영생을 얻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켰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온 청년이 영생을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이 어떻게 했습니까? 영생을 얻으러 나온 이 청년은 어려서부터 율법을 지킨 그것으로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돌아갔습니까?

예수님께서 그가 지킨 율법을 버리라고 말씀을 하니까 사람의 이성에는 그것을 버리고는 영생을 얻지 못할 것 같으니까 근심을 하며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복음을 전하면 이 말씀을 보고 근심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근심합니까?

율법을 버리는 것을 가지고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고 또 그것이 악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사람의 이성과 복음의 말씀 사이에서 근심을 하고 있습니다.

근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편지를 보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근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수십 년을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왔고 지금 이 시대 모든 교회가 율법을 지키고 있는데 그것이 우상숭배라고 말씀하고 있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악한 행위라고 하니까 근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입니다

그리고 복음입니다. 이 둘 사이에서 근심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이성에 율법을 지키는 것이 백번 옳다 해도 성경이 그것을 우상 숭배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과 원수 되는 행위라고 하면 구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버려야 합니다.

히브리서2:11절을 보겠습니다. (354)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자입니다. 율법주의자는 우상 숭배자입니다. 우상 숭배자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은 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동일하게 하고 있는 말씀으로 경계를 삼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스스로 육적인 이스라엘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우리 이방들에게 예표와 경계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스라엘보다 더 율법주의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이 시대는 교회 안에 너무 많은 우상이 있습니다.

구하는 것을 얻지 못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 한 가지의 이유는 바로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저주를 받는 일을 진노를 받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얻지 못 했습니다.

그러면 누가 얻었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얻었습니까? 아마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자기들이 얻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니 기독교라는 종교는 사람들을 그렇게 세뇌를 시키고 있습니다.

문자를 봅니다.

그러면 자기들이 분명히 얻은 것처럼 보이고 있습니다.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한 것이 이스라엘이면 자기들은 얻은 것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얻지 못했는가를 모르고 이스라엘이 얻지 못했으니까 자기들은 얻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생입니다. 누가 거룩함을 얻었습니까? 내 신체가 거룩함을 얻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거룩하신 이의 영이 거룩함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하나에서 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체는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아담에게서 났습니다. 우리 신체를 가지고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났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신체는 거룩할 수 없고 죽으면 반드시 썩어 없어집니다.

누가 났습니까?

그것을 요한복음에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택하심을 입었고 누가 낳은 자가 되었는가 하면 우리 신체가 아니라 내 안에 거룩하게 하시는 이의 영이 거룩함을 입어서 구하는 것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체가 아닙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신체의 구원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신체는 반드시 썩어 없어지고 우리 안에 거룩하게 하시는 이의 영이 거하심으로 거룩하게 하시는 이로부터 나서 구하는 것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얻었습니다.

이 영의 일을 믿는 성도만이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누가 택하심을 입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내 육체는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미 아담이 범죄를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흙은 택하심을 입은 자가 될 수 없고 그 흙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입니다

우리 안에 거룩한 영이 있어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영이 없는 사람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이 시대 역시 이 영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고 교회 안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일에 모두가 빠져 있습니다.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입니다

물론 우리 성도를 택하심을 입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반드시 거룩하게 하시는 이의 영이 거할 때입니다. 자기 안에 거룩하게 하시는 이의 영이 없으면서도 아니 그것이 있는지 조차 모르면서 성경에 문자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다고 하면서 자기들을 택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 육체는 반드시 죽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육체가 영원히 산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부활하셨는가를 이 시대는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은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왜 영으로 부활하셨습니까?

우리에게 그 영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영이 그 영으로 부활을 해서 구하는 것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택하심을 입은 자가 아니라 반드시 이 영이 거하시고 있어야 합니다. 이 영은 성령이 오셔서 내 안에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남은 자는 완악해 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수가 바다 모래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택하심을 입은 자가 아니라 모두가 우상을 숭배하는 자로 살아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만 구하는 것을 얻었고 나머지는 완악하여 져서 버림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신명기21:18-21절을 보겠습니다. (295)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찌니 이같이 네가 너의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그 남은 자들이 완악하여졌습니다.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만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완악이라는 단어만 보고 있습니다. 사전에서 억세고 고집스럽고 모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든 단어들을 거의 세상 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입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같이 완악하여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그 이성이 자기들을 사망으로 끌고 가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완악한 자입니까?

그것을 신명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지 육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이 말씀이 사전에서 말하는 그런 완악함이라면 우리 복음을 가진 성도가 도리어 완악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의 눈에는 우리가 완악한 자로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완악한 아들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방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 아비와 어미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과 교회를 비유로 해서 그 아비나 어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완악합니다.

만약에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완악함이라면 그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살면서 아비의 말이나 어미의 말을 다 잘 들은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언제 부모님의 말씀에 다 순종을 하면서 살았습니까?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쩔지 몰라도 저는 그렇게 살지를 못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됩니까?

물론 완악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순종을 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말을 잘들은 적도 있고 때로는 고집을 부르고 안 들었던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가지고 완악하다고 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영의 부모입니다. 그 아비의 말이나 어미의 말에 우리는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했습니까? 복음이 우리 안에 계시가 되기 전에는 우리는 순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율법주의로 살 때는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였습니다.

순종입니다

율법에 순종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복음입니다. 이 성경이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고 로마서1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였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은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사람을 완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비의 말입니다

그리고 어미의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복음에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신명기의 율법에 있는 말씀과 같이 복음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징계를 하는데도 듣지를 않고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에베소서5:18절을 보겠습니다. (315)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그 아비의 말입니다

그리고 어미의 말에 순종치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순종치 아니하고 있는 자를 신명기에서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완악한 자입니다

그 남은 자들이 완악하여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제외하고 모든 이스라엘이 완악하여 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완악하여 졌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술 취해서 방탕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에베소서의 말씀도 이 시대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은 진짜 마시는 술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알고 있습니다.

율법을 진노의 포도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말고 성령의 감동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택하심을 입고 남은 자들이 누구인가를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성경이 답을 해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도리어 알레고리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알레고리 합니까?

그럼 로마서에서 그 남은 자들이 완악하여졌다고 말씀을 하는데 누가 완악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성경에서 성경을 풀고 있는데 그것을 알레고리하다고 하면서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고 도리어 술에 취해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누가 완악한 자입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완악합니다.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까?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예배를 드리고 있고 그 예배 시간에 찬송가를 부르고 있고 기도를 하고 있고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모든 행위가 다 완악한 행위인데도 성경을 보아도 말씀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혼미한 심령이 되었습니다.

그 남은 자들이 완악하여졌다고 말씀을 하지만 누가 완악한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고 율법을 지키고 있는 그 사람들이 완악하여 져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더욱 더 완악해 지고 있습니다.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악을 제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은 실상은 돌로 쳐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완악한 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도리어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고 율법을 안 지키면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방탕하여 술에 잠긴 자입니다

그것을 에베소서에서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비와 어미의 말에 순종을 하지 않고 완악하여졌으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고 구하는 것을 얻었다고 하면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신명기에서 그는 돌로 쳐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율법이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아비나 아비의 말에 순종을 하지 않고 모두가 진노의 포도주에 취해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비유들이 이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이 시대는 도덕선생이 되어 있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택하심을 입은 자입니다

누가 택하심을 입은 자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택하심을 입은 자이며 복음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습니다. 이 시대도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고 진노의 포도주에 취해 있습니다. 율법은 진노를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악하여져서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로마서11:8절을 보겠습니다. (254)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한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는 혼미한 영을 주셨으니, 오늘까지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은혜입니다

그리고 행위입니다. 이 둘이 함께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자는 절대로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행위를 하는 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오시면 술 취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완악하여 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다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령을 받았는가 아니면 완악한 자인가를 알 수 있는 기초가 무엇인가 하면 율법의 행위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입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는 마치 구원을 받은 것과 같이 속이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도 않았는데 자기들이 하고 있는 샤머니즘을 통해서 마치 성령이 오신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무엇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성령이 오시면 술 취하지 않는데 도리어 율법을 잘 지킨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복음에 순종합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아비의 말이나 어미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술에 잠기거나 방탕하게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말씀이 율법을 비유로 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 시대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성도의 도리와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빈안하고 곤핍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재물이 하나도 없는 자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자가 되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율법의 행위를 함으로 해서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구하는 것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에서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그리고 모든 시간을 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고 했는데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쌍하겠습니까?

구하는 것을 얻는 것이 어렵습니까?

아닙니다. 너무 쉽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 재능을 주셨습니다. 고아도 과부도 나그네도 거지에게도 그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완악하여 져서 복음에 순종치 않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에게 하늘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는 재능을 주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동일하게 은혜로 주시고 있습니다. 사실 이 믿음의 비밀을 알면 우리는 은혜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성경을 보면서도 도리어 완악하여 져서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왜 거절을 합니까?

순종하는 것이 어렵다면 그래도 이해가 됩니다. 우리 인생들이 복음에 순종하는 일은 정말 말 그대로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도리어 점점 더 완악하여 져서 스스로 진노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잠언5:23절을 보겠습니다. (916)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되느니라

누가 혼미한 심령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것을 잠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느냐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에 안기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음녀가 누구입니까? 그리고 이방 계집이 누구입니까? 음녀는 율법을 지키고 있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 계집은 이 세상 종교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녀입니다

이 시대 교회는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음녀가 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한 가지가 아니라 너무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음녀를 연모를 하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미련함이 많이 있습니다.

누가 미련함이 많이 있습니까? 이 세상 지혜는 미련하다고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지혜가 무엇입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이 세상의 지혜입니다. 성경을 보고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고 있는 지혜를 이 세상 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성경도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렇게 같은 말을 하고 있으면 이 세상 지혜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보고 이 세상 지혜가 많으면 미련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련함이 많은 사람을 혼미하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이렇게 혼미해져 있습니다.

미련함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잘 알고 있다는 말씀이며 그것을 자기들의 행위로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미련함이 많아서 혼미 하게 되었으면서도 꽤나 지혜가 있는 것으로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혼미한 심령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율법주의가 되었는가 하면 이 혼미한 심령으로 인하여 율법주의가 되었습니다. 미련함이 많아서 혼미한 심령이 되었지만 이스라엘은 그것을 지혜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알고 그것을 지키고 있는 자기들이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모두가 혼미한 심령이 되어 있습니다.

율법

미련함입니다. 그 율법을 문자적으로 많이 알고 또 그것을 자기 육체의 행위로 지키고 있다면 모두가 혼미한 심령이 되어 있습니다. 그를 잠언에서는 악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악인이 누구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악한 자입니다

자기 악에 걸립니다. 그리고 자기 죄의 줄에 매이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율법의 행위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역시 혼미한 심령이 되어서 미련함을 많이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세상 지혜에 빠져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자기들이 택하심을 입은 자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29:10절을 보겠습니다. (100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신명기29:4절을 보겠습니다. (308)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왜 완악하여졌습니까?

이스라엘의 다수가 왜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을 신명기와 이사야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막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것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성막을 자기들이 직접 만들어서 보고 있어도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라는 것을 그들이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 것은 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이 부자가 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반포를 하자 그들은 우리가 다 준행하겠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 역시 모두가 율법을 보고 똑같이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닫고 가난한 자가 되어야 은혜를 입을 수 있는데 도리어 율법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성경을 보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자기들이 신학을 공부를 하고 지성인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성경을 보려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우리 인생에게는 성경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지혜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려고 하다가 모두가 완악해 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면 반드시 완악해 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완악합니다.

사람은 성경을 볼 수 있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완악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성경에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복음을 보고 믿을 수 있습니다. next 10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