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4: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47쪽)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무슨 악을 그렇게 행했겠습니까? 그는 구약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신령한 줄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율법을 지켰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지독한 율법주의자였지만 주님을 만나고 난 이후로는 단 한 가지의 율법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갈라디아서입니다
단 하나의 율법 할례가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서신을 보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얼마나 강경했는가를 그가 쓴 성경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로는 어느 율법도 지키지 않았고 자기가 복음을 전한 이방인들에게도 율법을 지키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이 신령한 줄 압니다.
율법은 법대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당연히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무슨 악을 행했겠습니까? 디모데 후서는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가장 나중에 쓴 편지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까?
악입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행한 일 중에서 모든 악한 일에서 자기를 건져내셔서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을 확신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악한 일을 했습니까? 그래서 그 모든 악에서 건져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까? 아니 우리가 율법이 신령한 것인 줄 알고 있는 대로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켜서 자기가 지킨 율법을 생각하면서 모든 악에서 건져 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육신입니다
그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육신으로 한 모든 일이 무엇입니까?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 알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육신으로 한 모든 일이 악이라는 말씀이며 그래서 모든 악한 일에서 주께서 건져내셔서 그의 천국으로 구원을 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에 찬 말씀으로 그가 기록한 성경을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육신입니다
사람의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한 그 모든 일 역시도 선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선한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는 그가 한 모든 일이 선한 일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분명히 그 일은 선한 일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사도 바울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복음의 사도로 세우시고 부탁을 하신 일을 한 것이고 그의 육신은 선한 것이 거하지 않아서 악만 행했기 때문에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셔서 그의 천국으로 구원하실 줄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것입니다
우리 육신에는 없습니다. 오직 성령이 오셔야지만 그가 역사를 해서 선한 것을 내 안에서 이루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구원을 받은 것과 그리고 그가 이방에 복음을 전한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들이 한 행위를 가지고 천국에 가서 주님께 자랑까지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구원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우리 육신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정의를 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 속 곧 자기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아서 정말 천국에 가고 싶어서 선한 일을 하고 싶지만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한 일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신으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자기 육신으로 선한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선한 것이 거하지도 않은 그 육신으로 어떻게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 속에도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마음을 중요시 하면서 교회 안에서 성화가 된 마음을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원합니까?
선한 일을 하고 싶습니까? 내 육신에는 거하지 않아서 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이제 그것을 8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속 곧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지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내 안에서 선한 일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선한 것을 한다고 하지만 육신으로 무엇을 하면 할수록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은 행하게 된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정말 복음을 전하는 일 외에는 우리가 육신으로 교회 안에서 그 어떠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육신으로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못해서 구원을 못 받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원치 않는 일을 함으로 해서 구원을 못 받는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하게 하셨고 그것을 우리가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 이루신 그것을 믿음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가능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해도 되는가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인가를 잘 모르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교회에만 들어오면 하나님을 믿는 열심이 너무 지나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그 육신으로 선한 것을 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여서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로마서7:20절을 보겠습니다. (신 248쪽)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만일입니다.
다시 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없지만 만약에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가정으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원치 아니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일을 가정으로 해서 우리에게 육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원치 아니하는 일입니다
그것을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악을 누가 행하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생명의 달란트를 얻지 못하고 있는 육신에 속한 자가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제 율법이 신령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정말 만일이라도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할 수 있다는 뜻에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다 악한 일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이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율법을 깨달은 성도는 절대로 악을 행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일입니다
단 한 가지를 지켜도 그것은 악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율법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복음을 전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모든 사역을 마치면서 마지막에 쓴 서신에서 자기가 행한 모든 악에서 주님께서 자기를 건져내셔서 천국으로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신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신은 원치 아니하는 악만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실상은 다 악에서 나오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아서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이라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혹시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늘 주의해야 합니다. 단 하나의 악이 나를 사망으로 끌고 가기 때문에 우리는 이 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육신으로 너무 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으로 하는 모든 행위입니다
그것은 다 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주님께서 부탁하신 일까지도 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히 예배도 해야 하고 또 복음을 전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부탁하셨기 때문에 성도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어떠한 일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5:22절을 보겠습니다. (신 333쪽)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육신이 어떤 모양을 내고 있다면 그것은 다 악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내 육신으로 어떤 모양이 나타나고 있다면 그것은 다 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 교회는 너무 많은 모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모양
겉으로 나타나는 생김새나 형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 속 곧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육신에 겉으로 나타나는 생김새나 형상이 모양이라는 말씀입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더 많은 모양을 나타내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행위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 육신입니다
그것이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다 악한 일입니다. 설령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도 그것을 선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은혜를 주시고 부탁하셨기 때문에 하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원하는 선한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원 합니까?
그러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능한 모든 일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원하면 하지 않은 것이 좋습니다.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하니까 사도 바울이 도리어 원치 아나하는 악은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천국에 가고 싶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다면 여러분의 육신에 어떤 모양이 나타나서는 안 됩니다.
선을 모릅니다.
그리고 악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악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무엇이 악인 줄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교회 안에서 악의 모양만 나타내다가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악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이성입니다
그것으로 알고 있는 악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것이 악이라면 성경은 더 이상 비밀이 될 수도 없고 굳이 성령이 오시지 않아도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성령을 구할 필요도 지혜를 구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으로 악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비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면 선을 행하고 싶어서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는데 그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아서 악은 행하고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면서도 자기들은 악을 행하지 않고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물론 데살로니가가 있는 교회에 성도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악의 모양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또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물론 그 교회를 주님이 세우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다 음녀가 된다는 것을 성경이 또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음녀가 되어 있는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육신으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육체에 상관된 계명을 지키는 모든 행위가 다 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못 버립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절대로 못 버립니다. 왜 못 버리는가 하면 사람의 이성에는 그것이 악이 아니라 선하고 의로운 일이기 때문에 절대로 못 버립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이 악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보시기 바랍니다.
육체에 상관된 계명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것이 율법이라는 것조차 인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율법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도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그 정당성을 말하면서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서도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생명의 달란트를 남기지 못하는 악하고 게으른 종과 같이 살아가면서 교회 안에서 자기 육신으로 여러 가지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십일조도 모양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모양입니다. 찬송가를 부르는 것도 모양입니다. 헌금을 하는 행위도 모양입니다. 제가 일일이 다 열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시대는 여러 가지 모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모양이 교회 안에서 사람의 육신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생명을 바라보면 이 악은 정말 원치 않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악인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이 악인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악하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 일입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악을 행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악인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나오고 있습니까? 셀 수 없을 정도로 악인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지만 악이 무엇인지 누가 악의 모양을 내고 있는지도 모르고 교회 안에만 있으면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육신입니다
속과 겉을 포함해서 모는 것이 다 악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한 것이 거하지 않은 그 육신으로 모양을 내고 있다면 그것은 다 악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이 악의 모양만 내다가 사망에 이르고 있지만 사람들의 이성에는 그것이 선하고 의롭기 때문에 더욱 열심을 내서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7:20-23절을 보겠습니다. (신 65쪽)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마음이 꽤나 깨끗한 것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자기들의 마음을 감동해 주면 그 마음이 선한 것을 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속에 무엇이 있습니까? 18절에서 내 속 곧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은 줄로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속입니다.
그러면 우리 속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주님 제 마음을 아시지요?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은데 자기 속에 선한 것이 거하는 것과 같이 말하면서 주님께서 자기 마음을 알아 달라고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고 그것을 잘하는 기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입니까?
그것은 쓰레기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쓰레기보다 더 더럽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사람이 악을 행하고 있는가 하면 그 마음이 더럽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고 있지만 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또 자기 마음이 어떻다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토입니다
썩어 없어지는 사람입니다. 그 썩어 없어지는 것에서 무슨 선한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이 마음과 영을 결합을 해서 마치 자기 마음이 깨끗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자기 마음이 선한 것으로 바뀌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성령이 오셔서 감동을 한다 해도 내 본래의 마음은 바꾸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악을 행하는 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할 때는 이미 마음에서 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만 사람이고 이 시대 기독교인은 사람이 아닙니까? 바리새인의 마음만 더럽고 이 시대 기독교인의 마음은 더럽지 않습니까?
바리새인만 악을 행했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전혀 악을 행하지 않고 있습니까?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악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다보니까 자기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무엇을 해서 주님께서 지금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은 것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조상 대대로 유전으로 먹을 때 손을 씻고 먹었습니다. 그러면 바리새인이 먹을 때 손을 씻는 것은 악한 일이고 이 시대 먹을 때 기도를 하는 것은 선한 일입니까? 사도 바울이 내 속 곧 내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자기 육신으로 하는 것을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속입니다.
이것이 바리새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 역시도 자기 속에는 선한 것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한 것이 없는데 선한 것을 하려고 하는 그 자체가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이 손을 씻고 먹는 것은 악한 일이고 자기들이 기도를 하고 먹는 것은 악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바리새인만 이렇습니까?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가 있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하나도 해당이 안 됩니까? 이것은 사람의 마음에 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에도 바리새인의 마음에 있는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가 있어서 내가 원치 아니하는 것을 행하면 내 속에 있는 죄가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율법이 신령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만일이라는 가정 하에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입니다
사도 바울도 안 합니다. 이 시대 역시 성령의 감동을 받고 사도 바울과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성도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려 있다는 것도 늘 생각해야 합니다. 확연하게 타나나는 것은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 성령을 받은 성도라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에서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셔서 천국으로 구원해 주실 줄 확신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의 속에는 아니 육신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악한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우리 육신은 죄 아래 팔렸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속입니다.
그것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거의 불교의 사상이 그대로 교회 안에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이 바뀐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바꾸려고 하고 있고 그것을 자기들의 육신의 모양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속이 바뀝니다.
그것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육신의 모양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그것을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령이 오시면 자기 속이 바뀌어서 그런 모양이 나타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어떻게 해도 육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은 아무리 성령이 오신다 해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원치 아니하는 것을 행하면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입니다.
모두가 이것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성령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오신 것은 영의 일이지 우리 육을 변화 시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 육체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성경 어디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오셔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을 낳게 하고 있습니다. 그 영이 하늘의 생명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하는 일이 그 일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령이 오셔서 자기 속이 변해서 자기가 겉으로 모양을 내고 있다고 하면서 그 악한 행위를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내 속에 거하는 죄입니다.
사도 바울의 속에만 죄가 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똑같이 거하고 있습니다. 그 죄가 악의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선하다고 하고 있고 의롭다고 하고 있습니다. 원치 아니하는 것을 하면서도 그것을 간절히 원하면서 하나님께 자기들이 더 많은 악을 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밤을 새워가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내 속도 육신입니다
그것이 마치 육신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내 안에 오셨다 해도 내 육신은 육으로 난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 육신은 원치 아니하는 일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신령하다는 것을 깨달은 성도는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입니다
또 하고 있다면 만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절대 다수는 악의 모양을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악을 행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악한 일이라고 하면 도리어 핍박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절대로 이 악에 대해서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악의 모양을 내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속에는 악만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설령 성령이 오셨다 해도 그래서 생명이 있다 해도 우리 마음은 역시 악한 것이 있습니다.
나오지 않게 하시기 바랍니다.
내 속에 있는 그 악한 것이 나오지 않게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이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더럽게 하고 있다는 말씀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또 악한 것이 나오지 않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7:21절을 보겠습니다. (신 248쪽)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깨달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깨달은 그것을 이 시대는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다보니까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고 악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도덕적인 죄를 짓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못 보면 사망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고 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면 그는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죄를 짓고 악만 행하다가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경을 전혀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이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그리고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이 성경을 보고 푸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재앙이고 남도 죽이는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냥 깨달아 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내가 성경을 많이 본다고 해서 깨달아 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성령을 보내 주신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늘 깨어 성경을 보면서 그 안에서 영생을 얻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 뿐 아니라 이제까지 글로 남겨놓은 신학자들을 보아도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성경을 성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지혜를 가지고 보았습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보면 늘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들도 지혜를 구했다고 말하겠지만 지혜를 얻지 못했다면 구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으라고 하니까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깨달아 지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주님께서 내가 가면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 주신다고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성경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시는 조건이 있습니다. 반드시 오순절이 되어야 성령이 오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이 오려면 반드시 유월절을 먹어야 합니다. 유월절을 먹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도 성령이 오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갈라디아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서냐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오시려면 반드시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그 복음이 바로 무교병입니다. 누룩이 섞이지 않은 무교병을 먹어야 유월절을 먹을 수 있고 그 유월절을 먹은 성도에게만 오순절이 임하여 성령이 오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오셔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가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오시면 율법의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데 까지 자라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을 만나고 나서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자기가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 지켰던 율법이 신령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난 이후로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한 법을 깨달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육신으로 율법을 지켰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난 후에 주님을 만나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에게 계시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이 한 법을 깨달았는데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3:28절을 보겠습니다. (신 40쪽)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내가 한 법을 깨달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곧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육신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은 내 안에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선을 행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육신은 악만 행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입니다
그들만 안에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역시 육신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 악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려고 했습니까? 그들도 영생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만 그 속에 외식과 불법이 가득합니까?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 육신으로 무엇인가를 하려는 순간에 우리 역시 어떻게 하는가 하면 사람들에게 옳게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행위들이 누구에게 옳게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에게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옳게 보이려고 하고 있습니까?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옳게 보이고 말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심장과 폐부까지도 감찰하시고 우리의 체질을 다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말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지으셨는데 모르시겠습니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나쁜 의미의 일들이 이 시대 그대로 교회에서 나나타고 있습니다.
악이 있습니다.
그 악이 무엇인가 하면 사람이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는 모든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도 구원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살았지만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에게 옳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고 그 안에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바리새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을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바리새인과 같이 겉으로는 옳게 보이려고 하나 그 속에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합니다. 그것이 육신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옳게 보이려고 하는 그 모든 행위가 사실은 우리 속에 있는 외식과 불법으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천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생을 얻고자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그런 구원을 바라면서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옳게 보고 있는 그 행위가 속에 있는 외식과 불법이며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육신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사도 바울이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이 천국에 가기를 원하고 있지만 육신에는 악만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next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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