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7:24절을 보겠습니다. (신 178쪽)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성경에서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증거를 하기 때문에 우리 성도는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애써 외면을 하면서 인생들이 철학적 지식으로 만든 교리를 따라 삼위일체라는 신을 믿고 있습니다.
성경을 상고하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믿는 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분이 바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믿습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구원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 신 줄도 모르고 그저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영광입니다
무엇이 주님의 영광입니까? 주님께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우리 피조물과 같은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하늘에 올라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로 오셨다가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그 일로 영광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그분은 본래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고 우리를 위해 나타내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본체의 형상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피조물의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이루시고 그 본체가 되어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으신 일을 주님께서는 내게 주신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히브리서에서는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광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을 하시고 하나님 보좌에 앉으시는 영광입니다. 그 영광을 우리에게도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께서 우리 피조물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만도 얼마나 큰 영광인데 이 영원한 생명이 창조주의 생명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어떻게 이 영광을 얻었습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영광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같은 영광을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해서 영광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광입니다
어떤 영광입니까?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광인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하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 하나라는 말씀은 인생의 철학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된 것 같이
그러니까 아버지와 주님이 하나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가 된 것같이 우리 성도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일과 그렇게 아는 일과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얻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우리가 얻는 생명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라는 말씀이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생명이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은 우리에게 설명할 수도 없고 우리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도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온전히 이룹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명을 얻는 것을 온전히 이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성경을 보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루어야 생명을 얻을 수 있고 그 생명으로 하나가 되는 일을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믿는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종교를 믿는 것을 말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은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알아서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는 것이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온전함을 이루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도입니다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사람의 이성으로 아는 것을 교리로 만들어서 종교 안에서 믿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다고 하는 것과 우리 성도의 믿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아는 일을 믿고 있고 그들은 종교에 의해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씀을 하니까 그저 사랑만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사랑은 영의 생명을 말씀을 하는 것이고 그 생명으로 살지 못하면 그는 사랑을 받은 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성령을 받은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명으로 부활을 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에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사랑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창세 전부터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주신 내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이 시대는 우리가 직접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믿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한 성경을 보고 또 하나님께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성경에서 복음을 보고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습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종교 안에 있었습니다. 인생의 철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 인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을 알아 믿을 수 있음으로 서 그 나라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는 자체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나라를 말씀합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을 주님께서는 내게 주신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거듭난 생명이 있는 성도를 나 있는 곳에 함께 있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10쪽)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내게 주신 자입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많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저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자기들의 육체를 보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내게 주신 자로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신체의 구원을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철학적 사상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종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가 그렇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들은 죽어서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고 있고 그래서 이 세상에서 그 종교에서 교리로 말하는 행위를 잘 해야 그들이 이야기를 하는 천국에 간다는 말을 하고 있고 인생들은 거기서 조금도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계속해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 성도는 거듭나는 생명에 대해서 믿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의 생명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이 있는 것으로 마치 생명을 얻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 육체의 생명에 대해서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창조하신 일에서의 기초입니다.
두 번 나야 합니다.
어떻게 두 번 나야 하는가 하면 물과 성령으로 두 번 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을 하실 때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생명을 얻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의 생명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 생명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자를 두 번 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두 번 난 자를 주님께서 내게 주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그 생명은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생명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생명이 같은 단어로 사용을 하다보니까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생명입니다
성경은 육체의 생명과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우리 인생의 언어로 말씀할 수 없으니까 같은 단어를 사용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생명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창조에 속한 세상에서 사는 생명과 창조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생명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그것이 영원한 생명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그 생명은 한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나고 마치 헛것과 같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생명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 표현입니다
저 역시도 이 생명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사도 요한도 그래서 태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죽을 육체에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언어적 표현이고 실상은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듣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이 신체로 구원을 받아서 영원히 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게 주신 자입니다
사도 요한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6장에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육체의 생명은 죽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취어져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뭇 별들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육체로 난 자들이 성령으로 난 자들을 핍박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생명에 대해서 분명히 구분을 해서 비교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생명을 얻어야 하고 그 생명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 정해져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생명을 얻은 자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 전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은 창조 후에 태어났다는 것을 제가 굳이 말씀을 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우리가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얻는 생명을 창세 전에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게 주신 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지금 17장은 창세 전에 아버지와 가졌던 영화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때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들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 별들로 보여주셨다는 것을 창세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아들들 역시 언제 있는가 하면 성경에서 분명히 창세 전에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인생들은 피조물이고 창조 후에 탄생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의 철학으로는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 피조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증거를 받게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인생들은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인 자기 육체가 종교 안에 있는 것을 보고 내게 주신 자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성경은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대해서 주의 형제 야고보 역시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생명을 보고 내게 주신 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는 있지만 창세 전에 주님과 아버지와 함께 가지셨던 영화가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 피조물입니다.
이 세상초등학문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아니 무신론자들도 이 피조물이 천국에 간다고 하고 있고 또 자기들의 종교의 교리에 따라 좋은 곳에 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피조물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이 생명에 대해서 증거를 받고 믿어 이 생명을 얻는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이기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어떻게 이기는가 하면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 육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육체는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났습니다. 그렇게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체가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 신체는 죽으면 티끌과 같이 사라지고 우리가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취어져 있다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첫째 부활에 참예를 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그곳은 우리 피조물들은 어떻게 해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된 세상에 있는 그 어느 것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피조물의 신체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피조물은 사라지고 태초에 있는 생명만이 부활을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활입니다.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입니다
주님께서는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가지셨던 분이시기 때문에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 일이 우리의 길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도 태초에 있는 생명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주님과 같이 부활의 영광에 참예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입니다
마음대로 상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경에 있는 말씀만 해야 되지 그 외에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첫째 부활에 참예를 하는 자를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요한계시록21장부터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게 주신 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 되었고 하나님 안에 감취어져 있다고 해도 우리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주님에게 주신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육체가 아니라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자들이 주님이 계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 전입니다
우리가 믿는 생명은 창세 전에 있는 생명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 영화가 있었기 때문에 육체는 버리시고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이제 주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성경말씀을 보고 있고 우리 성도는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1: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24쪽)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소망을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성경은 다른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마지막을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 나라를 환상으로 보여 주시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의 언어로는 표현을 할 수 없어서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비유로서 같더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자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이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역사를 하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주셨는데 인생들은 그 성경을 보고 종교를 만들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 인생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믿는다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셔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아야 하는데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성경을 보고 창세 전에 있던 영화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말씀 그대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 우주 안에서는 빛으로도 볼 수 없고 관측도 불가능한 것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졌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고 있는 그리고 알고 있는 이 우주는 사라지고 난 후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 피조물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설명도 안 되고 이해도 안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역사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 피조물에게 하나님 나라를 우리의 언어로 설명을 해서 이해를 시킬 수 있다면 좋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생명만 해도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과 우리 신체의 생명을 설명할 수 없으니까 같은 생명의 단어를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른 생명이라는 것을 우리 성도들은 깨닫고 있고 믿음으로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우리 피조물들은 들어갈 수 없고 그럼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게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굳이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할 필요도 없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종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의 인생의 철학적 생각으로 말을 하고 있고 그것을 종교의 교리로 만들어서 마치 그런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종교의 교리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언어적 표현이고 번역의 차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고 창세 전에 계셨던 분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은 이미 창세 전부터 다 예정이 되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일이 창세 전에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예정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 전입니다.
그러니까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미 창세전에 이 모든 것을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게 주신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들이 언제부터 예정을 하셨는가 하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언어적 표현으로 예정이고 창세 전에 있던 영화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영광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나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언어적 표현입니다
주님의 영광입니다. 그 영광을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주셨다는 것은 순전히 인생의 언어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우리 성도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17장입니다
우리 성도만 아는 일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마치 기도를 하시는 것으로 번역을 하고 있고 그렇다보니까 모든 번역의 내용이 기도를 하시는 것으로 번역을 하고 있지만 우리 성도가 성경을 보면 기도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가 아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만 믿고 있습니다.
삼위일체를 믿고 있는 이방의 종교인들은 지금 이 말씀을 보면서도 거의 마치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영광을 얻으실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주신 그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창세 이전에는 홀로 한분이신 하나님만이 계셨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1:22-24절을 보겠습니다. (신 421쪽)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믿음입니다.
히브리서에서 이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일은 창조 후에 나타난 것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비유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다 이루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사도 요한의 환상을 통해서 믿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입니다.
하나님 나라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지구 안에서 보고 또 과학이 발달을 해서 우주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는 것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경에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다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음으로 해서 그것이 실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상상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상상을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이 세상초등학문으로 만들어서 종교를 세우고 있습니다.
저도 인생입니다.
그래서 혈과 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하고 있지만 저 역시도 인생의 철학으로는 제 신체가 구원을 받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영생에 대해서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 아니고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입니다
말로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실제가 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은 성도들만이 가능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말로는 너무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말을 할 때 역시 전혀 반대가 되는 말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온갖 육체의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이 말로는 아주 근사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을 줄 정도로 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모든 행위를 보면 육체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성도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고 그들은 육체의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다 아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새 예루살렘이라고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22장에서는 그 시작을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들이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주님에게 주신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환상으로 보고 있지만 성안을 보지 못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주님과 같이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해서 그 영광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영광입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인 표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언어로는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없습니다.
영광입니다
우리가 쉽게 말을 해서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지 사실 이 영광은 우리 인생으로는 표현조차 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그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입니다. 그러나 우리 영원한 생명을 얻는 성도들이 그 생명으로 부활을 해서 이 영광을 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하옵나이다.
기뻐하다, 바라다. 라는 헬라어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보는 것을 기뻐한다는 말씀이 더 맞는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번역을 하는 사람들이 종교인들이 첨삭한 것을 보고 번역을 하다보니까 그런 번역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next 2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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