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4:17절을 보겠습니다. (신 244쪽)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천국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성경은 이것이 은혜에게 속하게 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이 은혜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은혜가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 은혜입니까?
영생을 얻는데 있어서 우리 인생들이 한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한 것이 없이 거저 주시는 영생이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 은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를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에서 영의 일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생명의 탄생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모릅니다.
이 시대는 영의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고는 하지만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일을 모르기 때문에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문자를 아는 것으로 그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그것을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구약에서 이미 희년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는 우리에게 은혜의 해를 선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이 우리에게 은혜가 되고 있지만 이 시대는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기 때문에 은혜가 되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되기 때문에 우리 가난한 자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믿음이 아니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 믿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종교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으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말로는 아무리 은혜라고 하지만 은혜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의로 여기심을 받는 믿음입니다. 믿는다고 하는 것은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도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이고 믿는다는 것 역시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든지 아니면 율법을 지켜서 의로 여기심을 받아야 합니다. 이 둘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으로는 우리 인생 모두가 진노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렇게 율법으로는 우리는 저주를 받아야 하지만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심으로 해서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 우리 안에 의로운 생명이 탄생이 되고 있습니다.
이 일입니다
그렇게 의롭다 하심을 얻는 생명이 탄생이 되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의로움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구원을 받는 성도들에게 주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 약속을 믿는 후손에게 굳게 하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믿음이 아니고는 우리는 영의 일을 믿을 수 없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세의 일과 그리고 영의 일은 오직 믿음이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믿음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역사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주셨습니다.
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있는가 하면 이 영의 일에 있어서 굳세게 서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초대교회가 지나가면서 불과 100여 년이 지난 시점부터 해서 교회는 타락의 길로 갔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초대교회에 어려서부터 유대인으로 살았던 이스라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에 속한 자도 또한 이방인으로 살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았던 우리도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취를 좇아 믿음에 속한 자가 되었고 이 둘을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육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은혜로 구원을 받는 모든 사람은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이 믿음을 모르고 행위에 빠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육신으로 하면 진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느 누구도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입니다. 역시 성경을 보고 성경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 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까?
예수님께서 뭐하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행사가 무엇인가를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하는 행위를 보면 전혀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믿는다고는 하지만 행위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이스라엘과 같이 행위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행위가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는 것이 아님에도 성경을 보고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것을 그의 의로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이 아브라함의 행사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하면서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아브라함의 후사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입니다.
그리고 율법입니다. 이 둘은 함께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의로 여기심을 받는 성도는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함과 같습니다. 이 약속은, 그가 믿은 하나님, 다시 말하면, 죽은 사람을 살리시며 없는 것들을 불러내어 있는 것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왜 부르셨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민족이라고 하니까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이삭과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또 사라가 죽고 난 후에 후처를 얻어서 아들 일곱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들이 많은 민족이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육체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육체로 아브라함을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무할례 시에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사람들을 그 후손으로 세우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입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믿는 모든 사람의 조상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조상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의 조상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은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라는 것을 말씀하면서 사도 바울이 분명하게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후사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는 계속해서 율법을 지켜왔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이 있었던 때 잠시 동안만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는 성도가 있었고 사도들이 죽은 후에는 교회는 급속하게 타락을 해서 율법을 지켰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200년이 되기도 전에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이단으로 정죄가 되었던 것을 교회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조상입니다
그가 왜 우리의 조상인가 하면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조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과 같이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조상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세우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게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지 않고 율법의 행위에 빠져 들어가 있습니다.
창세기17:5절을 보겠습니다. (구 20쪽)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너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과 이스마엘을 낳고 또 그들이 자손을 낳고 함으로 해서 열국의 아비가 되는 것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은 늘 말씀을 드리지만 육체의 일이 아니라 우리 영의 일을 예표를 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신다는 이 말씀을 보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열국을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았습니다. 그렇게 야곱의 아들인 자기들이 정통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열국이 있지만 자기들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입니다
성경에서 열국이라고 말씀을 할 때는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아브라함의 육체로 그 자손이 그렇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모든 말씀을 의미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 모든 민족입니다
노아의 홍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들이 있습니다. 셈과 함과 야벳이 있었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이 아들들에 의해서 세상에 많은 민족들이 다시 태어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후손이기도 하지만 노아의 후손이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노아의 후손이 바벨탑을 쌓아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달리하시고 흩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가 어떻게 은혜를 입은 사람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갈데아우르에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믿음을 주시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를 그의 의로 정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의로 여기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홍수 후에 모든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아브라함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은 것과 같이 이 세상 모든 민족이 그렇게 의로 여기심을 받아 구원을 받게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열국의 아비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사람의 조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이 시대 우리 믿는 모든 사람의 조상입니다. 그것을 창세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냥 하는 말씀이 아니라 이미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인용이 되고 있는 말씀은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성경을 인용을 했는지를 밑에 각주로 달아 놓았습니다. 물론 그렇게 각주를 달아 놓음으로 해서 우리가 성경을 보는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로마서4장17절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창세기17장5절의 말씀이라는 것을 각주를 보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앞에 기록된 바라고 말씀을 하고 있으니까 누구나 쉽게 이 말씀을 보면 창세기17장5절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히 이 말씀은 창세기17장5절의 말씀을 인용을 해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이렇게 명백하게 기록된바 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성경말씀만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거의 모든 말씀은 서로 인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아니 이제까지 신학자들을 보면 성경을 보면서 이 인용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만 인용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성경은 다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인용의 말씀을 성경에서 찾지 못하면 그것은 이 세상 초등학문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이 인용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그리스도편지에서 말씀을 보신 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성경을 풀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인용입니다
그리스도편지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거의 다 성경에서 그 인용이 되는 말씀을 찾아서 풀고 있습니다. 꼭 명백하게 기록된바 라고 하지 않아도 성경을 풀려면 반드시 그 인용이 되는 말씀을 알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성경이 풀립니까?
다 억지로 풀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그 말씀만 보고 성경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그 인용이 되는 말씀을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내가 신약을 보고 있습니까? 그럼 구약에서 또는 같은 신약에서 인용이 되고 있는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사실 그것을 찾지 못하면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소경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느 말씀을 하실 때는 분명하게 미리 비유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말씀은 비유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유가 아닙니까? 사실은 거의 다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라고 말씀을 하지 않았어도 성경을 보면 그것이 비유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초등학생과 같이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6장의 말씀입니다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유입니까? 아니면 문자 그대로의 말씀입니까? 이 시대 그 말씀을 보고 거의 다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비유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 말씀은 전체가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됩니까?
문자로 보는 것과 비유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르게 성경이 풀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기초가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고 사람들이 구원을 신체의 구원으로 보고 있고 그것은 성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해석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비유라고 해야 비유입니까?
성경을 정말 똑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비유라고 하지 않았어도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은 비유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이 말씀이 비유가 아니라면 우리는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우리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상대적으로 제일 가난한 사람에 비해서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 외에는 다 부자입니다. 그럼 그 사람 빼고는 모두가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간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믿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이 부자도 하나님을 믿고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갔다면 우리 역시 음부의 고통 중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입니다
꼭 집어서 비유라고 해서 비유가 아닙니다. 성경의 거의 모든 말씀은 비유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모든 말씀은 성경을 인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분명히 성경에 구약에 말씀을 인용을 했다고 말씀을 해서 그 말씀만 인용이 된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은 서로 인용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문자적으로 보는 그것이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비유로 보지 않고 문자로 보고 있다면 절대로 그 말씀이 풀어지지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바 라고 기록이 안 되어 있어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말씀을 알려면 성경에서 어느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3:29절을 보겠습니다. (신 306쪽)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까?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되게 하셔서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식물에 속하는 것과 동물에 속한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속했다는 말씀을 보고도 자기가 어디에 속해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역시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로 여기심을 받을 때 그의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리스도의 생명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만됩니다.
그런 자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서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앞뒤 문맥을 잘 알아야 하고 또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 줄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율법에 매인바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오고 나니까 이제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속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자만이 속한 자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만이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에 들어갈 성도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문자를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오셨습니까?
거짓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이 계시가 되기 전에는 너희가 율법에 매인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 속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율법에 메인바 되었다가 믿음이 와서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율법을 지키면서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들의 편리에 따라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앞에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율법 아래 매인바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이 성립이 되고 있습니까?
많은 민족의 조상입니다
어떻게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는가 하면 믿음이 계시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육체적으로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믿음이 계시가 됨으로 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탄생이 되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누구를 믿었습니까?
이 시대는 하나님도 모르고 믿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믿지를 못하니까 지금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 있는 말씀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유업을 이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민족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 의로 여기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 여기심을 받았습니다. 이 두 가지의 일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해서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탄생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역시 하나님의 영이 탄생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생명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은 생명입니다. 그리고 깨끗한 생명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그의 안에 탄생이 된 생명과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 안에 탄생이 된 생명이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닙니다. 우리 육체는 아브라함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이기 때문에 그의 영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됨으로 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서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을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셨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9절을 보겠습니다. (신 286쪽)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의 믿은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믿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로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가 죄로 인하여 죽었지만 살리실 줄을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으로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냥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죄인입니다. 세상에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은 아주 없다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아브라함 역시 죄인입니다.
죄인이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해도 역시 아브라함도 죄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가 죽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자기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인용을 알아야 합니다.
신약을 볼 때 구약만 인용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을 볼 때 그것을 신약에서도 인용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성경을 보고 모릅니다. 신약을 보고 모르는 것을 구약에서 인용을 찾아서 알 수 있고 구약에서 모르는 것을 신약에서 인용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여러분에게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었습니다.
그런데 구약만 보아서는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었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어떻게 믿었는가 하면 죽은 사람을 살리시며 없는 것을 불러내어 있는 것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입니다
왜 죽은 자인가 하면 율법의 저주를 받아서 죽은 자입니다. 물론 육체는 살아 있습니다. 그 육체가 죽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없어서 죽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 죽은 자를 살리시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리시고 있는가 하면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영을 탄생을 시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죽은 자입니다
그런데 살리시고 있습니다. 우리 죽은 신체를 살리신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저주를 받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은 것은 썩어 없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입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믿었습니까?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안에 새 생명을 탄생을 지켜서 그 생명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죽은 사람을 살리신다고 하니까 신체를 살리시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사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는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아브라함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에서 우리 성도들이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뢰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이 무엇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신체의 일이 아니라 우리 신체는 죽으면 썩어 없어집니다. 그 썩어 없어지는 것을 다시 살리신다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 하심을 얻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말씀을 너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씀을 보면서도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신체로 있던 예수님께서 부활을 하신 것으로 모든 사람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체는 죽었습니다. 그 신체는 없어졌습니다. 그것이 어디로 갔는지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그것은 신체를 살리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신체를 살리셨다면 보였다가 없어질 수 없고 또 문이 닫혀 있는 상태에서 들어오실 수 없고 또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못 알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죽은 자입니다
우리를 다시 살린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그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신체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어떻게 살리셨는가 하면 의로 여기심을 받는 영으로 다시 살리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영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하늘의 신령한 몸을 입는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부활입니다.
이것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을 믿으면 뭐 합니까? 자기 신체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고 있다면 그는 절대로 다시 살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아브라함입니다
그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믿었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어떻게 부활을 하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모르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을 바로 알고 믿어야 그것이 역사하는 믿음이 되지 모르고 믿으면 이스라엘과 같이 마귀에게 속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죽는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육체의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죽은 우리 신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서 다시 산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왜 율법이 있는가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우리 신체를 의롭다 하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죄를 지은 우리 신체를 의롭다 하시면 하나님은 법을 어기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법을 왜 반포하셨습니까? 법대로 하시기 위해서 반포하셨습니다. 그런데 법으로 하면 반드시 죽어야 하는 그 신체를 다시 의롭다 하시고 살리시면 법은 있으나마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 죽은 신체를 살리시는 분이 아니라 그 신체는 썩어서 하늘의 유업을 받지 못하게 하고 하늘이 생명 깨끗한 생명을 주셔서 다시 살리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next 38-2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39-1,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0) | 2024.08.17 |
---|---|
38-2,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1) | 2024.08.13 |
37-2,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0) | 2024.08.10 |
37-1,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0) | 2024.08.10 |
36-2,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0) | 2024.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