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39-2,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윤주만목사 2024. 8. 17. 08:35

디모데전서1:11절을 보겠습니다. (337)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디모데전서1:18절을 보겠습니다. (33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교훈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계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 두 가지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교훈은 따르지 않고 있고 경계는 자기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1장에서 2절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1장은 교훈과 경계가 함께 있습니다.

성경을 정말 잘 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경계가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훈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교훈이 되는 말씀이 무엇인가 하면 아브라함이 어떠한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역시 아브라함과 같이 그러한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로 여기심을 받았는가를 사도 바울이 로마서4장에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교훈입니다

그런데 이 교훈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생명에 대한 약속을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 교훈을 받았으면 우리 역시 아브라함과 동일하게 의로 여기심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의로 여기심을 받은 것을 로마서를 통해서 사도 바울이 자세하게 말씀을 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을 디모데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도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과 같이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영광을 좇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로 여기심을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도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복음을 좇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그냥 기록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면 우리 역시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데 나는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있다면 그는 성경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왜 로마서를 기록했습니까?

4장 전체를 아브라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는 믿음의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 의로 여기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 역시 하나님을 믿어 의로 여기심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그 믿음이 생명에 대한 약속에 대한 믿음이며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생명을 얻음으로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브라함을 소개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아브라함을 알아서 무엇 합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왜 기록했습니까? 4장에서 아브라함을 말씀하는 것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사람이 아브라함이라는 것을 소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어떻게 약속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었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가르치면서 우리도 역시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훈

앞으로의 행동이나 생활에 도움이 되거나 참고할 만한 경험적 사실이라고 사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로 여기심을 받았는가를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 역시 그렇게 해야 의로 여기심을 받는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기 위해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리고 내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아브라함이 될 수 없고 또 아브라함도 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생명을 얻는 방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교훈으로 해서 나도 아브라함과 같이 한다면 생명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교훈입니다

어떤 교훈이 있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나에게 아브라함이 되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내가 로마서를 보고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아 생명의 약속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면 나 역시도 그렇게 하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어떻게 생명의 약속을 받았고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가를 알아서 우리도 동일하게 생명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것은 아브라함만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로마서의 말씀을 이야기를 하면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라고 하면 감히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갈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아주 겸손의 말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무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대답이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은 천국에 가는데 나는 믿음이 없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과 같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줄을 모르고 겸손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은 그런 겸손의 모양을 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이 아무리 믿음의 조상이라고 해도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믿음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지금 이 시대 내가 믿는 믿음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다는 것은 교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교훈입니다

그것은 영생을 얻으라는 말씀입니다 누구와 동일하게 믿음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하면 많은 민족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을 가진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믿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를 보고 어떻게 생각합니까?

참 아브라함은 대단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믿음을 가져서 하나님께서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브라함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자기는 그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훈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계가 있습니다. 교훈은 우리가 그대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교훈은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계는 그러한 일을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교훈은 따라하지 않고 경계는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은 경계입니다 그리고 모든 불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교회는 그 불의를 그대로 하면서 경계의 말씀을 듣지를 않고 불의를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경계는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훈은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은 성경과 정반대로 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하면 그 모든 일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져서 생명의 약속을 받은 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면 안 하고 있습니다.

전부 거꾸로 입니다.

하나도 바르게 하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하고 있고 또 생명이 있어서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중에 어느 한 교회라도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한 대로 행하고 있는 교회는 없습니다.

다 거꾸로 입니다.

불의를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불의 중에 어느 한 가지도 하지 않은 교회가 없습니다. 모든 불의를 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훈을 해 주었습니다. 로마서4장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생명을 얻었는가를 말씀하고 있지만 그 믿음을 좇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말씀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도 역시 아브라함과 동일하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영의 생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경계입니다

그리고 교훈입니다 이 시대는 경계를 교훈으로 삼고 있고 교훈을 경계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믿음이 없어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교훈을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 일은 반드시 나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갖지 못하면 사망을 당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 말씀은 많은 민족의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으로 생명에 대한 약속을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13:8-9절을 보겠습니다. (369)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오직 예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문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어제 아브라함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또 내일은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영원토록 동일하시게 생명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가르쳐 준 대로 아브라함이 의로 여기심을 받아서 생명의 약속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나도 그렇게 합니다.

나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동일한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있는데서 제가 아브라함의 믿음이나 사도 바울의 믿음이나 제 믿음이 동일하다고 하면 아마도 교만하다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교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은혜로서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서 부르심을 받아서 생명의 약속을 받은 것이나 내가 이 시대 복음으로 부르심을 받아서 생명의 약속을 받은 것이나 동일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동일하지 않은 사람이 더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에게는 이만큼을 나에게는 저만큼을 일하셨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이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지만 이 시대는 아브라함만 위한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겸손의 말을 하면서 자기들은 아직 그만한 믿음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은 동일한 믿음을 가질 것이고 아브라함보다 못한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믿음대로 되어서 아브라함은 구원을 받고 그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른 교훈에 이끌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훈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어디 세상에 있는 교훈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문자가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람의 교훈으로 율법을 지킨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화주의자가 있고 은사주의자가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세상의 샤머니즘적인 것이 많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어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리고 오직 은혜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말로만 하고 있지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보다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더 많이 있습니다. 더 많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에 속한 자가 유업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예표로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조상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믿음의 자취를 좇는 사람은 거의 없고 행위에 빠져 이스라엘과 같이 마귀의 자식이 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도 역시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아 약속하신 생명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닌 이 믿음이 이 시대는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내가 다시 올 때에 믿음이 있는 자를 보겠느냐는 그 말씀이 벌써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초대교회를 지나면서 교회는 타락의 길로 갔습니다. 솔직히 초기 교회에 변증가들의 글을 보아도 믿음이 있는 자가 과연 누군가 의심이 들 정도로 이미 타락의 길로 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속히 그렇게 다른 복음에 빠져서 불의로 진리를 막아서 구원을 막고 서 있습니다.

로마서4:24절을 보겠습니다. (245)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 주실 우리, 곧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우리까지도 위한 것입니다.”

로마서4장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했습니다. 왜 이렇게 로마서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가를 사도 바울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 역시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로 여기심을 받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도 위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의로 여기심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만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사도 바울이 말씀한 대로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믿음이 있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믿음이 있는 자가 없습니다.

우리도 위함입니다.

성경은 우리도 구원을 받으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표로 해서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에게 그렇게 구원을 받으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는 자가 없습니다. 제가 믿음이 없다고 하면 반박할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믿음이 없는 자입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지금 4장까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예표로 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바로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강해를 하고 갈라디아서 강해를 했습니다. 이제 로마서 강해를 하면서 더욱 믿음에 대해서 우리가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의로 여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다면 율법을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나는 의로 여기심을 받기 위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아니라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4장에서 아브라함을 예표로 말씀을 하면서 그 결론에 이르러서 의로 여기심을 받는 우리도 위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을 수 없다면 오직 믿음밖에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까?

반드시 그 의로 말미암아 의로 여기심을 받아야 합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4장에서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이 우리는 의로 여기심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면서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안 됩니다

율법이 있으면 범함이 있어서 여러분이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율법을 지키면서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에게 어떠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5:17-19절을 보겠습니다. (282)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입니다 만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말씀을 하면서 그 결론이 죽은 자 가운데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을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의로 여기심을 받은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살아나셨습니까? 썩지 않고 죽지 않는 하늘의 형상으로 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세상의 지식이 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년 반 동안이나 주님과 동고동락을 했는데 어떻게 못 알아볼 수 있습니까? 영화 같은 것을 보면 죽은 자의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성경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다고 하는 것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형상을 보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지금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신체의 부활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절대로 그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다고 하니까 예전에 주님이 그대로 살아나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그 육체가 그대로 부활을 하셨다면 제자들이 분명히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아무도 알아보지를 못 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영화에서 보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썩는 형상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부활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의 사상이 그대로 들어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신 것을 너무 모르고 있고 어떻게 부활을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형상을 보고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에 대해서는 다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 성경적 부활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주님을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의로 여기심을 받았습니다. 그 의로 여기심을 받은 것이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다신 것은 우리의 믿음이며 그것은 곧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안에 아무리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 영이 생명인데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다면 그 영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어서 너희는 망하는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는 말씀이며 그 영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영은 그리스도께서 사시면 살고 그리스도께서 죽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는 역사입니다 그 영은 그리스도와 하나입니다 그리스도가 죽으면 그 영도 죽고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사시면 그 영도 영원히 삽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하나님과 나는 하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사시면 주님도 영원히 사십니다. 또한 주님과 우리가 하나라면 역시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4:25절을 보겠습니다. (24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왜 오셨는가는 누구나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에 비취어 볼 때 범죄를 했고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것을 구약에서 예표로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번제단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서 대신 내어 주는 것을 예표로 하고 있습니다. 범죄한 백성이 양을 잡아서 오면 제사장은 그 양의 머리에 안수를 해서 죄인의 죄를 전가하고 그 양을 잡아서 피를 뿌리고 번제단에서 사르고 있습니다. 이 번제를 왜 드렸는가 하면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실 일을 예표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 중에 하나입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죄인이 죄인의 죄를 대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이 세상 모든 죄인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에 속해 있는 자는 모두가 진노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육체입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해서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저주를 받아서 죽어야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게 함으로 해서 우리 육체가 죽임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범죄를 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사실 이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아니 우리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악의 종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죽어야 합니다. 그 죽어야 하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내어 주심으로 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함께 죽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죽게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는가 하면 우리 범죄 함 때문입니다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죽었는가 하면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주심으로 우리 역시 죽은 자가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와 내가 하나라는 것을 믿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하나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가 죽었다면 당연히 우리 육체도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분으로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내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라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내가 믿는 그대로 되어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 주셨습니다. 실상은 내가 죽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사실 벌써 멸망을 당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내어 줌으로 해서 죽지 않게 하셨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자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복음을 깨달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살인한 자요 간음한 자이기 때문에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죽이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 인류는 그대로 멸망을 당하고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죽어야 하는 우리를 위하여 대신 내어 주심으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법입니다

사람들은 이 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살인을 했습니까? 보수자가 와서 죽여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보수자가 와서 죽게 하면 우리는 반드시 멸망을 당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가 피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살인한 자입니다 살인한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살인한 자를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셔서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내가 죽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내가 죽는 것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 분명히 살아 있지만 범죄함으로 볼 때는 우리는 죽은 자라야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 내어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셨기 때문에 이 세상에 종말이 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 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 세상은 종말이 왔어야 합니다. 지금 이 세상에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우리 인생들이 범죄를 해서 마땅히 죽었어야 하지만 예수를 내어 줌으로 해서 아직까지 종말이 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그러면 보수자 사단은 우리를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우리를 죽인다 해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막지 못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예수가 있음으로 해서 사람의 육체를 사단이 마음대로 죽이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내어 줌으로 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16:10절을 보겠습니다. (175)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예수님께서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죽으신 것은 우리 육체가 보수자에 의해서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함께 십자가에 죽음으로 해서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또한 주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입니다.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의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이 썩을 육체를 의롭다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더러운 옷을 빨아서 희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마치 우리의 더러운 육체를 빨아서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의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세상의 이성으로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이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주님이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의가 되겠습니까?

주님이 아버지께로 가셨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부활을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셨는데 이제 하늘의 신령한 형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부활을 하셔서 아버지께로 가신 것이 우리를 의롭다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을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입니다.

이제까지 로마서를 통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신체가 아니라 영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탄생이 되고 그 생명이 의로운 생명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영의 생명입니다

주님이 살면 그 생명은 살고 주님이 죽으면 그 생명은 죽습니다. 주님이 아버지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어떻게 됩니까? 그 영이 산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을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의 신체가 아니라 영입니다 이 영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 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모르니까 로마서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억지로 풀다가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 영이 우리가 믿음으로 거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영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사는 것을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고 주님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살아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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