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65-2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윤주만목사 2024. 10. 26. 13:50

고린도후서11:20절을 보겠습니다. (298)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사도 바울이 사로잡혔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육신을 보면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만일이라는 가정하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성령이 오셨고 율법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죄가 기회를 타서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 율법을 지켰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함께 그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 되었습니다.

우리 지체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도 사도 바울과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성도는 절대로 죄 아래 팔리지 않습니다.

누가 종으로 삼아서 사로잡습니까?

고린도교회에도 벌써 다른 복음이 들어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른 복음을 따른 자들이 어떻게 보이는가 하면 광명의 천사와 같이 보이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사람의 이성에는 의의 일꾼과 같이 보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로잡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 광명의 천사에게 그리고 의의 일꾼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사로잡히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자랑을 하는가 하면 자기 육체를 가지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다 육체를 따라 자랑하는 사람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를 따라 자랑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이성에는 그것이 의로 보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육체도 그렇게 하고 싶어집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그때에 초대교회에 벌써 이렇게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아래 사로 잡혀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복음입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는 할례라는 그 율법에 사로잡혀서 속히 다른 복음으로 넘어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이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마치 이스라엘과 같이 자기들이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의 종입니다

율법을 지키면 죄의 종이 되어서 사로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육신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죄의 종이 되어서 사로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사단의 일군들이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교회 안에 들어온 소자들은 그들을 의의 종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사로잡혀 있다는 것조차 인지를 못하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용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는 용납하고 말 것이 없습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들어오면서 모두가 죄의 종이 되어서 사로잡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에게 육신적으로는 고마워해야 하지만 영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단에게 사로잡혀 있습니다.

아마 제게 그렇게 주장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미국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서 이 시대 우리가 성경을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다른 복음을 전할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을 하셨습니까?

너희가 산과 바다를 두루 다니며 교인하나를 만들면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열심으로 그들이 다른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배나 지옥 자식이 될 사람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배나 지옥 자식입니다

누가 배나 지옥 자식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배나 지옥 자식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산과 바다를 두루 다니며 교인 하나를 만들면 배나 지옥 자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차라리 세상에 그냥 두었으면 지옥 자식이 되지 않았을 텐데 산과 바다를 두루 다니며 교인을 만들어서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로잡습니다.

누가 사로잡습니까? 의의 일군으로 가장한 사단의 일군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어서 그들이 사로잡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볼 때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과 같이 보이는데 그가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사로잡아서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이 시대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 일에 너무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제 죄인으로 죽어가는 그 사람까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억지로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사람이 그냥 편히 죽는 것도 못 보고 그렇게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죄의 법입니다

그것에 사로잡히는 순간에 배나 지옥 자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고 있습니까? 정말 차라리 그냥 두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죄인으로 살다가 죽으면 됩니다. 그런데 왜 복음도 없는 사람이 열심을 내다가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만들고 있습니까?

복음을 들었던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잘도 용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기독교는 복음이 사라진 사람이 만든 종교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종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내 스스로를 종교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독교라는 종교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 우리를 기독교인이라고 합니까? 우리는 유대교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이미 의의 일군으로 가장한 사람들에 의해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종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요한계시록에서 두 짐승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짐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가 또 짐승이 되었습니다. 이 두 짐승에 의해서 사람들이 다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으로 사로잡혀 있는가 하면 내 지체에 다른 한 법 죄의 법에 의해서 모두가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로잡혔다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율법을 지키면 사로잡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절대로 사도 바울은 원치 아니하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만약에 육신만 있다면 지체에 있는 한 법에 의해서 죄의 법아래 사로잡히게 되어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7:24절을 보겠습니다. (249)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우리 인생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니 우리 육신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육신으로는 어떻게 해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모두가 죄의 법아래 자기들이 팔려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얼마나 비참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도 자기 육신을 볼 때는 비참하기만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육신은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비참한 육신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온갖 탐욕과 방탕에 빠져 죄의 법아래 팔려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나를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내 육신을 먼저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자기 육신을 모르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 죄의 법에 팔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을 아는 성도는 절대로 죄의 법에 팔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육신으로는 어떻게 해도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왜 이 시대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육신의 속에 있는 죄가 넘치고 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 비참한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 열심이 자기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교회 안에서 그런 육체에 나타나는 표적을 구하고 있고 자기들의 말 따라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가 되어서 그 체험한 그것으로 사망으로 가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소가 푸주로 가는 것과 같이 거대한 종교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우리 육신은 반드시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육신이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 도리어 원치 않는 것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가지고 있는 육신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어 구원을 받고 싶어서 원하는 일을 하려는 그 마음은 진심입니다.

제가 그 진심이 거짓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진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육신이 원치 아니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믿음으로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 인생의 육신은 원치 아니하는 그것에 열심을 내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진심이라는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을 알아 달라는 그런 감성적인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 있는 그 진심이라는 것도 마음이라는 것도 다 악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진심이 그리고 육신에 있는 그 마음이 우리가 원하는바 선은 행하지 않게 하고 있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육신을 아는 성도의 고백입니다. 우리 역시 사도 바울과 같은 이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육신으로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고 하나님을 위해서 찬송을 부르고 있고 기도를 하고 있고 헌금을 드리면서 죄의 법아래 빠져 팔려 있으면서도 도리어 그런 일을 하는 자기 육신을 보고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육신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 인생의 육신이 하는 일입니다. 그 일로는 죄의 법아래 팔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육신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육신을 보니까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곤고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육신을 가지고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육신이 한 일을 가지고 이 시대 교인들이 얼마나 자랑하고 있습니까? 자기 육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 교인들은 그 육신으로 선한 것을 하려고 하다가 모두가 죄 아래 팔려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육신이 선한 것을 할 수 있다면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육신으로 교회 안에서 마음껏 죄의 법에 팔려서 사단에게 사로잡히고 있습니다.

육신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 육신이 해방이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얻는다 해도 이 육신은 죄의 법에 사로잡혀서 사망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육신을 가지고 이 시대는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선한 일을 한다고 하면서 죄의 법아래 점점 더 사로잡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육신입니다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구원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자기 육신이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 육신이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또 이 육신이 어떤 일을 한 것을 가지고 천국에 가서 칭찬을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선한 것이 있습니까?

선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칭찬을 받습니까?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원치 않는 악만 행하고 있는 이 육신이 한 것을 가지고 어떻게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까? 악만 행한 그 육신이 한 일을 가지고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겠다고 말을 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실상은 그 일이 다 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우리 육신은 반드시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으로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왜 죽어야 하는가 하면 이 육신으로는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치 아니하는바 악만 행하기 때문에 죽어야 합니다.

영생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악만 행하는 이 육신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린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를 진 인생은 혹시 다시 살려 주실 수 있지만 우리 육신은 악만 행했기 때문에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대적하고 있는가 하면 악만 행하고 있는 우리 육신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육신을 구원하십니까?

그것을 알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나는 비참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육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육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육신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육신의 모양을 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3:17절을 보겠습니다. (402)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의 교회가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이 오면 교회는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와 같이 변하고 말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지금 이 시대 역시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위입니다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습니다. 찬 것은 율법을 상징하는 말씀이고 더운 것은 성령을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잘 지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복음을 듣고 믿는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그렇게 변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부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부자입니까? 주님께서 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는 그런 교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교회가 되어서 자기들이 성도가 되어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교회입니다.

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육신으로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육신이 얼마나 비참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 육신이 비참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교회는 율법을 지키면서 그 의를 보고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곤고합니다.

무엇 때문에 곤고합니까? 이들이 육신으로 율법을 지켜서 그 의로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천국에 들어갈 성도라고 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얼마나 곤고한 자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는 자기들의 육신이 얼마나 곤고한 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이성은 절대로 깨닫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육신을 보면서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와 같이 전혀 곤고하게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육신이 한 모든 악한 행위를 보면서 도리어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육신을 보면 곤고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교회에만 들어오면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육신이 비참해서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져 내랴 고 탄식을 해야 하는 그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도리어 악을 행하면서 부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율법입니다

할례 그 한가지로도 부자가 되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 모든 육신으로 하는 행위가 세상 사람과 비교를 해서 부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부자가 아니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부자가 아니라 해도 세상의 이성이 부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고 있고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육신으로 하고 있는 그런 행위들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하고 있고 여러분 또한 그 행위를 함으로 해서 그렇게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이 하는 행위가 그렇습니다.

나는 아니라 해도 그 행위가 나를 부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나는 아니라 해도 그 행위가 죄의 법에 팔려 있는 악한 행위라고 성경이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내 이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말고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입니다

이 사망의 몸입니다. 반드시 죽어야 하는 몸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서 죽는다고 하기 보다는 악을 행하기 때문에 죽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되기 전까지는 악만 행했습니다. 그것을 행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긍휼히 여기셔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인생이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고 하지 않고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리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보면 그것을 문자적으로 보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것을 자기 육신으로 지키면서 죄의 법아래 팔려 사단에게 사로잡히고 있습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져내랴

우리 육신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받은 사도 바울이지만 그 육신은 이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신을 보면 선한 것이 없어서 원하는 것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만 행하고 있어서 비참하기만 하고 사망을 당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다는 것을 탄식하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7:25절을 보겠습니다. (24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말씀도 거의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건져내랴 고 사도 바울이 탄식을 하고 있는 줄을 목사들이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육신이 원하는 선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만 행하는 것을 보면서 지금 탄식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목사들이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탄식하고 있는 이 말씀을 마치 도덕적인 죄를 짓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육신이 도덕적인 죄를 짓는 것을 생각하면서 사도 바울도 어쩔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탄식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죄가 아닙니다.

로마서7장은 율법을 지키는 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육신은 어쩔 수 없이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게 되면 반드시 죄의 법을 지키게 되어서 팔리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이 하는 일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그 도덕적인 죄를 안 짓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그 안에 있는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그것이 죄라는 말씀입니다. 정말 사람의 육신이 어떠하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도덕적인 죄를 안 짓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것이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 육신으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악만 행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입니다

그것으로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복음을 깨닫고 믿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육신은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는 그것까지도 선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다고 정의를 내려 주었으면 그렇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곤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육신으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곤고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아 내 육신에 그 속에 선한 것이 없어서 원하는 것은 하지 못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만 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기 육신이 얼마나 곤고한가를 알기 때문에 사도 바울과 같이 사망에 몸에서 누가 건져내랴 고 하면서 탄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건져냅니까?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져 냅니까? 내 스스로가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까? 우리 인생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탄식을 하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

없습니다.

아니 안 됩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그것을 스스로 건져내려고 하는 순간부터 점점 더 악만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스스로 건짐을 받으려고 하면 마치 사람이 늪에 빠지는 것과 같이 점점 더 깊이 빠져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건져 낼 수 있는데 육신으로 하려고 하다가 깊이 빠져 아예 나오지를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까지 죄와 그리고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거기서는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 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4:18절을 보겠습니다. (347)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악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육신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선한 것이 거하지 않기 때문에 원하는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선을 행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성경이 선한 것이 없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선을 행하고 있다고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이성에 따라 선을 행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이 아니라고 하면 여러분이 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다 악한 일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기도를 주문과 같이 외우고 있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기도를 예배의 마지막에 아니 자기들의 모임에서 주기도문이라고 하면서 외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누구나 다 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외우는 그것 까지도 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종교의 형식에 따라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을 누가 하고 있는가 하면 우리 육신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육신이 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 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의미도 모르고 있습니다.

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만 악에서 구해달라고 자기 육신으로 주문을 외우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그 기도를 외워서 주문처럼 하라고 그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까? 이 시대 모든 사람이 악에 빠질 것을 아시고 그 기도를 가르쳐 주셨지만 도리어 그 기도를 육신으로 외우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내 육신으로는 악만 행합니다. 왜 악만 행하는가 하면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건져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악에서 건짐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의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악을 알아야 악에서 건짐을 받아 그의 천국으로 구원을 해 주실 수 있는데 악을 모르다 보니까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모두가 육신으로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그 악을 보면서 도리어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악을 행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악을 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가능한 육신으로 하는 일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예배를 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성도들이 모여서 주의 만찬을 나누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이제 처음 복음을 듣는 사람들에게 진리가 전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탁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한다고 하니까 내가 꼭 어느 사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는 것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 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조차도 악입니다

우리는 이것으로도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모든 악에서 건져 주셔서 구원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정의고 그러면 육신으로 무엇을 해서는 안 됩니다.

골로새서1:13절을 보겠습니다. (32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 내 주셨습니다. 흑암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에서 빛이 어두움을 비추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 어두움에서 빛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빛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모두가 어두움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 빛에 대해서 증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역시 성경을 보면서도 어두움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얼마나 어두움에 있는 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입니다

그것은 곧 사망입니다. 그래서 어두움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골로새서에서는 흑암의 권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이성으로는 그것이 어두움이라는 것도 흑암이라는 것도 깨달을 수 없어서 이 시대 기독교인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유대교에 빠져 율법을 지킨 것과 같이 육신으로 악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입니다

그것은 흑암의 권세에 빠져 있습니다. 그 육신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아니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말로만 감성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하지 마시고 실제 그런 행함이 나에게서 보여야 합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육신을 보면 우리는 탄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왜 곤고합니까? 도덕적인 죄를 알아서 그것을 안 지려고 하니까 율법을 지키는 그것이 내 속에 내 육신에 선한 것이 없어서 도리어 원치 아니라는바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그 곤고한 사람은 반드시 사망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런데 건져 주셨습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하나님께서 건져 주셔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겨 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도리어 육신으로 죄의 법을 섬기면서 육신에 팔려 죄의 종이 되고 있습니다.

내 육신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탄식 속에서 이 감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사도 바울이 기록한 이 로마서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더욱 더 흑암의 깊은 권세에 빠져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나를 건져 주십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나를 이 모든 악에서 건져 주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교인들은 악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신으로 악을 행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두 법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을 22절에서 내 속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도 하나님의 법과 사람의 법을 모른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러 천국을 기업으로 얻는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의 법은 오직 성령이 오셔서 역사를 해 주셔 야지만 내 마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집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깁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의 법은 내 어떤 의지가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역사를 하기 때문에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알아 믿고 있습니다.

육신입니다

그 육신은 죄의 법을 섬깁니다. 이 죄의 법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정의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길 수밖에 없지만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킨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자기 육신이 원치 아니하는 일을 하게 되면 그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선을 행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원치 아니하는바 악을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이 행하는 모든 일이 죄의 법을 섬기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육신의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 역시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기면서 육신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육신으로 죄의 법을 따라 섬기다가 사망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의 믿음의 주가 되게 하셔서 이 시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고 있습니다. next 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