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7:22절을 보겠습니다. (신 178쪽)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제자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앞에 두시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된다는 것을 확인을 하는 것과 같이 묻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하늘에 올라가시고 난 후에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실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말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을 하시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7장은 주님과 아버지와 창세 전에 함께 가졌던 영화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영화를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이제 우리 성령을 받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우리는 창세 전에 있던 영화를 알 수 없습니다. 아니 설명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언어로는 말씀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영화라는 단어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우리가 이 일을 철학으로 알아서 믿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는 주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 역시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저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게 하고 있다고 해도 저 역시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창세 이후로 태어난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그런 제가 어떻게 창세 전에 주님과 아버지가 함께 가졌던 영화에 대해서 말씀을 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을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진리를 말씀을 하는 것이지 인생의 감정과 상상력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은 성경을 자기 철학으로 보고 있고 심지어는 성경말씀을 보고 자기의 상상력으로 마음대로 표현을 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입니다
반드시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을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령 누군가 질문을 한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씀이 있고 내가 해서는 안 되는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아무 말이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시라는 것을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아시기 때문에 육체의 몸을 버리실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육체를 버리시고 계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몸을 버리실 수 있는 것은 태초에 있는 생명을 아시고 계시고 있고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에 아니 하나님 나라는 그 생명으로 가신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육체의 몸을 버리실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물론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말씀을 하고 있고 실상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고 그런 성도 역시 이 육체의 몸을 진리를 위해서 아버지께 바칠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기 때문에 육체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세우시고 이방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이방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전하는 편지에서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말입니다
사도들이 무엇을 전했습니까? 복음입니다. 그 복음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이제 그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듣고 믿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누구라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듣고 믿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이 바로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듣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느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있고 예언의 은사를 주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그가 성경을 보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우리 성도님들은 듣고 믿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가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되고 듣고 믿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입니다
주님과 아버지는 하나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다 하나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시대 종교에서 말을 하고 있는 삼위일체를 정면으로 부정을 하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미 거대한 종교의 교리가 되어 있어 사람들은 성경보다도 그들의 교리를 따라가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폄하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믿습니다.
주님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홀로 한분이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전혀 근거를 하지 않는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교리를 따르는 사람은 절대로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입니다
우리 성도는 종교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성경보다 종교의 교리를 더 우선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아무리 종교가 거대하고 그들의 숫자가 많을지라도 성경에서 말씀을 하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영생을 얻은 성도라면 당연히 성경에서 증거를 하는 그대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습니다.
영생의 문제입니다
우리 육체의 생명의 문제라고 해도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종교 안에만 들어가면 소자들이 너무도 쉽게 잠언의 말씀과 같이 종교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사망의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전혀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이 오히려 그 종교 안에서 부자가 되어 연락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다 모래 같이 많습니까?
사도 바울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수를 따라가는 자들이 어떻게 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꼭 다수가 틀리다는 것이 아니지만 성경은 우리 인생들이 종교가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종교를 비유와 예표를 통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피조물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은 그 피조물을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생에 대해서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고 그들의 교리서를 보면 인생의 철학에 따라 신체의 구원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보이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고 오셔서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일을 보여주신 것은 우리도 그렇게 영광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된지 삼일 만에 부활을 하시고 영광을 받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1:20-21절을 보겠습니다. (신 378쪽)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시대 종교가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종파는 4중 복음, 5중 복음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이 말을 하는 복음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복음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가 복음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을 하고 있는데 종교는 이 복음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방인들에 의해서 정통교단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제가 비록 한 사람이지만 그들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저는 성경에 있는 말씀만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들이 무슨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야 하는가 하면 바로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라는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성경에서는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의 종교는 영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영생을 얻는 일도 모르고 있습니다.
종교의 철학만 있습니다.
그리고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사람들은 그 종교에 의해서 사망의 길로 가면서도 종교의 교리를 따라 열심을 내고 있고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자기들이 진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주님께서도 그런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인생들의 철학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시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종교의 교리에서 말을 하는 것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모르기 때문에 주님의 부활부터가 육체로 부활을 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니까 당연히 그렇게 말을 하고 있고 인생들의 철학도 같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누구 신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일을 하셨고 그럼으로 해서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어떻게 영생을 얻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런 일을 전혀 모르면서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그리고 그 피만을 앵무새처럼 외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심지어는 그 죽음을 보면서 주님의 영광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죽음이 무엇인가를 알고 영광이라는 말을 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육체의 죽음을 당하시고 심지어는 그 육체로 다시 부활을 하셨다는 말을 하는 것이 인생의 철학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기초라고 할 수 있는 그분에 대해서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분은 우리 피조물의 형체를 입고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이심을 먼저 믿어야 합니다. 창조된 세상에 우리 육체와 같은 형체를 입고 오셨다고 해서 마치 그분이 우리 피조물인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은 성경의 문자만 알고 있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초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은 성경에서 차고도 넘칩니다. 지금 17장에서도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동등하시다는 것을 그러니까 주님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아는 일이 영생을 얻는 일에 기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창조된 세상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먼저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러니까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세상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그저 성경의 문자를 보고 불교적인 사상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홀로 한분이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우리 피조물들과 같은 육체를 입고 오셔서 우리에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을 자기를 낮추심으로 해서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성도들은 믿고 있습니다. 여기서 흔들리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자기가 믿는 신입니다
그가 누구신지도 모르면서 믿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종교의 교리가 아니라 성경에서 증거를 받은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고 있고 그 믿음이 실상이 된다는 것을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영광입니다.
헬라어로는 광체, 영광, 영화, 명성 등의 뜻이 있습니다. 어느 뜻을 사용을 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광이라고도 하고 있고 영화라고도 하고 있고 광체라고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언어의 일반적인 뜻보다는 성경에서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내가 주신 영광입니다
우리는 이 영광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우리 피조물과 같은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인간 예수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이 모든 것을 느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분명히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이기시고 우리 인생들의 육체는 죽어야 하는데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을 하신 일을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철학적 지식입니다
그런 영광을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신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인생의 철학적 지식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주님을 창세전에 미리 알리신바 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은 주님께서는 창세전에 계셨던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내게 주신 영광입니다
우리 인생들의 언어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원어를 본다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더구나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번역이 중요합니까?
물론 번역도 잘 해야 하는 것에 있어서 부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지금 제자들에게 14장부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듣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폄하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아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제자들은 어느 한 말씀도 알아듣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것에 대해서 부정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번역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한글개역성경과 공동번역이 얼마나 다르다는 것을 말씀을 했고 그 번역의 차이는 우리가 아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는가에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적 지혜도 중요한 것이 아니고 원어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성경의 번역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기본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에 있어서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데 있어서 더 쉬울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주신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가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전입니다
주님께서는 창세전에 계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광을 다시 찾는 일을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주님께서는 내게 주신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없던 영광을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님께서도 그리고 사도 베드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광입니다
주님께서 받으시는 영광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 마치 없던 영광을 받으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5절에서 이미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 영광에 대해서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영광으로 부활을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는 일을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성도는 주님께서 이미 창조를 하시기 전에 계셨던 분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모르고 있고 그리고 우리 언어로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고 마치 없던 영광을 십자가를 지심으로 얻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미 다 이루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창조를 모르니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니까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고 그런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성자로 생각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해서 그분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입니다
그 일에서 주님께서는 육체의 몸을 버리셔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모르니까 주님께서 창세전에 계셨던 분이시라는 것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어도 그것을 볼 수 있는 인생들의 철학적 눈이 소경이 되어 있어서 종교가 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 철학적 사상에 빠져 멸망의 길로 가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1: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34쪽)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구원입니다
우리는 이 구원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저 막연하게 구원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행위를 보면서 인생들의 철학적 생각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종교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들의 행위를 보고 구원을 얻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성경이 다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성경을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지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는 자세부터가 잘못 되었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들의 철학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하시만 우리가 보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은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피조물이 쓴 글을 피조물이 보아도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글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은유나 비유로 되어 있는 시 같은 경우에는 그 원작자가 죽고 나면 그 시를 보고 의미를 이야기를 할 때 제 각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피조물끼리라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피조물이 다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그 발상 자체가 얼마나 교만한 생각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생들이 자기들의 철학으로 신학을 공부를 하고 특히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배우고 나면 교만해져서 마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거침이 없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성경을 많이 풀어나가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전혀 모르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종교를 만들고 그들의 교리를 세움으로 해서 성경을 아주 쉽게 볼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삼년 반 동안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있지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장사되기 까지도 아니 부활을 하시고 자기들에게 보이실 때까지도 그들은 창조하신 일의 영광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제자들입니다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도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역시 똑같습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종교 안에만 있으면 그리고 인생의 철학으로 배운 것으로 무조건 성령을 받은 것과 같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구하라고 말씀을 하시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다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구하지를 않고 있고 심지어는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구하라고 하면 우리는 반드시 구해야 합니다. 구하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해서 받아야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직접 구하지 않아도 유월절을 먹는 그 자체가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우리가 이제 복음을 듣고 있고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오묘한 말씀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일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를 깨닫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일입니다
저 역시도 종교 안에 있을 때는 이것이 일상적으로 쉬운 일로만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구원을 받는 것이 어렵다는 말씀을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구원을 받는 것이 어려워서 못 받는 것이 아니라 인생들로서는 듣고도 믿을 수 없는 말씀이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이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그리스도편지에서 말씀을 들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철학적으로 이해를 하려고 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다시 종교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아직까지도 인생의 철학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라는 것을 모르고 자기 철학적으로 생각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영의 일을 말씀을 하면 인생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성경과 맞는 말씀을 전한다고 하는 그들도 다시 돌아가고 있습니다.
택하신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이 복음을 듣게 역사를 하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 택하신 자를 사도 바울이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구원을 받는 일에 대해서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분이 먼저 영광을 받으셔야 우리가 또한 영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청세 전에 가졌던 영광을 얻으셔야 우리가 그 뒤를 따라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습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런 것으로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영광을 받으신 줄을 알아야 믿을 수 있고 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광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게 주신 영광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영광을 받으신 일을 앞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받으신 영광을 우리에게도 똑같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번역도 역시 약간의 차이가 있는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고 저는 우리에게 영광을 주셨다는 말씀보다는 우리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신다는 말씀이 맞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입니다
주님께서 먼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시는 일이 영광이라는 것을 앞에서 충분히 말씀을 했습니다. 그렇게 먼저 주님께서 영광을 얻으셔야 우리 역시 영광을 얻는 일을 이루실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이 모든 일이 창조하신 일의 영광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냥 단순하게 구원이라는 단어를 아는 것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우리 피조물과 같은 육체를 입고 오셔서 우리에게 영광을 주기 위해서 먼저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시는 일이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를 사도 바울이 우리 인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제가 아무리 이 믿음에 대해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해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야 역사를 하기 때문에 저는 그들을 위해서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게 주신 영광입니다
주님께서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셔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얻으시는 일이 아니라 이미 주님께서는 창세 전에 이 영광을 가지셨다는 것을 우리 성도는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고 그렇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믿을 수 있게 하는 일을 주님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저희에게 주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어입니다
그리고 번역을 가지고 저에게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그것으로는 우리는 창세전에 주님께서 가지셨던 영화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전에 있는 영화를 우리 인생의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우리가 믿어 우리가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는 일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17장입니다
5절 말씀을 기초로 해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다면 주님께서 지금 말씀을 하고 있는 내게 주신 영광을 저희에게 주었다는 말씀의 의미도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창세전에 있던 영화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일을 이루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저희에게 주었다는 말씀은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신다는 말씀이 더 맞는 말씀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연결을 해서 보아야 합니다. 장절이라는 것은 15세기 이후에 편집이 되어 있는 성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선지자들이 기록한 원래 성경에는 장절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 인생의 철학에 따라 보기에 편리하게 했다는 것에 있어서는 동의를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이 편집을 하는 것에 있어서는 반대를 하는 사람입니다 .
우리 성도만 아는 일입니다
그 일을 주님께서는 말씀을 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생명으로 하나가 되는 일을 그러니까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은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광을 다시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 역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일은 믿음으로 역사를 하기 때문에 기이히 여기심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255-2.
'요한복음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6-2,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4) | 2024.11.11 |
---|---|
255-2,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0) | 2024.11.03 |
255-1,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0) | 2024.11.03 |
254-2,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3) | 2024.10.27 |
254-1,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0) | 2024.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