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3: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27쪽)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라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무엇을 말씀합니까?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속한 피조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우리 성도들은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제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서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입니다
헬라어로는 정확하게 (Cosmos)코스모스라고 합니다. 우리가 우주를 이야기를 할 때도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씀을 하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창조된 모든 것을 세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성경은 도무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나님과 동등하심을 그리고 그분이 하나님의 본체시라는 것을 이 시대 종교는 믿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유대인들과 같이 이방의 종교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주님께서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려면 그분이 하나님이 되시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고는 이 말씀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다 세상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해도 우리 육체는 다 세상에 속해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보고 종교인들은 자기들이 종교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마치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것으로 불교적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영으로 부활을 하심으로서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그럼으로 지금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에게 참으로 놀라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생명을 얻은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입니다
평생을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는 그들이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듣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는 자가 없기 때문에 이 생명에 대해서 전할 수도 없고 생명에 대해서 듣지도 못한 그들이 인생의 철학에 따라 종교의 교리에 포승으로 묶여 문자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피조물들입니다
다 세상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인생들을 헛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티끌과 같은 존재라고 하지만 종교인들은 자기들이 표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대단한 존재나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볼 때 구더기를 보는 것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를 보는 것은 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들을 벌레라고 구더기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인들은 자기들이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 역시도 세상에 속한 자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 피조물은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역시 세상에 속한 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지만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생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자냐 아니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들로 얻게 하는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을 보고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가 아무리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이 생명이 없다면 역시 세상에 속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도 말씀합니다.
골로새서에서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까?
성경은 죽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은 육체로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습니까? 우리는 죽었고 우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의 생명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런데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그들이 그저 종교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자기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태초에 있는 생명이 있어야 하고 주님께서 그래서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을 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신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길로서 보여 주신 일을 믿고 우리 믿음이 태초에 있는 생명과 연결이 되어 실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양들이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몸이라는 말씀은 한 떡이라는 말씀과 같고 같은 생명을 가졌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몸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골로새서 3장3-4절에서는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감사라는 말로 표현을 하고 있지만 우리 성도들이 얻는 생명이라는 것은 사실 상상이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사실 제가 우리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생명을 얻는 자는 감사라는 말로만 표현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저는 믿고 있고 그래서 은혜라는 말씀으로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전에 있는 영화입니다
창조가 되기 전에 있던 영화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창조된 피조물들은 다 죽은 자이고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창세 전에 있던 영화인 태초에 있는 생명과 연결이 되고 있고 그래서 우리 성도를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으로는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요한복음17:15절을 보겠습니다. (신 178쪽)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비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 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에게서 그들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묻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확인을 하는 것과 같은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요한복음17장은 주님께서 기도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과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되는가를 물어 확인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성도만이 알고 있는 말씀을 확인해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그분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까지도 다 알고 계시는 분이고 그것을 이 세상에 오셔서 이제 아버지께로 가시면서 다시 확인을 하면서 묻고 있는 말씀입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성경까지도 마음대로 변질을 시키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열심이 얼마나 무모한가를 알아야 하는데 지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그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가능한 원문 그대로 보는 것이 맞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이 번역을 하다보니까 약간의 오류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오류는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 성경은 제목이라든지 밑에 첨삭이 되어 있는 것들로 하여금 진리를 알아 가는데 오히려 더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열심입니다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열심이 오히려 악한 일이 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가능한 그런 사람의 열심을 제외하고 원문 그대로 번역을 했다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제가 하는 말에 대해서 부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러면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선지자들로 기록하게 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성도라면 감히 성경에 첨삭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알고 있다고 하는 그것이 나중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까를 늘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그 이상을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자기들이 피조물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교만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구더기가 우리 인생하고 교제를 하겠다는 것보다 더 큰 잘못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만한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창조가 된 인생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인생에 대해서 무덤에 있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창조하신 일의 영광을 깨닫지 못하는 인생들이 창조된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아주 작은 지식으로 오만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그것이 종교입니다.
인생의 철학입니까?
그 자체가 오만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혜가 있다고 하면 할수록 더 그렇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인생들은 자기들이 창조된 세상에서 배운 지식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더욱 더 오만한 자가 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피조물과 피조물입니다
그 관계도 엄청나다는 것을 제가 말씀을 하지 않아도 누구라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피조물과 창조주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종교인들은 성경에서 택함을 받았다는 말씀이 있고 아들들이라는 말씀이 있다 보니까 자기들이 대단한 존재나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잘나서도 아니고 뛰어나서도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말씀을 할 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 안에만 들어오면 인생들은 자기 지식으로 오만해지고 있습니다.
시편에서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시고 있지만 이 겸손이 무슨 겸손인지도 모르고 그저 인생의 철학적 생각으로 자기들의 종교 안에서 겸손의 모양을 내는 것으로 겸손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입니다
이 겸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교만한 자입니까?
교회 안에서 간음하는 여자들이 교만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교만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하는 것을 세상과 벗된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겸손의 모양을 내라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인생의 이성으로 종교 안에서 겸손의 모양을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피조물이라는 것을 인정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지혜를 구하고 성령을 구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종교입니다
그들은 조금도 변하지가 않았습니다. 유대교인들과 이방의 종교인들은 똑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하는 행위가 무슨 행위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그것을 악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보고 도리어 선한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이 말씀은 주님께서 기도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십자가를 지시고 하늘에 올라가시기 전에 그러니까 세상을 이기시면서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마지막으로 묻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11:5절을 보겠습니다. (신 365쪽)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생명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일이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에 대한 기초가 든든히 서 있지 않으면 성경은 정말 어려울 수밖에 없고 진리로 인도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초입니다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어떤 말씀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이 말씀에서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앞에서 이미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말씀에서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알고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으면 혹시 성경에 다른 말씀이 있다고 해도 기초가 되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말씀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입니다
우리가 율법만 보더라도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말씀도 있고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보다보면 어느 말씀이 맞는가를 알 수 없어서 어떤 때는 율법을 폐하여졌다고도 하고 있고 율법을 지키라고도 하고 있는 것이 종교인들이라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론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과 같이 주초를 든든히 세우지 않아서 어느 말씀이 기초가 되는 말씀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기초를 든든히 세우고 있습니다.
기초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를 가려면 반드시 태초에 있는 생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를 갈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창조된 세상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된 자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말씀이 바로 히브리서의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녹입니다
그가 하늘에 올라갔습니까? 그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습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주님께서 요한복음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한 그 말씀은 거짓이 되고 우리는 성경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히브리서의 말씀을 그냥 보면 주님께서 요한복음3장에서 말씀을 하신 것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말씀과 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보고 사람들은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누가 복음에서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신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말씀을 보고도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무엇입니까?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죽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녹입니다.
그 역시도 인생인 에녹입니다. 그가 산 자입니까? 죽은 자입니까?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기초로 세우면 그 역시 죽은 자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자꾸 인생을 생각을 하니까 우리가 마치 산 자로 생각을 하는데 에녹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입니다.
육체입니다
우리는 먼지와 같은 존재이고 티끌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이라는 것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헛것입니다. 인생들이 생각할 때는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우리는 다 죽은 자입니다.
인생 에녹은 죽은 자입니다
그 죽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라고 하는 말씀이 충분히 이해가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은 다 죽은 자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다 죽은 자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없기 때문에 다 죽은 자입니다. 그건 에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에녹을 생명으로 옮기셨다면 그는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셨다고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화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비유로 해서 에스겔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신 일에서 보면 우리 인생은 다 죽은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무덤에 있는 자와 같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신을 주어,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살게 하신다고 그러니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게 하심으로 해서 고토에,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영화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러니까 창조를 다 이루신 일에서 보면 우리는 다 죽은 자이고 마치 무덤에 있는 자와 같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믿음이 있는 에녹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에녹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다고 인생의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언어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우리 생명을 얻은 자를 역시 같은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는 것을 인생의 언어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녹을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라는 말씀을 우리 성도는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에녹입니다
그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습니까? 그러면 지금 우리 믿는 성도들 역시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고 그것을 번역하면서 약간의 표현적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는 사람이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보다
느끼다, 경험하다. 라는 헬라어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에녹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인생이 경험하는 죽음을 느끼지 않고 그냥 생명을 얻은 자가 되어서 그 육체는 아담에게 말씀을 하신 것과 같이 흙으로 돌아갔다는 말씀으로 믿고 있습니다.
이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헬라어의 원문의 뜻이 더 정확하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실 보다. 라고 번역을 하는 것보다는 느끼다, 경험하다. 라고 번역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느끼다, 경험하다. 라고 번역을 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히브리서의 말씀이 이제까지 알고 있는 육체와 태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충돌을 하지 때문에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믿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들에게 이 육체가 대단한 것과 같이 생각이 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이 육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헛것입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그것이 죽음을 보지 않고 생명으로 옮기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옮기웠다. 는 말씀은 믿음으로 생명을 얻은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창세기5장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는 말씀도 역시 데려가셨다는 말씀도 어디로 무엇을 데려가셨는가를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저 세상에 있지 않다는 말씀을 보고 마치 그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것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요한복음3장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에 정면으로 부딪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녹입니다
그가 죽음을 느끼지 않고 경험을 하지 않고 옮기웠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무엇보다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기 위함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은 우리 피조물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에 있습니다.
제자들 역시 세상에 있습니다. 그들이 죽는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우리 성도들은 믿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주님께서는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1:13절을 보겠습니다. (신 112쪽)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우리는 인생입니다
사도 바울이 인생에 대해서 정의를 해 주고 있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사도라고 하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지만 그 역시도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합니다.
너희가 악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창세전에 주님과 아버지가 가졌던 영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으로는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없고 그것을 주님께서는 너희가 악하다는 것을, 우리 인생은 그 자체로 악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선과 악입니다
인생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고 그 언어를 아는 것으로 악에 대해서 그리고 선에 대해서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철학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으로는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런 피조물들은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철학에 따르는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선하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악합니다.
종교의 모든 행위는 악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행위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성령을 구해서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4장부터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성령이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심을 받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악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아는 일입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종교에서와 같이 율법을 지키지 않게 하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없는 율법의 행위를 주님께서는 악에 빠지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우리 인생의 철학으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면 우리 성도는 교회 안에서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을 수 있게 되고 그것을 주님께서는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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