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로마서 강해(오직 믿음)

1-2,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윤주만목사 2024. 5. 29. 08:59

창세기3:15절을 보겠습니다. (4)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입니다

이 여자의 후손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마도 이정도 비유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의 말씀을 보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주님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약속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의 이 말씀을 보고 뱀의 머리가 상했다는 것을 다 지식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단의 머리가 상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 알고 있는 복음이 거기까지입니다. 뱀의 머리가 어떻게 상했는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이 정도를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들이 복음을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복음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뱀의 머리가 상했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뱀의 머리가 상했으면 이제 사단은 더 이상 우리 성도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약속하신 것입니다

약속을 알기만 하면 뭐 합니까?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알았으면 이제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뱀의 머리가 상했다는 것을 비유를 통해서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믿지는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뱀의 머리가 상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에 미리 약속한 복음을 믿는 일입니다

성경은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뱀의 머리가 상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했으면 이제 사단은 더 이상 우리 성도를 죽게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안 믿습니다.

사단의 머리가 상했다는 것을 안 믿고 있습니다. 이 정도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복음을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안다고 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사단의 머리가 상했으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 성도를 죽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8:2절을 보겠습니다. (249)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사단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단은 죄와 사망의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을 호세아에서 율법을 어긴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를 함으로 해서 그러니까 죄와 사망의 법아래 들어감으로 해서 사망이 찾아 왔습니다.

율법입니다

이제 그것에서 해방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창세기의 약속의 말씀과 같이 이 세상에 오셔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 해서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더 이상 율법이 우리를 죽이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복음을 믿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에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 해서 이제 사단은 더 이상 율법으로는 우리 성도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났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인데 창세기의 말씀을 보니까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아담을 범죄 하게 해서 죽게 했습니다.

사단이 죄와 사망의 법으로 아담을 죽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주님이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십자가에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아담을 죄와 사망의 법인 율법으로 죽게 했는데 더 이상은 그 율법으로는 죽이지 못하게 우리를 해방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인 율법에서 성경은 분명히 해방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복음을 믿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말로만 복음을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셨으면 그것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복음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뱀이 우리는 죽이지 못 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뱀의 머리가 상했다는 말씀은 뱀이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단이 진짜 지금 죽었다는 말씀이 아니라 이제 우리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을 죽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입니다

그 법에서 우리는 이미 죽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 아래서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으로는 우리는 저주를 받아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죄와 사망의 법아래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았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우리 육체가 산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의 탄생이 되어서 산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체는 죄와 사망의 법아래서 죽었지만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이 탄생이 되었습니다.

복음입니다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창세기에서의 약속을 보았다면 우리는 그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죄와 사망의 법아래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 보아야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단이 죽었습니까?

사단의 머리가 상했습니까? 사단은 아직 안 죽었습니다. 사단이 죽었다면 이 세상은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머리를 상하게 했다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안에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을 우리 육체에 상관된 죄와 사망의 법이 죽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이 더 이상 우리를 죽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강해를 통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로마서 강해를 보시기 전에 먼저 야고보서와 갈라디아서 강해를 보면 이 말씀이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강해에서 율법은 우리를 저주받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을 보면서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에 빠져서 스스로 저주를 자청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거의 모든 교회가 율법주의에 의해서 저주를 받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방의 교회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깊고 오묘한 말씀을 깨닫기 보다는 그저 문자에 치우치고 있고 아주 단순한 비유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한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있어 복음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신명기23:15-16절을 보겠습니다. (297)

종이 그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너는 그 주인에게로 돌리지 말고 그가 너의 성읍 중에서 기뻐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너와 함께 네 가운데 거하게 하고 그를 압제하지 말찌니라

그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그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그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성경을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입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종입니다. 누구의 종입니까? 앞에서 두 주인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가 되기까지는 율법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복음을 알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차음부터 복음을 알았다고 하는 사람은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모두가 율법의 종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상이 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하기 때문에 사람의 이성에 따르면 율법의 종으로 사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에서도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율법의 종입니다

그런데 그 종으로 살려고 하다 보니까 율법이 우리를 저주하고 있고 율법으로는 사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에 내 자신을 비추어 보니까 우리는 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아는 사람은 자기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알고, 도적질을 한 자라는 것을 알고, 또 간음을 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살인한 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율법을 보고 내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율법의 종으로 살아왔는데 가만히 율법을 보니까 율법이 나를 살인한 자로 규정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보니까 살인한 자가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왔습니다.

율법의 종이 되어서 살아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 모두는 살인한 자가 되어서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에서도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복음을 듣고 나니까 이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살인한 자고 율법을 범한 자가 되어서 저주를 받게 되어서 우리는 도망을 갔습니다.

누구에게로 갔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도망을 갔다는 말씀입니다. 구약에 도피성을 왜 만들라 하셨는가 하면 우리 인생 모두는 복음을 알기 전에는 그릇 살인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도피성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종이 되어서 살았는데 복음이 들어와서 성경을 자세히 듣고 보니까 율법의 저주를 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주를 받아 죽게 되었으면 도망을 가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경을 보고도 도망을 가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가 살인한 자라는 것을 모르고, 간음한 자라는 것을 모르고, 도적질을 한 자라는 것을 모르면 절대로 도망을 가지 않지만 내가 모든 율법을 범한 자라는 것을 아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도망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도망을 갔습니다.

누구에게로 갔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갔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도망을 온 우리를 율법에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율법에 의해서 반드시 저주를 받아 죽어야 합니다. 정말 어떻게 해도 죽어야 하는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 도망을 갔습니다.

주님께로 도망을 갔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율법의 주인에게로 돌리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를 주인에게로 다시 돌리면 우리는 저주를 받아 죽어야 합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살인한 내가 주인을 피해 도망을 갔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주인에게 돌리지 말라고 율법에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입니다

복음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고도 복음을 모르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가 살인한 자라는 것도 모르고 도망도 가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도망을 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말씀은 교회 안에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지금 이 시대 교회입니다.

다 율법의 종입니다

이 말씀은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육적으로 지킬 때 보니까 자기는 살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니까 율법을 지킨 그 행위가 살인을 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지킨 그것이 살인을 한 것이 되고 간음을 한 것이 되고 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런 우리가 도망할 수 있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도망했습니다. 도망했다는 말씀은 율법을 지키던 사람이 이제 복음을 듣고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를 주님께서는 다시 율법에게로 돌리지 말고 그가 너의 성읍 중에서 기뻐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너와 함께 네 가운데 거하게 하고 압제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미리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 시대는 율법을 거의 모든 사람이 다 문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도망을 오는 성도들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율법에 미리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복음이라는 단어가 신약에 나오다보니까 사람들은 구약은 복음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성경 전체는 우리에게 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알고 나니까 이제 율법의 주인에게서 도망을 할 줄을 아시고 성경에 모세를 통해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에게 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인에게 돌리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율법에 의해서 저주를 받아 사망을 당해야 합니다. 만약에 이 약속이 성경에 없었다면 주님은 우리를 다시 주인에게 돌려보내도 할 말이 없고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을 해 주심으로 우리가 율법의 종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도망을 가서 우리가 원하는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보았습니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 소경이 됩니다. 그러나 이 율법의 의미를 알고 나니까 이 말씀이 우리에게 복음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렇게 해 주시겠다고 모세를 통해서 미리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복음에 대해서 전혀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모르면 약속을 믿을 수 없습니다.

신명기 말씀입니다

이것이 율법입니까? 복음입니까? 율법주의자의 눈에는 율법으로 보이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복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말로만 복음이라고 하지 말고 성경에서 진짜 복음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말로만 복음이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복음이 아닌 것을 가지고 복음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율법을 가지고 복음이라고 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경말씀의 문자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이 복음이 아니라 성경을 보았으면 그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미리 약속하신 것을 알아야 그것이 복음이 됩니다.

요한복음10:5절을 보겠습니다. (163)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율법은 타인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타인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음성을 듣고 도리어 따라가고 있습니다. 타인의 음성을 들었으면 도망을 가야 하는데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전해지고 있는데도 도망을 가지 않고 있습니다.

타인의 음성은 저주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라는 말을 하는 것은 저주를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에서 분명히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저주를 주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그러면 내가 보고 있는 성경이 반드시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저주를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얻게 하는 복음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타인의 음성을 듣고 주님께로 도망을 갔을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을 주시는 것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보면서도 복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구약을 보고 있습니다.

아니 구약뿐 아니라 모든 성경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종으로 살다가 주님께로 도망을 가서 우리가 기뻐하는 성읍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 해서도 아니고 또 율법을 지켜서도 아니고 그저 주인에게서 도망을 가서 주님께로 가면 주님이 우리를 천국에서 살게 해 주시겠다는 것이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는 타인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도망을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율법을 들었으면 주님께로 도망을 가야 하는데도 이 시대는 그 율법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을 보고도 복음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저주를 받게 하는 율법에게서 도망을 가서 주님께로 가면 주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곳 천국에서 살게 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약속이 얼마나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되고 있습니까?

그러나 모릅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모릅니다. 아니 타인의 음성을 들으면서도 이 시대는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복음을 보아야 하지만 이 시대는 모두가 다른 복음을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같이 저주를 받게 하는 다른 복음에 취해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도망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미리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도망만 가면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주님과 함께 살게 해 주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신약을 시작하면서 주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주님만 복음을 전파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구약에서부터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천국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도망만 가면 천국에서 살게 해 주시겠다고 모세가 반포한 율법에 미리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이 약속을 믿기보다는 복음을 몰라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신명기22:1-4절을 보겠습니다. (295)

네 형제의 우양의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네가 혹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릴찌니 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무릇 형제의 잃은 아무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고 못 본 체하지 말 것이며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본체 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서 그것을 일으킬찌니라

성경은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은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율법입니다. 이 율법이 복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복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저주를 받게 하는 율법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은 복음입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부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왜 복음인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성경을 볼 때 그 성경이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비유입니다

그 비유를 깨닫지를 못하면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복음이 보이지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 말씀이 복음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 이 신명기의 말씀이 복음이라는 것조차 이 시대는 모르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먼저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볼 때는 로마서12절의 말씀을 먼저 생각하고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했다는 것을 기초로 두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기초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소경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는데도 그것이 복음이 안 되고 있다면 그는 성경을 잘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복음이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이 말씀이 복음이 된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게 하는 율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그저 그런 말씀으로 치부를 해 버리고 있습니다.

네 형제의 우양입니다

소와 양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시대는 도시화가 되어 있습니다. 소나 양을 길러도 방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에 가두어서 기르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시대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고 그저 가볍게 성경을 보고 넘어가고 있습니다. 도시에 소나 양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보아야 합니다.

복음이 안 보이면 그저 이스라엘이 목축을 할 때의 일로 치부를 하고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말씀을 알고 있고 그것을 기초로 두고 있는 성도는 이 말씀이 복음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똑같이 성경을 보고 있지만 누구에게는 그저 그런 말씀으로 보이고 누구에게는 복음이 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형제입니다

지금 이 율법은 사단과 주님을 형제라고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과 주님이 형제라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됩니다. 그러나 복음이 보이는 성도에게는 이 형제가 사단과 주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율법은 사단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사단이 지켜야 하는 율법이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입니다

이 율법을 사단이 반드시 지켜야 할 때는 우리에게 복음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저 이스라엘의 목축 사회에서의 율법으로 보인다면 절대로 복음이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율법을 보고 복음으로 본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보고 이것을 자기들의 육체로 지키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네 형제의 우양이 길을 잃었습니다.

그러니까 일을 하는 일군과 성도가 길을 잃었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길을 잃었습니까?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 성도가 그리고 복음의 일군이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길을 잃었을 때는 그것을 못 본체 하지 말고 반드시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이 길을 잃어버리고 각기 제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갈지라도 성도는 네 형제의 우양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단에 우리를 끌어다가 주님에게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단이 돌려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설령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길을 잃었을지라도 사단은 반드시 우리를 데려다가 주님께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냥 돌려주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돌려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설령 길을 잃어버려서 각기 제 길로 갈지라도 사단은 반드시 우리 성도를 주님에게로 돌려주어야 합니다.

복음입니다

얼마나 귀한 복음입니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주님께로 갈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설령 우리가 길을 잃어버렸을지라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를 찾으시고 있지만 설령 주님이 찾지 못하더라도 사단은 우리를 반드시 주님께로 돌려주어야 합니다. 얼마나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말씀입니까?

복음은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을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 시대는 도시에 살다보니까 우양을 볼 일이 없다보니까 아예 이 복음을 보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설령 길을 잃더라도 사단을 통해서라도 우리가 주님을 찾아갈 수 있게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길을 잃을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주님도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있고 설령 그런 일이 있다 해도 사단은 반드시 우리를 주님에게로 돌려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복음을 모르면 어떻게 합니까? 자기가 길을 찾으려고 하다가 도리어 잘못된 길로 가게 됩니다.

형제를 모릅니다.

주님을 모릅니다. 그럴지라도 사단은 우리를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잘 보호를 해서 주님에게로 반드시 돌려주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을 하신 이 복음을 알면 기쁨이 넘칩니다. 그리고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아무 근심 걱정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일부러 길을 잃어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나귀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의복이라고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구원의 옷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잃어버리고 있으면 사단은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설령 이런 일이 있다 해도 반드시 사단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려서 구원받게 해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넘어졌습니까?

사단은 주님을 도와서 우리를 일으켜주어야 합니다. 못 본체 하지 말고 반드시 형제를 도와서 일으켜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복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믿음에 든든히 서 있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면 뭐 합니까?

그가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면 뭐 합니까? 성경을 보고도 복음을 모른다면 그는 소경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다가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복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문자를 알면 뭐 합니까?

그것이 복음입니까?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의 문자는 복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 복음이라고 말씀을 하니까 성경을 복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텍스트는 복음이 아니라 그저 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그 율법이 저주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의 율법은 저주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자에서 복음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내가 믿기 싫어도 믿어지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의 오묘함과 하나님의 섭리가 어떠하다는 것을 아는 성도만이 성경에서 이 복음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30:1절을 보겠습니다. (128)

너는 분향할 단을 만들지니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

너는 분향할 단을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율법 그대로 분향할 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성소 안에서 대제사장이 들어가서 매일 분향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성경을 보고 이렇게 다 저주를 받게 하는 율법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분향단이 무엇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그저 율법에 기록이 되어 있는 대로 분향을 했습니다.

성전이 누구입니까?

주님이라고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성막을 짓고도 이 성막이 주님의 육체라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대 신약을 보고 있는 교인들이 알고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주님의 육체라는 성경말씀을 보고도 복음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선지자들로 성경에 미리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을 보고 있는 이 시대 역시도 분향단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대제사장이 분향을 하는 것으로 말을 하고 있고 자기들이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기도에 대해서만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의의 삯을 위해서 기도를 하게 해서 발람과 같이 죽임을 당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분향 기도가 맞습니다.

그러나 이 분향단에서 누가 기도를 하고 있는 가를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무나 들어가서 분향하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이 들어가서 분향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성도가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이 기도를 하는 것을 성전을 통해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입니다

분향단은 주님께서 기도를 한다는 것을 성막론을 통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이 기도를 하는 것이 왜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냥 주님이 기도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서 그가 복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기도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복음이 되는 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8:34절을 보겠습니다. (250)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나님 우편입니다

우편은 구원을 상징하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를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진심으로 기도를 해서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내가 바란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이 분향단과 같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영생을 얻어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린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기도가 아니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정죄를 하지 못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시면 아무도 정죄를 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기도가 어떠하다는 것을 알아야 그것이 복음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기도를 믿으려 하기보다는 자기가 기도를 하려하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도가 복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분향단이 복음입니다

이 분향단을 보고도 복음을 모른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기도를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 기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주님께서 기도를 해 주셔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입니다

가룟 유다와 베드로가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고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위해서는 기도를 해주시지 않았고 베드로를 위해서는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셔서 베드로는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사도로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내 기도가 아닙니다.

주님의 기도가 우리를 구원하고 있습니다. 이 분향단을 보고 그것을 깨닫는 성도에게는 분향단이 복음이 됩니다. 그 아들이 우리를 위해서 어떻게 무슨 기도를 해 주시고 있는가를 성경에 미리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구약 성경을 보고 알고 있습니다.

내가 원한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내가 기도를 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셔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는 반드시 들어주시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기도를 하시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입니다

제가 몇 가지 성경 말씀과 율법을 가지고 복음을 말씀드렸습니다. 복음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을 하신 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보면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을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몇 가지입니다

이 몇 가지는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복음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왜 보는가 하면 성경에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을 알고 믿으려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왜 보는지도 모르고 있고 성경을 보면서도 도무지 복음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구속의 일이 복음입니다. 그 복음이 우리를 구원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복음이 아니라면 우리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저 말로만 복음이라고 하고 있고 성경에서 복음을 못 보고 있습니다.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을 미리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약속 그대로 복음이 우리를 구원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next 2-1