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20-1,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윤주만목사 2024. 6. 26. 08:31

로마서3:1절을 보겠습니다. (242)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표면적 유대인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2장까지를 말씀하면서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초대 교회에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왔고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얼마나 쉽게 율법주의에 미혹이 되고 있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 표면적 유대인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을 사도 바울은 표면적 유대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성경을 자기들에게 이로운 쪽으로 해석을 해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면서도 이면적 유대인이라고 하면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성경을 보면서 문자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보고 이면적 유대인이라고 해서 이면적 유대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율법을 온전히 행하지 않으면 이면적 유대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율법을 지켰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믿지를 못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비록 유대인과 같이 할례를 받지 않은 무할례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요하게 해 주심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킨 성도는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안 지킵니다.

이미 다 지킨 율법을 왜 또 지킵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게 되어 있고 믿음이 있는 성도는 절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지만 이면적으로는 이미 율법을 지킨 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과 같은 표면적 유대인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가 이면적 유대인이라고 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할례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단지 할례 한 가지를 가지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할례는 율법 613가지를 대표하는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범함으로 해서 무할례자가 그러니까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마귀의 자식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할례자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유대인과 같은 할례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다 할례자이며 그들은 모두가 율법을 범하는 자가 되어서 성도들로부터 판단을 받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군지 모릅니까?

성경에서 이면적 유대인이라고 하니까 무조건 이면적 유대인이 된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표면적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가 아무리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있다 하고 또 자기가 주님을 사랑한다 해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내 진심을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사람의 진심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왜 보는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이야기를 하려면 성경을 보아야 할 필요성이 전혀 없습니다.

이면적 유대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할례는 마음에 하고 의문에 있지 않고 신령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의문에 있지 않습니다. 이면적 유대인은 어떤 의문에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의문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의 문자가 의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육체로 하려고 하는 모든 말씀이 다 의문입니다.

성도는 그 의문에 있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똑같이 보고 있지만 의문에 있는 사람이 있고 신령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이 성경을 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비밀로 감춰두셔서 누구는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의문에 있습니다. 성경을 100번 읽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000번을 읽어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다 의문에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신령에 있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야 의문에 있지 않고 신령에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의문과 신령을 비교를 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이 시대 교인들은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의문에 쓴 계명의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의문에 있는 사람은 신령에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신령에 있는 성도는 의문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배척을 하기 때문에 함께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두 가지를 놓고 비교를 하면서 말씀할 때는 다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면적 유대인이 누군가 하면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은 의문에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신령에 있다고 하면서 이면적 유대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면적 유대인이라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의문에 있지 말라고 했으면 반드시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영의 사람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의문에 있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실 의문에 쓴 계명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교회 안에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마치 표면적 유대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면 유대 사람의 특권은 무엇이며, 할례의 이로움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묻고 있습니다.

그런즉 유대인이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로마서217절에서25절까지의 말씀을 이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에 대해서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유대 사람이 낫습니까?

절대로 아니라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유대인이 나음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랑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교훈을 받아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을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그런 유대인이 나음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주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은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백성이었습니다. 우리 이방인에 비하면 그들이 분명히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히 특권을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민족이었으며 이 세상에서 유대인만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살았습니다.

신명기7:6절을 보겠습니다. (273)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유대인인 나음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백성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사람들이 다시 번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민족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보아서 잘 알겠지만 노아의 홍수가 있은 후에 사람들은 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노아 때에 말씀을 하신 것과 같이 사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악한 자들을 홍수로 멸하셨지만 사람들이 노아가 죽고 나자 또 다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각자가 신을 만들면서 살았습니다.

그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데아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약속으로 낳게 하시고 또 야곱으로 장자의 명분을 얻게 하셔서 그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 만민 중에서 오직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택하셨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성경을 모르고 복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이 어떠한 신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도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호세아에서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몰랐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여호와를 힘써 알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는 그 백성에게 호세아 선지자가 여호와를 힘써 알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자기들은 안다고 했지만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노아의 홍수 후에 이 지상에 있던 모든 사람이 또 그렇게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지상 만민입니다

그들 중에 한 사람도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갈데아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유대인은 정말 지상 만민 중에서 하나님의 기업으로 택하심을 입은 백성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백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정말 아브라함이라는 사람도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알고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이스라엘을 자기 기업으로 택하시려고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혈통을 잇게 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계시를 해 주셨습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시를 해 주시지 않아서 자기들이 만든 삼위일체라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라고 하기 보다는 사람의 이성으로 만든 신을 믿고 있다고 해도 절대로 틀린 말이 아닙니다.

유대인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를 해 주시고 또 그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난 후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은 인도하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는 그들이 장대한 민족과 성이 높은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꿈에 불과한 일입니다.

그러나 지상 만민 중에서 선택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있기 까지는 지상 만민 중에서 오직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손으로 번성케 하시고 천국을 모형으로 하고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유대인은 우리 이방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택을 받은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17:8절을 보겠습니다. (20)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할례의 이로움이 무엇입니까?

가나안 일경을 기업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할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할례라고 하니까 그저 이스라엘이 자기 육체에 받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할례의 표징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가나안 일경으로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그것을 받았습니다.

자기 백성으로 지상 만민 중에서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단순히 할례가 아니라 그 할례는 율법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고 그 할례를 몸에 했다는 것은 율법을 다 지킨 의로운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징이라는 말씀입니다

가나안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들어갈 천국입니다 그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 하면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에서는 그것을 육체에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육체로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것을 표징으로 나타내는 일입니다 그러나 신명기에서 그 할례를 어디에 하라고 하는가 하면 마음에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할례를 받은 민족입니다 분명히 그들은 할례의 유익을 얻는 백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할례를 신령으로 하지 않고 자기 육체로 했기 때문에 버림을 받고 말았다는 말씀입니다

유익입니다

할례의 유익을 모르면 안 됩니다 육체에 그것을 했을 때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령으로 할레를 하면 반드시 유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은 분명히 이런 점에서 우리 이방인보다 더 낫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유대인이 우리보다 낫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선택을 하셨고 할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받은 유대인들이 선택을 받았지만 버림을 받는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해야 하는 할례를 몸에 했습니다. 그렇게 자기 육체에 할례를 하고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먼저 천국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할례를 행하는 것과 같이 이 시대 믿음의 증표라고 하면서 십일조를 내고 있고 주일이라는 날을 지키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분명히 세상 사람보다는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천국 잔치에 들어왔습니다. 아예 기회조차도 없는 세상 사람에 비하면 천국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이 되었다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나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아서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유익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입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입니까? 분명히 세상 사람에 비하면 낫습니다. 그리고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고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나안 일경을 기업으로 얻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할례가 유익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할례의 유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16:26절을 보겠습니다. (28)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할례를 했는가 하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어 영원히 거하는 것을 표징으로 삼아서 했습니다. 그러니까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백성의 표징이 바로 할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의 유익이 무엇인가 하면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할례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영원히 거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어 가나안 땅에 거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온 천하를 얻으려고 하다가 자기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할례가 주는 유익을 모르고 온 천하를 얻으려고 하다가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서 자기 생명을 잃고 말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유익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례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례를 해야 하는가 하면 의문에 있지 않고 신령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령으로 할례를 하면 유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 역시 할례를 의문에 하고 있습니다.

할례의 유익입니다.

그것은 신령으로 할 때 있습니다. 의문으로 하면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할례가 무엇인가도 모르고 있고 어떻게 할례를 해야 하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도는 반드시 할례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령에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신령으로 할례를 하면 천국을 기업으로 얻고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할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그리고 할례의 유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어떻게 얻습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할례를 하고 신령으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오직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성도만이 신령으로 할례를 하고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할례를 몸에 행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특권이 주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분명히 청함을 받은 특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하고 마귀의 자식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하면 할례를 마음에 하지 않았습니다. 할례가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 시대 역시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로마서3:2절을 보겠습니다. (242)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모든 면에서 많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범사에 유익이 많이 있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각가지 모든 일에게 유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되고 할례가 있음으로 해서 그들이 받을 유익이 모든 일에게 많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이 그들에게 주어졌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으로서 할례를 받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많은 유익을 주고 있는가를 유대인들이 몰랐습니다.

그것을 말씀했습니다.

신명기7장에서 말씀을 했고 창세기17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또 천국을 기업으로 얻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유대인이 되고 할례를 받는 것이 범사에 유익이 많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의문의 할례가 아닙니다. 유익이 있으려면 반드시 이면적 유대인이 되어야 하고 할례는 마음에 할찌지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않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면적 유대인이 되고 할례를 마음에 성령으로 감동으로 하고 있는 성도는 범사에 유익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육의 일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입니다

이 성경을 보고 육의 일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이면적 유대인이 되고 마음에 할례를 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이 있는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는 반드시 유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할례

누가 합니까? 유대인들이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누가 하고 있습니까? 성도들이 마음에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또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것을 요한일서에서는 우리의 이김은 이것이니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7절을 보겠습니다. (400)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요한계시록2:11절을 보겠습니다. (400)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요한계시록2:17절을 보겠습니다. (40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요한계시록2:26절을 보겠습니다. (401)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요한계시록3:5절을 보겠습니다. (402)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한계시록3:12절을 보겠습니다. (40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요한계시록3:21절을 보겠습니다. (403)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오직 믿음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할례를 하는 것 신령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의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많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나음입니다. 그리고 할례의 유익입니다. 얼마나 많은 유익이 있는가를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할례를 받는 사람들에게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받는가하면 이기는 자가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기는가 하면 오직 믿음으로 이기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이 믿음의 비밀을 모르고 그저 자기들의 육체로 싸워서 이기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종교가 되어서 자기들이 이기는 것을 더욱 더 과시를 하려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실 이것이 영의 일이다. 보니까 아직까지는 실감이 잘 나지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나무 과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천국에 생명나무 과실이 있다고 하니까 그런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성도는 이 생명나무 과실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고 있습니다.

생명나무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있는 성도들에게는 주님이 오시고 난 후에 생명나무 과실을 먹게 함으로 해서 영원히 살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에덴을 창설하시고 그곳에도 생명나무를 두셨지만 아담이 범죄함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화염검을 두어서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안 됩니다

이미 아담이 범죄를 하는 순간 어느 누구도 생명나무 과실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육체는 죄악의 종자이기 때문에 생명나무 과실을 먹지 못하게 하시고 오직 믿음으로 탄생한 그리스도의 영이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을 해서 천국에 들어갈 때는 생명나무 과실을 먹게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둘째 사망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둘째 사망의 해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0장에서도 둘째 사망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째 사망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둘째 사망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은 둘째 사망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이 아닙니다.

그리고 신학이 아닙니다. 성도는 모든 것을 성경에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아무리 정통이라고 하는 신학에서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성경이 아니라고 하면 그런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보려고 하기보다는 신학에서 자기들이 배운 세상 초등학문을 더 신뢰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둘째 사망의 해가 있습니다.

그 해를 영원히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둘째 사망으로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둘째 사망에 사망과 불못도 던지운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첫째 사망도 던지우고 또 부자가 음부의 고통을 받는 불못도 던지운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안 봅니다

그리고 신학에서 배운 서적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는 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자기들이 신학에서 배운 그 지식에 성경을 짜 맞추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치 성도가 영생을 하는 것과 같이 영원히 그들이 벌을 받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만나를 주십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었던 그런 만나가 아니라 영원히 살 수 있는 만나를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너무 똑똑한 척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성경을 다 아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만나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런데 감추었던 만나입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안다고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제한적인 것밖에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늘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안다고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제한적인 것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아는 것은 겨우 구원을 받을 정도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말씀합니까?

고린도전서에서 청동거울을 보는 것과 같이 희미하게 보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때는 천국에 들어가서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는 것과 같이 온전히 알게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우리 성도는 정말 가능한 밝히 보이기까지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가야 합니다.

지금은 희미합니다.

저 역시도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제가 전할 수 있는 것은 정말 희미한 정도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려서 겨우 구원을 받을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더욱 말씀을 사모하고 있지만 제가 인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흰 돌을 주십니다.

주님을 반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흰 돌을 주는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구원을 받으면 새 이름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가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고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이름이 아니라 새 이름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에서 부르던 이름을 천국에서도 부르는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상상이 안 됩니다. 이 세상에 나라가 있다 해도 기껏해야 300개 국가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기는 자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의 이성으로는 상상이 안 되는 일입니다.

만국입니다

만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숫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온 우주를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때에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어떻게 내려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모든 것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어느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대단한 권세입니다.

그런데 만국입니다

그런 권세가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생의 지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아니 어떻게 생각을 하면 너무 허황된 말씀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흰 옷을 입습니다.

흰 옷을 입는다고 하니까 마치 옷을 입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유입니다.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흰 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더러운 생명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새로 탄생이 되는 영은 흰 옷과 같이 깨끗한 영입니다. 그 옷을 입혀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와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을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인입니다

법정 용어입니다. 그냥 단순히 그래 너 알아 하는 것이 아니라 법정에서 사용하는 언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시인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합니다.

그가 결코 성전에서 나가지 않게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기둥이 되게 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왜 기둥이 되게 하는가 하면 그가 결코 천국에서 다시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둥입니다

그 기둥이 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성전이 허물어집니다. 그와 같이 우리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에서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나의 새 이름을 기록하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20-2번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