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65-1,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윤주만목사 2024. 10. 26. 13:49

로마서7:22절을 보겠습니다. (248)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사람의 육신입니다.

거기에는 선한 것이 없다고 사도 바울이 자기 자신을 이야기를 하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한 것이 없는 그 육신을 선하게 만들려고 하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끊임이 없이 이 육신을 가지고 선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입니다

그리고 성화주의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다 율법주의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성경은 우리 육신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 속 곧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면서 그래서 선을 행하기를 원하고는 있지만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이성을 따라 선한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영생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으로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선한 것이 없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이 없는 이 육신이 무엇인가를 하게 되면 그것이 도리어 원치 않는 악이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이성에 따르면 교회는 선한 사람도 있고 선한 것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생에 있어서는 우리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도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은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사도 바울은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일은 없지만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가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속입니다.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가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속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은 우리 속도 그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만 성령이 오셔서 이제 육체를 따라 살지 않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죄가 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 속에 무엇이 거하고 있는가를 정의를 내려 주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도 바울은 죄를 짓지 않고 있지만 그러나 만일 자기도 모르는 것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속은 죄만 있습니다.

선한 것이 없고 죄만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우리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게 되면 그것이 다 악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교회 안에서 더 많은 악을 행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육신입니까?

이것으로는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원치 아니하는 악만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이성에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같이 보이고 그 행위가 진실 되게 보인다 해도 내 육신으로는 다 악만 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배를 드립니까?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헌금을 내고 있습니까? 그리고 전도를 하고 있습니까? 사람의 이성에는 다 옳은 것과 같이 생각이 됩니다. 아니 옳은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행위가 내 육신으로 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원하는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을 모릅니까?

우리가 보고 있는 사람이 육신입니다. 그 육신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악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규정을 하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왜 악인가 하면 내 속 곧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선을 행하기를 원합니다.

생명을 얻기를 원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서 생명을 얻어서 천국에 가고 싶어 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습니다. 그 악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바로 우리 속 육신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이 함께 있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은 다 구원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악이 함께 있습니다. 그 악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우리 육신에 있어서 육신이 무엇인가를 나타내면 그것이 악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육신이 어떠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이렇게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그 육신으로 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기 때문에 다 악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악이 있습니다.

우리 육신에는 악만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렇다고 말씀하고 있으면 그런 것입니다. 나는 선을 행하고 있다고 따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만일 내가 율법을 지키면 그것은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가 지키는 것이고 그것이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다 같습니다. 모두가 선을 행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으로 그것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는 악이 되고 있다는 말씀이며 사도 바울이 자기 육신에 있는 악을 보면서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법이라고 하니까 일부 번역에서는 율법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조차도 법하면 율법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도 바울이 자기를 말하면서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이 속사람은 다른 주체를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4:16절을 보겠습니다. (290)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겉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속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속사람도 있고 겉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는 속사람으로는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고린도후서에서는 겉 사람은 후패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속사람입니다

그리고 겉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모두 사도 바울입니다. 속사람도 있고 겉 사람도 있는데 이 두 사람이 다 사도바울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내 안에 영이 탄생이 된 사람에게는 이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육신을 말씀했습니다.

그 육신은 겉 사람입니다. 이 겉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면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알고 있는 이 겉 사람은 육신인데 이 겉 사람은 악만 행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겉 사람에게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악만 행하고 있습니다. 이 겉 사람은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아니하는바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그 사람은 다 겉 사람입니다. 그것을 속사람이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속사람은 보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겉 사람은 아담의 종자로 태어났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육신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어서 악만 행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 육신입니다. 그것에 포함이 되어 있는 모든 것은 다 겉 사람입니다. 성경은 육과 영을 구분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에 속해 있는 모든 것은 다 겉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로서 난 자만이 속사람입니다.

그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후패하는 겉 사람이고 하나는 날로 새로워지는 속사람입니다. 겉 사람은 악만 행하기 때문에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후패라는 사전적 뜻은 썩어서 문드러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겉 사람이 이렇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것은 선한 것이 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악만 행함으로 해서 썩어 없어집니다.

아담의 나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나입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신 성도만이 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과 같이 성령을 받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성도만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아무리 그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하고 또 자기 말로 성령을 받았다 해도 그에게는 겉 사람만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속사람이 있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지만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아직 속사람이 탄생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겉 사람은 썩어 문드러집니다.

그런데도 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새롭게 하려로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는 이 썩어 없어지는 것을 새롭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겉 사람은 썩어 문드러진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반드시 속사람이 있는 성도만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자기에게 있는 속사람이 무엇이고 겉 사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속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고 겉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겉 사람과 속사람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사야29:13절을 보겠습니다. (1000)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요한일서5:3-4절을 보겠습니다. (39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사람의 계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오해를 하고 있고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사람의 계명을 말씀하고 있고 하나님의 계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법이라고 하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보고 문자 그대로 사람이 지키고 있는 것을 사람의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바리새인들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하는 그것이 사람이 계명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고 지키는 것이 사람의 계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법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보고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도덕법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십계명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알고 지키는 계명을 사람의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계명을 따라 지켰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계명을 즐거워하면서 지켰습니다. 이 시대 역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십계명을 보고 문자 그대로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법인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친히 쓰셔서 더욱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누가 지킵니까?

이것부터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로마서를 통해서도 사도 바울이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보고 죄를 깨달으면 됩니다. 그리고 죄를 깨달았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해서 구원을 받으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율법을 보고 사람의 계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우리에게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사단에게도 율법대로 하라고 반포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에서 율법을 보면 정신이 혼미해져서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들이 먼저 지키겠다고 언약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을 문자 그대로 사람이 지키면 사람이 계명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지키시면 하나님의 법이 됩니다.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한 기초가 너무 없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무지한 그들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다가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다가 모두 악만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속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워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역시 속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데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사람들은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사람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후패하는 겉 사람으로 사람의 계명을 지키면서 악만 행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 줄도 모르고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소가 푸주로 가는 것과 같이 끌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로서 난 자입니다

사도 바울의 속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로서 난 자입니다. 그 속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세상을 이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세상을 이긴 이김이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 로서 난 자라야지만 세상을 이길 수 있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법이 우리 마음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말씀입니다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는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속사람은 마음에 있는 법을 즐거워하고 있고 겉 사람은 사람의 계명을 따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법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속사람입니다

우리 아담의 종자는 겉 사람입니다. 그 겉 사람은 썩어 문드러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겉 사람이 썩어 문드러져야 내 안에 하나님께 로서 난 자가 탄생이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다 썩어 문드러지는 그 겉 사람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썩어 문드러지는 겉 사람이 행하는 것은 다 악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여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러 생명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사람을 하나님께 로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로서 난 자는 사람의 계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로서 난 자입니까?

그가 하나님께 로서 났는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것이 바로 율법의 행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의 행위와 종교적인 외식이 있다면 그가 아무리 성령을 이야기를 하고 거듭났다고 해도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겉 사람은 율법을 지킵니다.

그리고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속사람이 있는 성도를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반드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사람만이 하나님께 로서 난 속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께 로서 난 자가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로서 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정의입니다. 내가 속사람이 있다고 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속사람은 반드시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사도 바울과 같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어떻게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우리를 부요하게 해 주셨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이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법이 있는 성도는 사람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즐거워하는 것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의 계명이 즐거우면 그것을 하게 되어 있고 하나님의 계명이 즐거우면 그것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법을 몰라서 율법을 아주 즐겁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 율법이 악이 되어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7:23절을 보겠습니다. (248)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법이 있고 두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 속사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고 또 자기 지체에는 무슨 법이 있는 가를 모르면서 문자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속사람입니다

누구나 속사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인 사람만이 속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합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속사람이 있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아직까지 자기 지체에 있는 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체의 법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 지체 속에서 싸우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법이라고 하니까 내 마음이 지키는 법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사람의 이성에 따르는 마음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내 마음에서 감동을 받고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이 마음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이 이성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바리새인들의 마음은 각종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고 자기들의 마음은 그것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은 같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던 바리새인의 마음이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마음이 같습니다. 아니 성령을 받은 우리 인생의 마음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마음에 법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내 안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 법이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두 법이 싸우고 있습니다.

내 육신은 율법을 지키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셔서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자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우리 성도도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이 두 법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신 성도는 마음의 법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성령이 있습니다. 육신은 아담으로부터 낳은 우리가 보고 느끼고 이성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령은 내 안에서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늘의 생명인 영을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성도에게만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는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지체 안에서 두 법이 싸우고 있지를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내 마음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없기 때문에 죄의 법에 사로 잡혀서 율법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성령이 오신 성도만이 이 두 법이 지체 속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우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야지만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마음의 법과 싸울 수 있는 것이지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은 한 다른 법에 의해서 모두가 죄의 법 아래로 사로 잡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싸워 이겨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그리고 의지로는 그것을 이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깨닫지도 못 합니다

그가 아무리 신학을 공부하고 세상에서 지혜가 있다 해도 성령이 오셔서 역사하시는 그 법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에만 들어오면 자기들이 성령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는 내 마음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이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6:15절을 보겠습니다. (269)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사도 바울의 지체입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켜서 죄의 법아래 빠져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인생이기 때문에 만약에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입니다

가정으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없지만 만약에 있는 것을 가정으로 해서 사도 바울의 지체를 가지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라도 역시 만일 이런 일이 있다면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로마서7장에서는 만일이라는 단어를 두 번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가정으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볼 때 전혀 국어의 뜻을 모르고 보다보니까 성경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자기 지체를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어 있는 그 지체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로마서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그리스도의 사람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전제 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벌써 초대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의 교회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했는데 교회에는 벌써 자기 육신으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창기의 지체를 만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내 지체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 먼저 선행이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데 그 지체에서 다른 한 법이 있어서 마음의 법과 싸워서 그 법에 져서 창기의 지체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초대교회 안에 벌써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오직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법과 싸워서 지게 되면 죄의 법 아래로 사로 잡혀서 율법을 지키게 되고 그것을 사도 바울이 창기의 지체를 만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듣다가도 이렇게 너무 쉽게 자기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사로 잡혀 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방에 있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먼저 들었습니다. 이 시대와 같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복음을 먼저 듣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면 맞습니다. 이미 교회는 초대교회를 지나오면서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서 이제까지의 거의 모든 교회가 율법을 지키면서 죄의 법아래 사로 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잘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기록할 당시와 지금은 너무도 다른 환경입니다. 그때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죄의 법 아래로 팔려 있던 사람이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율법주의가 들어옴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던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고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미 기독교라는 종교는 그럴 수 없는 일을 보편화 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창기의 지체가 되지 않으면 성도라고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된다고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럴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창기의 지체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창기의 지체가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창기라고 하니까 마치 이 세상에서 창녀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말씀하는 것으로 알고 자기들이 창기의 지체가 되어 있다는 사실 조차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세상의 창기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세상의 창기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 말씀을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창기의 지체라고 하니까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창기의 지체를 만들고 있습니까?

누가 그럴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만일이라는 가정하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들었습니까?

이 시대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도 없고 듣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어야 내 지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 있는데 아예 복음 자체가 사라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창기의 지체가 되어서 죄의 법아래 사로 잡혀 있으면서도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못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있는 사람을 못 보았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못 보았다는 말씀입니다. 모두가 지체에 있는 다른 한 법 율법을 지키는 것에 사로 잡혀서 창기의 지체를 만들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창기의 지체입니다

그는 죄의 법아래 사로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 역시도 육신으로는 그 죄의 법아래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만일이라는 가정하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인생의 육신으로는 어느 누구도 여기서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주의에 빠져 바벨론에 사로잡혀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7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지만 그들은 역시 율법주의에 또 빠져 들어가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next 65-2번으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