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66-1,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윤주만목사 2024. 10. 30. 10:03

로마서8:1절을 보겠습니다. (249)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율법,

육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육신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는데 사도 바울은 내 속 곧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어서 원하는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만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육신입니다

그것으로는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 그것이 악이 되어서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보고 그것을 사람의 육신으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악이 되어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기 육신으로 수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딴에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그 일이 선한 것이 없는 육신이 하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내 육신은 원치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사도 바울은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지체에 있는 다른 한 법에 져서 죄의 법아래 사로 잡혀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스스로 저주를 자청하는 일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고 다수를 따라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차라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악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악을 누가 행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또한 그 악을 어떻게 행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죄의 법아래 사로 잡혀 있는 그들이 교회 안에서 악만 행하다가 주님이 오실 때에 버림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알았습니다.

자기 육신이 이제까지 악만 행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성령을 받은 지금도 자기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그것이 원치 아니하는바 악만 행하게 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속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있지만 사도 바울이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자기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힌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지체로 무엇인가를 하게 되면 그것은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육신이 이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육신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입니다

도덕적으로 우리는 죄를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성도로 살기 위해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키려고 했는데 그 율법을 지키고 보니까 내 속에 선한 것이 없어서 도리어 악만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자기 육신을 보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도 빠져 나올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누가 건져 줄 사람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건져 내주십니까?

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 인생은 모두가 썩어 없어지고 만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은 하나님의 법으로 볼 때 모두가 악만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그 악을 행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주님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소망이 없습니다. 아니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이 세상에서 짐승과 같이 살다가 썩어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심으로 해서 비록 육신은 썩어 없어지지만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지만 이 시대는 감사를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왜 주님께 감사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입술로는 매일 겸손의 모양을 내느라 감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가고는 있지만 무엇 때문에 감사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악만 행하는데 더욱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 인생은 도덕적으로도 죄를 져서 죄인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 육신에 선한 것이 없어서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면 그것이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하고 포기를 하고 살기에는 인생 자체가 너무 허망하기만 합니다.

그런 인생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심으로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율법 외에 다른 한 의를 주심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다 이루시고 이제 영으로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명을 생각하면 정말 감사밖에는 나오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행위로 제사를 드리면서 감사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그 선물을 욕되게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악한 일만 자기 육신으로 하고 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만이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라고 하니까 어떤 행위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는 성도는 감사의 제사가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하라고 하니까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들의 썩어 없어질 물질을 드리는 것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육신은 이렇게 감사의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해도 죄의 법을 섬기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의 육신도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 육신이 되겠습니까? 교회 안에서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 죄의 법만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죄의 법입니다

우리 육신은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신으로 무엇을 해서 악을 행하기보다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세상에서 죄인으로 살다가 죽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릅니다.

교회 안에서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그것이 사람의 이성으로 보면 다 선한 일로 생각이 되기 때문에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는 그 말씀은 자기 역시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면 그것이 죄를 짓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축복과 저주입니다

교회 안에는 반드시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습니다. 둘 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누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겨서 축복을 받아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고 누구는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면서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 가를 분명히 깨닫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새 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육신으로 더 이상 죄의 법을 섬기지 않고 이제 하나님의 법을 마음으로 섬기고 있는 성도들은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26절을 보겠습니다. (305)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이제 육신에 대한 말씀을 마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7장까지 우리 육신이 무엇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아주 자세하게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사람은 이 육신으로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한술 더 떠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육신으로 악을 행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어서 악만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육신으로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온갖 더러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 성도는 더 이상 육신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으로 말미암아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입니다

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입니까?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아주 잘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입니까?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아니라 육신에 속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육신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나 김병덕이라는 사람을 구원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 김병덕이라는 사람은 도덕적인 죄만 짓고 또 그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면서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은 이미 정죄함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육신으로 보고 있는 내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그 사람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 사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죄함이 없다고 하니까 마치 자기 육신이 정죄함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 육신은 이미 정죄를 받아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입니다. 나에게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담으로부터 난 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담으로부터 난 내가 불쌍히 여김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성령으로 말미암아 난 자가 또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많이 오해를 하고 있는데 다 영의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영의 일을 알고 있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로서 난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정죄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은 깨끗합니다.

그 사람은 죄를 짓지도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악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죄를 짓고 악을 행한 우리 육신의 사람을 정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법적으로 공의로우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공의에 대해서 그리고 율법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은 성경을 너무 막연하게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는가 하면 너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하니까 자기 육신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또 그 육신이 정죄함을 받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육신은 이미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 육신은 죽었고 이제 더 이상 그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지 않음으로 해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 영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점도 없고 흠도 없기 때문에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신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신은 어떻게 해도 안 됩니다. 그것이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생명이기 때문에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는 것이지 우리 육신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정죄함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지 않기 때문에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이지 죄의 법을 섬기고 있다면 그는 정죄함을 받아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막연하게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고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정죄함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육신이 도덕적으로 짓는 죄로 정죄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고 있는 사람이 정죄함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모두가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골로새서3:3절을 보겠습니다. (327)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기들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가 하면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그 말씀을 알고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안다고 해서 자기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 세상에 교회에 나온 모든 사람은 그 말씀을 아는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서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누구 안에 있는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입으로 부르면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드리는 그런 행위를 보면서 자기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만이 정죄함을 받지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 있다고 해서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영의 일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성령이 오시지가 않아서 사람들은 이성으로 성경을 보다가 좋게 생각하는 것으로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다가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보고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니 81절을 보고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제는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아서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7장에서 만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아니요 내 속이 있는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치 않는 그것을 한다는 말씀입니까?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7장 마지막 절에서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섬긴다고 하니까 사도 바울이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 이미 만일이라는 가정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고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긴다고 하니까 마치 그것을 하면서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골로새서에서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죽었습니다.

어디서 죽었습니까?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는 사람은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그 육신이 죽어야 합니다. 우리 육신이 죽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자기 육신이 죽지도 않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앞에 것은 싹둑 잘라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그 말만 가지고 하고 있습니다.

죄의 법입니다

거기서 죽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먼저 선행이 되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없고 또 그는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정죄함을 받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말로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너희는 죽었다고 말씀을 하니까 말로만 죽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무엇에 대해서 죽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성경의 문자에 죽었다고 하니까 안 죽었다고 하면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람이 될 수 없으니까 막연하게 죽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 생명이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어느 누구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죄를 지었거나 그리고 악을 행했어야 정죄함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생명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감추어진 거룩한 생명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악을 행합니다. 그것을 정죄하지 않겠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죄를 지었으면 죄의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또 악을 행했으면 정죄를 받아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제 우리는 죽었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새 생명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이고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고 말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우리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있고 그런 성도가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죽었다고 하는 것은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말로만 죽었다고 하지 마시고 분명히 죽은 것이 나타나야 합니다.

감추어져 있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거룩한 생명입니다. 주님과 같은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는 것이지 죄를 짓고 악을 행하고 있는 우리 육신을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모르면 모두가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5:17절을 보겠습니다. (291)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 육신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 교인들은 새로운 피조물과 육신을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신이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가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 육신으로 더 악만 행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듭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말씀이지 우리 육신을 두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이 영의 일을 모르게 되면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과 같이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대 모든 기독교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이유가 이 영의 일을 모르고 새로운 피조물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신이 아닙니다. 그 육신은 정죄를 받아 죽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그 육신이 죽지를 않아서 아직까지 죄의 법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죄의 법을 섬긴다는 것도 모르고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 육신이 구원을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육신이 어떻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7장까지 분명하게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기 때문에 그 육신이 죽지 않고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탄생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이 되어 있는 성도는 육신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이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육신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안에 새롭게 탄생이 되는 그리스도의 영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영은 죄도 없고 악도 없기 때문에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육신에 있는 사람이 아니 이 피조물도 없는 사람이 교회 안에서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새로운 피조물을 모르면 그는 세상 종교를 믿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종교가 이 영의 일을 말하고 있습니까? 다 자기 육신이 잘 해서 자기들이 원하는 곳으로 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불교도 자기 육신이 다음 생에 더 좋은 것으로 태어나기를 바라고 있고 또 해탈의 경지에 올라 그들이 말하는 극락에 들어가는 것을 바라면서 자기 육신으로 선하고 의로운 일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의 육신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육신으로 선한 일을 하려고 생각을 하면서 사람의 이성을 따라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선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것이 없는 그 육신으로 선한 것을 하려고 하니까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막연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에 나와서 육신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행위를 나타내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아니라 기독교라는 종교에 속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육신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정해 놓은 대로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전제 조건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 전제 조건이 충족이 되어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내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성도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라고 하고 있고 그가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전 것이 있으면 안 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이전 것이 지나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은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전 것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전 것으로 악만 행하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3:19절을 보겠습니다. (146)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한복음8:11절을 보겠습니다. (158)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도 있고 예수 밖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이 정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런다고 여러분이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자에게는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를 정죄하던 자들이 다 어디로 갔느냐고 말씀을 하면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죄입니다.

그 죄로는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정죄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역시 도덕적인 죄로는 정죄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것은 장차 주님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때문에 정죄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도덕적인 죄를 가지고 정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악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시고 나서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이 여인이 지은 간음한 죄만 정죄를 하지 않고 다른 죄를 지면 정죄를 받는 것과 같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 정죄를 받지 않은 죄와 뒤에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신 죄는 전혀 다른 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죄입니다.

그것으로는 어느 누구도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만약에 그 죄로 정죄를 받는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여인이 가서 다시는 도덕적인 죄를 짓지 않고 살았다고 생각을 합니까?

우리는 진토입니다

도덕적인 죄를 안 질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우리는 도덕적인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양심에 가책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자체가 죄입니다.

그 죄로 정죄를 받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코 정죄함을 받지 말아야 하는데 다시 정죄를 받게 된다면 그 정죄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을 의롭다 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공의가 되지 못 합니다

정죄가 무엇입니까?

사전에서 죄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죄가 있다고 단정을 지어서 말하는 것을 정죄라고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죄인이 법정에 서게 되면 판사가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판사에 의해서 죄가 있다고 판결을 받으면 그는 아무리 무죄를 주장해도 죄가 있는 것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일을 믿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도덕적인 죄로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사단보다 연약해서 그런 도덕적인 죄를 지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시게 하셨습니다.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도덕적인 죄를 가지고 정죄를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정죄를 하지 않은 죄를 가지고 사람이 정죄를 한다는 그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도덕적인 죄를 가지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니까 마치 자기들이 정죄를 받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반드시 조건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밖에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 사람은 정죄함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함이 없지만 예수 밖에 있는 자는 정죄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있어서 정죄함을 받지 않고 있고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은 정죄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니까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이 정죄함을 받지 않은 것으로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전제 조건입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전제 조건이 율법의 행위를 버리는 일입니다. 그 조건이 충족이 되어 있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고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지 않은 사람이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문자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교회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이 말씀을 알고 있는 것으로 정죄함이 없다고 한다면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은 이 시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었다면 우리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죄를 받고 말았습니다.

왜 정죄를 받았습니까?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해서 정죄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도덕적인 죄를 지어서 정죄를 받은 것이 아니라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해서 정죄를 받았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안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정죄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정죄를 받았는가 하면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어두움을 더 사랑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빛 율법을 지키는 그것이 악이 되어서 정죄함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율법을 지키고 있으면 정죄를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으려면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악을 행하면서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면서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는 절대도 안 됩니다.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면서 어두움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벌써 심판을 받아 정죄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정죄를 받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으면 그는 그리스도의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 있다고 해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아닙니다.

악을 행합니까?

아니 육신으로 교회 안에서 어떤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그는 빛을 미워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려 있는 바리새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를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 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 줄도 모르고 성경에서 문자를 아는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하면서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덕적인 육체의 죄입니까?

그 죄는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정죄를 받고 있습니다. 왜 정죄를 받고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정죄함을 받고 있습니다.next 6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