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7:13절을 보겠습니다. (신 248쪽)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입니다
반드시 법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은 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씀하다보니까 자기들이 율법을 조금 범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제가 도덕법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짓는 도덕적인 죄는 이미 주님께서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모두 지고 가셨습니다. 이제 성도는 그런 도덕적인 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도 정죄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의 율법입니다
그것은 다 폐하여 졌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은 폐하여졌습니다. 그러나 의미의 율법은 살아 있습니다. 율법을 안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아는 것으로 율법을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상 숭배입니다
이것을 문자로 알고 부처를 보고 숭배를 하는 것이 죄라고 생각을 해서 아예 절에도 안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부처상을 보는 것 자체로 자기가 죄를 짓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무지한 사람들이 절에 가서 그들이 설치해 놓은 것을 훼손하는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기는 우상 숭배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자들입니까? 우상 숭배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교회 안에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용담이 되어서 자기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실제적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감정적으로는 충분히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이 그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것이 우상 숭배라고 말씀을 있습니다. 이렇게 우상 숭배를 하면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우상 숭배를 하면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실제 우상을 숭배하는 것으로 우리가 죽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우리가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이 기회를 타서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 율법을 지키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율법의 의미를 보니까 나는 죽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고 율법이 실제 사도 바울을 죽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죽었습니다.
어디서 죽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도덕적으로 진 죄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지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속아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죽게 되었는데 어디서 죽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자체가 가증한 일입니다. 그 가증한 일을 한 사람은 반드시 율법에 의해서 죽어야 합니다. 아니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두 남편을 섬기는 간음하는 여자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어디서 죽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었습니다. 만약에 사도 바울이 율법에 의해서 죽지 않았다면 율법은 아무 의미가 없어집니다. 율법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되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간음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간음한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에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 죽이지 않으면 율법은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간음을 했습니다.
우상 숭배를 했습니다. 살인을 했습니다. 도적질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도 거룩합니다.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죽었기 때문에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죄를 지었는데 자기가 안 죽었다면 이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죄를 지었고 율법대로 반드시 죽어야 하고 또 그렇게 죽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의 율법은 폐하여졌습니다.
그 율법은 몰라도 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를 다 죄고 가셨습니다. 이제는 그 죄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통해서 깨닫게 해 주시는 죄가 문제입니다. 그 죄를 지면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자기가 살인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도적질을 하고 우상 숭배를 하고 간음을 하고 있지만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롭고 선하기 때문에 그 죄를 진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죄를 마음껏 지고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죄를 짓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율법도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교회 안에서 계명에 속아서 죄를 짓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경을 너무 모릅니다.
그런 그들이 종교적인 열심을 가지고 죄를 짓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하나라도 더 교회 안으로 끌어들여서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자기 혼자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와서 죄를 짓게 다른 사람까지 만들고 그들이 모두 지옥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율법은 선합니다.
그대로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지면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간음을 하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두 남편을 섬기는 일을 하고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자기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면 그 좋은 것이 나에게 죽음을 가져왔다는 말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죄가 그 좋은 것을 매개로 해서 나에게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죄는 죄로 드러나게 되고 계명으로 말미암아 그 죄가 얼마나 악독한 것인지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또 묻고 있습니다.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그 선한 것이 내게 사망에 되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단지 법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 율법이 나를 죽게 했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율법에 대해서 정말 바르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은 선합니다.
법을 법대로 하는 것을 나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그것이 선하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반포하실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법을 법대로 하기 때문에 선한 것이 되고 있습니다. 그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55-56절을 보겠습니다. (신 284쪽)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율법이 내게 사망이 되었습니까?
율법 그 자체가 나를 사망으로 이끌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가 않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그 자체로는 내가 사망을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율법이 있다고 해서 그 율법이 선한 것이라고 해서 내가 사망에 이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율법을 깨닫지 못하고 죄를 지기 때문에 죄의 권능으로 율법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당하는 것이지 죄를 짓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도 율법을 깨닫기 전에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 역시도 그렇게 죄를 지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 자체가 우리를 사망으로 가게 하지는 않습니다.
율법이 사망입니까?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우리에게 율법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를 보고도 율법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지금 이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억지로 성경을 풀다가 모두가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모릅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율법을 깨달은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이렇게 율법에 대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로 정의를 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율법에 대한 정의가 바로 서지 않으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도 없고 반드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율법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서 가르치는 사람이 없다 보니까 교회는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왔습니다. 이 시대는 점점 주님이 오셨을 때의 바리새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율법이 사망이 되지 않습니다.
율법이 있는 것으로 나에게 사망이 되지 않습니다. 율법을 깨달은 성도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고 말씀을 하면서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이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조차 이 시대 목사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율법을 지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율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달은 성도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사망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모르게 되면 죄를 짓게 되어 그 죄가 사망을 가져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율법의 권능으로 사망을 당하는 것이지 죄를 짓지 않으면 사망을 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입니다
율법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사망을 당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이 있어도 율법을 깨달아서 알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계명의 모든 계명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율법을 지키는가 하면 율법을 깨달은 성도만이 율법을 지키고 있고 깨닫지를 못한 사람은 교회 안에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반드시 죄를 진 사람만 사망을 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도덕적인 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의미적으로 알고 있는 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죄입니다.
율법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는 율법을 깨닫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율법 그 자체가 우리에게 사망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반드시 죄를 진 사람에게 사망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하지 않으면 됩니다.
누가 율법을 범하는 사람입니까? 아마도 율법주의자들은 우리 성도들이 율법을 범한다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고 있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까지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속아서 죄를 지어서 사망에 이르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그렇게 했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계명으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을 속이고 죄를 짓게 해서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이 있었어도 계명으로 말미암아 속지 않았다면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사망을 당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 율법을 지키는 죄를 지었을 때 사망을 당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율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깨달을 후에 사도 바울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율법이 우리를 사망을 당하게 하지 않습니다.
아니 율법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사망을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죄가 율법을 매개로 해서 죄를 짓게 해서 사망을 가져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입니다. 그런데 죄의 권능이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죄를 지면 율법이 사망을 당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도덕적인 죄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도덕적인 죄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율법을 깨닫지를 못하면 무엇이 죄인 줄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성경 전체가 해석이 안 되어서 교회 안에서 가르치는 자들이 다 도덕 선생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죄가 아니라 율법을 깨달아서 아는 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못 깨달으면 어떻게 됩니까?
죄를 지면서도 죄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이 그랬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그들과 똑같이 죄를 지면서도 그것이 죄라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로마서의 말씀을 알려면 최소한 죄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보고 율법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죄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이 로마서의 말씀을 아무리 보아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죄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율법이 왜 선하다고 하는가를 알아야 이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앞에 있는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면 뒤에 있는 말씀을 전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앞에 말씀이 깨달아지지가 않으니까 억지로 풀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율법을 보아도 그것의 의미를 모르고 있고 죄가 무엇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고 그러다보니까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다는 이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선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선한가 하면 법대로 하기 때문에 선합니다. 만약에 법대로 하지 않으면 율법은 선하지 않습니다. 선하다는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법대로 하지 않으면 선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인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법대로 하셨습니다.
율법을 반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법대로 하시고 있습니다. 간음을 한 자는 반드시 죽이시고 있고 살인한 자도 죽이시고 있고 우상 숭배를 하는 가증한 일을 하는 자도 역시 죽이시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육체가 죽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법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은 늘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육체의 일이 아니라 영이 일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이 죽어도 죽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하나님께서는 법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우리를 위해서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이 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선하십니다. 왜 선하다고 하는가 하면 법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율법도 법대로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도 법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율법을 깨닫지를 못해서 하나님께서 마치 법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역시 법에 의해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냥 사랑하십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그런 막연한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법에 있는 그대로 사랑을 하시고 있습니다. 율법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법대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있고 그 율법의 의미를 깨닫는 성도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체가 나에게 사망이 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럴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못 오해를 하면 마치 율법 그 자체가 사망이 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가 드러났습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기 때문에 율법이 사망을 주는 것이지 율법 그 자체가 사망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이 율법으로 사망을 당하고 있습니다. 왜 사망을 당하는가 하면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무슨 죄를 짓습니까?
나 외에 다른 신을 섬지지 말라고 했는데 기독교는 다른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여기게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있습니다. 살인을 하고 있습니다. 간음하고 있습니다. 도적질을 하고 있습니다. 이웃에게 거짓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웃의 것을 탐을 내고 있습니다.
죄가 드러났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이 죄를 짓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이 죄를 짓고 있다면 화를 낼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십계명의 어느 한 계명도 지키지 않고 모두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 죄가 드러나기 때문에 율법이 나를 죽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죄가 안 드러납니다.
그러면 율법이 나를 죽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죄를 짓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교회 안에서 늘 죄를 짓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들이 짓는 죄를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의롭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죽게 만들었습니다.
무엇이 사도 바울을 죽게 만들었는가 하면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명입니다
죄로 심히 죄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죄가 되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지키고 있는 율법이 심히 죄 되게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죄를 지면서도 죄라고 생각조차도 안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그 자체가 사망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죽게 했기 때문에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를 심히 더 많이 짓게 죄가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율법의 계명입니다
그 하나의 계명들이 죄를 짓게 하고 있습니다. 어느 죄를 짓게 하고 있는가 하면 죽을 죄를 짓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선한 그것으로 내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죄를 짐으로 해서 율법으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명입니다
그것이 죄로 심히 죄 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에서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보고 죄가 심히 죄 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가 율법에 대해서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를 확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로마서7:14절을 보겠습니다. (신 248쪽)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현대인의 성경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율법이 영적인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나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 되어 죄의 종으로 팔렸습니다.”
율법
이 시대는 다 육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의 율법은 육적인 것입니다. 사실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은 신령하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좋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깨닫기 바랍니다.
율법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에 있는 율법을 보고 다 육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고 지키는 모든 사람은 다 육적인 것으로 만들어서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리가 율법이 신령한 줄을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있지만 율법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율법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싶다고 해서 믿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모릅니다.
저 역시도 이 율법을 깨닫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로 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왜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성경에서 정의를 하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성령의 감동으로 율법이 보이기 시작을 했고 그 율법에서 그림자를 걷어 내고 나니까 율법이 깨달아 졌습니다.
율법은 신령한 것입니다
한글개역성경에 율법이 신령하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또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정말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이 신령하다고 하니까 마치 지키라는 의미에서 율법이 신령한 것으로 알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물론 분명히 율법은 생명을 주는 법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율법을 깨달았을 때입니다. 율법이 신령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에게 생명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고 있지만 율법이 신령하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이 율법의 올무에 걸려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누구나 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신령한 것을 깨닫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율법이 신령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왜 이 시대 교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는가 하면 율법이 신령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보면서 초등학문으로 보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은 영적인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율법은 육의 말씀이 아니라 영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의 교회 역시도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육적으로 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로마서를 통해서 분명하게 율법이 어느 말씀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신령하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보고 그 안에서 영적인 말씀을 깨달으라고 이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도리어 신령하다는 그 단어만 보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그 안에 율법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성경을 보고 영적인 말씀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육적인 말씀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들을 보면 거의 다 육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까지의 목사들과 신학자들을 보면 성경을 보면서 육적으로 그대로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성경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보려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생을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이 왜 성경을 보고 있는가 하면 영생을 얻기 위해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교회에 나온 것으로 영생을 얻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성경에서 다른 것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단 한 가지의 목적입니다
그것은 영생입니다. 이 영생은 육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영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생명이 구원을 얻는 것이 영생이기 때문에 성경은 그것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영적인 말씀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고 거의 다 육신에 팔려 죄를 짓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바로 전했습니다.
이 로마서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율법이 신령한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서를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사도 바울이 구약에 있는 율법을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와 같이 문자 그대로 보았다면 절대로 로마서를 기록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아라비아로 가서 자기가 이제까지 지켜왔던 율법을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이제까지 자기가 지켜왔던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보기 시작을 했고 그 율법을 보면서 영적인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기 때문에 그런 패러다임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 합니다
자기가 복음을 전한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이 신령한 것인 줄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의 율법을 가르치면서 한 번도 바리새인과 같이 가르치지 않았고 율법을 보고 그 안에서 영적인 것을 깨달아서 전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없습니다.
이제까지의 그 유명한 신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이 남겨놓은 글에서 보면 율법이 신령하다는 것을 도무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바리새인과 같이 율법을 보았지 율법이 신령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신령한 줄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까?
이 시대는 더 합니다.
율법을 보는 그들의 생각이 바리새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율법이 신령한 것을 알아야 자기가 죄 아래 팔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율법이 신령한 것을 모르다보니까 자기가 죄 아래 팔려 있는 줄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시편19:7절을 보겠습니다. (신 815쪽)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율법입니다
사람의 율법이 있고 여호와의 율법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에서 율법을 보면 그냥 율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스라엘에게 너희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이 있고 하나님의 율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율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율법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희의 율법입니다
그 율법은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죄 아래 팔려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율법을 바로 정의를 내리지 못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율법을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율법입니다
반드시 죄에 팔려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스라엘에게 너희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이 다 같으면 하나님의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어야 하는데 요한복음에서 분명하게 너희 율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율법입니다
너희 율법이 있고 여호와의 율법이 있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의 율법이 있고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율법이 신령한 것을 모르고 모두가 죄 아래 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입니다
그 율법은 신령합니다. 그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에서 율법을 보면서 여호와의 율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율법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보아야 완전하여 우리 영혼을 소성케 할 수 있지만 율법을 보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소성케 되다
다시 회복이 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영혼은 아담이 범죄를 한 후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우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율법은 우리 영혼을 살려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신령해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이 신령하지 못하면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율법을 지켜서 신령한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보면 반드시 그것이 신령해야 합니다. 신령하지 않은 율법을 보면 그 사람은 죄 아래 팔려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영혼을 소성케 합니다.
영혼을 살려 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어떻게 우리 영혼을 다시 살려 줄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보고도 무감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영혼이 소성케 하면 생명의 문제인데도 사람들은 아주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합니다.
사람의 율법은 죄 아래 팔리게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내가 선지자나 율법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율법을 완전케 하려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시편의 말씀과 같이 여호와의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그 율법이 영혼을 소성케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문자 그대로의 율법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율법의 요구가 완전하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이 완전하다는 말씀을 보고도 왜 완전한가를 모르고 그냥 막연하게 보고 있습니다. 아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그 의미도 모르고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한가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주님이 완전케 하셨기 때문에 여호와의 율법이 완전하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입니다
죄 아래 팔려 사망에 이르게 하기도 합니다. 또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율법을 보고 죄 아래 팔려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영혼이 소성되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성경에서 율법을 보면서도 그 율법이 신령하다는 것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모릅니다.
율법을 누가 지켜야 하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율법이 왜 완전한가를 그리고 그 율법이 영혼을 어떻게 소성케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솔직히 바리새인들과 같이 자기들의 율법을 지키느라 모두가 죄 아래 팔려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주님이 지키십니다.
내가 지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사람들은 율법을 누가 지켜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율법을 믿는 것이 아니라 죄가 되는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모두가 이스라엘과 같이 저주를 받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영적인 말씀입니다
육의 말씀으로 만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말씀으로 보고 있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의 말씀으로 보고 있는 사람은 율법을 자기 육체로 지키다가 죄 아래 팔려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율법을 지키지 않은 교회가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next 62-2.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63-1,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 | 2024.10.19 |
---|---|
62-2,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0) | 2024.10.16 |
61-2,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 | 2024.10.12 |
61-1,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2) | 2024.10.12 |
60-2,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2) | 2024.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