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7:10절을 보겠습니다. (신 248쪽)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단 하나의 율법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너무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단 하나를 지키나 모든 율법을 지키나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를 말해도 율법이라고 하고 있고 모든 율법도 율법이라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이 기회를 탔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모르니까 당연히 율법이 기회를 타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 율법을 깨달았다면 절대로 죄가 기회를 타지 못하게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 죄가 기회를 타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가 기회를 타고 있습니다.
죄를 깨달아 보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그 죄가 사망에 이르는 죄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죄가 기회를 타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죄를 지면서도 사망에 이르는 죄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죄가 기회를 탑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에 매우 강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잡으려고 갔던 사람입니다 보통 열심히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그렇지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이었기 때문에 죄가 기회를 탔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열심입니다.
그 열심이 자기를 속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기독교가 얼마나 열심이 많이 있습니까? 죄가 기회를 타기 너무 좋을 정도로 열심에 대단합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사도 바울로 하여금 율법을 지키게 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입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왜 지키고 있는가 하면 죄가 기회를 탔기 때문에 지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기회를 탔는가 하면 율법을 깨닫지를 못해서 죄가 기회를 탔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있지만 율법에서 그림자를 걷어 내지를 못하니까 죄가 기회를 타게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을 왜 지킵니까?
율법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누구에게 사기를 당합니다. 왜 사기를 당합니까? 그 사람에 대해서 바로 알았다면 절대로 사기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가 사기를 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도 사기를 당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안다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아무리 그가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분야에서 박사지 다른 분야에서는 바보와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알고 있는 그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에게 속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보면서도 속고 있습니다.
왜 속습니까?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옳습니까? 여러분에게 질문하는 제가 더 이상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물어 보면 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그가 세상 법을 어기고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기본적인 생각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나쁘다면 절대로 안 속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속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악한 일을 하고 있다면 절대로 속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왜 속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바르다고 생각하니까 속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 안 속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는 등 얼마나 옳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 옳은 것을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키지 말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사람들은 그럼 살인을 해도 되고 도적질을 해도 되느냐고 저에게 물을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하라고 했습니까? 성경에서 율법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백이면 백사람이 다 그렇게 반문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린도전서15:33-34절을 보겠습니다. (신 283쪽)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죄가 기회를 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가 기회를 타서 속이고 있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속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세상 적으로 똑똑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인가는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속았습니다.
당시 사도 바울은 외국어에 능통했고 여러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지식적으로 뛰어난 사람이었으면 예수님께서 그를 이방의 사도로 세우셨겠습니까? 그런 사도 바울이었지만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는 철저하게 속았습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서 속지 않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솔직히 제가 보고 알고 있는 교회에서는 속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속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앞으로 이방의 교회가 모두가 속을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감동해서 속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속는 줄도 모르고 속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입니다
자기들이 속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마도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말씀을 보면 도리어 속이고 있다고 말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에서 속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으면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속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속고 있는가를 알아야 하는데 속지 말라고 하니까 자기는 막연하게 속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 속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다 속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 사도 바울이 속았다면 이 시대 교인들 역시 다 속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더럽히고 있는가 하면 죄를 짓게 해서 더럽히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보고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세상의 도덕적인 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깨의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는 이 말씀을 보고 도리어 더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이 시대 성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지혜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의를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를 믿음으로 그것이 내 의가 되는 것이 의를 행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죄를 짓는 것은 로마서의 말씀과 같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던 그 교회들에 율법주의가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쉽게 속습니다.
아니 속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이성에는 너무도 당연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죄라고 하는 사도 바울과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의 말 중에 누가 속이는 자 같습니까? 그리스도편지에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고 있고 기독교는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볼 때 아니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누가 속이는 자 같습니까?
사도 바울도 속았습니다.
자기가 철저하게 속아 보았기 때문에 형제들아 속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무엇에 속고 있는지도 모르고 모두가 죄의 올무에 걸려 사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미 초대교회에 이렇게 속는 자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악입니다
사람의 모든 행위는 다 악합니다. 그 악한 동무들이 선한 행실을 더럽게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는 더럽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그 율법이 자기들의 이성에 너무도 좋기 때문에 모두가 속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5:6절을 보겠습니다. (신 315쪽)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디도서3:9절을 보겠습니다. (신 350쪽)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무엇으로 속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에서 속지 말라고 하는지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 시대는 성경을 보는 눈이 다 감겨져 있습니다. 모두가 속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렇게 속이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것으로 속이고 있는가 하면 헛된 말로 속이고 있습니다. 무엇이 헛된 가를 디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고 헛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한 다툼이라고 하니까 율법을 가지고 다투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에 대한 다툼이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거짓 형제가 들어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 때문에 그들과 다투었습니까? 할례를 받게 하는 그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다투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체가 다툼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그 자체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라고 합니까?
그는 교회 안에서 헛된 말로 사람을 속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속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속으면 조금 불편하고 힘들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세상의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은 조금 더 받고 덜 받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속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생명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이렇게 강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니 천국에는 가는데 거기서 사람들의 생각과 같이 상을 조금 덜 받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차원이 아니라 아예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생명에 대해서 속으면 사망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도 속아 보았습니다. 그것으로 한때 정말 힘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생명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속지 말라고 하는 것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대해서 속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는 것이지 그것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말씀을 할 필요성이 없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헛된 말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고린도전서에서는 우상의 제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쁜 의미는 거의 다 율법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면서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헛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이성에는 전혀 헛되지가 않고 너무도 소중하기만 합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영광이 됩니까?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십일조를 받으십니까? 조금만 생각해도 되는데 십일조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기꾼입니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는 사람은 다 종교 사기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들이 드리는 십일조를 어떻게 하나님께서 받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리신 것 외에는 어느 것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기꾼들은 그 헛된 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정성을 다해서 드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받으십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하는 예배를 받으십니까? 종교의 의식에 의해서 자기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그런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십니까? 그 예배 안에 온갖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는데 그 헛된 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생각하면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율법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것은 생명에 대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모든 율법을 항상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고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속아 보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속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 속아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가 몇 명입니까? 아니 이제까지 목사의 수만 세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많은 목사들이 다 율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속다 보니까 그것이 속는 것이라고 생각도 못 하고 있습니다. 아니 모두가 율법을 지키니까 율법을 안 지키는 사람이 더 이상합니다.
다수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제가 꼭 소수가 옳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다수를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다수에 속해 있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런 말씀들은 보이지가 않고 있습니다.
디도서1: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48쪽)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교회 안입니다
그 안에는 속이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속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성경을 보고 속아서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지 않아서 복음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아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면서 스스로 속고 있다고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복음에 복종치 않습니다.
이 시대는 복음에 복종하는 성도가 거의 없습니다. 복음에 복종하라고 하니까 도리어 종교에 복종을 하고 있고 율법에 복종을 하면서 죄에 더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는 복종치 아니하는 자들이 헛된 말로 교인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초대 교회에 거짓 형제가 들어와서 할례를 받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영의 일을 믿다 보니까 자기에게서 하나님을 믿는 어떤 표징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할례를 받으니까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과 같이 생각이 되었고 그런 율법의 행위가 복음에 복종치 않게 했습니다.
헛된 말입니다
율법을 지키라는 말로 속이고 있습니다. 이 시대 모든 교회가 이 헛된 말로 복음에 복종치 않게 속이고 있습니다.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이 헛된 말만 하다가 설교 중에 오직 예수라는 그 말 한 마디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 헛된 말입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라는 그 말 한 마디로 자기들이 복음에 복종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더욱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역겨워서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헛된 말만 하고 있는데도 교인들은 그 말에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헛된 것을 따라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 속이는 자입니다
아니 목사 자신도 속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알고 속이고 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세상에서 직업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속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가 그렇습니다.
왜 속이는 말인가 하면 그것이 죄고 그것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기 때문에 속이는 말입니다 아마도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 복음을 깨닫는 사람은 지극히 적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니 한 시대에 불과 100여명도 안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그것을 하나라도 지키면 안 됩니다 그것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정당성을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지킴으로 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복음에 복종치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런 거짓에 속지 마시고 정말 율법의 한 모양도 나에게서 나타나지 않게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죄가 기회를 탑니다.
어떻게 기회를 타는가 하면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게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미 바리새인으로 살아 보았기 때문에 자기 경험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계시가 되기 전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깨닫고 나니까 자기가 계명으로 말미암아 속았다는 것을 알고 로마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자기가 속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인가를 모르다보니까 복음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속이는 율법에 모두가 복종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자기에게 찾아오고 있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그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잠언21:6절을 보겠습니다. (구 934쪽)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을 비유로 해서 예수님께서 한 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만 한 부자가 아니라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 한 부자에 속해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가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기복주의까지 만연을 해서 물질로도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물질로도 부자가 되기를 구하는 것 자체가 죄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서 교회 안에서 재물을 모으고 있습니다.
재물입니다
율법의 의입니다 이 의가 재물이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에 비해서 모두가 부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단 한 가지의 율법을 지키더라도 전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세상 사람에 비해서 부자가 된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속이는 말입니다
율법을 지키게 해서 그것의 의로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게 하는 모든 것은 속이는 말입니다 이것이 다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어느 일부의 사람이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두가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면서도 이 잠언의 말씀을 보면서도 도무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줄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그 의미를 모르면 그는 소경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은 이런 잠언의 말씀을 거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속이는 말로 실제 재물을 모으지 않으려고 하고 있고 또 자기가 그런 일을 하면 스스로 정죄를 받아서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성경의 의미를 모르고 스스로 정죄를 받고 있습니다.
죽음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것이 나를 죽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무엇이 자기들을 죽게 하는 줄을 모르고 율법의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그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의 이성을 따라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이 나를 속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보면 누구라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누가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혜의 한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이 그렇게 나를 속이고 있지만 사람들은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속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 합니다
생명입니다
율법은 생명에 이르게 하는 계명입니다 하지만 이 율법은 항상 다 지키지 못하면 사망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이 생명으로 보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도로 살아가는 도덕으로 보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율법적으로 조금만 잘못을 해도 마치 자기들이 율법을 가르치지 않아서 그런 것으로 생각하면서 더욱 율법을 가르치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재물을 모으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죽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안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그 안개가 한 행위 역시도 다 사라지고 맙니다. 그런데 그것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라지는 것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는데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안개와 같이 사라집니다. 그것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속이는 말로 재물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 속이는 말이 무엇인가 하면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을 지키게 하고 있고 그 계명을 지킴으로 해서 사망이 찾아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7:12절을 보겠습니다. (신 248쪽)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어디까지나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정당하고 좋은 것입니다.”
나를 죽였습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죽였습니다. 어떻게 속였습니까? 계명을 다 지키면 생명에 이를 줄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 흠 없이 율법을 지킨 이유는 생명에 이르게 할 법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그냥 지켰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켰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분명히 생명에 이르게 할 법으로 생각하면서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들도 구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았고 자기들이 나중에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영혼을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율법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율법에 대해서 모르니까 이 로마서를 보고도 해석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신학자들이나 목사들이 강해를 해 놓은 것을 보아도 조금 어려운 말씀들이 나오면 다 삼천포로 빠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로마서를 보면서 더욱 율법을 굳게 세우는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더 잘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말씀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로마서 하나만 보아도 일관성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된다고 하고 또 이때는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말씀이 나오면 더 그렇게 됩니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고 말씀을 하니까 율법이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고 하니까 이제까지 했던 말을 뒤집어 버리는 어리석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니까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율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입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이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을 기초로 세우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아무리 보아도 이 율법을 생명과 연결을 시키지를 못하니까 교회 안에서 아무 생각이 없이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죽었습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을 속이고 그것으로 사도 바울을 죽였습니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이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왜 그런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앞에 있는 말씀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뒤에 있는 말씀만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성경은 장절이 있다 보니까 더욱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앞에 절에서 끝이 나면 그것으로 끝나고 이제 다음 절을 보면 전혀 새로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앞에 말씀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앞에 있는 말씀을 유추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뒤에 있는 율법도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는 말씀은 그냥 사도 바울이 불쑥 다시 하는 말씀이 아니라 앞에 있는 말씀을 유추를 해서 율법도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로 보건대는 싹 빼버리고 이제 율법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율법도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도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데 그것을 안 지킬 수 있습니까? 안 지키는 사람은 율법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국어입니다
아니 국어의 문제가 아니라 헬라어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정말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국어 성경을 보아도 이로 보건대 라는 말씀을 보고 유추를 하지 못하는데 헬라어 성경을 보고 영어 성경을 보면서 그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 언어도 유추를 못하는 그들이 외국어를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필요합니다.
제가 헬라어를 전혀 공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그 원어의 정확한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헬라어를 몰라도 우리 한글개역성경만으로도 충분히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성경을 너무 쉽게 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을 보기 전에 이미 자기 안에 성경에 대한 지식을 다 가지고 보고 있다는 것이 맞습니다. 특히 목사들은 신학에서 배운 지식을 가지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성경을 보다보니까 성경을 성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배운 신학을 토대로 해서 보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물론 저는 그래도 제 멘토라고 할 수 있는 분이 상당히 복음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 역시도 율법을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지금 여러분과 교제를 나누고 있는 이 말씀들을 제가 배우서 안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성경을 보고 깨달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기억도 안 납니다.
이제는 신학에서 배웠던 것이 기억이 나지도 않습니다. 아니 제가 배웠던 책들을 가끔 가다 시간이 있을 때 보면 그 책들이 얼마나 종교에 빠져 있는 서적들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책들을 보았다면 지금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입니다.
물론 100%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제가 여러분보다 잘나서도 아니고 세상적으로 지혜가 많아서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제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가 될 수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성경만 봅니다.
가능한 그 외에 책은 거의 안 보고 있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참고를 하는 책이 있다면 성경대백과사전입니다 그것도 정말 한 달에 한번 참고를 하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가능한 여러 가지로 번역이 되어 있는 성경을 보면서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볼 때는 제 이성적 지식은 다 버리고 가능한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깨달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5:18절을 보겠습니다. (신 6쪽)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로 보건대
율법이 어떻다는 것을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다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에 이르게 해야 하는 계명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가 기회를 타서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율법이 거룩하고 계명이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가를 이미 그 앞절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죽지 않았다면 율법은 거룩하지 않습니다. 계명도 거룩하지 않고 의롭지도 않고 선하지도 않습니다. 율법을 율법대로 이루지 않으면 율법은 거룩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계명으로 말미암아 속아서 죽었기 때문에 율법도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율법이 있습니다. 죄를 지면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죄를 지었는데도 죽지 않는다면 율법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거룩하지도 않고 의롭지도 않고 선하지도 않습니다. 율법으로 하면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데 죽지를 않는다면 율법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마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생각과 같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싶으면 지키고 지키기 싫은 것은 안 지켜도 되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정해서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절대로 거룩하지도 의롭지도 않습니다. 죽어야 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의롭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다 이루신 것을 말씀하기도 하지만 율법으로 우리는 다 죽어야 하는 것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졌습니다.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사도 바울을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속이고 그것으로 사도 바울을 죽였습니다. 그렇게 죽이지 않았다면 율법은 거룩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법대로 하는 것이 의로운 것입니다 법대로 하지 않으면 율법은 의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다 지키면 생명을 주는데 있어서 율법은 선합니다.
말씀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도리어 율법을 지키는 죄를 짓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도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문자를 아는 것으로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속았습니다.
속아서 죄를 지었더라도 사도 바울은 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고 말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도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율법 자체를 그렇게 보고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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