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12:1-6절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 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예비 하옵소서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거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 하겠느냐 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찌라도 너는 믿지 말찌니라”
성경입니다
늘 말씀을 하지만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성경에서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그것을 단지 이스라엘을 비유와 예표로 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인생은 다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서 우리를 한 혈통으로 지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구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더라도 그렇고 우주를 보더라도 우리 인생은 한 혈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사람들은 피부색도 다르고 또 환경과 처지에 따라 사람들은 그 보는 것으로 다르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릅니까?
인생들은 그 사소한 것을 보고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생을 나는 육체를 보고 판단을 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피부색이 다르냐 또 그가 어떤 환경에서 살았느냐 하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은 다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성경을 주셨습니까?
그리고 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택하셨습니까? 그들이 특별해서도 아니고 무엇인가 달라서가 아니라 인생은 다 같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선택해서 비유와 예표로 삼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성경을 보면서도 인생들은 가장 기초적인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 인생들은 다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도 유대인들이 육체를 보고 판단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인생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공의도 그저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적 지식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법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든지 도덕적으로 의롭게 사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 안에서도 그렇고 세상에서도 그렇게 산 사람을 존경을 하고 또 의인이라고 선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입니다
그런 인생의 철학적 지식과는 전혀 다르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 왔습니다. 그들의 철학적 지식으로는 그녀가 반드시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도 형사적으로 처벌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민사적으로 처벌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입니다
이 여자를 어떻게 합니까?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는 이 여자는 분명히 잘못을 했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시면서 이 여자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보내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서 주님은 우리 인생들의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실 분이라서 그렇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런 말씀을 보면서 인생들은 감성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철학적 지식으로 주님의 말씀을 이해를 하려고 하니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그러니까 막연하게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라면 유대인들의 말과 같이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였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 인생들을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이고 또 우리 인생들이 영생을 얻어 그 나라에 들어가는 일을 원하시고 계십니다.
바로 이 문제입니다
인생은 철학적 지식으로 이 여자를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아니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나라는 형사적으로 처벌을 하고 있고 어떤 나라는 민사적으로 처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철학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기 때문에 이 여자를 정죄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철학적 사상을 말씀을 하고 있지도 않고 그것을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분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이고 우리 인생들에게 영생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성경을 자기들의 철학적 지식으로 보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 뜻을 전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1.“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 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그가 어떤 선지자라는 것을 그래도 성경을 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와서 정착을 했습니다. 아마도 예레미야 시대가 가장 힘든 시대가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고 그때 더구나 예레미야는 매국노라는 이야기를 들을 예언을 했던 선지자입니다.
복음을 전합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가 되라고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으면 주님께서 도와주시고 바라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다고 하고 또 병이 든 사람이 있으면 성경에서 선지자들과 그리고 주님께서 치유해 주시는 것과 같이 기도를 하면 치료를 받는다고 전하면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종교인들입니다
아마도 복음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거의 다 그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자기들의 종교에서 정한 교리가 정통이기 때문에 잘 따라 하면 이 세상에서도 모든 일이 만사형통하고 하나님 나라도 갈 수 있다고 전하면 그 안에 있는 교인들은 아멘으로 화답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은혜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신을 믿는 목적입니다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너무도 먼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이기 때문에 사실 믿는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것조차 모르면서 그저 종교에서 다수가 믿는다고 하니까 자기도 믿는다고 하는 것이 인생들의 심리라는 것을 저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런 말을 전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갔다 왔다고 하고 지옥에 갔다 왔다고 하면서 그것을 리얼하게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저 역시 이 시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상상의 나래를 펴서 그들보다 더 실감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성경을 보고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나쁜 의미의 말씀을 이 시대 종교인들에게 하는 말씀으로 해석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잘 먹고 잘 살고 건강하게 사는 것을 원하는 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복음이라고 하니까 그저 기쁜 소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그 기쁜 소식이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기쁜 소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을 하지만 복음 역시 인생의 철학적 지식으로 기쁜 소식이 아니라 영생을 얻는 일에 있어서 기쁜 소식이며 인생의 종교적인 삶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받아들이지도 않고 말씀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바로 그런 선지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의 철학적 사상은 하나님을 잘 믿으면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삶에 복을 주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믿음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철학적 사고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런 이스라엘에게 바벨론의 포로가 되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인생의 철학적 사고로 성경을 보고 문자를 아는 것으로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이미 율법의 포로가 되어 있으니까 율법을 상징하는 나라의 포로가 되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이렇게 글로 표현한다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인생들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가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 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냐고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새번역이 조금 쉽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과 변론할 때마다, 언제나 주님이 옳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공정성 문제 한 가지를 여쭙겠습니다. 어찌하여 악인들이 형통하며, 배신자들이 모두 잘 되기만 합니까? 라고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 선지자는 영의 일을 깨달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선지자로서 묻고 있습니다.
악인이 잘 됩니다.
그런데 이 악인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고 그들도 역시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하면서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예언을 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들을 도와주신 것과 같이 다른 나라의 포로가 되지 않는다고 백성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악인이고 백성들이 그들의 말을 듣기를 좋아하니까 당연히 그들이 잘 되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8:15절을 보면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주는 의로우시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공정한, 의로운, 올바른 등의 뜻이 있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간음한 여자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주님 앞에 잡아 왔습니다. 이 여자를 법대로 처벌을 하는 것이 의롭습니까? 이 여자를 판단하지 않고 그냥 보내는 것이 의롭습니까? 인생의 철학적 사고를 이야기하기 바랍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까 주님이 하신 일은 무조건 의롭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상식입니다
이 여자는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형사적으로든 민사적으로든 처벌을 받아야 그것이 의로운 일이라는 것을 정의로운 판단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여자를 보고 바리새인들이 돌로 쳐 죽이려고 하니까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의롭습니까?
이 시대 텔레비전에서도 그런 프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출연자들이 아주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비난을 하는가 하면 자기들이 생각을 했을 때는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철학적 사상입니다 .
그런데 주님입니다.
그 출연자 중에서는 교인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더 비난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육체가 한 일을 가지고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고 과연 그들이 성경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묻고 싶습니다.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리고 주님입니다. 누가 공정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생각을 버리고 사건만 보고 인생의 철학적 사상으로 이야기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프로에 나와서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주님께서 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자기들의 사상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이율배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외식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인생의 철학적 사상과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 갭이 너무 커서 인생으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자기들이 이율배반적인 말을 하면서도 또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다고 하고 있는 것이 종교인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의롭습니다.
왜 간음한 여자를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고 하신 것이 의로운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육체를 보고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우리 행위를 보고 판단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생에 대해서 판단을 하시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여자입니다
인생의 철학적 사상으로는 바리새인들이 맞습니다. 그러나 영생의 일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나는 아무도 판단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맞는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악인이 되는가 하면 영생을 얻는 일에 대해서 바리새인들이 악인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 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하는 질문은 바로 영생의 일로 보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서 율법을 잘 지키는 아니 성경의 문자 그대로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이 악인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아직까지는 형통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입니다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니까 항복을 하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다른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예언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아직 바벨론의 포로도 되지 않았고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을 잘 믿어서 지켜 주시는 것과 같이 그들에게 어떤 징벌도 내리지 않는 것을 보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입니다
인생의 사상으로 성경을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그 악한 자를 이제 바로 뒤에서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을 잘 믿는 것과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믿지 않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율법주의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악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율법의 포로가 되어 있고 그 율법을 상징하는 나라의 포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언을 하고 있는데 지금 현제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지켜 주신다는 예언을 하고 있고 실제 바벨론에 의해서 아직 멸망을 당하지 않고 있습니다.
누가 형통합니까?
그리고 누가 안락합니까? 지금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들로부터 핍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예레미야서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바벨론에 항복을 하고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예언을 하게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형통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락함입니다.
악인이 형통하게 잘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예레미야 시대의 이스라엘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이 듣기에 좋은 말을 전하는 사람들이 종교 안에 악인이며 그들이 형통하고 안락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입니다
거기서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것을 율법주의라고 말씀을 하면서 율법을 상징하는 나라 바벨론의 포로가 된다는 것을 예언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좋은 예언을 하는 그들이 형통하고 안락하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들에 의해서 고난을 받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
디도서1:16절을 보면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이스라엘입니다
그 조상들에게 예언을 한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애굽에서 인도하시고 광야 교회를 거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신을 것을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다고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압니다.
이 정도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을 하신 그대로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셔서 기업으로 주심으로 해서 그들이 거기 거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다윗 왕과 솔로몬 왕 때를 지나면서 그들은 정말 육적으로 볼 때는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보였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멀다고 말씀을 하면서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만 그렇습니까?
사도 바울이 우리 이방인들에게도 역시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 안에서 주여 주여 하고 있지만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과 같이 마음이 멀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않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적 사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과 같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가 볼 때 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비유로 해서 그들의 마음이 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 그렇다는 것을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합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을 하신다고 경계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성경은 그 사람들에게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마치 남의 일을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에게 하는 말씀인데도 종교인들은 마치 세상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으로 이야기를 하면 교인들은 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만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먼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비유로 해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경계로 하는 말씀이라고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이런 말씀을 절대 그렇게 보지 않고 있고 그런 그들이 왜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악인이라고 하는지를 전혀 깨달을 수 없습니다.
3.“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예비 하옵소서”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저를 아십니다. 주님은 저의 속을 들여다보시고, 저의 마음이 주님과 함께 있음을 감찰하여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도살할 양처럼 끌어내시고, 죽일 날을 정하셔서 따로 갈라내 두십시오.”
이스라엘입니다
당시 제사장들과 방백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었고 자기들이 성전에서 율법의 행위를 잘 하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하면서 거짓 예언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죄의 종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바벨론의 종이 된다는 것을 예언을 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대적하고 죽이려고까지 한다는 것을 우리가 말씀을 보아서 알고 있습니다.
바벨론입니다
그 나라의 포로가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이스라엘이 율법주의가 되어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고 있지만 마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들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대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예비 하옵소서 라고 자기를 대적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악에 대해서 하나님께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만의 일이 아니라 그들은 우리의 경계가 된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켜서 그 마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고 선지자가 말씀을 하면 이 시대를 보더라도 종교 안에서 온갖 율법을 지키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결말입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될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고 비참했는가를 성경에서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포로로 잡혀 가고 있지 않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고 그것은 이방의 종교 역시 율법을 지키면서도 그들이 형통하고 안락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4.“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거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요한계시록22:11절을 보면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성경입니다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보더라도 그들은 육체의 일로 보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음으로 해서 다윗과 같은 왕이 그리고 솔로몬과 같은 왕이 다스리면서 자기들이 형통하고 안락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그런 철학적 사고로 점점 더 바알의 사상에 뿌리 깊게 빠지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다.
그런 그들이 스스로를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고 있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보호해 주시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자기들이 잘 믿어서 우리나라가 잘 살고 있다고 하고 있고 북한을 보면서 공산주의가 되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 국가라 해도 어느 특정 나라를 제외하면 그렇게 사람들에게 간섭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를, 종교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있고 종교는 거대한 세력이 되어 어느 누구도 건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풍전등화입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곧 멸망을 당하는 그들입니다. 그런데 이 땅 거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이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씀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자기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있다고 하고 있고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된다고 하니까 교인들은 아멘하면서 큰 소리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에게 합리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5.“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 하겠느냐”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이스라엘에게 보낸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대적을 하고 있고 도리어 죽이려고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호소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언제까지 그들을 그냥 두시겠느냐고 묻고 있고 대답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쉬운 번역을 보아도 깨닫기가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당시 근동지방의 비유의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예레미야가 생각할 때는 악인이 언제까지 평안할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예언을 하신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러나 너는 평안하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예레미야 선지자는 당시 제사장과 방백들과 선지자들과는 전혀 반대가 되는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는 예언을 했고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로부터 많은 핍박과 죽이려고까지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입니다
지금은 예레미야 시대가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예레미야 시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과 같이 이방의 종교는 교회라는 건물을 지어 놓고 그 안에서 자기들의 교리에 따라 온갖 의식적인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도 죽을 때까지 아주 평안하게 산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6.“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찌라도 너는 믿지 말찌니라”
친척
가족이라도 믿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좋은 말로 미혹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저 예수 믿고 천국가세요 하고 참 매끄럽게 말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다 속이는 말이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너를 속입니다.
누가 속이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그리고 친척이 아비의 집이 속인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다정히 말을 하고 있지만 좋은 말로 하고 있지만 그것이 실상은 다 속이는 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생의 철학적 지식입니다
종교는 너무도 좋게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과 같이 보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믿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포로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영생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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