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8:19-20 절을 보겠습니다. (구 275쪽)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니라”
성경입니다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강조를 하고 또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인생들은 종교 안에서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너무 당연하게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은 이것이니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도 주님께서 내가 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서는 한 사람도 잃지 않았습니다. 다만, 멸망의 자식만 잃은 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다고 말씀을 하니까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멸망의 자식이 아니라고 합리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14장부터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아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7장은 우리 성도가 믿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보고 자기가 멸망의 자식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성도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성도는 주님과 하나님이 하나시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 역시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압니까?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것과 같이 하나가 되는 일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창세 전에 아버지와 가졌던 영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입니다
연결을 해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은 바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모든 말씀에서 무엇을 증거를 하는가를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성경을 보고는 있지만 그 문자를 인생의 철학으로 아는 것에 그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입니다
생명으로 하나가 되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을 얻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라고 해도 안 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면서 성경을 보는 것이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이고 그런 그들이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멸망의 자식은 마치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17장9절부터의 말씀은 교회라는 세상과 그리고 우리 성도에게 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라는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보아도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는지를 모르고 있고 우리 성도만이 아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방의 종교를 보아도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교리를 보아도 이 세상 모든 종교가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이 신체의 부활을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주님과 아버지가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하나인 것과 같이 우리 역시 창세전에 있던 영화를 믿음으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어 하나가 된 일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입니다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자와 그리고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멸망의 자식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모세의 예언과 같이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신명기입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신을 섬깁니다.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앗수르에 멸망을 할 때까지 그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 유다는 성전이 있어서 직접적으로는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를 청종치 아니함으로 해서 바벨론의 그러니까 종교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영생을 얻는 일을 하지 않고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율법의 나라 바벨론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거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특별하게 잘못 믿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생의 철학이고 종교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멸망을 당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누가 멸망의 자식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멸망의 자식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거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앗수르와 그리고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으면 이방인들 역시 바벨론이라는 종교에 의해서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있지만 인생들은 자기 합리화를 시키면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교회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멸망을 당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지금도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나타내시고 이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어 주님과 아버지가 하나인 것과 같이 우리도 하나가 되어 멸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17:13절을 보겠습니다. (신 178쪽)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제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내가 세상에서 이것을 아뢰는 것은, 내 기쁨이 그들 속에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주님의 말씀과 같이 성령을 구해서 받아야 합니다. 이 성령은 종교에서 말을 하는 것과 같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아니라 진리의 영이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듣고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부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성경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는데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과 같이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은 죄송하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물론 복음을 듣는 자와는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늘 성경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성경을 안 보고 성경을 바로 풀지 못하고 있다면 그에게서 듣는 사람은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7장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면서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우리 성도가 어떻게 되는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라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앞에 말씀은 제자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지만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게 된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입니다
주님께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성도들 역시 하나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가 되어 생명을 얻은 성도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사도들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도 교회 안에는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보다는 종교를 만들려고 하는 세력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들이 사도들이 죽은 후에는 거의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불과 100-150년 정도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후 100년 동안은 그래도 복음을 가진 자들이 있었지만 급속하게 종교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도 잘 알고 있듯이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서 이방의 종교가 공인이 되었고 실상은 그 전에 이미 종교의 기운은 싹트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복음을 전하는 자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자가 있었지만 그들의 숫자가 너무 적어서 그 흔적조차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볼 때 정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입니까?
거의 2000년 동안 유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했지만 그들은 다 종교에 의해서 그들의 교리에 포승으로 묶여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았습니까? 종교인들은 저에게 욕을 할지라도 저는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종교를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이 시대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의 작은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종교서적이라고 하는 곳에 가서 보아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내가 지금 아버지께로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17장을 말씀을 하고 난 후에는 바로 대제사장들이 보낸 사람들에게 잡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뒤 삼일 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으로 부활을 하시고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 것과 같이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요한계시록7:10절을 보겠습니다. (신 406쪽)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구원
저 역시 예전에는 이 구원에 대해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하게 정의를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종교에서 살아왔고 종교에서 만든 신학교를 나오다보니까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보면서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성경을 보면서도 더 이상 상고를 할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구원에 대해서 받아들였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예전에는 그저 막연하게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했고 또 그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구원에 대해서 담대하게 말씀을 할 수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고 있습니다.
예전에 쓴 설교를 봅니다.
제가 참으로 무지했다는 것을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 성도들을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이방인들의 종교가 얼마나 잘못된 교리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강해입니다
제가 이 강해를 마치고 나면 이제까지 썼던 설교들을 다시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잘못 된 것들은 다시 쓸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그때는 제가 아직 이렇게까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했었고 이 요한복음을 이제 거의 마치면서 이제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구원은 전혀 성경과 다르다는 것을 이제는 우리 성도님들도 알고 있습니다. 종교는 인생의 철학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그 문자를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경계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말 저도 모르게 이 종교의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다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입니다
그것과 사실 세상에서 말을 하는 구원과는 전혀 틀이지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의 종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슬람이 있습니다. 불교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세상에 있는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말을 하는 구원입니다.
결국에는 다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자기들이 믿는 대상만 그리고 종교만 다를 뿐이지 그들이 말을 하고 있는 구원은 다 같습니다. 윤회를 하든 아니면 연옥에 가 있든 그리고 직접 천국으로 가든 다 신체의 구원을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세가 같습니다.
결국에는 세상의 철학적으로 따지면 다 좋은 곳입니다. 다만 누가 있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표현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결국에는 우리 인생들이 종교를 가지는 것은 다 내세를 위해서인데 그렇다면 이 세상 종교는 다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만 다릅니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는 내세와 신체의 안녕은 거의 같습니다. 그렇다면 종교가 다르다고 하는 것도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다르게 보는 작은 가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세를 이야기를 할 때 모두가 같다면 굳이 종교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하지만 특히 이 요한복음은 영생에 대한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성경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주님께서는 영의 일을 말씀을 하시면서 영생에 대해서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 피조물들은 이 우주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할 때는 이 우주가 사라지는 것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졌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 역시 문자적으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이 우주는 하나님에 의해서 태초에 창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입니다
자기 신체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귀신도 나오고 있고 서양에서는 영혼이라는 것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귀신과 영혼을 보면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대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막연하게 구원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종교는 신체의 구원을 주장을 하다 보니까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 거대한 종교의 교리로 세워져 있다 보니까 감히 어느 누구도 그런 구원에 대해서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야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시지 못하면 우리의 구원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보고도 그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 아주 쉽게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길입니다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하심으로 우리가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보고도 성경을 깨달을 수 없으니까 자기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우리 피조물과 같은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을 어떻게 받는가를 먼저 보여 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육체로 오셔서 아버지께로 가신 그대로 우리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금 아버지께로 가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는 우리 성도만이 아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오직 주님만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신 일을 믿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우리의 믿음이 태초에 있는 생명과 연결이 되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부활의 영광에 참예를 하는 말씀을 보고 믿고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자기가 죽으면서 하나님께로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를 성경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니까 성경보다는 자기들의 철학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피조물의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피조물들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보여 주시기 위한 예표로서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영으로 부활을 하셨고 그 영은 태초에 있는 생명이며 이 생명은 하나님을 말씀을 할 때 생명의 원천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로 가시는 일입니다
너무 쉽게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휘장 안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심으로 해서 우리에게 소망이 되고 있고 우리가 그 길을 따라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가 그렇게 간다는 말씀이 아니라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입니다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이고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보고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2서1: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95쪽)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14장에서 말씀합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게 되면 이렇게 한 생명이라는 것을 우리가 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입니다
이렇게 한 생명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생명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셔야 합니다. 그것을 히브리서에서는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생명이 될 때 주님께서 들어가신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는 우리 생명이 부활의 형상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생명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신 목적과 같이 양들이 되어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영으로 부활을 하셔서 아버지께로 들어가신 것과 같이 한 떡이 되어 있는 양들 역시 절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맥추절에 누룩을 넣은 떡과 같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그렇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참으로 우리 피조물들에게는 놀라운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보고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 성도들에게 얼마나 능력이 되고 힘이 되는 말씀인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교인들은 종교 안에서 그저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고 그런 그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쁨이 무엇인가를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다고 그러니까 우리 성도가 교회 안에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아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입니다
반드시 이렇게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셔야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태초에 있는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신 그 기쁨을 우리 성도들 역시 충만하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반드시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성도들만이 주님의 기쁨을 충만히 가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입니다
주님께서는 영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생을 얻는 일을 우리 성도가 믿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신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주님의 기쁨이고 우리 역시 그 기쁨을 충만히 가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체의 구원입니까?
정말 이것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불교도 신체의 구원을 그리고 이슬람도 신체의 구원을 이야기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무당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구원으로는 주님의 기쁨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나타내시고 있고 그것을 5절에서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렇게 주님께서 지금 아버지께로 가심으로 해서 우리 성도가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신 기쁨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우리는 인생이기 때문에 이 생명에 대해서 이해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 피조물이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충분히 기뻐할 수 있는 일이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할 때는 저 역시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조금이라고 말씀을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전혀 알 수 없는 생명이기 때문에 저 역시 인간적으로는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다는 그것만으로도 우리 성도의 믿음이 충만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늘에 가십니다. 피조물의 생명을 입고 오셨다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을 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 그 생명으로 부활을 해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는 성경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입니다
저 역시도 감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조금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 성도가 태초에 있는 생명을 얻는 일을 내 기쁨을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저 역시 이 기쁨이 얼마나 충만한지를 감히 느끼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입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죽지 않고 썩지 않는 거룩한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언어적 표현이고 주님께서는 하나님으로 부활을 하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역시 이 생명으로 첫째 부활의 영광에 참예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우리 인생의 언어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16:11절을 보겠습니다. (구 812쪽)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다가 아버지께로 가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7장13절의 말씀은 시편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상상이 안 됩니다
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 영생을 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기쁨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우리의 실상이 되고 있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이 요한복음을 보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든든한 믿음에 설 수 있게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태초에 있는 생명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1서에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태초에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봐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생명의 기쁨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그냥 생명이 아니라 태초에 있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 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지금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기쁨이 무엇인가를 아주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면서도 그저 천국에 간다고 하면서 종교 안에서 자기들의 육체로 하는 행위를 보고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 기쁨은 육체적으로 누리는 기쁨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알고 우리는 이 생명을 믿음으로 얻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십니다.
그냥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태초에 있는 생명으로 부활을 하심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 생명을 얻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 기쁨이 얼마나 큰 가를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께서 우리 피조물과 같은 육체를 입고 오셔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심으로 해서 세상을 이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후에 아버지께로 가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으로 가는 기쁨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에게 그 기쁨이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next 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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