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2:25절을 보겠습니다. (신 242쪽)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죄의 종이 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단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는 순간에 반드시 죄의 종이 되어서 율법의 종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이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물론 유대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 유대인이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그렇게 철저하게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죄의 종이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도적질하지 말라고 가르치던 그들이 도적질을 했으면서도 전혀 모르고 죄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의 교회도 역시 성경에 있는 율법을 문자로 보고 도적질을 하지 말라고 반포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목사들이 그렇게 설교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도적질 하지 말라고 하는 그가 도적질을 하고 있다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율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성경은 율법을 지키는 순간 율법을 어긴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이 시대 교인들에게는 없습니다.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율법의 의를 함께 입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말씀을 성경에서 보면서도 도무지 무슨 말씀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게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율법을 범함으로 해서 하나님을 욕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는다면 하나님을 욕되게 만드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당연히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다 이루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율법주의자들로 인하여 그들이 율법을 범함으로 해서 저주를 받게 되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라도 발을 수 있는 구원을 율법을 범함으로 해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시대 역시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행위는 자기들이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이방 죄인들이 유대인이 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사실 이방인이라고 하기 보다는 유대인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습니다. 그들은 실제 이스라엘을 자기들의 형제와 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데 혼자서 짝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유대인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기들도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유대인과 같이 율법을 지키면서 유대인이 되고 싶어서 이스라엘을 짝사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 될 수 없고 또 유대인이 되어서도 안 되는 이방 죄인이 유대인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게 유대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물론 로마라는 이방인의 힘을 빌어서 했을지라도 유대인이 그렇게 했다는 것을 성경을 본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자기들이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원수와 같이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면서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종교인이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종이 되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율법을 지키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종이 되어서 저주를 받음으로 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고 사단으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유대인이 되려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입니다
그것은 율법을 대표하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사단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범죄를 해서 죄의 종이 됨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포로가 됨으로 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바벨론에 의해서 모독을 받고 있지만 기독교인들 역시 유대인과 같이 율법을 지키다가 범함으로 해서 죄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습니다.
누구에게서 모독을 받고 있는가 하면 바벨론에 의해서 모독을 받고 있습니다. 그 바벨론이 요한계시록에서 그대로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아갔던 바벨론이 실제는 사라졌지만 영으로는 그대로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죄의 종이 되어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원수에게서 얼마나 모독을 받겠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생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천국이 없고 이생 뿐 이라면 무엇 하러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도적질 하지 말라는 법을 몰라서 믿습니까?
아니 간음하지 말라는 것을 몰라서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어도 세상 사람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자기들이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도리어 율법을 범함으로 해서 죄의 종이 되어서 율법의 포로가 되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이 영생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서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복음을 보아야 하는데 신학 박사라고 하는 그들이 복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불의로 진리를 막다가 진노를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성경에 누가 율법을 지키라고 합니까? 분명히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저주를 받음으로 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고 있는데 누가 율법을 지키라고 하고 있습니까? 진리의 성령이 오시지 않아서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니까 모든 성경이 다 율법을 지키라는 것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기독교인들이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도 자기 조상들은 그렇게 했어도 자기들은 안 그렇다고 굳게 믿었고 이방의 기독교인들 역시도 유대인은 그렇게 했어도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유대인입니다
율법을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유대인들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단의 회라고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은 표면적인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표면적 유대인은 음부의 고통 중에 있다고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율법을 지키면 할례를 받은 것이 유익하지만, 율법을 어기면 그대가 받은 할례는 할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
할례를 받았습니까?
그리스도편지에서 갈라디아서 강해를 했습니다. 할례라는 율법의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왜 갈라디아서나 로마서에서 할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할례라는 율법은 율법 전체 613가지를 대표하는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의 율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표성입니다
성경은 대표성을 가지고 말씀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성이 있는 말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방에 복음을 전하고 나서 가장 먼저 들어온 율법이 바로 할례입니다. 할례라는 율법이 상징하고 있는 것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유월절을 먹으려면 이방인이라도 할례를 받고 먹으라고 했기 때문에 할례를 쉽게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면 할례를 받은 것이 유익합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어겨가면서 까지도 할례를 행하고 있습니다.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는데 안식일이 그 날이라고 해도 할례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어느 율법도 안식일에 행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이 할례만은 안식일이라고 해도 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율법의 대표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할례를 하고 나서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할례를 행하고 나서 율법을 다 지켰으면 이 할례가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만일 율법을 범하면 그것이 아무리 대표성이 있는 할례라고 할지라도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합니다.
유대인은 누구나 다 할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면 그 할례가 유익합니다. 그러나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네가 받은 그 할례라는 율법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표징으로 할례를 받았는데 율법을 범하면 할례를 했을지라도 유대인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빌립보서3:7절을 보겠습니다. (신 321쪽)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유익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유익해야 합니다. 유익하다는 것은 구원을 받아야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조금 더 이익을 얻는 것을 가지고 유익하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아야 유익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입니다.
빌립보서에서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었다는 말씀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구원을 받기에 충분히 유익한 것을 다 가지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는 자기가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져서 유익한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바리새인으로 살았을 때는 그것이 유익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했던 그것을 다 버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버립니까? 물론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버린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기는 유익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율법을 알고 나니까 죄인 중에 괴수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면서 버리고 그것이 도리어 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습니다.
바리새인으로 살 때는 그렇게 알았습니다. 그렇게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켰을 때는 자기에게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되고 율법을 알고 나니까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가 되어 있습니다. 자기는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져서 유익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율법을 행한 것이 아니라 율법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다 행했다면 분명히 그 할례는 유익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율법에서 죄를 깨닫고 나니까 사도 바울이 받은 할례가 무할례가 되어서 아무 유익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주의자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십일조와 주일이라는 날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십일조를 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 율법을 다 행하면 그 십일조가 유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십일조를 한 그 사람이 율법을 다 행하지 못하면 그가 한 십일조는 십일조가 아닌 것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십일조를 했습니까?
그런데 그 십일조가, 십일조가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율법을 다 행했으면 그 십일조가, 십일조가 될 수 있는데 율법을 다 행하지 못하니까 십일조가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야고보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하나 범했습니까?
그 사람은 모두를 범함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십일조를 했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은 모든 율법을 다 지켰을 때 그 십일조가, 십일조가 됩니다. 그런데 율법을 하나라도 범하면 그 십일조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는 이미 율법을 범한 자가 되어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할례가 자기들의 육체에 표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징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례를 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도 그가 율법을 범하게 되면 그가 한 할례가 무할례가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행한즉 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지키고 싶은 어느 율법을 행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십일조를 드리고 주일을 지키고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모든 율법을 행한즉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라도 범하면 그가 지킨 율법이라는 것은 율법을 범한 자가 되어서 유익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순간 율법이 범죄자라고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양털과 베실을 섞어 짠 옷을 입지 말라는 그 율법을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사도 바울이 똑같이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네가 십일조를 드렸냐고 묻고 있습니다.
할례라는 율법은 모든 율법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할례를 받지 않지만 대표성이 있기 때문에 같습니다. 네가 십일조를 내고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 네가 율법을 행하면 네가 내고 있는 십일조가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율법을 행해야 유익한가 하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를 다 행해야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2: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72쪽)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기독교인들입니다
사실 처음에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올 때만 해도 십일조라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누군가에 의해서 시작이 되었고 그것이 이제는 마치 이스라엘이 할례를 받는 것과 같이 표징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여러분에게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 율법을 다 행하면 그 십일조가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613가지 모든 율법을 다 행하면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는 십일조가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유익하다는 것은 율법을 지킨 그것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는 너무 감성에 젖어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을 모르다보니까 감성적인 말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고 거기에 사람들이 아주 쉽게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내 이성이 아니라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내 이성은 도리어 감성을 자극하고 있고 그것이 진리를 가로 막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율법을 다 지키면 네가 하고 있는 십일조가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가 하고 있는 십일조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할례라는 말씀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를 범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마음으로 십일조를 하고 주일을 지키고 있는 가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성경이 율법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감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입니다
이 시대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율법이 주일이라는 날과 십일조입니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원해서 하고 있다면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여러분이 십일조만 내고 싶고 주일만 지키고 싶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다 행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율법입니까?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행하면 여러분이 하고 있는 십일조가 그리고 주일이라는 날이 유익이 된다는 말씀이며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그러니까 성경 전체의 율법 중에 어느 하나를 범하면 여러분이 하고 있는 십일조와 주일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유익을 얻지 못하니까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무할례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율법을 범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가 아무리 할례를 받았어도 만일 율법을 범하게 되면 그가 받은 할례가 무할례가 된다는 말씀이며 그것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율법을 지킵니까?
반드시 온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그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야고보서, 갈라디아서, 로마서에서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키고 싶다 해서 할례를 받고 내가 지키고 싶다 해서 십일조만 내고 주일을 지키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어느 한 가지를 가지고 율법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온 율법입니다
도적질 하지 말라는 것도 율법입니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것도 율법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것도 율법입니다. 그리고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는 것도 율법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것만 율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웃깁니까?
일부 율법을 조금 더 심하게 지키고 있는 교회에서 돼지고기를 안 먹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소고기는 먹습니다. 그런데 소고기를 먹을 때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과 같이 도축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소고기를 먹는다 해도 성경에서 도축한 것과 같은 고기를 먹지 않고 있다면 율법을 범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까?
그들이 성경에 있는 율법대로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까? 솔직히 이 시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십일조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어디 소득의 십일조가 율법으로 되어 있습니까?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만들어 놓은 율법이지 성경에서 말씀하는 십일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율법을 지키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아무리 성경에서 정당성을 찾아서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고 해도 그 율법을 지키는 순간 그는 율법을 행해야 그가 지키는 율법이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행하지 못하면 그는 마치 이스라엘이 무할례가 되는 것과 같이 그는 율법을 범한 자가 되어서 유익을 얻지 못하고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유익해야 합니다.
내 생명에 있어서 유익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율법을 지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유익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율법을 행한 것으로 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율법 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다 행했느냐고 묻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행하지 못한다면 그는 유익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불행한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2:26절을 보겠습니다. (신 242쪽)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율법의 규정을 지키면, 그 사람은 할례를 받지 않았더라도 할례를 받은 것으로 여겨질 것이 아니겠습니까?"
유대인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징으로 할례를 받았는데 이스라엘이 받은 그 할례가 무할례가 되어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어느 한 가지를 지키는 것을 가지고 내가 지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려면 반드시 다 행해서 유익을 얻어야 합니다. 유익을 얻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의롭다 함을 받아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이 지키는 율법이 마치 이스라엘의 할례가 무할례가 되는 것과 같이 유익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이성이 아닙니다.
당연히 도적질 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고 간음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또한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반포하는 그들이 다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제 사도 바울이 로마서3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문합니다.
사도 바울이 다시 묻고 있습니다.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방인이 율법의 모든 제도를 다 지키면 이제 유대인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런즉,
앞에서 말씀한 것이 무엇입니까? 할례를 받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 율법을 행해야 유익이 있다는 말씀이며 만일 율법을 범하면 그가 받은 할례가 무할레가 되어서 유익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할례를 받은 사람이 율법을 범하면 무할례가 됩니다. 그러면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고 묻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할례라는 의미를 알고 이 말씀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할례를 행하게 했는가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창세기17:7-11절을 보겠습니다. (구 20쪽)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할례입니다
사실 이 할례는 유대인들에게 있어 율법 그 이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약 성경에서 보아서 알겠지만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더라도 왜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왜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이 할례를 함으로 해서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할례를 함으로 해서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가나안이 천국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천국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할례를 함으로 해서 이것이 언약이 되어서 너와 네 자손이 영영히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할례를 하게 하셨는가 하면 가나안 땅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것을 밖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할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이 할례를 함으로 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살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너와 네 후손이 지킬 영원한 언약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할례와 같이 여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지금 창세기에서 말씀하는 그 언약을 받은 백성이 되어서 가나안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는 말씀은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할례가 바로 이렇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이 할례는 표징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할례를 받았느냐 그러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행해야 유익하다는 말씀은 율법을 다 지켜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할례를 받았느냐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너희가 받은 할례는 무할례가 된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가 할례와 같이 여긴다는 말씀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언약을 받아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육체에 할례를 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에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어떻게 해야 하는 줄을 모르고 그저 육체에 할례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할례가 율법 그 이상이 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했습니다.
누가 율법의 제도를 지킬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어느 누구도 율법의 제도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구나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 이방인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방인입니다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할례를 받지 않았지만 할례를 받은 것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이지만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과 같이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천국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즉
그러니까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범하여 무할례가 된 것과 같이 우리 이방인이라도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서 가나안 일경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는 할례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합니까? 무할례자인 우리가 진짜 율법의 제도를 지켜서 한다는 말씀입니까?
야고보서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72쪽)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어떻게 율법의 제도를 지킵니까?
무할례자인 우리 이방인들이 어떻게 지켜서 할례와 같이 되어서 가나안 일경으로 기업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도 하지 못한 것을 우리 이방인들이 할 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율법의 제도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앞에서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킨다 하면서 율법을 범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그렇게 율법을 범함으로 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말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앞에 말씀을 미루어서 짐작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런즉 이방인인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지킬 수 없지만 무할례자가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킨다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말씀을 한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이방인이 어떻게 율법의 제도를 지킬 수 있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율법의 제도를 지킵니까?
우리 이방인은 율법으로는 가난한 자입니다.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율법의 의로는 가난한 자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믿음으로 부요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율법의 제도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면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지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할례자입니다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자기들이 유대인이 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비록 세상에 대해서 가난한 우리 성도들이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부요하게 해 주시고 있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율법의 제도를 지켰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의 제도를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지만 그렇게 율법을 지키면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하신대로 가나안 일경의 땅을 기업으로 주어 영원히 거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할례입니다
그것은 가나안 땅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의 표징입니다. 그것을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이 우리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것을 어떻게 지키는가 하면 우리가 부자가 되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지킬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부요함을 받으면 그 무할례가 할례가 되어서 약속하신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할례자입니까?
자기 육체에 할례를 한 유대인이 할례자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부요함을 받은 이방인이 할례자입니까? 사도 바울이 그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체로 할례를 한 유대인들은 범죄를 해서 무할례가 되었다는 말씀이며 할례를 받지 않은 우리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할례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할례자입니까?
육체의 조상 아브라함을 따라 자기 몸에 할례를 한 그들은 범죄를 해서 무할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이방인들은 비록 아브라함의 육체의 자손과 같이 할례를 하지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님께서 지키신 율법의 제도를 우리에게 주심으로 부요하게 되어서 그것이 할례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는 표징입니다
가나안 땅의 일경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표징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육체에 이 할례를 했지만 율법을 범함으로 해서 할례가 무할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제도를 지키심으로 해서 할례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육체의 행위를 할례를 하다가 무할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자기 육체로 할례를 하지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요하게 해 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할례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례자가 되는가를 사도 바울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어떻게 할례자가 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의 대표성입니다
그냥 할례라는 율법 한 가지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이 할례에 대해서 말씀을 할 때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든 율법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할례라는 율법 한 가지로 생각해서도 안 되고 또 할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고 할례자가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두 가지입니다
만약을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고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율법의 요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가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가 유대인들에게 어떠한 의미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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