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61-1,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윤주만목사 2024. 10. 12. 09:37

로마서7:10절을 보겠습니다. (248)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율법을 지켰는가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바리새인으로 흠 없는 율법을 지켰던 것은 자기 생각에서는 율법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율법을 몰랐기 때문에 지키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 사람들은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모르게 되면 사람들은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거의 모든 사람이 율법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 가를 생각하면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율법을 지키면서 율법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율법이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그림자로서 보지 않고 실체로 보는 모든 사람은 율법이 증거를 하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마치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살았을 때와 같이 이 시대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탐내지 말라는 율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율법을 알았다면 절대로 탐을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일에 탐을 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각종 조각한 신상들로 넘쳐 나고 있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을 내고 있으면서도 율법을 모르니까 그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탐을 내고 있습니다.

모릅니다.

자기들이 탐을 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일이 올무가 되어서 사망에 이르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증히 여기고 있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도리어 탐을 내면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각양 탐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거의 모든 행위가 실상은 탐심에서 나오고 있는데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아니 자기 생명에 대해서 어떻게 얻어야 하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종교인으로 살아가면서 사망이 왕 노릇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율법을 왜 지킵니까?

다 탐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탐심이 가득할 때는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기 위해서 바리새인으로 살았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누구라도 율법을 보면 탐심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왜 탐심을 내고 있는가 하면 율법을 깨닫지를 못해서 자기 육체가 살아 있기 때문에 탐심을 내고 있습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말로만 죽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 육체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성경의 그 말씀을 보고 감성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죽지 않고 자기가 살아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의 영의 일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생명을 얻는 두 가지를 가지고 싸움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생명을 얻을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생명을 얻을까를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가지를 하면 어느 한 가지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율법에 대해서 죽고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율법에 대해서도 살고 예수 그리스도와도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하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사망에 이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계명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반드시 죄가 살아납니다. 그 죄만 살아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나는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살 때는 계명이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제자 중에 한 사람이 나로 죽은 자를 장사하고 나서 주님을 좇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니까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두가 죽은 자입니다 왜 죽은 자인가 하면 계명이 살아 있기 때문에 그 계명이 죄가 되어서 죽은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산 자입니까? 그들이 계명을 지키고 있는 순간 모두가 죽은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십일조를 내고 있고 주일을 지키고 있고 어떤 행위를 하면서 살아 있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런데도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들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다 죽은 자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그 어떤 일을 한다 해도 죽은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 사도 바울은 분명히 죽은 자였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사람의 이성으로는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영이라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고 또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문자 그대로 막연하게 자기들이 살아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계명이 이르면 죄가 살아나고 나는 죽었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으로 살았을 때는 자기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그가 죽은 자인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사실이 무엇인가 하면 계명이 이르러서 죄가 살아나면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면 압니다.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우리는 모릅니다. 아니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율법을 지키면 그는 반드시 죽어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스스로 속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살아 있는 것은 모릅니다.

그러나 죽은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율법을 지키는 것을 보면 그 한 가지 사실로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먼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조건에서 출발을 해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인들은 아직 출발이 안 되어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래서 나를 생명으로 인도해야 할 그 계명이, 도리어 나를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계명이 이르렀습니다.

그러니까 죄가 살아났습니다. 성경에서 계명을 문자적으로 보는 순간에 죄는 반드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계명이 이르매 그들이 율법을 지켰고 그것이 죄가 되었습니다. 또 이방의 교회 역시도 계명이 이르매 그들이 율법을 지켰고 그것이 죄가 되어서 죽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입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나를 생명으로 인도해야 할 계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율법이 성도로서 조금 더 의롭게 사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3:12절을 보겠습니다. (305)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율법

이 시대는 율법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 뿐 아니라 이스라엘도 율법을 몰랐고 또 이방에 복음이 전파가 되고 난 후에 바로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율법을 깨달은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율법입니다

사람들은 성도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과는 구별이 되게 살아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생각을 하고 있어서 지금 이 시대도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좋겠습니다.

율법을 그렇게 우리에게 주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적당히 지킬 수 있는 율법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천국에 간다면 사실 이 성경을 기록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방대한 성경을 기록할 필요도 없고 율법을 기록할 필요도 없고 너희가 도덕적으로 잘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율법을 몰라서 못 지킵니까? 초등학생과 같이 어린 아이라서 교회에 나온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쳐서 지켜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 율법을 기록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교에 십일조가 없어도 그들은 나름대로 시주를 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얼마나 돈이 많이 있습니까?

그들에게 십일조가 있어서 그렇게 돈이 많이 있습니까? 굳이 그런 법을 안 만들어 놓아도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부를 쌓으면 그것을 자기가 믿는 신을 위해서 쓰는 것을 아주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다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인입니다

그리고 불교인이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더 도덕적으로 바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솔직히 기독교인보다는 불교인이 마음 씀씀이가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율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던 그들 역시도 이 세상에서 불교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나름대로는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종교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경전에 있는 도덕적인 행위를 잘 한 그대로 내세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경전에 있는 것을 그대로 다 하지는 못할지라도 내가 어느 정도 한 그것으로 조금 더 나은 내세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상이 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왔습니다.

아니 기독교인들은 조금 다르다고 해야 맞습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도로서 살아가면서 조금 더 의롭게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고 그것이 하늘에서의 상급이 된다고 생각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인과응보의 사상이 그대로 들어와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법입니다

아니 세상 사람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역시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기준이 있어서 그 막연한 기준에 충족을 하면 영생을 얻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막연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이 끝도 없이 율법을 지키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말을 합니까?

예수님 앞에 온 청년이 내가 무슨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는데도 어디까지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그렇게 막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모든 사람의 생각에는 영생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생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에서 말씀하는 율법은 영생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해서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율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영생을 얻는 방법입니다

율법은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에서도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살고 죽는 문제의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도로서 사는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다 지키면 분명히 생명을 얻습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입니다

율법에 대한 바른 정의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너무 쉽게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분명히 이 율법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이를 행하는 자는 그 의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의로 말미암아 삽니다.

그런데 의를 이루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들은 성경을 지나치듯이 보고 있습니다. 그 의로 말미암아 삽니다. 그러나 그 의로 살지 못하면 죽는다는 뜻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반드시 그 의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을 항상 다 지키지 못하면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율법도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율법도 역시 생명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은 생명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지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더 가치 있게 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입니다

율법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입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생명에 이르지 못 했습니다 율법을 왜 지켜서는 안 되는가 하면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이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지켜서는 안 됩니다

갈라디아서2:16절을 보겠습니다. (304)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생명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망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반드시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에 있어서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생명을 줍니다.

율법도 생명을 주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서도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으로는 반드시 모든 율법을 항상 다 지켜야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율법은 반드시 다 지켜야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도로서 살아갑니까?

성경에서는 절대로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율법은 반드시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몰라도 율법을 지키는 순간에는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면 생명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입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면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서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나는 의롭다 하심과 상관이 없이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지킨다는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이성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왜 성경을 봅니까?

내가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라면 성경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성경을 보아도 성경에서 어떠한 말씀이 있어도 다 자기 생각대로 편리하게 해석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그 사람은 성경을 볼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려고 하면 성경을 볼 필요성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냥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끝입니다. 아니 교회에 나올 필요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면 됩니다. 어차피 성경을 보아도 그 사람은 성경을 성경으로 보지 않을 사람입니다

율법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어느 사도가 이 율법은 지키고 이 율법은 지키지 말라고 했습니까? 그리고 성도로서 살려면 어느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어느 누구도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율법은 다 의미적으로 감추어져 있고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 모든 성경의 결론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성경을 보고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막연하게 율법을 지켜야 할 것 같아서 아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지키는 것이 나쁠 것 같지 않으니까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은 그런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왜 이토록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합니까?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성도로서 사는 문제라면 사도 바울은 분명히 우리에게 지켜야 하는 율법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성경에 기록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율법은 다 지켜서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부자 청년과 같이 내가 어떤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흠 없는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생명을 얻으려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의 개인이 예전에는 어떻게 율법을 지켰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으로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부자 청년과 같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지켰습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왜 지키는지도 모르고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분명히 율법을 다 지켜서 영생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스라엘보다 성경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습니까?

의롭다 하심을 얻어서 생명을 얻으려고 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율법을 왜 지키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사도 바울이 자기 자신이 왜 율법을 지켰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에 이르려고 율법을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제 생명을 얻었으니까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지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누가 맞습니까? 사도 바울의 생각이 맞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이 맞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이 맞는다면 사도 바울이 쓴 성경을 여러분은 볼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지켰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그것이 아니라면 성경을 왜 봅니까?

생명을 줄줄 알았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왜 율법을 지켰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율법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율법을 왜 지키는가에 대해서는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생명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지켰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 역시 그렇게 지켰기 때문에 주님 앞에 찾아온 청년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성도로서 살기 위해서 지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율법의 기초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율법을 지키면 그 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살기 위해서 지키라고 하는데 성경을 몰라서 성도로서 지킨다고 하면 이스라엘보다 율법을 더 모르는 사람입니다

율법의 정의입니다

생명을 얻기 위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데 다른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율법을 지킨다는 이상한 이야기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말씀은 성경에 없습니다. 아니 성경에 있으면 찾아서 저에게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왜 율법을 지키는 줄도 모르고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왜 율법을 지켜야 하는 줄을 알고 지켰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을 왜 지켜야 하는 줄도 모르고 지키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사도 바울도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이기 때문에 지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여러분보다 성경적 지식이 없어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래서 성도로서 지킵니까? 그렇게 말하고 싶으면 성경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 사람은 성경을 보는 것이 도리어 재앙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도 무시하고 자기 생각대로 성경을 보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시편18:5절을 보겠습니다. (813)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시편69:22절을 보겠습니다. (851)

저희 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저희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입니다

그 계명이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윗은 시편에서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생명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지켰는데 그 율법이 사망의 올무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올무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올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사망의 올무인가 하면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이 내게 대해서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사망의 올무가 되었다고 다윗이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인들은 사망의 올무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너무 모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듣는 귀와 보는 눈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올무에 걸려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는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 어떠하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자기가 어떻게 율법을 지켰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킨 것을 이제 복음을 알고 나서 보니까 사망에 올무가 내게 이르렀다고 다윗과 같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율법을 지키는가 하면 생명을 얻기 위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내가 왜 율법을 지키는 줄을 모르고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사망의 올무입니다

교회에 나와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사망의 올무가 되고 있는가 하면 율법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모두가 올무에 걸려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이 사망이라는 것을 모르고 점점 더 많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저희 밥상입니다

누구의 밥상입니까? 이스라엘의 밥상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곧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는 생명의 떡을 먹는 사람이 있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이 시편에서 저희 밥상이 올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누구를 상징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도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이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사람의 이성으로는 율법을 안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해도 율법을 지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도 무시하면서 자기들 생각대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사도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 왜 율법을 지켰습니까? 생명을 얻기 위해서 지켰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지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생각하고 율법을 지켰다면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이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언제 알았습니까?

그가 바리새인으로 율법을 지킬 때는 자기가 지키는 그 율법으로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를 알고 나니까 이제 자신이 예전에 지켰던 그 율법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깨달았습니다.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도 자기는 율법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계시가 되고 난 후에 율법을 보니까 율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 문자 그대로 지켰던 그 율법이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저희 밥상입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의 밥상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의 밥상입니다 그 밥상이 다 올무가 되어 있는데도 어느 누구하나도 깨닫는 사람이 없이 이 시대 모든 교회가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율법이 아니라고 하면 율법이 아닌 것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밥상만 올무가 됩니까?

성경을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모두의 밥상이 올무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표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의 밥상이 다 올무가 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스라엘의 밥상은 올무가 되었어도 자기들의 밥상은 올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입니다

저희 밥상이 올무가 되었으면 이 시대 절대 다수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밥상이 올무가 되기 때문에 이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어느 이단의 교회가 몇 교회의 저희 밥상이 올무가 되고 정통이라는 다수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있다면 성경은 절대로 이렇게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기록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을 보는 시각부터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니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절대로 그렇게 볼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그렇게 보고 싶어도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안 보입니다. 이 그리스도편지의 말씀이 어느 정도 공감이 될 수 있어도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역시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생명을 얻기 위해서 지켰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오고 나서 율법 외에 나타난 한 의가 믿어지니까 도리어 사망이 되었다고 자기 자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 지켰던 그 율법이 도리어 사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설교입니다

다윗은 저희 밥상이 올무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밥상이 우상의 제물이 되어 있는데도 이 시대는 그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서 아멘이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사망에 이릅니다. 율법을 성도로서 지킨다는 그 말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성경에도 없는 말을 만들어서 여러분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율법은 생명을 얻기 위해서 지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무시할 것 같으면 아예 성경을 안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합니다.

로마서7:11절을 보겠습니다. (248)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죄가 그 계명을 통하여 틈을 타서 나를 속이고, 또 그 계명으로 나를 죽였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그렇게 철저하게 율법주의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기가 얼마나 율법주의에 깊이 빠져 있었는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에서 벗어나 이제 은혜 아래 들어온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욥기를 보아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독한 율법주의자인 욥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을 해 주시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으면 욥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 역시도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지 않았다면 그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렀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을 압니다.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는 도무지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주님께서 그를 불러 주시고 은혜를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 자기가 율법주의에 있었기 때문에 복음이 오고 난 이후에 자기가 받은 충격이 누구보다 더 컸고 그래서 율법에 대해서 로마서를 통해서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율법주의자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생명에 대해서 갈구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이었기에 주님께서 그를 사도로 세우시고 복음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도 생명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비록 율법주의자로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생명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율법을 더 철저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없이 그저 거대한 종교의 흐름을 따라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성경을 안 봅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서 의문을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남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소한 자기 생명에 대한 문제라면 스스로 하나님께 구해 보아야 하는데 막연하게 종교를 따라가면서 생명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였습니다.

그가 자신이 지킨 율법을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로마서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체가 죄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로마서의 말씀을 아무리 보아도 풀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